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
2일째는 「백양사(白羊寺)」를 찾아 떠났다. 옥정호 주변을 돌아 내려가는 중간에 「구절초 공원」이 있다. 수려한 경관을 지닌 옥정호의 상류에 위치한다. 넓은 소나무 숲에 자생하는 구절초는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서늘해 지면 온통 하얀 꽃을 피워 가을을 알려준다. 호수에서 안개가 스며들어 꽃잎에 이슬이 맺힌 아름다운 모습을 보려면 동틀 무렵이 적기라고 한다. 매년 10월 초순이 되면 구절초 축제가 열리는데 비밀의 화원처럼 아름답고 환상적인 풍광을 연출한다고 한다. 이맘때가 되면 공주의 「마곡사」에도 구절초 축제를 하면서 「산사 음악회」가 열리는데 그곳을 찾아갔던 그 젊은 시절이 그리워진다.
「백양사」는 「내장사」와 함께 단풍의 명소로 이름난 곳인데 역시 처음으로 가는 길이었다. 굽이굽이 흐르는 하천과 조화를 이룬 논과 밭에는 농작물이 초가을 햇볕 아래 풍성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더구나 엊그제 내린 가을장마로 인해 어느 곳이나 물이 넘쳐나고 있어서 하천이 풍성하였다. 「백양사」는 입구에서부터 마치 수채화처럼 아름다웠다. 입구에서부터 소나무 길을 지나면 수백 년 된 갈참나무들이 좌우로 늘어서 있다. 멀리 배경으로 받쳐주는 산봉우리와 나이든 고목과 맑고 투명한 연못이 「백양꽃(상사화의 일종)」과 하나로 일체가 된 풍경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사찰 뒤에 솟은 봉우리가 「백학봉(白鶴峯)」이다. 백암산 아래에 자리한 백학봉은 일대의 암벽과 식생 경관이 매우 아름다워 명승지로 지정되었고, 예로부터 대한 8경의 하나였다고 한다. 백암산 단풍도 유명하나 「비자나무 숲」과 「고불매」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수많은 종류의 동·식물이 자라고 있는 남도 지방의 보고다. 대웅전 혹은 입구에 있는 「쌍계루」에서 「백학봉」을 바라보면 그 자태가 더욱 아름답다. 더구나 멀리 나무 사이로 보이는 「약사암(藥師庵)」은 마치 신선이 노니는 선경(仙境)과도 같은데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이 보인다. 특히, 단풍철이 되면 「쌍계루」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사진작가들은 앞다투어 수작(秀作)을 얻기 위한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옛날부터 매화(梅花)는 봄을 알리는 꽃이지만 그 고고한 자태로 인해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매화는 추운 날씨 속에서도 굳은 기개로 피고 은은하게 풍기는 매향(梅香)은 마치 고귀한 선비의 품격을 전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백양사의 「고불매(古佛梅)」는 천연기념물이다. 원래 두 그루를 심었으나 「백매(白梅)는 죽고 「홍매(紅梅)만 남아 있다.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을 기리자는 뜻으로 백양사 고불총림(古佛叢林)을 결성하면서 이 나무가 고불(古佛)의 기품을 닮았다 하여 「고불매」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매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호남 5매(梅)로 「고불매」를 비롯하여 선암사 「무우전매(無優殿梅)」, 전남대학교 「대명매(大明梅)」, 담양군 지실 마을 「계당매(溪堂梅)」, 소록도 「수양매(垂楊梅)」를 꼽는다고 한다. 그런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는 백양사의 「고불매」를 비롯하여 화엄사의 「야매(野梅)」, 선암사의 「무우전매」, 오죽헌의 「오죽헌매(烏竹軒梅)」라고 한다.
