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휴거 소동의 기원
지구 종말급의 대재앙이 찾아오는데, 그 전에 어떤 것을 익히거나 무엇을 믿는 일부 사람들은 구출되어 안락하게 살아남는 다는 이야기는 무척 자극적입니다. 그래서 고래로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신화와 전설의 소재였으며, 현대에도 환상물과 SF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에도 광포전설 같은 이야기가 예부터 내려오고, 기독교 문화권 내에서도 사실 예수 이전 구약시대 때부터 돌던 소재이기도 했습니다. 국내 기독교계에도 1920년대에 이미 기록이 꽤 많이 남아 있는 사건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휴거"라는 것은 그러한 재앙이 찾아오기 전에 선택된 사람들이 순간이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간이동한 사람들은 안락하게 살고 남은 사람들은 재앙의 고통속에 허덕인다는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1992년, 한국에서는 1992년 10월 28일 예수가 다시 등장하는 사건과 함께 휴거가 일어난다는 소문 때문에, 꽤 큰 소동이 벌어진 바 있습니다.
(하늘로 순간이동)
"휴거"라는 생각이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20세기초 일제시대 무렵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19세기 말부터, 이런 휴거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돌며 정리되기 시작했고, 책도 나오고 선전물도 왕왕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19세기말엽 20세기초에, 미국의 기독교 계열의 인물들 중에서 "휴거"라는 것에 대해 여러가지로 상상하거나 어떤 사건을 믿는 사람들이 꽤 많아졌습니다. 이것이 하와이에 이민간 한국 교포들이 매개가 되어 한국에 들어온 것이 예부터 휴거류의 이야기가 한국에 돌아다니기 편하게 된 배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1992년 한국 휴거 소동은 한 명의 중년 남자가 선명한 중심이 됩니다. 그 사람은 바로 다미선교회라는 단체의 대표였던 이장림이라는 인물입니다. 이장림은 본래 감리교에서 공부를 해서 목사가 된 사람으로, 나름대로 성실하고 학식도 적당히 갖춘 사람으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이장림은 미국에서 출간된 기독교 관련 서적을 연구하고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하는 일을 다소간 해왔습니다. 이 때의 성과들은 상당히 반응이 좋아서 나름대로의 명망과 얼마간의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도널드 퍼킨스의 책)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장림은 "휴거"라는 말의 창시자입니다. 영어표현 "rapture"를 한자어 휴거로 쓴 사람이 바로 이장림이라는 것입니다. 이원규의 논문에 따르면, 이장림이 본격적으로 휴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86년 퍼시 콜레 목사의 저서 "내가 본 천국"을 보게 된 후로부터라고 합니다. 이 책은 퍼시 콜레가 천국을 보았다는 내용을 무슨 단테의 신곡처럼 알리는 내용입니다. 이것을 미국의 휴거 이야기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입장을 가져서 후에 "휴거"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하는 홍의봉이라는 사람이 번역해서 국내에 소개하였습니다. 내용은 퍼시 콜레가 천국에서 솔로몬, 다윗은 물론이요 JFK까지 보았다는 둥 하는 것인데, 퍼시 콜레는 한국을 방문하여 독특한 외모와 설교로 상당한 관심을 끌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장림은 바로 이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여러가지 신비한 이야기, 예언 등에 심취하게 된 듯 보입니다.
이장림은 이후에, 미국의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하고, 다양한 내용들을 소개하며, 휴거, 말세, 요한계시록의 해석 등에 관한 책을 쓰게 됩니다. 그것이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라"와 그 속편인 "하늘 문이 열린다" 였습니다. 이상의 책들은 내용이 이후의 것들에 비하면, 심하게 과격한 것이 아니었고, 재미있는 부분이 많아서 상당한 관심을 얻었습니다.
(최후의 심판)
이처럼 이장림이 처음으로 휴거에 관한 내용들을 국내에 소개할 때는 미국의 휴거 이야기들을 활용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흥행작 "The Late, Great Planet Earth"라는 책과 그 아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이 책은 1970년에 나온 것입니다. 1960년대를 지나면서, 당시 미국에는, 비틀즈에서 롤링스톤즈를 걸치며, 히피 문화에서 소위 "68혁명"까지 이어지는 사회 변화와 약물 문제의 만연, 냉전과 냉전을 해소하기 위해 생기는 정치적인 변화등등이 "말세"라는 탄식이 일부에서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에 대한 저항으로, 몇몇 종교, 유사 종교 조직에서 여러가지 유언비어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핼 린지(Hal Lindsey)라는 작가가 집대성한 뒤, 성경이나 기독교 신화와 결부시켜 흥미를 끄는 이야기거리로 완성한 것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극적인 대목은 유럽의 경제적 협력이 결국 유럽 연합, 유럽 제국으로 발전하고, 이것을 어떤 한 사람의 독재자가 철권 통치한다는 예언입니다. 그 사람은 적그리스도, 곧 악의 화신으로 이 사람이 이끄는 유럽 제국이 "신 로마제국"이 되어 전 세계를 제패하고 미국 따위는 가소롭게 여기게 되고, 곧 온 세계에 학살, 탄압을 저지르며 공포정치를 실시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미국 내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훗날 1979년에 무려 오손 웰즈가 나래이션을 맡게 한 영상물 판이 제작되는 등, 그 위세가 상당히 거창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용괴물)
이러한 상황에서 1973년 중저예산 공포영화 "엑소시스트"가 사상초유의 어마어마한 흥행을 하게 되면서, 다시 한 번 미국에서는 엄숙한 기독교 신화를 공포와 직결시키는 아이디어가 유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 1976년 요한계시록 계열 공포영화의 최걸작 "오멘"이 대대적인 흥행을 하면서, 요한계시록, 적그리스도, 666, 지구 종말 등등의 이야기는 공포를 자극하고, 호기심을 자아내는 문화요소로 굳건히 완성되게 됩니다.
당연히 아류작과 영향을 받은 더 이상한 유언비어가 더욱더 떠돌게 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이장림은 비슷한 부류의 이야기들을 1980년대에 대량으로 접할 수 있었습니다. 즉 미국에서 1970년대에 솟아나서 1980년대에 정립되어 있던 이야기들을 1980년대 중반이후 이장림이 본격적으로 들여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독교계열 공포물의 최대 흥행작)
또한가지 매우 중요한 1992년 한국 휴거 소동의 근간이 되는 것은 1950년이라는 상당히 오래전에 나온 "Raptured" 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조용기 목사 만큼이나 화려한 활약을 한 어니스트 앵글리의 초기작입니다. 어니스트 앵글리는 텔레비전을 통해 설교와 종교활동을 하는 것으로 대단한 명망을 떨친 사람이기에, 이 사람의 초기작인 "Raptured"는 여러번 재발매되어 어느정도 널리 읽혔습니다.
이 책은 허무하게도 그냥 "소설" 입니다. 성경에 적혀 있는 재앙이나, 기적이 현대 미국 사회에 벌어지면 어떤 일이 있을까를 상상해서 쓴 환상물 내지는 SF물 비슷한 책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포물로 조금 각색을 한다면, "오멘"과 아무 다를 바 없는 것이고, 다만 그 규모가 "딥 입팩트"나 "아마겟돈" 급으로 강하다고 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작가의 영향력과 흥미로운 내용 때문에, 이 단순한 소설이 휴거에 대한 예언 자체를 극화한 것으로 생각되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이장림이 "휴거"라는 신조어를 자체를 처음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 책은 최초의 휴거 선전물 중 하나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대기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결국 1992년 한국 휴거 소동때는 이 책의 번역판이 휴거 관련 서적중에는 무척 많이 나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종교적인 광경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지어진 소설이 1992년 10월 28일 휴거 이후의 미래상에 대한 권위있는 명망가의 예언으로 선전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이장림은 그리하여, 계속해서 미국에서 배운 휴거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 일환으로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라" 시리즈 3편과 4편을 출간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책의 내용을 실행하는, 종교조직을 만드는데, 이것이 바로 "다가올 미래"의 약자인 "다미"를 이름으로 삼은, "다미선교회"인 것입니다. 다미선교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1992년 10월 28일을 휴거의 날로 굳게 믿고, 휴거의 시간은 밤 12시 자정이라는 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휴거 이후에는, 적그리스도나 다름없는 독재자가 세계를 지배하면서 온갖 재앙이 다 닥치는 지구 종말이 찾아온다는 것을 선전했습니다.
