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가으로 흐르는 물이올시다.
어둔 밤 밝은 낮
어둡고 밝은 그림자에
괴로운 냄새, 슬픈 소리, 쓰린 눈물로 뒤섞여 뒤범벅 같게.
돌아다 보아도 우리 시고을은 어디멘지
꿈마다 맺히는 우리 시고을 집은 어느 메쯤이나 되는지
떠날 제 '가노라' 말도 못 해서 만날 줄만 여기고 기다리는 커다란 집
찬 밤을 어찌 다 날도 새우는지
지난 일 생각하면 가슴이 뛰놀건만
여위인 이 볼인들 비쳐 낼 줄 있으랴
멀고 멀게 자꾸자꾸 흐르니
속 쓰린 긴 한숨은 그칠 줄도 모르면서
길고 길게 어디로 끝끝내 흐르기만 하랴노
퍼런 풀밭에서 방긋이 웃는 이 계집아해야
무궁화 꺾어 흘리는 그 비밀을 그 비밀을 일러라
귀밑머리 풀기 전에
(1919.12 草稿本, 朴鍾和, 『달과 구름과 思想과』, 微文出版社, 1956년)
*비 오는 밤
비 오는 밤
1
한숨에 무너진
설움의 집으로
혼자 우는 어두운 밤
또다시 왔구나
2
잠 속에 어린 꿈
눈물에 젖는데
님 없는 집 혼자 나를
찾는 이 누구냐
3
귀여운 음성은
님이라 했더니
애처로운 그림자는
헛꿈이로구나
4
이 몸은 쓸쓸한
맘 아픈 거리로
애끊이는 그림자를
따라가 볼까
5
누진 내 가슴
흐너진 내 설움
궂은비 슬피우니
또 어이 하려나
(『東明』 7호, 1921년 10월)
*백조(白潮)는 흐르는데 별 하나 나 하나
백조(白潮)는 흐르는데 별 하나 나 하나
저기 저 하늘에서 춤추는 저것은 무어? 오금빛 노을!
나의 가슴은 군성거리며 견딜 수 없습니다
앞 강에서 일상(日常) 부르는 우렁찬 소리가 어여쁜 나를 불러냅니다.
귀에 익은 음성이 머얼리서 들릴 때에 철없는 마음은 좋아라고 미쳐서 잔디밭 모래톱으로 줄달음칩니다.
이러다 다리 뻗고 주저앉아서 일없이 지껄입니다.
은(銀) 고리같이 동글고 매끄러운 혼자 이야기를 .
상글상글하는 태백성(太白星)이 머리 위에 반짝이니, 벌써 반가운 이가 반가운 그이가
옴이로소이다
분(粉) 세수한 듯한 오리알빛 동그레 달이 앞 동산 봉우릴 짚고서 방그레 바시시 솟아오리며, 바시락거리는 깁 안개 위으로 달콤한 저녁의 막(幕)이 소리를 쳐 내려올 때에 너른
너른하는 허연 밀물이 팔 벌려 어렴풋이 닥쳐옵니다.
이때 올시다. 이때면은 나의 가슴은 더욱더욱 뜁니다.
어두운 수풀 저쪽에서 어른거리는 검은 그림자를 무서워 그럼이 아니라 자글대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넌지시 낯 숙여 웃으시는 그이를 풋여린 마음이 수줍어 언뜻 봄이로소이다.
신부(新婦)의 고요히 휩싸는 치맛자락같이 달 잠겨 떨리는 잔살 물결이 소리없이 어린이의 신흥(新興)을 흐느적거리니 물고기같이 내닫는 가슴을 걷잡을 수 없어 물빛도 은(銀) 같고물소리도 은(銀)같은 가없는 희열(喜悅) 나라로 더벅더벅 걸어갑니다 .
미칠듯이 자지러져 철철 흐르는 기쁨에 뛰여서.
