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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도로 가는 뱃길에 파도가 높았다. 갯바람이 거세게 불어올 즈음에 긴 수염을 가다듬던 마도로스가 조타실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리고 섬 여행을 가는 목적으로 일러주자 “저 섬은 소죽도, 그 옆 섬은 대죽도…” 그렇게 약산도 소개하기 시작했고, 양식장을 지날 때는 다시마를 따고 있으며 그 옆이 전복 양식장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다시, 저 섬은 금당도라고 하면서 알아서 돌아가는 전축판처럼 익살스런 투로 섬의 유래 등을 친절히 안내해주었다.
▲ 약산도 당목포구를 떠나 마량포구로 향하는 철부선 |
ⓒ2005 박상건 |
약산도는 고금도와 최근 다리를 이었고 고금도는 다시 강진군 마량포구로 다리를 잇고 있다. 머지않아 강진에서 승용차로 이들 두 개 섬을 연이어 건널 날이 온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해남반도와 연결된 완도와도 지리적으로 가까이 연결돼 바로 육지로 드나들 수 사통팔달의 섬이 되고 있다.
▲ 50여 년째 작은 섬들을 항해하고 있는 노장의 마도로스 김길동(72)씨. |
ⓒ2005 박상건 |
산마다 길마다 약초가 널린 섬
그렇게 유난히 약초가 많은 섬, 약산도. 남도 지역 섬 이름 가운데 ‘약(藥)’자를 지닌 섬은 이 곳뿐이다. 약산도 본섬은 해발 356m 장룡산. 이 산자락에는 삼지구엽초 등 130여 종의 약초 군락지가 있다. 어디 군락지 뿐이랴. 산자락 주변 길에도 탱자나무, 보리수, 구절초, 참빗살나무, 노루발, 황련, 야생 도라지, 더덕 등의 약초가 널려 있다. 여전히 ‘조약도’로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셈.
특히 이 섬에서 알아준 약초가 바로 삼지구엽초이다. 삼지구엽초는 강장제 약초로서 3개의 가지에 3개씩의 잎이 나있다. 익은 것은 뿌리가 노랗다. 건강한 섬에서 자란 이 약초를 먹고 천연림이 우거진 섬 절벽에 서서 먼 수평선을 바라보던 염소. 그가 바로 약산도에서 방목하는 흑염소이다. 사계절 약초를 먹고 푸른 바다와 호흡하며 사는 흑염소. 사람들이 그를 알아주는 이유는 너무나 당연한 듯하다.
▲ 약산도 삼자락에 군락을 이루어 자생하는 삼지구엽초 |
ⓒ2005 과학문화재단 |
▲ 삼지구엽초 등 약초를 먹고 사는 방목 흑염소. 새끼가 어미 젖을 빨고 있다 |
ⓒ2005 박상건 |
육지의 다른 염소와는 달리 야성이 강해 아주 민첩한 모습을 보인다. 분명한 것은 섬 안에는 흑염소의 천국이라는 사실과 이들 흑염소는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산다는 것이다. 다른 가축들처럼 주인을 잘 따르는 편이다. 주인이 휘파람을 불면 바로 모여든다. 그리고 날이 저물면 알아서 집으로 돌아올 줄도 안다.
돌과 약초와 동백숲이 조화를 이룬 해변
흑염소는 옛날부터 한약재와 함께 달여 빈혈쇠약, 산후 조리 등에 좋은 보약으로 통했다. 그래서 궁중 진상품으로 사용되었다. 이런 역사를 이어온 흑염소를 남녀노소가 먹는 보약으로 대중화시키기 위해 약산도 젊은이들의 노력을 빼 놓을 수 없다. 그들은 영농법인을 만들어 약산도만의 경쟁력 있는 특산품으로 만들어 큰 소득원으로 삼고 있다. 현지에서 흑염소탕(6000원), 수육(2만원) 등을 맛볼 수 있다.
약산도에는 약초와 함께 대나무가 많다.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생하는 섬 죽도(竹島)가 있고 대나무가 울창한 마을이라고 하여 죽리, 죽생리, 죽선리가 있다. 약산도 여행길은 평일도 도장항에서 건너갔는데 당목항에서 하선했다.
당목은 옛날부터 고흥군과 금일읍을 연결하는 포구여서 포촌이라 불렀는데 포촌을 내려다보는 곳에 오래 된 당나무가 있어서 당목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마을 입구에 딱 버티고 선 이 나무는 영락없이 나그네의 발길을 끌어당길 정도로 묘한 마력을 지닌 나무이다. 위엄이 그만큼 당당했다.
▲ 대나무가 자생하는 대죽도와 소죽도 |
ⓒ2005 박상건 |
약초가 많은 산이라고 해서 약나무산이라고 부른다. 이 숲에서 삼림욕 냉수욕까지 즐길 수 있다니 해수욕과 더불어 여행 맛을 더욱 배가시켜준다. 또한 바닷가 주변 민가에서 이곳 특산품인 흑염소와 토종닭 요리도 맛 볼 수 있어 멋과 맛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바닷가의 추억 여행이 아닐 수 없다.