(재앙이 쌍쌍이 몰려오면 어떻게 될까?)
이 1992년 10월 28일이라는 시기는 다음과 같이 지목되었습니다. 예수 탄생후 2천년이 성경상의 수치를 종합할 때 중요한 시점인데, "7년간 재앙이 닥쳐온다"는 소위 "7년환란"의 예언이 있으므로, 1999년에서 7년을 뺀 1992년이 재앙직전의 순간이라는 계산입니다. 이 역시, 미국에서 떠돌던 이야기이며, 10월 28일이라는 날짜도, 나팔절 9월 28일에, 성경의 여러 문구를 짜집기해서 1개월 연기된다는 설을 덧붙여 10월 28일이 된다는 것으로 설정한 것입니다. 이 역시 핼 린지를 잇는 미국계열 이야기였습니다.
세기말 휴거 임박설 내지는 세기말 재앙설은 SF물에 심심하면 한 번씩 나오는 것인 고로, 사실 이장림외에도 비슷비슷하게 이러한 생각을 받아들이고 퍼뜨리는 사람은 적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1990년에 홍의봉이 미국에서 만든 한국영화 "휴거"는 이장림 계열이 퍼뜨린 설과는 굳이 직통하는 관계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홍의봉은 이장림이 휴거에 심취하는 계기가 된 "내가 본 천국"을 번역한 사람인데, 이 사람이 감독에 이름을 올린 '휴거"에는 요즘도 TV에 자주 나오시는 정영숙 아주머니와 이종만 아저씨가 출연합니다.
이 영화는 그 내용을 보면, 이장림의 가장 중요한 주장인, "1992년 10월 28일이 휴거의 날이다"라는 것은 나오지 않습니다. 충격적인 이 영화의 스포일러를 밝히게 됩니다만, 무엇인고하니, 심지어 이 영화에서는 휴거가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휴거는 "그런게 언젠가 일어날지도 모르고 그 후에는 이렇게 된다더라"하는 소재로만 언급 됩니다. 이 영화는 그냥 사이비 종교에 물들었던 딸이 탈출하고 기독교에 귀의한다는 줄거리일 뿐인 약간은 심심하고 소박한 영화입니다.
(불공격과 세기말 재앙)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어쩌다가 이장림의 다미선교회가 일약 1992년 휴거 소동의 독보적인 중심이 되었는고 하는 점은 사실 궁금합니다. 여기에 여러가지 설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바로 이장림이 "꿈"을 중시했다는 것이 결정적인 요소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장림은 시한부 종말론계의 프로이트 였던 것입니다. 이장림은 꿈에 예수가 나타나서 무슨 말을 했다, 꿈에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런 꿈속의 사건을 신이 사람에게 바로 직접 내려주는 초강력 계시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방식에는 두 가지 큰 이점이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의 환상)
첫번째로, 쉽게 최측근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꿈에 예수가 나타나고, 지구가 불에 타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어마어마한 광경을 보게되면, 꿈꾼 사람 자신의 충격과 감정은 엄청날 것입니다. 공포영화를 예로 든다 하더라도, 공포영화 보는 것은 별로 안 무섭지만, 그 영화를 보고 무서운 꿈을 꾸는게 더 두려워 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그러니, 바로 이렇게 신과 종말이 난무하는 꿈 이야기를 중시하고, 그 꿈의 의미가 신의 계시라고 하며 중시한다면, 적어도 꿈을 꾼 당사자는 놀라운 신비감과 강렬한 경외심에 휩싸이기 쉽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장림으로서는 열성적인 신도 한 명이 포섭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열성적인 신도의 자발적인 감격과 헌신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도 "저 사람이 정말 뭔가 굳게 믿나보다"하는 설득력을 이끌어 내기도 좋습니다. 때문에, 이장림이 주장한 이야기들을 보면, 주로 감수성이 예민하고, 꿈을 잘 꾸며, 꿈에서 받은 충격에 흔들리기 쉬운,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꾼 꿈 이야기가 매우 많습니다. 특히, 한 소년이 "1992년에 북한에 가서 선교활동을 하는 도중 죽음을 맞는다"라는 꿈을 꾼 이야기를 중시한 것은 다미선교회가 꿈을 이용한 활동의 일대 전환점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빌론 몰락의 환상)
두번째로, 꿈 이야기는 쉽게 전파시킬 수 있습니다. 태몽이니, 복권꿈이니 하는 것 때문에 우리에게 꿈이 뭔가 신비한 것이라는 생각은 전통적으로 생활에 밀착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요즘에도 네이버 지식인에는 끊임없이 "제가 이런 꿈을 꾸었는 데 무슨 신비한 의미가 있는 해석, 해몽해 달라"라는 글이 올라옵니다. 그만큼, 꿈에 대한 미묘한 믿음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또, 꿈은 누구나 어떤 꿈이든 꿀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의 계시에 대한 증거가 이교도들을 향해서 장풍을 쓰는 것이라든지, 둔갑술을 체득하는 것이라든지 하게 되면, 증명하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하지만, 꿈에서 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신의 계시에 대한 증거라면, 하루 종일 모여서 휴거와 종말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그런 꿈을 꿀 가능성이 생깁니다. 신의 계시에 대한 증거를 비일비재하게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의 환상)
다미선교회의 계시-예언 문화는 이렇게 꿈을 중시하는 바탕에 그치지 않고 한 단계 더 발전합니다. 꿈을 스스로 이끌어내는 경지로 뻗어나간 것입니다.
다미선교회는 1992년 10월 28일 자정이 휴거의 순간이고, 그 밤에 일어나는 일에 초점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낮보다 밤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정을 중심으로 항상 자정에 주요 모임을 열었고, 밤잠을 적게 잘 것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수면부족자들이 속출했고, 자정을 중심으로한 야간 종교 모임 도중에 졸면서 꿈을 꾸고, 따라서 종교에 관련된 꿈을 꾸는 자들이 나타났습니다. 더우기, 수면부족이 계속 되면, 멀쩡한 사람도 반쯤 꿈을 꾸게 되어, 환청, 환각을 보거나 헛소리를 하기 마련인데, 이 덕분에 다미선교회의 심야 모임에서는 별별 멋진 환상을 보며 놀라운 계시를 전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버렸습니다. 다미선교회는 이러한 현상을 당시에 열렬한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 불렀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이어지는 환상들)
점점 유행을 끌게 되면서, 다미선교회는 흥행을 위해 또다른 혁신을 감행합니다. 그것은 기독교 외부의 종말론을 적극적으로 포섭하는 것입니다. 소위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지구 종말설" 등을 적극 내세운 것 입니다.
다미선교회 및 그 아류작 단체들은 노스트라다무스, 에드가 케이시 등등 왠갖 다양한 예언, 신비, 괴기 등등에서 재미있고 그럴싸한 이야기들은 적극적으로 뽑아다가 사용했습니다. 일본에서 도는 괴담과 행성 십자가 배치 그랜드 크로스 따위의 이야기들을 응용하는가하면, 후기에는 미국의 "믿거나 말거나" 황색 언론들을 잡다하게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서울 상공에 사탄의 얼굴이 나타나다!)