아 끝없는 기쁨이로소이다.
나는 하고 싶은 소리를 다 불러봅니다.
이러다 정처(定處) 없는 감락(甘樂)이 온몸을 고달프게 합니다.
그러면 안으려고 기다리는 이에게 팔 벌려 안기듯이 어릿광처럼 힘없이 넘어 집니다.
옳지 이러면 공단(貢緞) 같이 고운 물결이 찰락찰락 나의 몸을 쓰담아 주노나!
커다란 침묵은 길이길이 조으는데 끝없이 흐르는 밀물 나라에는 낯익은 별하나가 새로이
비췹니다.
거기서 웃음 섞어 부르는 자장노래는 다소이 어리인 금빛 꿈터에 호랑나비처럼 훨훨 날아
듭니다.
어쩌노! 이를 어쩌노 아어쩌노!
어머니 젖을 만지 듯한 달콤한 비애(悲哀)가 안개처럼 이 어린 넋을 휩싸들으니 .
심술스러운 응석을 숨길 수 없어 아니한 울음을 소리쳐 웁니다.
(『白潮』 1호, 1922년 1월)
*꿈이면은?
꿈이면은?
꿈이면은 이러한가, 인생이 꿈이라니
사랑은, 지나가는 나그네의 허튼 주정(酒酊)
아니라, 부숴 버리자,
종이로 만든 그까짓 화환(花環)
지껄이지 마라, 정 모르는 지어미야
날더러 안존(安尊)치 못하다고?
귀밑머리 풀으기 전(前) 나는
그래도 순실(純實) 하였었노라
이 나라의 좋은 것은, 모두 아가 것이라고
내가 어릴 옛날에 어머니께서
어머니 눈이 끔적하실 때, 나의 입은 벙긋벙긋
어렴풋이 잠에 속으며, 그래도 좋아서
모든 세상이 이러한 줄 알고 왔노라.
속이지 마라, 웃는 님이여
속이지 마라, 부디 나를 속이지 마라.
그러할 터면, 차라리 나를
검은 칠관(漆棺)에다 집어 넣고서
뾰족한 은정(銀釘)을, 네 손으로 처박아 다오
내나 너를 만날 대까지는
또 만날 때면은, 순실(純實) 하였었노라
입을 맞추려거든, 나의 눈을 가리지 마라.
무엇이든지 주면은, 거저 받을 터이니
그래서, 나로 하여금 의심(疑心) 케 마라
또 간사(奸詐)에 들게 마라.
그리고, 온갖 소리를 치워 다오
듣기 싫다. 회색창(灰色窓) 뒤에서 철벅거리는 목욕(沐浴) 물 소리
내가 입을 다무랴, 입을 다물어?
속고도, 말 못하는 이 세상이다
억울하고도, 말 못하는 이 세상이다
내가 터 닦아 놓은 꽃밭에
어른어른하는 흰 옷은, 누구?
놀래어 도망하는 시악시 사랑아
오이씨 같은 어여쁜 발아
왜, 남의 화단(花壇)을, 무너뜨리고만 가느뇨
뭉뜯어 내버린 꽃송일
주섬주섬 주워담자
임자가 나서거든 던져 주려고
앞산의 큰 영(嶺)을 처음 넘어서
낯모르는 마을로 찾아나 가자
퇴금색(褪金色)의 옷 입은 여왕의 사자(使者)가
번쩍거리는 길가에, 나를 붙들고
동산의 은빛 달이 동그레 돋거든
여왕궁(女王宮)의 뒷문으로 중맞이 오라면
옳지 좋다, 좀이나 좋으랴.
생전(生前)에 처음 좋은 천진(天眞)의 내다
그러나 그러나, 이 어린 손으로
초연(初戀)의 붉은 문을 두드릴 때에
꿈에나 뜻했으랴, 뜻도 아니한
무지한 문지기의 성난 눈초리
그래도 나는, 거침없이 말하겠노라.
