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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마르딘 전경 .
이른 아침 이 사진을 찍을 수 있던 것은 마르딘의 터줏대감 빵집 주인 덕분이다.
그 분이 아니었으면 사진도 찍지 못했을 뿐아니라 아침을 굶은채 "디야르바크르"로 떠나야 했을런지 모른다.
사진:숙소 아래서 본 마르딘
바트만 에서 마르딘을 가기위해서는 서쪽의 대도시 "디야르바크르"를 경유해야한다.
디야르바크로 "일체 오토가르"에 도착 하여 미니버스 에서 내렸다.
마르딘행 버스를 물어 사람들이 가르치는 건물뒤를 돌아가자 미니 버스들이 여기 저기 주차해있다.
금방 승객이 꽉차버린 마르딘행 미니버스.
작은 차임에도 건장한 남자 차장이 있다.
내 옆에는 젊은 부모가 딸을 안고 있고 옆에는 할머니가 수심에 찬 표정으로 손녀를 보고 있다.
네살 정도 보이는 여자 아이가 눈에 거창한 붕대를 하고 있다.
유리병이 깨지며 눈에 유리조각이 박혀 수술후 돌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끔찍한 사고다 .제발 실명하지 않기를 바랬다.
남쪽 방향으로 내려가며 점점 푸른 빛은 사라지고 붉은 토양들이 시리아에 가깝게 가고 있다는걸 알수 있다.
마르딘(Mardin)
이름이 매력적인 이도시는 언덕위에 자리잡은 12세기의 古都여서 사진을 볼 때마다 오고 싶었던 곳이다.
모로코 Fez처럼 구시가의 미로를 걸어 볼 수도 있고 시리아의 메소포타미아 대평원을 내려다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충만한 도시다.
마르딘은 "카라뷕"의 터키 친구 부인 "쉐나이"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곳에서 태어나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의사인 남편 Murat을 만나 현재 "카라뷕" 시청 복지과에 근무하고 있다.
그녀는 조상들이 아라빅이라고 했다.
그렇게 듣고 보니까 얼굴 모습이 조금 달라보였다.
혼자서 시내 한복판 내려 좀 당황스러웠으나 차장이 마르딘 구시가에 가기 까까운 곳이라고 내려준 것으로 믿었다.
낯선 곳에서는 항상 침착해야 하고 서두르지 않는 것이 첫째 명심할 일이다.
더 어두워지기전에 구시가에서 숙소를 찾아야한다.
마침내 택시를 발견하고 숙소까지 15리라에 가기로 했다.
고갯길을 올라가던 택시가 구시가에 이르자(춤 후리예트 광장입구다) 도로 포장공사관계로 길이 막혀있다.
막아 놓은 도로를 우회하여 뒷골목으로 이리저리 올라갔다.
뒷골목들이란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곳이 아니다.
택시를 주차해 놓고 70여미터의 계단과 골목을 내려가 바샥오텔까지 내 가방을 들어다준 키작은 택시기사.
마치 시골서 도시에 나와 택시로 돈을 벌기시작 , 처음으로 외국인을 태워 도와주었다는 기쁨에 찬 얼굴이다.
그에게 축복을 !
숙소를 안다는 그는 정말 내가 가자던 바샷오텔 로비안까지 나를 안내해 주었다.
예약 없이 찾아간 바샥 오텔이다.
정확한 숙소 정보가 없으면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이곳의 집들은 수백년 된것들이 대부분이다.
마르딘의 대표적 숙소인양 소개된 바샥오텔은 낡고 볼품이 없는 숙소다.
주인장이 보여준 방은 30리라로 한평반도 되지 못하는 작은 방이다.
벽에는 황학동에나 가야 구할 수 있는 구형 TV한대가 있고 전선은 얼기 설기 얽혀 있다.
이번 한달 여행을 하며 묵은 숙소중 가격대비 제일 시설이 못한 곳이고 아침도 없다.
방이 너무 작아 조금 큰 방이 보여 그것을 달라고 하자 예약된 방이라고 한다
시간도 늦고 다른 곳을 찾아 헤매이기엔 늦어 하룻밤 어떻게 견디지 못하겠나 하는 마음으로 숙박을 하기로 했다.