무려, "링컨은 여자였다" "엘비스는 살아있다" "동굴속에 박쥐소년이 있다" 류의 어이없는 괴기 기사가 난무하기로 악명 높은 절반 코메디 신문 "Weekly World News" 의 기사들까지 마구잡이로 갖다쓰는 극한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천국의 모습이 허블 우주 망원경에 찍혔다거나, 지옥으로 통하는 구멍을 석유를 파다가 뚫어버렸다거나 하는 이야기따위를 인용한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헛소문, 유언비어의 정체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이처럼 다미선교회가 더 조잡해 보이는 조롱거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1992년 휴거 소동이 그정도로 위세가 대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주요 대형 기독교 인물, 단체들이 거의 휩쓸리지 않은 것은 이렇게 조잡한 괴자료를 마구 조립한데서 일단 의구심을 샀던 데에도 원인이 컸습니다. 하지만, 반대방향에서보면, 기독교 계열 학설의 한계를 뛰어 넘어서, 매우 풍부한 신비로운 자료와 신기한 선전물들을 대량으로 포함할 수 있었으므로, 이는 선전에 큰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텍사스 상공에서 예수와 사탄이 대결하는 모습이 나타나다!)
이와 같은 인용들 중에 비교적 기독교 계열 도시전설과 관계가 깊은 것이 소위 "바코드 666" 이야기 입니다. 기본 바탕을 보면, 바코드 666 이야기는 휴거 소동의 주변 사항에 지나지 않았습니다만, 다미선교회 일파의 이러한 전략 때문에 갈수록 중심소재로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이 바코드 이야기 역시 미국에서 유행한 이야기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바코드 666 이야기를 완성시키는데 가장 핵심적인 인물은 미국의 매리 스튜어트 렐페(Mary Stewart Relfe) 여사 입니다. 이 사람이 쓴 1982년에 쓴 책 "The New Money System: 666"가 화제가 되면서, 이 책이 바코드 666 이야기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가장 혹독한 겨울이 온다!)
기본적으로 바코드 666 이야기는 현대 조직문화와 대기업의 자동화, 물량화와 관료제 통제에 반대하는 사회 비판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바코드를 이용해서 물건의 유통을 간소화하여 통제력을 높이고, 기계화 한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인간의 개입여지를 줄이고, 중앙통제를 높이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SF물에 자주 나오는 기계와 개인정보로 모든 것을 통제하며 개인을 휘두르는 독재 정부가 탄생하기에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바코드가 널리 퍼져서 정말로 유통망이 간소화되면, 재고조사하고 계산대에서 물건 계산해야하는 근로자들은 실업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래저래 바코드 기술에 반대할 여지는 있습니다.
이런 바코드가, 1974년 미국 오하이오의 마쉬 슈퍼마켓에서 바코드를 실제로 유통에 활용하여 삽시간에 실생활에 퍼지게 됩니다. 따라서 중앙통제력 과잉 문제, 개인정보보호 문제와 엮여 논란의 초점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몇몇 헛소문, 낭설까지 모아 정리한 것이 1982년, 매리 스튜어트 렐페의 책인 것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유통과 금전활용에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바코드가 바로 성경에 나오는 악마들이 권하는 화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코드에 적힌 숫자들을 이리저리 조합하면 666이 되므로, 바로 바코드가 지구 종말의 상징인 666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저떻게 하면 666)
그렇게해서 나온 발상이, 앞으로 말세 가 찾아오면, 더이상 상거래에서 지폐나 동전을 쓰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바코드를 사람의 손등이나 이마에 문신으로 새겨서 식별표로 하고, 그것을 바코드 스캐너로 읽어들여서 신용카드 긁듯이 모든 거래를 전산화해서 처리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를 통해서, 사람의 모든 생활을 중앙정부에서 관리감독할 수 있게 되므로, 중앙정부를 장악한 악마 같은 독재자에게 매우 유용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몸에 새기는 바코드를 소위 "666표" 라고 부르게 됩니다.
(666표를 받은 사람들의 상상도 - 옷은 벗고 있는 편이 더 불쌍해 보임)
2. 휴거 소동의 확산
이상과 같은 바탕 아래, 휴거 소동은 전국적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확대되어, 종국에는 문제의 1992년 10월 28일 당일에 교회에 운집한 신자들만 전국적으로 8천명에 이르렀으며, 신봉자 숫자는 2만명에 달하는 정도가 된 것입니다. 또 이 휴거 소동은 LA에서 한인 종교 조직과 연계되어 미국의 휴거 소동과 긴밀히 연결되기도 하였습니다.
(미국의 뉴 오리지널 원더 랩처)
그러나, 꿈과 괴기보도를 중시하는 다미선교회의 방향은 이장림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발전해 버리고 맙니다. 꿈은 누구나 꿀 수 있는 것이고, 괴기보도 역시 누구나 입수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간과했던 것입니다. 그러자니, 꿈을 꾼 사람들은 꿈 내용에 따라서, 자기 스스로가 이장림보다 더욱 휴거의 진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역으로 노스트라다무스 예언, 심지어 정감록등에 심취한 사람이 중심을 요한계시록이 아닌 노스트라다무스등의 예언에 두는 반대방향으로 선전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장림 일파의 조직은 계속 파벌이 나뉘고, 이장림의 영향을 받아 등장한 아류 조직이면서도, 이장림보다 더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생겨 버리게 됩니다. 어느새, 휴거 - 종말론 자체가 이장림 일파의 손을 떠나 스스로 마구 덩치가 불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한센씨 병 환자들이 치료약으로 쓴답시고 간을 빼먹는다는 낭설의 양상과 흡사합니다. 원래 이 낭설은 근거없는 헛소문이었지만, 헛소문이 워낙 널리퍼지다보니, 일부 정신나간 한센씨 병환자들이 역으로 그 헛소문을 믿고 어린이를 습격해 살해한 사건이 조선시대부터 일제시대까지 수 건 발생해버렸던 것입니다. 단지 도시전설에 지나지 않았던 이야기가 너무나 힘을 얻은 나머지 현실로 튀어나와버리는 것입니다.
다미 선교회에서는 꿈속에서 신의 말을 듣고 종말의 광경을 보는 것을 "직통계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미선교회에서 이런 꿈을 꾸는 어린이, 청소년들을 "어린 종' 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어린 종들 중에서 명망높았던 소년선지자 고교생 하모군, 소녀선지자 고교생 권모양등이 자신이 이장림 보다 더 높다는 생각에 스스로 독립해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직접 신봉자들을 이끄는 다른 종말론 조직을 설립해 버립니다. 1990년대 초에 이런 자들의 조직도 우후죽순 상당히 크게 세력을 넓히게 됩니다. 특히 이중에서 하모군의 경우에는 사람을 보면, 휴거되고 천국갈 사람인지 보인다고 하면서, 천국을 가는 증표를 부적처럼 그려주어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 부적은 알파벳과 아라비아 숫자가 조합된 모양이었다고 합니다.