이 꽃의 임자는, 우리 님이시다
그러나 꽃을 받을 어여쁜 님아
어데로 갔노? 어데로 갔노?
한 송이 꽃도 못다 이뻐서
들으나, 그는 무덤에 들었다
님의 무덤에 가자마자
그 꽃마저 죽노나! 그 꽃마저 죽노나!
그 꽃마저 죽자마자
날뛰는 이 가슴도 시들시들 가을 바람
아! 이게 꿈이노? 이게 꿈이노!
꿈이면은, 건넛산 어슴푸레한 흙구덩이를
건너다보고서, 실컷 울었건마는
깨어서 보니, 거짓이고 헛되구나, 사랑의 꿈이야.
실연(失戀)의 산기슭 돌아설 때에
가슴이 미어지는 그 울음은
뼈가 녹도록 아팠건마는
모질어라 매정하여라
깨어서는, 흐르는 눈물 일부러 씻고서
허튼 잠꼬대로 돌리고 말고녀.
(『白潮』 1호, 1922년 1월)
*통 발
통 발
뒷동산의 왕대싸리 한 짐 베어서
달 든 봉당에 일서 잘하시는 어머님 옛이야기 속에서
뒷집 노마와 어울려 한 개의 통발을 만들었더니
자리에 누우면서 밤새도록 한 가지 꿈으로
돌모루[石隅] 냇가에서 통발을 털어
손잎 같은 붕어를 너 가지리 나 가지리
노마 몫 내 몫을 한창 시새워 나누다가
어머니 졸음에 단잠을 투정해 깨니
햇살은 화안하고 때는 벌써 늦었어
재재바른 노마는 벌써 오면서
통발 친 돌성(城)은 다무너트리고
통발은 떼어서 장포밭에 던지고
밤새도록 든 고기를 다털어 갔더라고
비죽비죽 우는 눈물을, 주먹으로 씻으며
나를 본다.
(『白潮』 1호, 1922년 1월)
*어부(漁父)의 적(跡)
어부(漁父)의 적(跡)
냇가 버덩 늙은 솔 선 흰 모래밭에
텃마당같이 둥그레 둘러 어른의 발짝이 있다
아마도 여울목을 지키고 고기잡이 하던 낯 모르는 사내가
젖은 그물을 말리느라고 예다가 널고서.
물 때 오른 깜정 살을 빨가둥 벗고서
남 안 보는 김에 좋아라고 뛰놀았던 게로군
옳지옳지 그런 때 그런 때
한 웅큼 왕모래를 끼얹었으면
(아마 미워 죽겠지)
그러나 어여쁜 님이라 하면
(아주 좋아 죽겠지)
(『白潮』 1호, 1922년 1월)
*푸른 강(江) 물에 물놀이 치는 것은
푸른 강(江) 물에 물놀이 치는 것은
푸른 강물에 물놀이 치는 것은 아는 이 없어
그러나 뒷집의 코 떨어진 할머니는 그것을 안다
옛날 청춘(靑春)에 정(情) 들은 님과 부여안고서
깊고 깊은 노들 강물에 죽으려 빠졌더니
어부(漁父)의 쳐 놓은 큰 그물이 건져내면서
마름잎에 걸리어 푸르르 떨더라고
(『白潮』 1호, 1922년 1월)
*시악시 마음은
시악시 마음은
비탈길 밭둑에
삽살이 조을고
바람이 얄궂어
시악시 마음은
...........................
찢어 내려라
버들가지를
꺽지는 말어요
비틀어 다고
시들픈 나물은
뜯거나 말거나
늬나나 나
나나나 늬
(『白潮』 2호, 1922년 5월)
*봄은 가더이다
봄은 가더이다
봄은 가더이다
"거져 믿어라 "
봄이나 꽃이나 눈물이나 슬픔이나
온갖 세상(世上)을, 거저나 믿을까?