주인은 괜찮아 보이는데 아버지 일을 돕는 아들 녀석이 마음에 안든다.
샤워실이 잠겨있어 샤워실을 보여달라고 하자 열쇠를 가져오며 샤워시 말하면 열어 준다고 한다.
샤워장 이용 교육을 나에게 시킨다.
"첫째, 보일러 손잡이를 틀고 한참을 기다린다.
둘째, 절구통 같이 생긴 돌 항아리에 물이 담기면 터키식 목욕아시죠? 바가지로 퍼서 샤워를 한다.
셋째 샤워가 끝나면 보일러 손잡이를 거꾸로 튼다.그리고 불을 끈다."
여행자를 손님으로 여기지 않고 귀찮은 존재로 생각하는 녀석이다.
샤워장 벽도, 바닥에도 타일이 없다.
투자를 하지 않는 바샥 오텔이고 노랭이 주인이다.
다음날 아침 새벽에 일어 났을 때 다른 방 앞에는 운동화들을 내어 놓았는데 방이 작아 신발 냄새가 냄새가 날까바 한 조치들였다.
다음날 거리를 지나며 두 곳을 들려 호텔 정보를 수집했다.
춤 후리엣 광장에서 비린지 거리를 따라 200여미터 가면 Mardin Apart Otel이좋다,
Mardin Apart Otel 숙소 정보
Tel: 0482 212 88 22
Fax: 0482 212 88 83
wnth; 1. Cadde Hamydiye Camii 카르싀스 No.102
싱글룸:50리라
50리라 자체가 타 도시 숙소에 비해 높은 편이나 바샥오텔의 열악한 시설에 비하면 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다른 곳들은 배낭여행자나 자유 여행자가 찾기에 약간 부담이 있다.
바샥오텔에서 정말로 우연히 다시 만난 아프카니스탄인 "하다르핫"
그를 만난 것은 도우베야짓에서 바트만 오는 길 "아으그르"에서다.
그의 이름이 어려워 세번이나 들은후에 겨우 발음이 가능했다.
하다르핫은 이 오텔에서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와 또 무슨 인연인지 허름한 양복을 걸쳐 입고 퇴근 하는 것을 밤길 거리에서 또 만났다.
집에서 가족들이 기다린다고 걸어가는 그도 한집안의 가장이었다.
아프카니스탄에서 터키까지 와서 오텔에서 침구를 바꾸고 정돈하고 청소를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의 얼굴은 갖은 풍상으로 지쳐있었다.
여간해서 웃을 것 같지 않는 그의 얼굴에서도 먼 이곳에서다시 만난게 신기한지 살프시 미소를 지었다.
먼지가 묻어 날것 같은 바싹 마른 도시같은 마르딘의 구시가 중심가 "비린지" 거리다.
마르딘은 관광을 위해서인지 이 중심도로에 돌을 깐 포장 공사를 한지가 얼마 되지 않아 길거리엔 모래가 퍼석거렸다.
견과류 가게로 마대가 너무 예술적이다. 어느 세상에서 마대를 저런 색상으로 만들어 사용할 생각을 했을 까
저녁 길을 따라 시장골목을 내려 가다가 산 밑까지 2키로가 된다는 얘기를 듣고 포기하고 다시 올라 왔다
시간은 초저녁이건만 어두워지자 상가들은 문을 닫기 시작했다.
그릇 가게 사장은 가게 앞에서 나를 보자 친척 만나듯 반기며 좋아했다.
언뜻 나이를 보면 젊어 보이나 17세 정도의 아들이 있다.
그냥 실용적인 주방 도구를 파는 곳이다.
사진을 명함 주소로 보냈다.
기념품 가게
이곳에도 AD 397에 지은 교회가 있다.
홈메이드 비누가게 .
한개 사고 싶어도 기념품을 하나 하나 하다보면 가방무게를 감당하기 어렵다.
육체적 고통을 통해 절약과 절제를 배운다.
고통이 이제 유혹보다 강해졌다.
이발소 앞에서 만난 청년들.
가운데가 이발사
왼쪽 청년은 자기 사진이 사진관에 걸려 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나중에 보니 정말 그의 사진이 살이 덜찐 모습으로 걸려있었다.