돌이 비둘기처럼 반짝이고 해저에서 유물이 발견되고
다시 해변을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당목항 너머 섬 끝자락에 조그만 섬 하나가 떠 있었다. 이 마을 사람들이 예로부터 섬어두지(섬어장머리)라 부른 곳으로 고기가 많이 잡히는 곳이란다. 바다 동쪽이라 하여 해동리라고 부르다가 행정구역 개편 때 마을 이름을 다시 어두리(漁頭里)라고 부르게 되었다. 1983년에는 이 앞바다에서 청자 등 3000여 유물이 인양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숭어가 많이 잡히고 해저유물이 발견된 섬어두지의 무인 등대 |
ⓒ2005 박상건 |
▲ 약산도 끝자락인 진작개 섬 모롱이 |
ⓒ2005 박상건 |
정상에서 바라보면 분재 같고 수석 같은 섬들의 풍경
구암리에는 툭 트인 바다를 조망할 있는 약산도 최고봉인 해발 399m의 망봉이 있다. 이 산에는 진달래 군락지가 있다. 진달래 숲에 취해 내려다 본 올망졸망한 작은 섬들의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그저 푹 취해 한동안 넋을 놓을 수밖에 없다. 평온한 바다에 사뿐히 내려앉은 섬들마저 적막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북으로는 마량포구와 멀리 영암 월출산이 보이고 동으로 눈을 돌리면 거금도 금당도 평일도 생일도가 한 그루의 분재처럼 아담하게 다가선다. 남으로 신지도와 혈도, 갈마도가 잘 닦아 놓은 수석처럼 푸른 바다에 꽂혀 있다. 맑은 날엔 청산도 추자도와 제주도가 갈매기 나래짓처럼 가물가물 파도에 출렁인다고 한다.
▲ 약산도 앞바다 모습 |
ⓒ2005 박상건 |
이런 조망 포인트인지라 왜적과 해적들의 침입을 감시하던 봉우리로 사용했을 것은 분명한 일. 완도 앞바다에 떠 있는 신지도 최고봉 상봉과 맞은 편 장흥 최고봉 천관산에 불 핀 봉화를 이어 올려 조정에 긴급 연락망 역할을 했다고 한다. 지금도 인근 산에는 이런 봉화를 올렸던 흔적이 역력히 남아 있어 약산도는 어떤 의미에서 역사의 섬이기도 하다.
돌 많아 농사 못 짓는 환경을 특산품 개발로 극복한 섬사람들
한편으로는 돌과 관련해 바닷가에 재밌는 바위 이름도 있는데 일명 ‘숭어바위’. 마을사람들이 ‘소리지끝’이라고 부르고 있는 해안에 숭어 떼가 한곳에 뭉쳐 있다가 소리지 끝에 있는 바위부근을 지날 때 이 바위 위에서 그물로 숭어를 많이 잡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밭농사가 어렵다는 뜻일 터인데 주어진 자연환경에 낙천적으로 순응하며 사는 약산도 사람들의 곧고 고운 정서를 읽어 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 약산도 끝자락인 진작개 섬 모롱이 |
ⓒ2005 박상건 |
여동리 산중턱에는 ‘풍풍바위’가 있는데 바위 위에서 뛰면 풍풍대는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이런 바위와 같은 곳이 경상도 삼랑진에 있는 만어사이다. 산사 앞마당이 온통 바위인데 돌로 두들기면 파도소리가 난다. 오래 전 바위였고 결국 지금의 계곡은 해수면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풍풍바위 역시 이런 파도에 씻겨 속이 빈 바위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섬 안에는 ‘큰굴’이 있었다. 10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넓은 공간이었다. 소리를 지르면 툭 트인 바다까지 메아리친다. 굴 안에는 샘물이 나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를 약수로 마시고 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돌이 이곳 섬사람들에게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넙고리 북쪽 산에서는 옥(玉)이 나온다. 이 마을을 옥산리(玉山里)라고 부르다가 해방 이후 우두리, 다시 넙고리가 부르고 있었다. 해남반도에서 옥이 발굴돼 부자동네가 된 사례가 있듯이 이곳사람들도 옥구슬처럼 사랑이 구르는 행복한 세상을 맛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바다에서 배운 억척스러움과 섬마을의 빛나는 공동체 문화
그렇게 아름다운 섬, 약산도를 빠져 나오면 많은 생각이 스쳤다. 어찌 보면 조상이 물려준 척박한 돌섬인 것을, 황무지를 아기자기하게 만들어 앞서간 섬사람들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약산도 사람들. 그 자체로 독특한 약산문화였다. 묵묵히 자연환경을 일구어 온 긴 세월 속에는 겸허함과 옥을 다듬듯 희망의 터전을 닦아나가는 도전정신이 배어 있었다.
▲ 약산도 다시마 양식장 |
ⓒ2005 박상건 |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항해하다 보면 암초가 있고 바람에 쏠려 뜻하지 않는 항로로 들어서 낯선 섬에 이를 때가 많다”면서 “섬사람들도 해적에게 빼앗기고 왜적에게 당하고 태풍에 밀리면서 돌산의 굶주림과 싸우는 이중고를 헤쳐 왔다. 그러면서도 온전히 후손을 이어온 것은 바다에서 터득한 억척스러움과 건강 때문”이라는 것.
영락없이 그랬다. 바다에서 온몸으로 배운 삶이 아니던가. 파도 위에서 삶을 찾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섬사람들이다. 고립된 섬 생활을 빛나게 하는 것은 사라지지 않은 마을 공동체 문화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 섬사람들과 섬을 항해하는 삶을 사는 선장의 그을린 주름살이 당목항 거목을 닮았다.
▲ 조타실에 놓혀 있는 손때 묻은 항해일지 |
ⓒ2005 박상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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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배 조타실에 계신분 백발 할아버지 자주 만나는 분인데 ... ㅎㅎ 약산도 소개에 감사드립니다.
약상 흑염소 디기 좋타던데....ㅎㅎ
삼지 구엽초 묵고 큰 흑염소 ㅎ~망님 같은 여자분에게 엄청 좋데요.... 남편과 같이 놀러가서 한마리 푹 고아 잡수세요....남은 것 있으면 쬐끔만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