에라 믿어라, 더구나 믿을 수 없다는
젊은이들의 풋사랑을
봄은 오더니만, 그리고 또 가더이다
꽃은 피더니만, 그리고 또 지더이다
님아 님아 울지 말어라
봄은 가고 꽃도 지는데
여기에 시들은 이내 몸을
왜 꼬드겨 울리려 하는냐
님은 웃더니만, 그리고 또 울더이다
울기는 울어도 남따라 운다는
그 설움인 줄은, 알지 말아라
그래도 또, 웃지도 못하는 내 간장(肝臟) 이로다
그러나 어리다, 연정아(軟情兒) 의 속이여
꽃이 날 위해 피었으랴? 그렇지 않으면
꽃이 날 위해 진다더냐? 그렇지 않으면
핀다고 좋아서 날뛸 인 누구며
진다고 서러워 못 살 인 누군고
"시절이 좋다" 떠들어대는
봄 나들이 소리도, 을씨년스럽다
산(山)에 가자 물에 가자
그리고 또 어데로
"봄에 놀아난 호드기 소리를
마디마디 꺾지를 마소
잡아뜯어라, 시원치 않은 꽃가지"
들 바구니 나물꾼 소리도
눈물은 그것도 눈물이더라
바람이 소리없이 지나갈 때는
우리도 자취없이 만날 때였다
청(請)치도 않는, 너털웃음을
누구는 일부러 웃더라마는
내가 어리석어 말도 못할 제
휠휠 벗어버리는, 분홍(粉紅) 치마는
"봄바람이 몹시 분다" 핑계이더라
이게 사랑인가 꿈인가
꿈이 아니면 사랑이리라
사랑도 꿈도 아니면, 아지랭이인가요
허물어진 돌무더기에, 아지랭이인 게지요
그것도 아니라, 내가 속앗음이로다
그러나 그는, 꺾지 않아도
저절로 스러지는 제 버릇이라네
아그런들 그 꽃이 차마
차마, 졌기야 하였으랴만
무디인 내 눈에 눈물이 어리어
아마도, 아니 보이던 게로다
아그러나, 봄은 오더니만, 그리고 또 가더이다
(『白潮』 2호, 1922년 5월)
*별, 달, 또 나, 나는 노래만 합니다
별, 달, 또 나, 나는 노래만 합니다
온 동리가 환한듯 하지요? 어머니의 켜 드신 횃불이 밝음이로소이다. 연자(燕子) 맷돌이 붕 하고 게을리 돌아갈 때에 온종일 고달픈 검억 암소는, 귀치 않은 걸음을 느리게 옮기어 놉니다. 젊은이 머슴은 하기 싫은 일이 손에 서툴러서? 아니지요! 첫사랑에 게을러서 조을고 있던 게지요. 그런데 마음 좋으신 어머니께서는, 너털거리는 웃음만 웃으십니다. 아마도 집 지키는 나의 노래가, 끝없이 기꺼웁게 들리시던 게지요.
하늘에 별이 있어 반짝거리고, 앞 동산에 달이 돋아 어여쁩니다. 마을의 큰 북이 두리둥둥 울 때에, 이웃집 시악시는 몸꼴을 내지요. 송아지는 엄매하며 싸리문으로 나가고, 아기는 젖도 안 먹고 곤히만 잡니다. 고요한 이 집을 지키는 나는, 나만 아는 군소리를 노래로 삼아서, 힘껏 마음껏 크게만 부릅니다, 연맷간의 어머니께서 기꺼이 들으시라고 .
(『東明』 17호, 1922년 12월)
*희게 하얗게
희게 하얗게
누이가 일없이 날더라 말하기를
"나의 얼굴이 어찌해 흰지 오빠가 그것을 아시겠습니까?"