인화한 사진은 사진관 주소로 보내 주었다.
이들은 커서 이 비린지 거리의 터주 대감으로 자릴 잡을 것이다.
이렇게 사진을 잘 찍을 수 없을 것 같아 카메라로 마르딘 전경사진을 촬영해본다
숙소 바샥 오텔앞의 카페로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곳이다.
문이 닫혀있어 주위사람에게 물어보자 아침 9시에 연다고 한다
그러나 그도 잘못된 정보다.
3층에 있으며 아침 10시에 연다..
사진:친절한 빵집 주인 -자신이 아라빅이라고 했다.
아침 새벽 마르딘을 카메라에 담기위해 일찍 자릴 털고 일어났다.
혹시하며 이란에서 침대 주위에 뿌리며 가지고 다녔던 빈대 방지 스프레이를 쓰레기 통에 버리고 짐을 줄였다.
약사들도 모기 곤충 방제약이 빈대까지 퇴치 효능이 있는 줄 잘 모른다.
새벽도로에 부지런한 사람들이 셋이 나와 담소를 하고있다.
인사를 한뒤 뒷편의 성채를 촬영하려면 어느 장소가 좋으냐고 물어 가르쳐 주는 곳에 서 사진을 찍었다.
산아래서 마르딘 전체를 찍으려면 어디로 가야하는지 또 물어 보았다.
이곳에서 2키로를 가야한다며 날 따라오라고하며 데려간 곳이 50여미터 거리에 있는 주차장 공터다.
차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굴러나 가는지 의심이 들정도다.
택시도 없는 곳에서 나에겐 굴러가는 차가 너무 고맙고 태워준 그가 너무 고마웠다.
그가 세워준 곳에서 5분여 사진을 찍자 다시 나를 태워 주차장으로 왔다.
걷는 길에 만나는 사람마다 그를 보고 인사를 한다.
나는 그가 이 동네 주요인사라고 짐작을 했다.
그가 나를 데리고 들어간 곳은 빵집이다.
빵집 주인이다.
허나 분명 이곳 주요 터줏대감인 것은 분명했다.
그는 빵집 카운터에 서서 아침에 계속 찾아오는 단골들에게 부지런히 빵을 팔았다.
사진을 찍겠다고하자 갑자기 엄숙한 표정을 짓는 빵집 종업원 아저씨 표정이 엄숙해졌다.
아저씨 뒷쪽으로 한사람이 겨우 다닐 만한 좁은 계단이 있다.
담당 직원이 위에서 반죽해 숙성시킨 밀가루 빵을 가져오면 안경쓴 청년은 손으로 조금 넓게 피고는 손가락 끝으로 두드려 무늬도 만들고 두께를 조정한다.
왼편 아저씨는 화덕 기술자로 빵을 화덕에 넣고 꺼내곤 한다.
빵공장의 가장 중요한 핵심 직원이다.
하루에 몇개를 만드냐고 물어보자 평생 숫자를 생각하지 않고 일만 했는지 처음 받아보는 질문인가보다.
약 천개 정도로 짐작한다고
예의 터주 대감 빵집주인이 아침 신선한 빵을 사기위해 기다리는 단골들에게 빵을 팔고 그들이 모두 사라지자 빵 몇개를 긴 칼로 썩썩 썰어 비닐 봉지에 담는다.
동네 청년이 빵봉지를 들고 그를 따른다. 주인은 나를 다시따라 오라고 한다.
50여미터 걸어간 곳은 차이집이다.
이른 아침에도 벌써 많은 남자들이 와서 차를 마시고 애기들을 하고 있었다.
남자들만의 공간이다.
찻집에 들어서는 나에게 당연히 시선이 쏠린다.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서 예의를 표하고는 그들 속에 파묻혀 버렸다.
빵집 주인이 탁자에 빵을 펼쳐 놓자 찻집주인이 주방에서 치즈와 올리브,차이를 내어와 함께 앉는다.
모두가 이 곳의 터주 대감이요 친구다.
빵집 주인은 매일 빵을 들고 오고 찻집 주인은 차를 내어 오고 하는 일이 그들의 일상이다.