(휩쓸리는 재앙)
기존 기독교 신자들과 기독교단은 이들의 맹활약 탓에 기독교 전체가 광신집단으로 비치는 것을 경계하게 됩니다. 그럴만한것이, 대부분 기독교 계열 종파의 성경해석에서도 언젠가 세상에 "심판의 날"이 온다는 것은 상당부분 받아들여지는 내용입니다. 종파나 신학자에 따라서는 다미선교회 부류가 주장하는 휴거에서 지구종말까지의 모든 내용을 거의 동일하게 믿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1992년 10월 28일이 그 날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차이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이렇게 배경이 비슷한 점은 기존 기독교 신자들이 다미선교회 일파의 휴거 소동에 빠져들게 되는 단초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1990년 무렵에 다미선교회와 그 아류작등 소위 "휴거 일파"들을 사이비, 이단, 사기꾼, 변태 등등으로 최대한 몰아 붙였습니다. 특히 이들은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종말의 날은 아무도 모르고 신만 아신다"라는 말을 강조하여, 휴거의 날과 종말의 순간을 지목하는 이들을 배격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뿌리같은 속성 때문에 잊혀질만하면 다시 강해지면서 계속 휴거 신봉자들은 세력을 키워 왔습니다. 그리하여, 1991년이 되자, 전국 도시의 지하철역과 기차역 등지에서 휴거 관련 유인물 배포가 활발히 이루어졌고, 이들이 이동하는 차량에 "예수 공중 강림 임박" 등의 문구를 써넣고 다니며 홍보를 하기도 했습니다. 스피커를 단 차량으로 도로를 지나가며 홍보 방송을 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습니다. 또, 조를 짜서 버스터미널 등을 돌아다니며, 구역을 나누어 홍보활동을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한 시대의 상징)
휴거와 종말론은 그 내용이 신봉자들은 1992년 10월 28일에는 순간이동으로 지상에서 떠난 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1992년 10월 28일 이후를 대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학업, 가정, 직장등의 일상 생활을 포기하고 완전히 종교활동에만 귀의하는 열성 신도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게 중에는 돈도 필요 없으니 재산을 모두 종교 활동에 투자하거나 헌납하는 일도 자연스러운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홍보활동은 매우 활발했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휴거 관련 홍보물을 접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 되었으며, 그 선정적이고도 괴기스러운 내용은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알려졌습니다. 판본별로 차이는 무척 많지만, 당시 떠돌았던 예언의 대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992년 10월 28일 자정, 예수가 공중에 나타난다.
- 1992년 10월 28일 자정, 휴거가 일어나, 전세계에서 믿음이 깊은 신도들만 천국으로 순간이동 한다. 그 숫자는 국내에서는 11만 6천명 - 대체로 10만명 내외 - 이다.
- 1992년 10월 28일의 대규모 순간이동으로, 사상초유의 행방불명, 실종사태가 보고되고 사회는 혼란해 진다. 비행기 조종사가 갑자기 순간이동하거나, 버스 기사가 갑자기 순간이동하는 바람에 교통사고등의 큰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 이후 부터 7년 동안, 전세계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고, 지진, 해일, 화산, 소행성충돌 등이 빈번하여 자연 재해로 세상이 뒤흔들린다.
- 적그리스도로 볼 수 있는 한 독재자가 출연하여 유럽 연합의 총두목이 된다. 이 독재자는 많은 사람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지만, 반대파에게는 무자비하여 집권과정에서 잔혹하게 사람들이 죽는다.
- 유럽 제국의 지배자인 독재자는 전세계를 손아귀에 넣는다. 이 과정에서 세계제3차대전이 발발하여, 매우 많은 사람들이 대량살상무기로 고통스럽게 죽는다.
- 독재자는 집권후,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돈을 사용하지 않고 모든 거래는 전산화하도록 지시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ID를 바코드로 발급받으며, 편의를 위해 이 바코드를 이마나 손등에 레이저로 문신으로 새긴다. 이것을 666표라고 한다.
- 전 세계인의 모든 일거수 일투족은 이 666표를 통해 유럽 제국 본부에 있는 슈퍼 컴퓨터에 기록되어 관리된다. 따라서 독재자는 이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릴 수 있다.
- 666표에 반대하는 사람은, 666표를 받을 때까지 잔혹하게 고문하고, 학살한다.
- 기독교에 대한 가혹한 종교 탄압이 이루어진다.
- 666표를 받은 사람들은 영원히 악마의 노예가 되며, 666표를 받지 않고 죽은사람들은 살아서 고통은 받았을지언정, 천국에 갈 수 있는 조건 하나는 갖추게 된다.
- 여러 난리 때문에, 1992년에서 1999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인류의 9할, 50억명 이상이 죽는다.
- 1999년이 되면, 예수가 지상에 나타난다. 예수의 지상재림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저마다 설이 다르나, 대체로 지금까지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보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흥미진진한 내용이 널리 선전되다 보니, 전국 각처에 휴거와 관련된 홍보물, 낙서는 무척 이목을 끌었습니다. 재앙의 참혹한 광경 묘사나, 독재정부가 사람들에게 가하는 잔혹한 탄압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라서 괴기스러운 읽을 거리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특히, 괴기물이나 공포물을 별로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 단순히 건전하고 평화스러운 종교 홍보물이라고 생각해서 이런 홍보내용을 접할 때는 꽤 강렬한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휴거 소동에 관한 예언과 홍보물은 두어번쯤 읽히며 인상을 남기기에 좋았습니다.
나중에는 휴거 신봉자가 아닌 사람들도, 재미로 휴거 관련 낙서를 하거나,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장난 삼아 "적그리스도"나 "666"같은 것을 벽면에 스프레이로 그리는 등, 유행의 열기는 한층 더해졌습니다. 특히나,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성경과 기독교는 보통 주술성과 괴력난신의 상징인 무속, 민간신앙의 대척점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다보니, 반대급부로, 지탄받아왔던 점쟁이와 무당의 예언과 전혀 다른 배경의 성경과 기독교에 근거한 이러한 예언과 계시가 뭔가 더 거창하고 진지한 느낌을 풍겼다는 효과도 상당했습니다.
(A Thief in the Night 시리즈의 혹독한 탄압 장면)
홍보 영화 중에는 훗날에 유행하는 "The Left Behind" 는 당시의 소동과는 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 소설판은 영향관계가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보다 퍼진 것은 "A Thief in the Night"라는 영화 시리즈인데, 이것은 1972년에 첫편이 나와서, 1977년, 1980년, 1983년에 각각 4편까지 속편이 나온 휴거 및 종말론 종교영화입니다. 이것은 중저예산 영화입니다만, 자막판이 비디오 테입으로 국내에도 소개되어, 휴거 소동 당시에 홍보용으로 일부에서 상영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내용은 패티라는 여자가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많은 사람들이 순간이동 당해 없어진 상태이고, 세계는 유나이트(UNITE)라는 조직에 의해 고통스러운 곳이 된다는 것입니다.
한편 이러한 유행의 결과로, 1991년 여름이 되면서, 휴거 소동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거나 가출한 청소년들이 잇다르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이들의 부모들은 공포심과 함께 격한 반감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어느 부모가 그 자식으로부터 휴거 종교조직을 떼어 놓기 위해, 자식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종교조직의 다른 신봉자가 학생을 도와 정신병원에서 학생을 탈출시켜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은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이 사건 때문에, 경찰이 납치나 미성년자 유인 혐의으로 나서서 수사할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휴거를 주목하게 되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991년 가을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한국 정부가 다미선교회와 그 아류작들을 조사하고 감시하기에 이릅니다.
(A Thief in the Night 시리즈의 666표를 받은 사람 모습)
곧 조사결과들이 보도 됩니다. 남자 택시기사가 택시에 휴거 선전물을 부착하고 다니는 경우, 신봉자인 철도 기관사 남자가 통근 열차에서 휴거에 대한 설교 카세트 테입을 틀어 방송한 경우, 32세의 중학교 여자 교사가 학생들을 상대로 휴거와 종말에 대한 설득에 나선 경우, 28세의 국민학교 여자 교사가 휴거에 심취해 학교를 그만둔 경우. 해군 상사가 부대내에서 장병들에게 유인물을 배포한 경우, 육군부대의 군목 중령이 종교활동 시간에 휴거와 종말론을 설교한 경우, 육군부대의 군목 대위가 휴거와 종말론을 장병들에게 퍼뜨린 경우 등등, 공공 영역을 침해하는 사례들이 속속 발견되었습니다. 자연히, 검찰, 경찰의 수사 강도는 더 강해졌습니다.
한국의 휴거 소동은 1991년 11월 서울 올림픽 역도 경기장에서 다미선교회와 그와 비슷한 믿음을 가진 다른 단체들이 회합하면서 본격적으로 절정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후로 드디어 문제의 1992년에 들어서면서부터, 가출, 전재산 헌납, 사직, 학업 중퇴 등등의 일이 좀 더 자주 나타나게 됩니다.
당시의 유인물 제목들을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급한 소식!예수공중재림과 휴거를 준비하라!