"아마 너의 얼굴이 근본부터 어여쁜 까닭이지"
"아니지요! 달님의 흰 웃음을 받았음이지요"
"나 사는 이 땅이 흼은 어쩐 일인지 오빠가 아십니까?"
"아마 하얀 눈이 오실 때에 우리의 마음도 희였든 까닭이지"
"아니지요! 가만히 계셔요 나의 노래를 들어 보셔요"
"옷 짓는 시악시를 만나보거든
붉은 꽃 수놓은 비단을랑 탐치 말라고
붉은 꽃 피우랴는 사랑이 올 때에
젋은이의 붉은 시름 지지 않을 터이니"
나는 누이의 뜻을 잘 알았다. 그가 나의 옷을 지을 때에
일부러 흰 가음으로 고르는 줄을.
(『東明』 17호, 1922년 12월)
*바람이 불어요!
바람이 불어요!
밤이 오더니만 바람이 불어요
바람은 부는데 친구여 평안하뇨
창 밖에 우는 소리 묻노라 무슨 까닭
집 찾는 나그네 갈 길이 어드멘고
이 밤이 이 밤이 구슬픈 이 밤이
커다란 빈집에 과부가 울 때라
부러진 칼로 싸우던 군사야
잊지 말어라 차든가 덥든가
주막집 시악시 부어 주는 술이
해 저문 강가에 팔장 낀 사공이
애타는 젊은이 일 넌지시 묻거든
그리 말하소 더부살이 허튼 주정 말도 말라고
누구의 말이든가 "정성만 지극하면은
죽었던 낭군도 살아 오느니라"고
그것도 나는 믿지 않아요 거짓말이어서
"꺼진 불을 살리어 주소서" 정성껏 빌어도
북두칠성 앵돌아졌으니 어이 하리요
이 밤을 새우면 내 나이 스물네 살!
어머니! 말어 주셔요 시왕전(十王殿)에 축원을
문 앞에 가시성(城)이 불이 붙어요
당신의 외독자(獨子) 나도 가기는 갑니다
죽음의 흑방(黑房)에서 선지피를 끓이어
죄악의 부적을 일없이 그리는
마법사야! 오너라 네 어찌하리요
내가 모르는 체 너털웃음을 웃으면은
아! 지겨운 밤이 바람을 데려오더니
시들지 않은 문풍지 또다시 우노라
(『東明』 17호, 1922년 12월)
*키스 뒤에
키스 뒤에
"여보셔요! 좇아오지 말고 저만치 서셔요 남들이 있거든 "
"아따, 이 사람아만날 때에면 참을 수 없구나 울렁거리는 가슴을"
"입을 그리 마셔요 입맞췄다 하게요 남들이 보면은"
"아따, 이 사람아! 휘파람구누나 하자는 말이지 남몰래 올 때에"
"쉬! 떠들지 말아요 우리 집의 사나운 개 또 짖고 나서"
"아따, 이 사람아! 두 근 반 하더냐 너의 가슴이"
"내 속이 상합니다 웃지 말아요 허튼 웃음을"
"아따, 이 사람아! 못 만나 우랴? 만나서 웃지!"
"나는 싫어요 놀리지 말아요 그러면 나는 갈 터이야요"
"아따, 이 사람아! 마음대로 하려문 싫거든 그러면 나는 간다나"
(『東明』 17호, 1922년 12월)
*그러면 마음대로
그러면 마음대로
"해마다 열리는 감이 해마다 풍년이라"고
짚신할아범 그것을 지키며 좋아합니다.