그들은 빵에 검고 짭잘한 올리브를 한알씩 빵위에 올려 싸가지고 먹은 다음 올리브 씨를 뱉았다.
토마토나 오이도없는 참 간단하고 소박한 아침 식사다.
나도 금방 학습한대로 그들 방식대로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아침 식탁에까지 초대해준 그들에게 이제 인사를 하고 떠나야 했다.
이제 가봐야 할 시간이라고 작별의 인사를 한다.
뜻하지 않게 받은 도움과 친절 그리고 아침 초대-금방 구운 구수한 빵처럼 네겐 훈훈한 추억으로 떠오르는 마르딘이다.
그들은 날 때 부터 인간을 사랑하고 자기 고장을 찾은 여행자을 보살필줄 아는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중심가 비린지 거리는 차가 통과 할 수있지만 골목길과 좁은 길을 따라 공사하며 일하는 분들에게 당나귀나 말들은 훌륭한 자가용이다.
아침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
어제 계단을 내려왔던 길에 진지리예(Zinciriye) 오텔이 보여 올라가 보았다.
길가의 안내표지보다 고급인 진지리에 오텔이다.
문이 닫혀있어 들어가 보지 못하고 들여다만 보았다.굉장히 깔끔한 숙소다.
진지리예 신학교인지 열린 문으로 들여다 보자 시선 집중.
학생들이 들어와 앉으시라 하더니 누가 아침 식사 하시라고 차이와 오이 ,올리브 한접시를 놓고 간다.
차이만을 감사하게 마셨다
잘생긴 학생들.
보통 학교 급식은 점심을 생각할수 있는데 모든 학생이 아침을 먹는 것인지 궁금했다.
학생들과 애기해보고 싶었으나 식사에 ,수업에 방해될 것 같아 자릴 일어났다.
마르딘은 3세기경 이 곳에 페르시아에서 파견된 행정관 Merdai에서 땃다는 설과 성채를 의미하는 시리아어 Marda에서 따왔다는 설도 있다.
마르딘 성채는 위험해서 출입 금지다.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평원.-이 순간을 얼마나 기대했던가
날씨가 맑아 먼 끝가지 바라볼 수 있다면.
이 계절 이시간 방문자에게 허용하는 선물은 여기 까지다.
나중에 돌아와 마르딘 사진을 몇장 카라뷕에 사는 Murat 부부에게 보냈다.
고향의 사진을 보고 싶어 했다.
왼편이 이락방향이고 앞쪽이 시리아 국경이 가깝다고 보면 된다.
11월.
조용한 가을은 내게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여행 시즌이 끝난시점이긴 해도 이 마르딘에 외국 여행자라곤 나혼자 밖에 없지않나 싶을 정도로 조용하다.
얼마전 시리아에서 터키로 날아온 포탄 소식에 여행자들이 시리아 가까운 국경도시에 겁을 먹어 찾지 않는지 모른다.
12세기의 도시로 보면 그 옛날부터 문명도시로 살았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어느 호텔이었는지 작고 아담했던 호텔 입구.
비린지 거리에서 괜찮은 호텔 에르도바 호텔.비싼곳이다.
카시미예 신학교
카시미예 신학교에서 본 메소포타미아 평원.
걷기엔 멀어 택시를 타고 간 카시미예신학교. 관리인이 문을 열 준다며 커다란 열쇠를 가져온다.
관리인이 들고 있는 커다란 열쇠가 재미있다.
안뜰에 있는 작은 연못.
이스람식 건축 양식의 특색으로 모로코의 이스람 건물 안에도 모두 연못이 있었다.
보기도 좋으려니와 더운 집안의 습도 조절기능도 했을 거라고 짐작해 본다.
울루 자미.
마르딘에서 가장 오래된 자미로 미나레(탑)는 1176년 에 만든 것이라고 한다.
바샥 오탤 앞의 아주 전망 좋은 카페다.
실내에서 나오면 메소포타미아 평원이 눈아래 전개된다.
카페 실내는 미국 허리우드 영화사의 역사를 보듯 스틸 사진과 배우들로 가득하다.
주문한 커피에 인스탄트 커피를 내왔다
맛없는 커피 한잔에 7리라 받은 것이 미안했나 포도주 얘기중 종업원이 터키 "샤랍"(와인) 맛보라며 새 병에서 화이트 와인 한잔을 따라 주었다.
