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1일 대림 3주일 자선주일 (마태 11,2-11)
"물은 흘러야 하는 것"
성탄과 연말이 다가오는 대림 셋째 주 오늘은 ‘자선주일’입니다.
그런데 먼저 이 ‘자선’이란 것을 그저 연말 즈음해서 주변 궁핍한 사람들에게 선심 쓰듯 찔끔, 후원금 같은 걸 전달하는 ‘시혜’나 ‘불우이웃 돕기’ ‘베푸는 것’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번에 15일 동안 버티며 투쟁하다가, 아무런 성과 없이 빈손으로 파업을 철회한 ‘화물연대 파업’처럼,
노동자가 자기 권리를 찾으려는 일도, 우리 사회에서 꽤 많은 사람들은 괜히 세상을 시끄럽게 한다고, 내 일상생활을 불편하게 만든다고 화를 내거나,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쟤들은 배가 불러서 저런다고 비난합니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뿐 아니라
(지금은 다 잊어버렸겠지만) 전에 연세대와 몇몇 대학 청소 노동자들이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자, 일부 학생들이 수업권을 침해당했다며 고소를 하고 손해배상 청구를 한 사건을 보면서, 저는 참 세상이 많이 달라졌구나 생각을 했었습니다.
과거엔 오히려 학생들이 노동자 권익을 위해 대신 목소리를 높여주던 시대도 있었는데...
이렇게 자신의 불편함과 손해만 생각하면서 고소를 하고 비난하는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저는 그 사람들에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헌장> 1항을 읽어주고 싶습니다.
우리가 믿는 가톨릭교회는 분명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으로 시작하는 <사목헌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 현대인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제자들의 공동체는 인류와 인류 역사에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1항)
우리는 이 한 문장으로,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의 참 제자인지 아닌지, (무늬만 신자인지), 또 그런 사람들이 모인 그곳이 참 교회인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이 나온 김에 <사목헌장> 뿐 아니라, 우리 가톨릭교회의 공식 교리서인 <간추린 사회교리>에 이런 말도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만 부를 소유하는 이는 죄를 짓는 것이며,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빚을 갚는 것과 같다.”(간추린 사회교리 329항)
-“가난한 이들의 필요를 돌볼 때, 우리는 자비의 행위를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정의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184항)
-“애덕의 실천은 자선 행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빈곤 문제의 사회적 정치적 차원들에 대처하는 것도 포함하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184항)
그런데 참 안타깝게도 지금의 우리들은 시선을 내 주변에서 좀 더 멀리 확장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 곳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가난하고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슬퍼하며 고뇌에 차 있는지 둘러보려 하지 않습니다.
알 수 없으니 그 슬픔과 고뇌를 내 것으로 삼을 수 없을뿐더러, 그저 ‘불우이웃 돕기’ 정도로 내 할 일을 어느 만큼 다했다,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무심함이나 무관심이 아니라 잔인함입니다.
제가 ‘잔인함’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그러니까 나보다 약한 청소 노동자나 화물연대 사람들의 그런 ‘슬픔과 고뇌’를 내 것으로 삼기보다는, 오히려 먹잇감으로 삼아 살려 하기 때문에 침묵한 채 외면해 버리고, 고소를 하고, 욕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런 생각을 나눠보죠.
물은 흘러야 합니다. 물이 고이면 썩게 마련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동안의 본당신부 경험을 통해서 확실히 말 할 수 있는 것이) 흐르는 물과 똑같은 이치로 ‘재물이나 돈’도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재물이나 돈도 모으기만 하면 부패합니다. 모인 돈이 쓰이지 않으면 사람도 썩고 사회도 썩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의 말을 어떤 사람들은 웃기는 소리, 철없는 소리, 심지어는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들의 자기 위안의 넋두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물이 고이면 썩는 건 맞지만, 재물은 모이면 모일수록 축복”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기서 잠깐 얘기가 옆으로 샙니다만) 요 근래 제가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는데,
이번에 새로 옮긴 제 방 화장실이 하수도 악취가 심하게 올라와서 그동안 문을 꼭 닫은 채 계속해서 환풍기를 틀고, 방향제나 탈취제로 단속을 해왔는데, 아무리 그래봤자 냄새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화장실 문을 빠끔히 열어놓고 방안 공기나 바깥 공기로 환기를 시키는 게 훨씬 효과적인 걸 알게 됐습니다.
전에도 비슷한 말씀을 드렸죠?
습기가 심한 장마철에 습기 차단을 위해 문을 꽁꽁 닫아놓을 게 아니라, 차라리 문을 열어서 자주 환기를 시키는 게 낫다는 말과 똑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아무튼 물이 됐든 돈이 됐든, 아니면 화장실 공기든 꽁꽁 묶어두고 쌓아 놓아서는 안 되고
일부러라도 흘려 내보내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란 것... 연말 즈음한 자선주일에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