「백양사」 입구에 있는 「쌍계루(雙溪樓)」는 고려 시대인 1350년에 세워졌으나 여러 차례의 중수과정을 거쳤다. 두 개의 계곡물이 합쳐진 곳에 누각을 세웠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기문을 쓰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가 시를 지었다. 「쌍계루」에는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 면앙정 송순, 하서 김인후, 사암 박순, 노사 기정진, 월성 최익현, 서옹스님 등의 현판이 180여 점 있는데 이는 종교와 사상을 초월하여 스님과 선비들이 소통하고 교류했던 화합의 공간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 오면 반드시 쌍계루에 올라 선현이 남긴 글을 감상하고 자연과 일체가 되는 환상의 꿈을 펼쳐볼 일이다. 더구나 단풍철이 되면 「백학봉」, 「쌍계루」 앞 연못과 하나로 연결되어 산사의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여 천상의 세계를 보여줄 것이다.
부안에 있는 「내소사(來蘇寺)」를 향하는 길에 정읍서 추어탕으로 점심을 하였다. 자연산을 사용한다는 집인데 주로 단골손님이 찾는다고 하였다. 첫 숟갈을 뜨니 역시 진하고 맛이 아주 일품이었다. 예전에 들렸던 고창의 선운사로 가는 길을 뒤로하고 부안의 격포항을 찾았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그 유명한 「채석강(采石江)」을 보기 위해서였다. 거대한 절벽이 장관을 이루는 「채석강」은 마치 많은 책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모습의 퇴적암 층리가 잘 나타나 있다. 다양한 단층면을 확인할 수가 있어서 지질 학자들의 성지가 되어 있다고 한다. 이백(李伯)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죽었다는 「채석강」과 모습이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아마도 달이 뜨고 바다가 거울처럼 잔잔해지면 이백이 느낀 정취를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바닷물이 빠지면 해안가의 바위를 돌면서 가깝게 볼 수가 있다. 아니면 격포 항구의 방파제에서 바라보는 「채석강」의 전경도 볼만하다.
부안의 내변산의 「능가산(楞伽山)」자락에 있는 「내소사」는 천년 고찰이다. 입구에서부터 약 500M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이 일품이다. 앉아 있거나 지나만 가도 전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로 가슴이 뻥 뚫리고 절로 힐링이 되는 명소이다. 끝부분에는 매우 멋진 단풍나무가 있었는데 그 자태가 어느 단풍나무와는 다르게 아름답고 단아한 고운 새색시처럼 다소곳이 들어오는 방문객을 반겨주고 있다. 전국적으로 『오대산 상원사』와 『광릉 전나무 숲』과 더불어 3대 전나무숲 길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이 찾아와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찰 안에 들어가니 무려 천 년이 넘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역시 기막힌 풍광을 연출하고 있었다. 더구나 대웅보전은 단청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배경에 있는 능가산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이 건물은 못하나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깍고 다듬어 서로 교합(交合)해서 만든 목재 건축의 진수라고 하였다. 그리고 대웅보전 꽃살문은 연꽃, 국화 등 각양의 꽃무늬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새겨져 있는데 목각 미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유물이라고 한다. 구석구석을 구경하고 나오는 길에 제법 넓은 뜰에 활짝 핀 상사화(相思花)에 넋을 잃기도 하였다. 더구나 보기가 드문 노란색 꽃이라서 더욱 신비로웠다. 우연히 이곳에서 현대에 보기가 드문 유학자를 만났다. 성균관 대학에서 목은(牧隱) 이 색(李穡)을 연구한 이은영 박사이다. 지금은 서울에서 목은 연구소를 운영한다는데 방문하면 관련 연구서를 기증키로 하였다.
바닷가의 숙소에서 쉬고 일찍 일어나 해변을 따라 산책을 하였다. 마침 밀물이 들어오는 시간이라서 이미 여러 척의 낚싯배들이 부산하게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바다에 사는 붉은 게 무리가 줄지어 능선을 오른다. 마치 TV에서 본 장면과 너무도 흡사했다. 과거 해안가에서 청춘을 불태우며 보냈던 시절을 생각하며 걷고 있는데, 근무를 마치고 초소로 복귀하는 한 무리의 젊은 용사들을 마주치게 되니 너무도 반가웠다. 모두 한결같이 신장도 크고 용모도 준수하니 든든한 믿음과 함께 연민(憐愍)의 마음도 생겼다.
