얼갈이 배추국은 요즈음의 단골 메뉴입니다.
고모님은 모처럼 먹어보는 구수한 배추국이라고 반 그릇 더 잡수십니다.
어제 저녁엔 어린 상추쌈만 잡수셨습니다.
고모님은 오실 때마다 저의 일을 거들어주십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신 고모님은 남방 다섯 개와 와이셔츠 한 벌을 싹싹
여린 주름살 하나 없이 반듯하게 다려서 옷걸이에 걸어놓으셨습니다.
저보다 훨씬 다림질을 잘 해 놓으셨습니다.
부엌 씽크대에 가보니 쌀도 씻어 놓으셨습니다.
올해 칠순이신 고모님은 집에서도 살림을 정성껏 돌보아주십니다.
세탁기 빨래도 싫어하셔서 손빨래를 하시는데 옷의 솔기마다 묻어있는
먼지를 털기 위해 옷마다 뒤집어서 헹구어내십니다.
빨래가 마르면 다림질 할 옷이 하나가 되어도 그 자리에서 다리십니다.
저는 모아 두었다가 다리지 못하면 아침을 하면서 급하게 허둥댑니다.
고모님은 친정살림을 오래 하시다가 그 당시에는 늦은편인 26살에 시집을 가셨습니다.
작은안골에서는 일 잘하기로 소문이 난 분이셨습니다.
누가 데려가는지 잘 살거라고 동네 분들의 칭찬이 자자하셨다고 합니다.
수도 잘 놓으시고 부엌일, 빨래, 다림질, 우렁잡기, 나물 해오기, 솔방울 따기 등 뭐든지 잘하셨습니다.
농사를 짓는 일꾼의 속옷까지 숯불다리미로 다려 주셨다고 합니다.
너무나 반듯하고 깨끗해서 일을 하면서 입기에는 아깝다고 하였답니다.
고단한 몸으로 새벽이 되도록 다린 식구들의 옷은 마루에 수북히 쌓여 있었다고 합니다.
옷에 흙탕물이라도 튀면 집에 돌아온 일꾼 아저씨는 고모님 몰래 우물가에서
흙물을 지웠다고 합니다. 부엌 흙벽에 까맣게 그을음이 끼면 고모님은 한밤중이라도
황토흙을 개어서 새 벽을 만들어 놓으셨다고 합니다.
그날 할일은 그날로 해야 직성이 풀리셨다고 합니다.
가마솥은 들기름과 가마솥 그을음을 긁어서 방게 등처럼 까맣고 반질반질하게 해 놓으셨답니다.
어머니는 물김치를 잡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 윤가들은 특징이 있어요 승질들이 깨끗한 것만 좋아해서 구시기 아주버님은 밥상을 받으셔도
상 안쪽을 들여다 보며 먼지를 잘 닦았나 검사를 했어요. 방에 앉으셔도 방바닥을 손으로 쓰윽쓱
문질러 보아서 껄끄러우면 넓게 앉지도 않고 오그려서 앉으셨어요. 그런 양반들인데 뭘."
밴뎅이 구이를 손에 들고 잡수시던 고모님은 깔깔 웃으십니다.
" 그렇긴 해요 서울 사촌오빠도 다락 에서부터 마당까지 싹싹 쓸어내셨는데 한가지 좋은점은
치워 주면서 잔소리를 안하는거예요. 우리 오빠는 잔소리만 했지 치워주지는 않으셨어요.
그런데 용중이는 잔소리는 해도 아침청소까지 해주고 출근을 하니 행복한 줄 알아야 한다.
누가 여자가 치우려니 하지 청소까지 해주니."
고모님은 제 역성을 들어주시면서도 항상 조카를 사랑하십니다.
고모님은 도토리묵 접시를 다 비우십니다.
" 오빠는 친정에서 힘들게 일을 해야 시집가도 친정생각이 안 난다고 하셨어.
그리고 남편이 술을 먹고 들어오면 싫더라도 내색하지 말고 여보 술 한잔 하셨구려
하며 비위를 맞춰주라는 거야 남자들은 좋아서도 기분이 나빠서도 술을 하는데
집에 들어왔는데 마누라가 잔소리 하면 한대 때리고 싶다는 거야."
어렸을 때부터 고모님이 살림하시는 것을 보고 자란 용중 님은 고모님을 닮았나봅니다.
농사일은 물론 집안청소까지 깨끗한 걸 좋아합니다.
집에서 살림에만 신경쓰며 반듯한 살림을 하고 있는 아내이길 원하지만
마눌은 밖의 일이 더 많으니 청소를 대충 하고 다닙니다.
보다 못한 남편은 할 수 없이 홈쇼핑에서 선전하는 세제나
밀대로 미는 걸레, 유리창 닦이, 만능박사 스폰지 등 청소에 관한 것이면 뭐든지
신청을 해서 구입합니다. 걸레질을 하면 저는 슬슬 밀지만 용중 님은 힘을 주어 빡빡
소리가 나도록 밀어대니 이마에 땀이 납니다. 용중 님은 가끔 청소가 끝난 깨끗한 부엌문 쪽에서
저를 쳐다보며 삑삑 소리를 내어 트위스트를 춥니다.
" 자 보라구 이렇게 깨끗한 소리가 나도록 걸레질을 하란 말이야."
" 싫어요 자기나 그렇게 해요."
밭에서 일을 하시던 어머니가 들어오시면 마루와 부엌에 흙발자국이 선명하게 납니다.
어떤 때 급하시면 장화발로 화장실도 가시고 부엌을 다녀가시기도 합니다
용중 님이 질색을 합니다.
" 엄마 집 안으로 들어오실 때에는 옷을 털고 양말도 벗고 들어오셔요."
용중 님은 어머니에게 솔직하게 이야기 하지만 저는 화가 나도 말을 다 못합니다.
남편이 청소를 안해 주면 제가 다 합니다. 본인도 힘들고 잔소리를 듣는 저도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용중 님은 오늘 아침에도 청소를 하고 현관을 나갑니다.
밥을 조금 더 떠서 깍두기 국물에 비벼서 잡수시던 고모님이 따라 나가시며 마중을 하십니다
" 잘 다녀오너라 쟤는 날 닮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