- 1992년10월28일 지상최대의 인간증발사건발생
- 휴거 1992. 10. 28
- 10월28일 휴거에 대한 질문과 그 대답들
- 7년 대환란 적그리스도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휴거, 진짜? 가짜?)
1992년, 여름에는 전라남도 나주, 전라북도 완주 등의 시골 산에서 집단 출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발견되어 보도 되게 됩니다. 이들은 100명 안쪽의 1992년 10월 28일 휴거 신봉자들로, 목사의 지도아래, 외부 세계와 인연을 끊고 산에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천막이나 비닐하우스 형식으로 지어진 가건물에서 살면서 하루종일 기도만 하면서 지내는데, 신문, 방송 등 일체의 외부 접촉없이 다만 기도하고 찬송가를 부르기만 합니다. 다른 활동은 하지 않고 오직 1992년 10월 28일의 휴거만을 대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 중에는 주로 가족 몇명, 혹은 일가족이 통째로 출가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의 비중도 꽤 되었고, 남녀 비율도 고른 편이었습니다. 이들의 비닐하우스 가건물에는 휴거를 대비하라는 안내물과 선전물이 여기저기에 붙어 있고, 내부에는 휴거 관련 책자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 중에는, 길게는 1년 이상 출가생활을 하는 무리들도 있었는데, 시내에 있던 종교단체를 매각하고 남은 돈과 속세의 재산을 조금씩 깎아 먹으면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특히 전라북도 완주의 시골 산 모임에 경우에는 모든 재산을 처분한 사람들이 비닐하우스, 폐차 등에서 걸인처럼 숙식하며 살고 있어서, 그야말로 종말론 분위기가 물씬 풍겼습니다.
(휴거 되면서 여기로 갈테니)
1992년 10월 28일 휴거론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다미선교회 본부는 서울 마포구에 있었습니다. 5층 건물에서 3층, 4층, 5층을 전세낸 곳이었는데, 1백 98평 전세 2억원 규모의 소박한 곳이었습니다. 전세계약을 1992년 10월 28일까지만 했다는 소문도 돌았으며, 뒤쪽 벽에 커다란 글씨로 "휴거 카운트다운 몇십몇 일" 같은 말을 써놓았고, 오른쪽 벽면에는 가로 5미터 크기로 사람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대형 휴거 상상도를 그려 놓았습니다. 시간이 지나갈 수록 다미선교회 부류 특유의 심야 기도 모임은 열정적이고 강렬해져서, 소리를 내어 부르짖고 흐느끼며 기도하고, 크게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따라서 야밤에 동네 가까운 곳에 다미선교회 일파 들의 집결소가 있다는 것을 소란한 소음 때문에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1992년 10월 28일이 다가와서 신봉자들이 더욱 늘어나고, 유인물과 토론이 많아지면서, 휴거의 모습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묘사가 나오게 됩니다. 우선 휴거의 형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서로 다른 묘사들이 생깁니다.
- 소지품과 함께 순간이동하면서 갑자기 없어진다.
- 작은 소지품들과 함께 순간이동하면서 갑자기 없어진다. 예를 들면, 가방을 들고 왔다고 해서, 가방까지 순간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반지, 틀니, 안경 정도만 함께 없어진다.
- 몸만 순간이동하면서 갑자기 없어진다. 따라서 휴거가 끝나고나면, 사람이 없는 빈 옷가지만 남아서 뒹굴게 된다. 따라서 틀니, 금니, 다친곳에 수술해 끼워넣은 보형물등등은 남게 된다.
- 소지품과 함께 순간이동하면서 갑자기 없어지되, 신발은 남겨두고 없어진다.
- 공중부양으로 점점 떠오르게 되며 하늘 높이 멀리 날아간다. 따라서 창문을 통해 하늘로 날아가게 되거나, 야외에서 떠오르게 된다.
- 공중부양으로 점점 떠오르게 되며 하늘 높이 멀리 날아간다. 이때, 지붕, 벽 등은 마법적으로 투과하여 부딛히지 않고 높이 떠오를 수 있다.
- 공중부양으로 점점 떠오르게 되며 하늘 높이 멀리 날아간다. 다만 신발은 남기고 날아간다.
조직에 따라서는, 이때, 휴거가 "나팔소리"와 함께 일어난다는 묘사를 추가하기도 했고, SF물의 영향으로 휴거의 순간이동은 "빛보다 빠른 속도"라는 것을 강조하는 조직도 있었습니다.
또, 휴거 때 예수가 공중재림 한다는데 대해서도 여러가지 다른 묘사들이 생깁니다. 이것은 처음에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에 생긴것입니다.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한 지역에서 무엇인가가 왠만큼 높이 떠 있어도, 다른 지역에서는 지평선, 수평선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는, 예수가 같은 자정 시각에 뉴질랜드 쯤에서 아무리 높이 하늘에 떠 있는다해도, 한국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때문에 여러가지 다른 의견이 나오게 됩니다.
- 예수는 엄청나게 거대한 모습으로 신비스럽게 온 하늘을 뒤덮으며 기상현상처럼 나타난다.
- 예수는 엄청나게 거대한 모습으로 신비스럽게 온 하늘을 뒤덮으며 기상현상처럼 나타나는데, 구름에 대부분 가려 있고 언뜻언뜻 구름이 없는 사이로만 보인다.
- 예수는 지구의 대기권 어딘가 높은 곳에 떠 있다. 따라서 못보는 사람도 많이 생기지만, 운이 좋은 사람은 조그마한 형체를 볼 수도 있다.
- 예수는 지구의 대기권 어딘가 높은 곳에 떠 있고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다만, 헬리콥터를 타고 접근하거나, 휴거를 해서 공중부양을 해서 올라가서 예수 곁으로 가면 볼 수 있다.
- 예수는 사람들이 볼 수 있을만한 높이의 하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명이 세상에 각지에 나타난다.
- 예수는 사람들 바로 눈앞에 1, 2 미터 정도 허공에 떠 있는 무습으로 여러 명이 세상에 각지에 나타난다.
- 예수를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예수가 공중에 있다는 그 영상을 모두가 마음으로 강하게 느끼게 된다.
또한, 예수의 공중재림과 휴거에 대해서는 "그렘린2"에 나오는 유명한 시차문제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즉 한국에서 휴거와 공중재림의 시점은 한국표준시이자 도쿄 표준시로, 1992년 10월 28일 자정입니다. 그런데, 이 시각은 미국에서는 낮이고, 중국에서는 아직 자정이 되기 전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시각을 중심으로 휴거가 일어나는 것인지 불분명해집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다른 묘사들이 나타납니다. 다만, 이 휴거의 시간문제는 그다지 인상적인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위의 예수가 나타나는 형태나 휴거의 형태에 비해 활발히 묘사되지는 않고, 다만 잠깐씩 논의가 될 뿐이었습니다.
- 휴거의 순간은 한국표준시로 1992년 10월 28일 24시이다.
- 휴거의 순간은 1992년 10월 28일 밤, 대한민국 서울이 태양과 완전히 반대에 위치하는 시각으로, 서울의 표준시는 도쿄의 표준시에 맞춘 것이므로, 실제 자정과는 30분정도 차이가 나는 시각이다.
- 휴거의 순간은 각국이 정해 놓은 표준시로 1992년 10월 28일 24시가 되는 순간이다. 따라서, 통가왕국, 호주, 뉴기니 등에서 가장 먼저 휴거가 일어나고, 뒤이어 일본과 한국은 동시에 휴거가 일어나며, 미국은 동부표준시를 따르는 지역에서 동부표준시 자정에 휴거가 일어나고, 이후 서부표준시를 따르는 지역은 서부표준시 자정에 휴거가 일어난다. 이런 식으로 총 24시간에 걸쳐 휴거가 일어난다.