「새만금방조제」를 따라 「선유도(仙遊島)」로 향했다. 방조제는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여 만든 곳이니 섬세한 개발로 후손들에게 큰 보탬이 되는 명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선유도」는 이름 그대로 신선들이 천상에서 내려와 푸른 바다에서 쉬고 있는 것처럼 그야말로 비경이 따로 없다. 다리로 서로가 연결되어 섬의 구석까지 구경을 잘 하였다. 이곳은 과거 남도 지방의 공물을 나르던 운조선(運漕船)이 중간 정착했으며, 중국의 산동반도에서 단거리라 중국의 상인 혹은 사신들도 이용했던 곳이라고 한다. 그 흔적이 남아 있는데 언젠가는 복원하여 관광자원으로 개발한다면 소용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쇠락했지만 인접한 방조제의 광활한 지역을 개발하여 활용하면 중국의 투자 및 관광객 유치와 산업 시설 등으로 새로운 활력을 맞이할 것으로 기대가 된다.
방조제로 바닷길이 막힌 「망해사(望海寺)」를 찾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바닷가 사찰이다. 수백 년이 넘는 팽나무가 말없이 과거의 영화를 대변하고 있다. 부근 태생으로 신통력으로 유명했던 조선 중기의 『진묵대사』가 이 사찰을 중건했다고 하였다. 바닷가의 굴로 안주 삼아 술을 마시고 있는데 어떤 중생이 살생해도 되느냐고 묻자 이것은 돌에 핀 꽃(석화, 石花)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인근에는 진묵대사의 어머니 묘소가 있는 성모암(聖母庵)과 대사의 탄생지가 있다. 소원을 빌면 영험하다고 하여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찾는다.
이어서 인근에 있는 「입석산(立石山)」의 선산을 찾았다. 오래전에 지리학자로 이름을 날린 서울대의 『최창조 교수』가 명당이라고 말하던 산이다. 하지만 최 교수는 “명당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다”라는 명구(名句)도 남겼다. 그의 말대로 자손이 번성하고 선대의 은공을 기리는 길한 땅이 되길 바란다. 연간 세 차례는 주기적으로 찾아오고 지나는 길에 조상님들께 인사를 드리는데 나마저 떠나면 어느 누가 관리를 할 것인지 생각만 해도 안타깝기만 하다. 과거에 선친이 심어두신 「태산목」과 「은행나무」 등이 조용히 반겨준다. 특히 「목련 나무」는 그 모양이 매우 크고 수려하여 명품 나무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성묘 후에는 선친의 문학 시비가 있는 「김제의 시민공원」을 찾아 인근에 살면서 종종 시비를 살펴주는 친구와도 반갑게 만났다. 농원을 한다고 포포(paw-paw)라고 부르는 신품종 과일을 가져 왔다. 망고/ 바나나/ 파인애플 맛이 혼합된 과일인데 맛이 있었다. 공원이 시내의 중심가에 위치하여 호수를 따라 사람들이 산책하는 명소가 되었다. 서예가로 유명한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 선생의 「서도비(書道碑)」가 시비와 인접해 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신라 시대에 축조한 「벽골제(碧骨堤)」에는 이 고장을 주제로 아리랑을 쓴 『조정래의 아리랑 문학관』이 있다. 바로 옆에는 『벽천(碧川) 나상목(羅相沐)』 화가의 기념관이 있다. 인근에 조그만 문학관을 세운다면 얼마나 좋겠나 싶다. 지자체와의 협의는 집안 동생이 함께 노력해 보기로 하니 힘이 되었다.
짧지만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평소 가보지 못했던 장소라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 항상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해 준 동생 부부에게 고맙고, 더구나 세부적인 안내와 깊은 역사 고증까지 해준 매제(妹弟)에게 감사하다. 전국에 숙박시설을 만들어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산림청의 열린 행정도 박수를 보낸다.
알찬 수학여행을 보낸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선친과 관련한 여러 가지 후속처리가 남아 있는데 더는 미룰 수가 없고 실행해야 할 시점이다. 여동생과도 잠시 의견을 나누기도 했는데 때가 되면 성원을 하겠다고 하니 고마울 뿐이다. 만사 복잡한 세상을 잊고 잠시나마 행복하고 즐겁게 보내고 나니 다소 가슴이 트인다. (2021. 9. 3)
※ 문우님들이 읽으시느라 수고가 많으셨네요, 전편의 후속 글이니 댓글을 다시느라 번거로운 수고는 생략해 주셔도 됩니다.
