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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교육삼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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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의정부 지역 문화답사를 다녀와서
사무국(常川) 추천 0 조회 54 13.06.23 15:4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의정부 지역 문화답사를 다녀와서

 

 ▣……2013년 6월 20일. 기온이 32도를 넘나드는 여름 날. 정읍시문화답사회의 일원으로 경기도 의정부 지역 문화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의정부’하면 ‘조선 시대에 왕명을 수행하던 최고 기관’이라는 학창 시절에 암기한 지식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러면 지명이 왜 하필 ‘의정부’일까? 그러나 해설사의 명쾌한 설명으로 그 궁금증도 풀렸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함흥에서 환궁하는 도중 이곳에 잠시 머무는 동안, 조정 대신들이 와서 잠시 정사를 논했다 하여 이 마을을 ‘의정부리’ 라 하였다 합니다.”

 

  ▣……먼저 조선시대의 실학자로 유명한 ‘서계 박세당 고택’에 들렀습니다. 사랑채의 앞마당에는 42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연륜을 뽐내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박세당은 당시의 어지러운 정치현실에 회의를 느끼고 지금의 의정부시 장암동 수락산 기슭에 은거하며,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주력했다 합니다.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체험한 것을 토대로 당대의 대표적인 농학서인 '색경'을 저술하기도 했습니다.

  고택을 둘러본 일행은 곧바로 ‘노강서원’으로 향했습니다. 수락산 계곡을 따라 몇 걸음 올라가다보니 ‘궤산정’이라는 이름의 정자가 눈에 띠었습니다. 박세당이 이 근방에서 칩거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곳이라는데, 허름하다기보다 거의 방치 수준이었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니 박세당의 아들 박태보의 위폐가 모셔져 있는 ‘노강서원’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동입서출(東入西出)을 제대로 지키면서 서원 출입문을 들어가고 나왔습니다. 향교를 비롯하여 서원이나 사당에 가면 문이 세 개, 즉 삼문(三門)이 있는데, 이 중 가운데 칸은 혼이 드나드는 문이며 제사를 모시는 사람들은 양쪽 문을 이용한다는 예법에 따른 것입니다.

 서원에 이르는 계곡은 본연의 맑은 물과 아름다운 풍광은 빛을 잃은 채, 식당을 비롯하여 차양막, 평상 등으로 완전히 점령당한 상태였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차창 밖으로 보이는 ‘끌림’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찻집에 눈이 끌렸습니다. 이름의 유혹이라 할까?

 

 

 ▣……점심은 이곳의 자랑인 ‘부대찌개’로 했는데,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은 음식이었습니다. 한국전쟁 직후 미군부대에서 나온 소시지에 김치, 채소, 고추장 등을 넣어 끓인 부대찌개는 한때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음식이기도 했었습니다. 시내 중심 지역에 ‘부대찌개 거리’가 따로 있을 정도니, 의정부 부대찌개는 그 명성이 대단한 것 같았습니다.

 

▣……점심을 마친 일행은 경기도 기념물 제37호인 정문부 장군 묘로 향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큰 공적을 남긴 특별한 이력을 가진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문부는 조선시대 문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함경북도 길주에서 왜군을 격퇴, 관북지방을 완전히 수복한 인물입니다.

 정문부를 비롯한 의병들의 승리 기록이 소상히 담긴 북관대첩비는 그 동안 일본 땅에 방치되었다가 100년만인 지난 2005년에서야 반환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원본은 현재 북한이 있으며, 정문부 묘역에는 복제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장군의 충절이 담긴 북관대첩비의 우여곡절은 우리 역사의 단면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다음은 답사의 마지막 목적지인 경기도 기념물 88호 신숙주 묘를 찾아갔습니다. 자그마한 마을의 고샅길을 지나니 잘 다듬어진 묘역이 넓게 펼쳐져 있었으며, 입구에는 한글창제사적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학자이며 정치가였던 신숙주는 세종 때부터 성조 때까지 여섯 임금을 보필하였다 하니, 조정에서 그의 역할은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의 동료인 성삼문 등이 절의를 지키고 죽은 것과는 달리 어린 임금 단종을 저버리고 수양대군을 받들어 영화를 누렸다는 역사적 평가가 그를 따라 다니기도 합니다.

 어쨌든 세종대왕을 도와 세계 최고의 글인 한글 창제에 큰 공을 세운 것은 신숙주의 큰 업적 중의 하나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비록 8시간을 버스 안에서 보낸 먼 여정의 문화답사였지만, 잠시나마 우리 역사의 현장을 살펴볼 수 있었던 하루였습니다.

                                                                       - 2013. 6.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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