- 휴거의 순간은 1992년 10월 28일 각 지역이 태양과 반대편에 놓이는 순간이다. 따라서, 시간의 차이가 적을 지언정, 동에서 서의 순서대로 휴거가 일어난다. 여기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독도 지역에서 가장 먼저 휴거가 일어나고, 연평도 지역에서 마지막으로 휴거가 일어나며, 전세계적으로 총 24시간에 걸쳐 휴거가 일어나게 된다.
- 휴거의 순간은 대략 한국 표준시로 1992년 10월 28일 24시 전후로, 이날 밤 동안, 예수가 하늘을 날아다니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휴거 시킨다. 예수는 허공을 떠다니거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차를 타고 다니거나, 구름과 함께 날아다닌다. 그러므로 예수는 약 24시간동안 대략 동에서 서로 이동하게 된다.
의외로 예루살렘이나 베들레헴 표준 시각으로 1992년 10월 28일 24시라는 의견은 거의 없었습니다. 또 휴거의 날짜가 27일이냐, 28일이냐, 10일이냐, 9월 28일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교파가 나뉠정도로 심각한 대립을 했던데에 비해서, 24시간 이내의 시간차이에 대해서는 큰 관심없이 대강 넘어가고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신봉자들이 1992년 10월 28일 휴거를 심정적으로 감동하여 받아들인 것이지, 정확한 예언이나 구체적인 이론에 대해서 정리하려는 노력은 게을리 했다는 근거가 됩니다. 즉 1992년 10월 28일 휴거 소동은 종말의 고통을 피하고, 신비로운 기적을 체험한다는 기괴함을 좇았으며 공포심과 군중심리에 휩쓸린 것이 중심이지, 사실 정말로 심각하게 삶과 지구의 운명에 대해 고민한 사람은 소수 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휴거는 미국에서는 낮에 일어날 수도 있다)
또한가지 휴거 소동이 구체화 되는 과정에서 짚고 넘어갈 점은, 휴거 소동이 기존 기독교의 종말론을 받아 들인 바탕이 강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적인 숙명론에 따라, 신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휴거 되지 못한다고 해도, 꿋꿋이 살아야 한다는 점이 초기부터 강조되었습니다. 특히, 휴거 이후 지구종말 수순에 따른 대규모 재앙과 잔혹한 고문, 학살 과정을 버티다가 죽으면, 순교자가 되어 비록 육신은 고통을 받을 지언정, 천국에서 휴거된 사람들과 함께 다시 만나 극락왕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 대체로 득세 했습니다.
이러한 시각은 휴거 소동이 한두사람의 지도자에 의해 의존적으로 주도되었다기보다는, 기독교 문화의 바탕위에서 한국 사회 각지의 온갖 계층에서 폭넓게 나타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기독교적인 사상이었습니다. 즉, 상당히 자생적인 성격으로 휴거 소동이 퍼져나갔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기존 기독교의 합리적인 부분이 계승된 면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휴거 소동 이후에도 휴거가 없었다고 해서 심하게 충격을 받는다든가, 절망해서 폭주하며 자결한다든가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1992년의 휴거 소동 이후에도, 이 수법을 거의 흡사하게 활용하여 또다른 기괴한 종교조직을 만드는 사람들이 소수나마 생겨났다는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화산 폭발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사태가 이처럼 크게 확대되고 상황이 공포, 공황 분위기를 이끄는 쪽으로 나아가게 되자, 휴거라는 말의 창시자인 이장림 본인도 상당히 당황하게 됩니다. 이장림이 "어린종", "소년선지자"로 불렀던, 꿈속에서 소위 "직통계시"를 받았다던 어린이들이 자신이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활동을 하게 되고, 이장림의 생각에는 이들의 활동이 성경해석과 너무 큰 차이가 나는 이상한 짓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꿈속에서 받았던 계시라는 것들이 하나 둘 어긋나는 것을 보게 되자, 이장림은 스스로의 생각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애초에, 이장림은 휴거를 열성적으로 대비한다고 해서 휴거 되지 않을 사람이 휴거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던듯 보입니다. 때문에, 휴거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그냥 평화롭게 세상을 살던대로 살면서, 1992년 10월 28일 휴거라는 때에도 사람들이 사라지는 기적을 주변에서 몇 건 구경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휴거 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재산을 헌납하고 도를 닦듯이 기도 생활에 들어가고 일상생활을 접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었습니다. 꿈 속에서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사람이 개꿈 돼지꿈 꾼 사람들만큼 난무하게 되면서, 이장림은 뭔가 잘못돌아가고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장림 뿐만아니라, 그에게서 갈라져 나간 계파인 허모군 등의 조직까지도 일각에서 비슷한 회의감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들은 1992년 5월에 북한과 관련된 중대한 변화, 사건이 일어난다는 꿈 속에서 들은 예언을 믿고 있었는데 이것이 아무 사건 없이 허무맹랑하게 지나가는 것을 목도하게 됩니다. 훗날의 보도를 보면 이것이 전환점이었다고 합니다. 이후로, 상당수의 조직 창시자들은 정식 기독교의 원래 이론대로, 휴거나 심판의 날은 함부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러므로 1992년 10월 28일이 휴거의 날이 아닐수도 있다는 쪽으로 생각을 어느 정도 바꾸게 됩니다. 당연히 꿈 속에서 들은 신의 목소리, 예언 등 역시, 상당부분 그냥 개꿈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광경)
그러나, 예전부터 휴거 소동은 이장림이나 몇몇 우두머리들의 손을 떠나 있었습니다. 이들 중 몇몇은 극단적인 입장을 철회하려고 했습니다. 1992년 10월 28일에 휴거가 안되는 사람이 많을 수도 있고, 돈 바치며 난리친다고 휴거 안 될 사람이 휴거 되는 것도 아니고, 나아가 1992년 10월 28일이 휴거의 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하려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회의에 대해서, 대부분의 측근들이 만류했다고 합니다. 기왕 여기까지 온 이상 끝까지 밀고나가자는 주장에 결국 이들은 스스로도 굴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문제의 10월 28일을 목전에둔, 1992년 9월 11일. 부산에 거주하는 32세 여자가 경상남도 마산의 고압선 철탑에 나일론 끈으로 목을 매 죽은 시체로 발견됩니다. 자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의 유서가 발견되었는데, 그 내용인즉, "10월 28일 휴거를 앞두고 세상이 싫다"라는 글을 남겼고, 남편에게는 "666 바코드가 시행되면, 다른 가족들이 신의 뜻에 따를 수 있도록 해달라" 라는 당부를 남겼습니다. 이는 휴거 소동과 관련된 최초의 자살사건이었기 때문에, 경찰당국이 전격 개입하는 상징적인 빌미가 되었습니다.
(악마 마물 대잔치)
결국 1992년 9월 24일, 경찰은 다미선교회의 우두머리이자, 이 모든 소동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이장림을 체포하게 됩니다. 경찰은 애초에 사기 혐의로 이장림을 가두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기가 입증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체포 과정에서 이장림이 보유하고 있는 수만달러어치의 미국돈이 발견되면서, 일단 외환관리 관계 법령 위반으로 감옥에 가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체포하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이장림이 수십억원치의 재산을 다미선교회 운영과정에서 쌓아두었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알렸고, 그 재산 중에 휴거 이후 1993년이 되어서야 현금화 할 수 있는 채권이 있다는 점을 널리 홍보했습니다. 휴거 소동의 근원지였던 이장림을 돈을 울궈먹기 위해 신봉자들을 속인 사기꾼으로 보이게 하려고 했습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이장림은 스스로도 1992년 10월 28일에 휴거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과, 최근 회의감을 느껴왔다는 사실을 토로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장림은 1992년 10월 28일에 임박해서는 신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발표했는데, 휴거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실망해서 난동을 부리지 말고 차분히 생활에 정진하는 삶을 살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경찰 활동 이후의 이러한 움직임은 휴거 소동이 겉잡을 수 없는 공황상태로 확대되는 것을 막았고, 나아가, 휴거 소동 이후에도 신봉자들이 난동을 부리지 않게 하는데도 일조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장림의 이러한 행동은 소동을 막을 수 있는 결정적인 수준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1992년 10월에 들어서면서, 상당수 신봉자들이 편지를 남겼습니다. 내용은 대체로 1992년 10월 28일 후에, 자신이 순간이동해서 사라지고 나면, 재산을 어떻게 처분해야 하는지 정해두고, 남은 사람들에게 666 바코드를 받지 말고 항거하라고 당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러한 편지가 발견되면서, 경찰은 이것이 "세상을 하직하려는 사람들이 남기는 편지" 이므로, 일종의 유서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근거로,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움직이는 수순과 같이, 모든 신봉자와 관련 종교단체에 대해서 1992년 10월 28일 휴거 소동에 경찰이 대거 개입하기로 결심합니다.