씨 많은 속살이 떫기만 하여도
소꿉질 가음으로 그나마 노라나
다팔머리 이웃 애들 날마다 꼬여요
"요것들 어린 것이 감 따지 말아라"
"당신이 죽으면 가지고 갈 터요"
"요 녀석 죽기는 왜 죽는단 말이냐"
"그러면 마음대로 오백 년 사오"
아이들은 지껄이고 몰리어가는데
모른 체 할아범은 짚신을 삼으며
"첫서리가 와야지 감을 딸 터인데"
(『東明』 17호, 1922년 12월)
*노래는 회색(灰色)나는 또 울다
노래는 회색(灰色)나는 또 울다
아기의 울음을 달래려 할 때에
속이지 아니하면은 어머니의 사랑으로도
웃지 말어라 미친이의 이야기를
참말로 믿으면 허튼 그 소리도
커다란 빈집을 일없이 지키는
젊은이 과수의 끝없는 시름은
한 마음밖에 또 다른 뜻을 모른다 말어라
속 모르는 이의 군이야기가 없었더라면
사나이 젊은 중 염불이 아니였더면
밝은 눈동자 목탁(木鐸)이 아니거든 몰을 수 있으랴
가사(袈裟)를 입을 때에 붉은 비단 수놓은 솜씨를
어여쁜 보살(菩薩)!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東亞日報』 1923년 1월 1일)
*해 저문 나라에
해 저문 나라에
그이를 찾아서
해 저문 나라에,
커다란 거리에, 나아갔었더니
지나가는 나그네의 꼬임수에
흔하게 싸게 파는 궂은 설움을
멋없이 이렇게 사 가졌노라.
옛 느낌을 소스라쳐
애 마르는 한숨
모든 일을 탓하여 무엇하리요,
때묻은 치맛자락 흐느적거리고
빛 바래인 그림자 무너진 봄꿈,
미치인 지어미의 노래에 섞어서
그 날이 마음 아픈 오월 열하루.
봄아 말없는 봄아,
가는 봄은 기별도 없이
꽃 피던 그 봄은 기별도 없이,
진달래꽃 피거든 오라더니만,
봄이나 사랑이나 마음이나
사람과 함께 서로 달라서,
이 몸이 사랑과 가기도 전에
돌아가는 그 봄은 기별도 없이
진실과 눈물은
누구의 말이던고,
시방도 나는 이렇게 섧거든,
그적에 애끊이던 그이의 눈물은
얼마나 붉었으료,
하염없이 돌아가던 언덕,
긴 한숨 부리던 머나먼 벌판,
눈물에 젖어서
잡풀만 싹이 터 우거졌는데,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오고 가는 산새
가슴이 아프다 "뻐뻑꾹"
그이가 깨끗하게 닦아주고 가던
내 맘의 어루쇠[鐘]는 녹이 슬어서
기꺼우나 슬프나 비추이던 얼굴,
다시는 그림자도 볼 수 없으니,
아그 날은
병 들은 나의 살림,
마음 아픈 오월 열하루,
나는 이제껏 그이를 찾아서
어두운 이 나라에 헤매이노라.
(『開闢』 37호, 1923년 7월)
*어머니에게
어머니에게
어머니!
어찌하여서
제가 이렇게 점잖아졌습니까
어머니 젖꼭지에 다시 매어달릴 수 없이
이렇게 제가 점잖아졌습니까
그것이 원통해요
이 자식은
어머니!
어찌하여서
십년 전 어린애가 될 수 없어요
어머니께 꾸중 듣고 십년 전 어린애가 다시 될 수 없어요
그리고 왜 인제는 꾸중도 아니하십니까
그것이 설워요
이 자식은
어머니!
어찌하여서
어린 것을 가꾸어 크기만 바라셨습니까
가는 뼈가 굵어질수록 욕심과 간사가 자라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거룩한 사랑을 값싸게 저버리는 줄 모르십니까
그것이 느끼어져요
이 자식은
어머니!
어찌하여서
떡 달라는 저에게 흰무리떡을 주셨습니까
티끌 없이 클 줄만 아시고 저의 생일이면은 흰무리떡만을 해 주셨습니까
인제는 때묻은 옷을 벗을 수도 없이 게을러졌습니다
그것이 아프게 뉘우쳐져요
이 자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