첫댓글 우리나라도 의미를 부여하면 가 볼 곳이 많죠. 그저 눈으로만이 아닌 느낌과 생각을 일깨우는 그런 여행을 일깨워 주셨네요.
저는 상훈계장시절에 고창에 출장 갔다가 시간내어 새
벽에 '백양사'에 가보고 노랑색계통의 단풍의 빼어남에
흠뻑 취하여 4년전에 안식구와 백양사 근처에 호텔에
투숙하여 다시 그 정취를 즐긴적이 있지요.부안의 내소
사.격포항.채석강.망해사등은 가보지 않아 꼭 가보고
싶네요."명당은 마음속에 있다"는 명구는 산소를 가꾸는 자손들의 조상을 숭배하는 마음에 달려있다는 생각
이기에 적극 동의하는 마음입니다.효자이셨던 선친께
서 풍으로 쓰러지신 후,조부님 산소에 풀 메고 전지한
후에 묘마당에 앉아 먼산을 바라보노라면 조부님과 대
화하듯 새들이 곁에 와 지져귈 때,무한한 행복을 느끼
지요.그런 세월이 24년이 지났네요.여행길 공유하며
옛생각 많이 하게 해주시어 고마워요.
남당 덕분에 좋은 가을여행 했습니다...
이 가을 역사와 문화의 숨결, 자연의 향기를 느끼게 해주는 순례와도 같은 여행, 덕분에 간접적으로나마 즐기고 있습니다.
요즘 가을의 정취가 물씬한 구절초가 한창인데 이 꽃 축제가 여러 곳에서 열리는군요. 한번 가보고도 싶네요.
백양꽃은 강원도 산골 농원에도 몇 포기 있는데 강원바로 요즘 꽃이 피고 있습니다. 백양사 근처에서 발견되어 백양꽃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하고, 우리 특산의 식물이어서 Lycoris koreana란 학명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요.
선유도에도 발길을 주셨군요. 선유도에는 2019년 10월에 선유도는 물론 정자도 등 고군산 일대의 섬을 답사하며 그 지역의 식물탐사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군산 앞바다와 열도, 새만금방조제가 없었다면 군산 잎바다와 연안 일대가 얼마나 더 아름다운 모습이었을까를 아쉬워하기도 했는데요.
좋은 여행이야기 계속 들려주세요~
나는 남당과 같은 호남이니 백양사ᆞ내장사ᆞ선운사ᆞ내소
사ᆞ선유도ᆞ채석강등은 나에게
친근한 지역입니다. 나는 남당같이
자세하게는 살펴보지 않았고,
불자로서 사찰마다 대웅전에 가서
참배하고, 선운사는 6.25당시
빨지산들의 양민학살이 많아
선운사 도솔암은 지장도량으로
유명합니다.
언제 문우회원들의 일박이일
로 선운사 풍천장어. 백양사
백반ᆞ고창 묘향성 탑돌이와
청보리 축제 구경도 좋지요.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남당 선생의 남다른 정취와 시같은 아름다운 풍광묘사에 경탄을 금치 못합니다~!
다들 솜리라고 부르는 익산에 실면서 남당이 걸었던 발자취를 모두 걸어보았으나, 남다른 의미와 시선으로 바라보는 안목이 부족한 탓도 있었으려니 하고 생각해 봅니다~^^
추석이 지나가고 나면, 저도 가족과 함께 남해안을 돌아볼까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산은 산이고 사찰은 사찰이지만, 바위를 배경으로 한 백양사는 언제 보아도 최고의 명당터라 생각되던군요. 앞으로는 몇 장의 사진도 첨부해 주시기를. 그리고 일망무제의 고향 김제 평야의 지세를 받아 늘 호연지기와 바다와 같은 광대한 마음의 여유를 가지시기를. 오랜만에 앉아서 문학기행 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