(마지막 대결)
시시각각, 문제의 1992년 10월 28일이 다가오는 가운데, 부산 경찰은 홍보전단을 뿌리는 종교 선전 행위만한다하더라도, 그 내용이 휴거 소동에 관한 것이면, 공포심과 불쾌감을 조장하는 풍기문란 행위로 보고 경범죄로 입건하는 강경책을 쓰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역시나 최후의 기승이 있는지라, 신비롭고 무서운 사건들에 대한 유인물과 유언비어는 마지막으로 난무했습니다. 중고등학생들이 휴거를 믿어 어차피 지상을 떠나니 부질없다고 생각해서 중간고사에 백지를 낸 경우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돌았고,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재고관리나 고객관리를 위해 사용하는 바코드를 괜히 꺼림칙하게 여기는 일도 생겼습니다. 그러다보니, 기독교의 심판의 날을 믿는 사람들은 직접 휴거 소동에 가담하지 않더라도, "혹시 그 성경책에 나오는 일이 1992년 10월 28일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혹시나 하는 관심을 갖는 사람은 굉장히 광범위하게 많아졌습니다.
이 무렵,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주영 사퇴설이 잠시 나돈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정주영 후보측은 "정주영이 사퇴할 가능성은 휴거가 일어날 가능성과 같다"라는 흥미진진한 답을 내어 놓기도 했습니다. 워낙에 요란하게 유인물 살포가 심했던 터라, 민심마저 꽤 흉흉해져가는 듯한 묘한 분위기가 살짝 감도는 가운데, 1992년 10월 28일이 마침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휴거를 맛볼 수 있을 것인가)
3. 1992년 10월 28일
1992년 10월 27일은 양자역학의 이해하기 어려운 면을 신비주의로 포장하는데 가장 자주 들먹이게 되는 인물인, 미국의 데이비드 봄이 사망한 날이었습니다. 한편으로, 한국에서는 휴거 소동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습니다.
충청북도 제천의 한 종교 집단에서는 출입구에 "우리 먼저 갑니다. 장렬히 순교하세요. 천국에서 만납시다" 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고, 집단으로 출가 생활을 하고 있던 전라남도 완주의 산골에서는 신봉자들이 간편한 옷차림외에 모든 소지품을 불태우며 지상 생활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로 결심하는 행사를 치렀습니다. 다미선교회 본부는 휴거 순간에 흥분한 신자들의 난동으로 불상사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거울 등의 깨지기 쉬운 물건을 치우고, 의자와 책상을 치우는가하면, 소화기를 배치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다미선교회 본부는 26일, 신봉자 1천5백명에게 10월 28일 당일, 경찰과 구경꾼들의 혼란을 통제하기 위해 출입증을 발급했습니다. 그래서 신봉자들은 삼삼오오 이 출입증을 목에 걸고 다미선교회 본부에 나타났는데, 기자나 구경꾼들은 이 출입증을 일컬어 천국행 티켓이라고 불렀습니다.
(죽음의 등장)
1992년 10월 27일 24시. 대부분의 유인물에 "10월 28일 자정"이라고 되어 있기에, 이것을 1992년 10월 28일 0시라고 착각한 구경꾼들이 다미선교회 본부에 몰려들었습니다. 이 때 무려 1백여명의 사람들이 몰렸고, 이 중 상당수는 신봉자로 세상사를 등진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러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중에 가장 이목을 끌었던 사람은 서울 마포구의 39세 허모씨였습니다. 이 사람은 25년 지기인 자기 친구가 친구의 아내와 함께 휴거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 친구가 10월 26일 저녁에 문득 자신을 찾아와, 집문서와 7백만원이 든 통장을 자기에게 맡겼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여동생 결혼자금을 주라고 했다고 합니다. 허모씨는 휴거가 일어나지 않으면 친구에게 집문서와 7백만원이 든 통장을 돌려주려고 왔다고 했는데, 그 의리가 인구에 회자되었습니다.
다미선교회측은 이러한 구경꾼, 반대자 들의 소동을 우려하여, 자진해서 경찰에 병력배치를 요청했고, 실제로 당일에는 경찰 4개 중대, 구급차 3대, 소방차 3대, 조명차 2대가 배치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1992년 10월 28일 각종 종교단체에 배치된 경찰병력은 전국적으로 1만 5천명에 이르렀고, 당일에 한해 철야 비상경계에 돌입했습니다. 또 상당수 단체들은 휴거가 되고나면, 자신의 재산은 모두 교회에 주어서 휴거 이후의 재앙을 헤쳐나가며 버틸 자금으로 쓴다는 계약을 맺기도 했고, 단체에 따라서는, 재산과 남은 가족 관리를 주변 사람들에게 당부하라고 지시하여, 형이나 동생, 친한 친구들에게 가족과 재산을 당부하는 휴거를 기대하는 신봉자들도 많았습니다.
(몰려든 악마 천사)
1992년 10월 28일 당일. 다미선교회는 출입구에 꽃으로 된 3미터 크기의 커다란 아치를 만들어 장식하고, 주차장에 구경꾼들과 사람이 너무 많아 건물안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중계용 대형 텔레비전을 설치하였습니다. 밤이 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1992년 10월 28일 휴거에 대한 신봉자들이 종교 단체에 모여 들었고, 특히, 경기도 의정부, 전라북도 완주 등지의 종교단체에는 모든 신봉자들이 모두 경건해 보이는 하얀색 옷을 입고 모였습니다. 다미선교회 본부에도 "천국행 티켓"이라는 별명의 출입증을 저마다 목에 걸고 신봉자들이 집결했습니다.
밤이 깊어지면서, 이들은 스스로 "지상에서의 마지막 예배" 라고 주장하는 휴거를 기다리는 종교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구경꾼과 경찰은 물론이요, 국내 TV방송사, 나아가 CNN과 아사히TV등의 외국TV 방송사들까지 모여들어, 굉장한 관심꺼리가 되었습니다. 당시 경찰은 전국적으로 1백 55개 교회 8천 2백명의 신봉자들을 파악한 규모로 사건을 집계했습니다.
이날 가장 먼저 기이한 소식을 전한 곳은 경기도 수원의 한 조직이었습니다. 이곳에는 약 2백명 가량의 신봉자들이 모여서 행사를 치르고 있었는데, 8시에 한 사람이 "평택에서 예수님이 공중재림했다는 전화를 받았다"는 말을 했습니다. 9시경, 목사는 신도들에게, "평택에서 예수가 꽃으로 장식된 마차를 타고 공중에서 재림했으며, 공중들림이 일어났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이에 신봉자들은 열광하여 환호했고,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었습니다. 신봉자들은 서로 감격에 차 악수하면서,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자"라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내, "하나님 아버지 어서 오세요"라고 부르짖으며 온몸을 흔들며 격렬히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후에, 경찰에서 조사에 본 결과, 이날 같은 평택에는 아무 일도 없었고, 행사 시작시간이 늦어져서 신봉자 세 사람이 모여 있었을 뿐, 예배가 시작조차되지 않은 헛소동이었다고 합니다.
