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사역을 이루시는 성삼위 하나님
▪마태복음 3:13-17▪
13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14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3-17)
설교작성 노트
필자는 어느 교회 공예배에 참석하여 오늘 본문을 가지고 “비둘기 같은 성령을 받자”는 제목의 설교를 들은 바가 있다. 설교자는 왜 참새 같은 성령, 독수리 같은 성령이라 하지 않고 비둘기 같은 성령이라 하였는가 하고 도입하면서, 첫째 비둘기는 순결합니다. 그리고 이를 입증하기 위하여 마 10:16을 제시하면서 우리도 비둘기 같은 성령을 받아 순결한 삶을 살아갑시다. 둘째 온유하다. 셋째 평화의 상징이다고 전개해 나가는 것이었다. 결론 부분에 이르러 우리도 비둘기 같은 성령을 받아 가정과 교회 이웃에서 순결하고 온유하여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십시다고 끝을 맺었다. 언뜻 들으면 은혜롭고 유익하며 말씀에 충실한 듯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말씀을 맡은 주의 종이 어찌하여 비둘기는 보면서 성부 성자 성령님이 만나고 계시는 장엄한 장면은 보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 안타까움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이것이 본 설교를 작성하게 된 동기이다.
강론
마태복음 3장 내용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청소년 시절을 북쪽 나사렛이란 동리에서 지내셨습니다(마 2:23). 그런데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남쪽 유대지방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는 세례 요한에게 오신 것입니다(3:13). 그리고 세례를 베풀어주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나이는 삼십 세쯤 되셨습니다(눅 3:23). 그러니까 마태복음 2장과 3장 사이에는 약 30년의 기간이 경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느냐 하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다는 단순한 뜻이 아니라 세례를 받으심으로 공생애가 시작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토록 중요한 대목인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셔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를 간략하게 나마 생각해 보겠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우리의 대표자가 되시어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기 위하여 “범사에”(히 2:17) 우리와 같이 되신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으셨으며 세례도 받으시는 것입니다. 만일 이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세례를 받으셔야할 이유가 없는 것이며 근원적으로 도성인신하시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만일 범사에 우리와 동일화(同一化)가 되어 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대표자로써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갈 4:4)하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세례뿐만이 아니라 율법을 온전히 준수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 아래 있는 우리의 대표자가 되시어 우리를 대신하여 죽음을 담당하시기 위하여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써의 특권이나 특혜를 누리시기를 원치 아니하셨습니다. 더욱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범사에 우리와 같이 되심이 아니었다면 그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도 의로우시고 그리고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시는(롬 3:26)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 드릴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15)는 뜻입니다.
아버지의 인치신 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써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16-17) 이 장면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예수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
우선적으로 두 절 속에 누구 누구가 계시되어 있는가 부터 살펴보십시다.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시는 예수님과 그 위에 비둘기 같이 임하시는 성령님 그리고 그 장엄한 장면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성 삼위께서 회우(會遇)하고 계시는 성스럽고도 영광스럽기 그지없는 장면입니다. 왜 성삼위 하나님께서 만나고 계십니까?
이는 예수님께서 공생애에 들어가시기 위한 일종의 위임식이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선포하시니까 성령께서 그러하다 하시고 인을 치시는 장면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6:27을 보십시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는 말씀을 하셔야만 했습니까 “인침”이란 보증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희로 믿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인을 치셔서 보증하신 이를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아들에 대하여 친히 증거하여 주심은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와 변화산상에서와(마 17:5) 잡히시기 직전(요 12:28) 이렇게 세 번이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하심 같이 하나님께서는 자기 사랑하는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 주시면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라고 친히 증거 하여 주시고 성령으로 인을 치사 보증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예수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로 인치심을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시게 되는 중요한 장면인 것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성삼위 하나님의 사역
우리는 좀더 나아가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성삼위 하나님께서 회우(會遇)하셨다 함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구속사역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함께 일하고 계심을 계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1장에 보면 성부께서는 우리를 “택”(擇)하시고(4) 성자께서는 우리를 “구속”(救贖)하시고(7) 성령께서는 “인”(印)을 치셨다(1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념하게 되는 것은 “인을 치셨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후사가 되었다는 증서에는 도장이 없는, 믿을 수 없는 증서가 아니라 성령께서 보증하시는 인을 쳐주신 증서라는 점입니다.
이처럼 성삼위 하나님께서 구원사역에 관여하심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나 같은 죄인 하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황공하옵게도 “하나님의 사랑”(롬 8:39)과 “그리스도의 사랑”(롬 8:35)과 “성령의 사랑”(롬 15: 30)으로 즉 성삼위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내주 하시는 분도 “하나님의 영”이시며 “그리스도의 영”이시며 또한 (성) “영”이라고(롬 8:9)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구속사역을 이루시기 위해서 요단강 가에 성 삼위 하나님께서는 함께 만나고 계시는 것입니다. 찬송 가사 그대로 우리에게 “만 입이 있다”하여도 그 은혜와 성실하심을 다 찬양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다만 여섯 날개 가진 스랍들처럼 그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그 둘로는 발을 가리고 그 둘로는 날면서(춤을 추면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 6:2-3)고 영광을 돌릴 것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세례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눅 12:50)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받으셔야 할 최종적인 세례는 대속의 죽으심이었습니다.
3장에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4:1에서는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나가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마지막 아담의 공생애는 첫 아담이 패배한 것을 승리하심으로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어 종노릇하는 모든 자를 놓아” 주시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 싸움을 싸우시려 나가시는 것입니다.
형제여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할 일이 무엇입니까 주님은 대답하십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6:29)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막 10:38)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