카페 커피 그림.
나를 보더니 달려와 철창 사이로 인사하던 초등학교 여학생들.
왼쪽 아이가 퍽 총기있게 생겼다, 성격도 적극적이고.
학교로 사진을 보냈다.받고 기뻐하길 .
마르딘 줌후리엣 (Cumhuriyet: Republic의 의미)초등학교에서.
이곳에도 하맘(터키식 목욕탕)이 있다.
에미르(왕자,통치자)하맘
계단을 내려가면 다시 하맘 입구가 나온다.
Dilmon 레스토랑겸 카페.아침 레스토랑준비가 한참이다.
하루를 더 머문다면 이곳에서 식사를 해보는 즐거움도 가져보고 싶은 곳.
지배인이 이곳에 특이한 것이 있다며 식당안에 있는 오래된 동굴을 보여 주었다.
우아한 식당이다.
사진:아침의 비린지 거리-휴대폰 가게의 붉은 색이 터키 국기를 닮았다.
숙소 바샥 오텔에서 작은 베낭을 맨채 끌랑을 끌고 택시를 타러 가자 길에 서 있던 분이 기다리라고 하더니 눈앞에 보이는 택시주차장에 쫓아가 택시를 불러다준다.
마르딘 사람들은 찾아온 여행자를 가만두지 않았다.
짧은 1박의 마르딘 여행이다.
이스탄불로 돌아가야할 시간을 고려하면 마르딘 사람들의 따듯한 친절과 환대를 뒤로 하고 "디야르바르크"로 가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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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십년전 이라크 북부 쿠르디스탄 아르빌에서 출발하여 터키 실로피 국경을 넘어 디야바키르를 거쳐 마르딘에서 1박을 한 기억이 있습니다.
다음닐 아침 공항 간다고 호텔에서 불러준 택시 기사에게 터키항공 봉투까지 보여주며 시간이 급하니 좀 빨리 가자 부탁까지 했는데 결국 택시 기사님은 공항 대신 저를 언덕에 위치한 버스터미널로 친절히 데려다 주신 재미난 기억도 있습니다 ^^;;
경찰차의 도움으로 공항까지 겨우.. 이스탄불 행 비행기에 탑승 할 수 있었습니다...ㅎㅎ
아무튼 추억이 하나 만들어진 곳입니다.
언젠가 jb님 처럼 여행자로서 첫번째 라는 "비린지" 거리를 걷고 싶고 구김없는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싶네요.
급할 수록 침착해야 합니다.
바디 랭귀지를 잘해야 하는데 항공봉투를 보여준 것이 실수 였네요.
다 자기처럼 버스로 세상을 다니는 줄 안거지요.
자기의 눈으로 ,자기의 자로 새상을 재는 사람은 답답하기도 하고 무지하게 인간적이기도 합니다.
손으로 비행기 이륙하는 장면을 연출했어야 했는데 .
아뭏튼 비행기를 탓다니 다행입니다.
하루만 더 묵었어도 좀 더 재미있을 뻔한 마르딘.
마르딘을 다녀와 무언가 어깨의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습니다.
아쉬움을 남겨서 더 좋았던 곳입니다.
정말 가 보고 싶네요. 얼른.
천천히 가보셔도 됩니다.
수백년 버티어온 건물들이 수년간 못기다려 주겠습니까?^^
사진 잘 보았습니다 재작년 사진속 에로도바 호텔에서 삼박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 이호텔 야경은 백만불짜리 일정도로 멋지더군요 ..그곳에서 머물면서 올드 마르딘을 걸어다니면서 종일 구경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르딘은 생각보다 좋은 곳입니다 다시 가고 싶네요..
에로도바 호텔이면 좋은 곳에 묵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마르딘 구시가 최악의 숙소에 머물고 왔다는 것도 추억입니다.
시즌도 시즌이지만 포탄이 시리아에서 떨어져선지 국경이 가까운 이곳엔 여행자가 나혼자 인 것 같았습니다.
호젓해서 좋았습니다.
3일은 묵었어야 하는데 이틀만 묵어 늘 아쉽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