(재림 예수)
서울 마포구의 다미선교회 본부에서는 9시 부터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장림이 구속된 상태였으므로, 미국 담당인 장만호 목사가 행사를 이끌었고, 운집한 신봉자들은 미국, 일본, 캐나다에서 온 사람들 5백명을 포함해 1천 5백여명정도였다고 합니다. 건물을 20, 30대 청년 신봉자 50여명이 둘러치고 경비하여, 7백명 이상의 구경꾼과 취재진들을 막아선 상태로 행사는 시작되었습니다. 청년신도들은 출입증을 일일히 확인하여 신봉자들만 건물로 올라올 수 있게 하였습니다.
예배가 막 시작되던 무렵, 건물 불빛 속에서 나방 한마리가 날아올랐습니다. 그러자, 한 신봉자가 "나방이 휴거되고 있다" 고 외쳤고, 주위의 신봉자들은 감격하여 나방을 보며 "할렐루야"를 외쳤다고 합니다. 곧이어 10시 5분쯤 예배 광경을 야외 TV로 지켜보던 구경꾼들 중에서 고교 2년생 이모군이 소리지르며 나와서 "형이 휴거에 미쳐있다. 말도 안되는 소리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며 울분을 토로했습니다. 그리고 난동을 부리며 야외 TV를 공격, TV를 떨어뜨려 부수어 버렸습니다. 이모군은 곧 경찰에 연행되었고, TV가 부서져 TV중계가 불가능해진 다미선교회측은 야외 스피커로 "지상에서의 마지막 예배"를 중계하였습니다. 잠시후, CCTV화면에 붉은 조명등이 한 번 잡혔는데, 이것을 누가 보고 "성경에서 말하는 불기둥이다!" 라고 소리쳐서, 사방에서 함성이 일고 술렁이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당시 1992년 10월 28일 휴거 신봉자들의 기도광경)
신봉자들은 바닥에 엎드려서 눈물을 흘리며 열심히 기도했고, 출가하여 속세를 떠나 살면서 휴거를 기다리고 흰옷을 입고 모였던 사람들도 일어나서 노래와 기도문구를 부르짖으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본론과는 별 관계없는 이야기입니다만, 서울 마포구 다미선교회 본부에서는, 11시 20분 경이 되자, 애인을 돌려달라고 주장하는 정모씨가 주변에서 관심을 가져 주지 않자, 옷을 벗고 나체로 시위하면서 인근 도로 30미터를 행진하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사건은 아닙니다만, 해괴한 모습을 더하며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드는데는 일조했을 것입니다.
마침내 자정을 10분 앞둔 11시 50분. 다미선교회 본부의 신봉자들은 모두 일어나 울부짖고 온몸을 흔들며 가장 열정적인 기도에 돌입했습니다. 한편, 부산의 한 조직에서는 "신봉자들의 3분의 1이상이 휴거 직전에 들리는 신비로운 '나팔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을 들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92년 10월 28일 자정이 찾아왔습니다.
(휴거다!)
대한민국의 전지역에는 이 때,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한국표준시로 자정이 지나자, 언론의 보도에서 흔히 쓰는 표현대로, 신봉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곧 이어, 신봉자들은 하나둘 주저 앉아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몇몇 신도들은 "믿음이 부족한 저희들을 용서하소서"라고 울부짖었습니다. 한 여학생은 끝없이 흐르는 눈물을 계속 닦으며 뚫어지도록 시계를 바라 보았는데, 자정을 한참 넘어선 시각을 가리키자,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는 묘사도 보도되었습니다.
혹시나 놀라운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여 TV를 보던 전국의 괴기물 애호가들 역시, "그러면 그렇지"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게중에는 한편으로는 너무 싱거워서 좀 아쉽다는 묘한 느낌을 받은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경찰은 이 때, 실망한 신봉자들이 집단자살하거나 난동을 부릴 것을 우려 가장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당혹)
신도들이 통곡하며 실망하는 가운데, 다미선교회 본부의 예배를 집전하던 장만호 목사는 "모두가 앉아서 주님을 찬양하자" "휴거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오늘 예배를 드릴 수 있었던 것도 다 주님의 은총이었다" 라며 사태를 수습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장만호 목사는 동요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각자 귀가하여 가정과 직장에 충실하면서 착하고 올바른 신자의 모습으로 살자고 설교했습니다.
이러한 비교적 차분하고 온건한 수습 태도 때문에 1992년 10월 28일은 큰 불상사 없이 마무리 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합니다만, 이것은 애초에 10월 28일 휴거 소동 자체가 기독교 종말론의 정통에 많은 부분 기대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화제가 될 수 있었고, 또 그랬기 때문에, 최악의 극단적인 사건으로 치닫지 않고, 이해될 수 있는 수준의 기독교 교리로 서둘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그토록 열성적이었던 수천명의 신봉자들은 대체로 자정이 지나, 한 두시간 안에 휴거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고 서둘러 귀가 했습니다. 물론, 일부지역에서는 "속았다!" 며 예수상을 넘어뜨리는 사람이 생기거나, 신봉자 가족들이 난입하여 목사를 집단난타하려 하는 사건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건 역시 대체로 서둘러 경찰에 의해 진정이 되었고, 또 종교 지도자들의 해산, 피신, 도주등이 신속해서 별다른 인명 피해는 없이 그저 한 것의 커다란 헛소동으로 이 사건은 마무리되게 되었습니다.
(남은 것은 영화뿐)
휴거 소동은 한국인들에게 극단적인 종교, 공포와 괴기를 중심으로하는 예언론, 종말론에 대한 넓은 거부감을 퍼뜨렸습니다. 이런 여러 사정들이 역효과를 빚어, 실제로 90년대에는 잠시 기독교 신자숫자의 증가가 주춤하기도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광적인 종교 활동에 대한 비판이나, 일부 기독교 계열 조직의 불합리한 행태들에 대한 지적도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종교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나 스스로를 대놓고 "반기독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데도, 이 휴거 소동은 간접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기독교 내부적으로, 기적, 초능력이나 그릇된 성경해석에 빠져서 이단으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하게 하는 효과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생명은 공진화하고, 방패가 좋아지면, 창도 좋아지는 지라, 휴거 소동은 종교 사기꾼들이나 사이비 종교 교주들에게도 좋은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종말론, 기적, 포교 방법에 대한 다양한 이론과 실무를 구경하고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특히, 요한계시록과 종말론 관련 이론, 연구, 유언비어가 순간적으로 난무하여 성경을 빌미로한 갖가지 종말론, 예언 사이비 종교들을 만들어내기에 좋은 자료가 풍부해지는 효과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10년이 흐른 뒤인 21세기 초에도, 1992년 소동과 거의 같은 방법으로 신봉자들을 모은 사이비 종교인들이 왕왕 발견되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은 더욱 진화하여, 아예 애초부터 지도자가 탐욕과 이익을 위해서 신봉자들을 속이거나, 보다 변태적인 방식으로 사기를 쳐 온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단 종교 전문가였던 탁명환이 괴한에게 살해당한 후, 여러가지 설들이 아직도 돌고 있는 것도 결국은 휴거 소동이 남긴 한 잔상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한국은 인구밀도를 보면, 방글라데시와 대만 이외에는 별로 상대가 될 나라가 없을 만큼, 좁게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황우석 교수 사건을 보면, 어처구니 없는 1992년 휴거 소동이 지난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군중심리와 선전선동에 대한 주의력은 시간에 비해서 조금밖에 나아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휴거 소동이 인명 피해는 거의 없었던 반면에, 황우석 사건이 비극적인 상황을 초래하는 경우는 더 많았던 점이 눈에 뜨이기도 해서, 여러모로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싶습니다.
* 당시 MBC 뉴스데스크 방송 링크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2/1749740_3832.html
* 종교에 대해서 제가 과문하고 대부분 당시에 대한 기억과 신문자료에 근거하여 쓴 것이라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오류가 발견되시면 언제든 덧글 주시면 즉각 반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