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9월의 이정희 | |
기본 정보 | |
---|---|
출생 | 1969년 12월 22일(1969-12-22) (43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학력 | 서울대학교 법학 학사 |
배우자 | 심재환 |
국회의원 정보 | |
의원 선수 | 초선 (18대) |
지역구 | 비례대표 |
이정희(李正姬, 1969년 12월 22일 ~ )는 대한민국의 변호사 출신 인권운동가, 정치인으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제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08년 민주노동당 원내 부대표가 되고 이후 민주노동당 당대표,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를 지냈다.[1]
1992년 미군 기지촌 윤금이 피살 사건을 접하면서 학생운동에 참여하였고, 여성운동에도 참여하여 주한 미군과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회활동을 벌여왔다. 1996년 사법시험에 합격, 2000년 사법연수원(제29기)을 수료하고 변호사로 개업했다. 이후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무차장과 여성복지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2007년 정계 입문,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민주노동당의 정책위원회 의장과 2008년 원내 부대표를 거쳐 2009년 민주노동당 대표를 역임하고 2011년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통합에 참여하여 통합진보당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였으나, 사퇴하였다.
목차[숨기기] |
이정희는 서울 관악구 출신으로 서울 서문여중을 거쳐 1984년 서문여고에 입학했다. 1987년 2월 서울 서문여고를 졸업하고, 그해 1987학년도 학력고사에서 340점 만점에 323점을 획득해 인문계 공동 14등 [2] (인문계 여자수석)을 차지했고,[3]을 받고 1987년 3월 서울대학교 법대에 전체 수석으로 진학했다. 학창 시절 우수한 성적이었고 1990년에는 서울대 총여학생회장으로 활약했으나, 대학 1학년 때는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기지 않아' 열등감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한다. 학생운동과 함께 공부를 병행하였으나 항상 상위권의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다. 그러나 시력이 악화되는 원인이 되었다. 1992년 2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 초 그는 경기도 동두천에서 한국인 성매매 여성과 미군 사이에서 태어난 6세 여자아이를 만난 뒤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4] 그해 10월 동두천에서 발생한 주한 미군에게 살해된 기지촌 여성 윤금이 피살 사건은 그가 인권변호사와 사회운동가로 나설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4]
윤금이 피살 사건을 접하면서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학생운동에 참여하였고, 특히 주한 미군과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회활동을 벌여왔다.[5] 이후 기지촌 여성 문제 외에도 여성 문제와 인권 운동에 나서게 되었다. 1996년 제 38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2000년 사법연수원(제29기)을 수료하고 2000년부터 법무법인 덕수에서 변호사 일을 시작했다.[5] 이후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고, 각종 사회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2000년부터 줄곧 한미관계와 미군범죄, 호주제 폐지 등 여성문제에 앞장서 왔다.[4] 2001년 효순미선 사건 직후 조직된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운영위원에 위촉되었고, 그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미군문제연구회 위원이 되었다. 2004년 교육인적자원부 대학교원임용 양성평등위원회 위원이 되었고, 시민단체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감사에 위촉됐다.
1999년 5월 여성단체들이 호주제폐지운동본부를 발족시키고 호주제 위헌 운동을 펼쳤으나 성과가 없었는데, 2003년부터 그가 호주제 위헌심판 청구 소송에 참여하여 2005년 11월 헌법재판소로부터 호주제 위헌 판결을 얻어냈다.
2007년 사진작가 이시우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변론 맡아 무죄로 이끌어내기도 했다.[6][7]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무차장과 여성복지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시민단체 활동과 인권운동 외에도 그는 이라크 파병 반대 운동, 호주제의 위헌 심판 운동에도 동참하였고 신념에 의한 병역 거부자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2003년, 참여정부에서 이라크 파병론을 제기하자, 민변과 참여연대에서 정부의 파병결정을 취소시키기 위한 헌법소원 및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낼 때 주도적 역할을 했다.[8] 호주제 위헌심판제청 사건과 오태양(병역거부자) 병역법 위반사건을 맡기도 했다.[9] 2005년 민변 여성복지위원회 위원장이 되고, 평화군사법연구회에 가입하여 회원이 되었다. 2006년 한국젠더법학연구회 회원이 되고, 그해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공동대표에 피선되었다. 또한 호주제 폐지, 매향리 미군 폭격장 주민 집단피해소송사건, 군산 성매매 업소 화재사건 등의 문제를 해결하였다.[4]
2007년 D법무법인 변호사 재직 중 제주도에 소재한 모 사업장의 노사분쟁 관련 회사 쪽 소송대리인을 맡아 사실상 노조의 패배를 이끌어 냈다. [10]
2007년 3월 2일에 민주노동당에 입당하였고, 다음해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3번으로 공천,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11] 그 후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 원내부대표 등을 지낸 바 있다. 2008년 대한민국의 촛불 시위가 한창이던 6월 25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장관고시 철회 및 재협상 요구를 외치며 시위하는 시민들이 공권력에 의해 강제 연행되는 것을 보고 이를 말리려고 뛰어들었다가 시민들과 함께 연행된 적이 있다. 연행될 당시 이정희 의원의 격렬한 항의를 담은 영상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유명해지기도 했다. [12] 2008년 법무법인 정평에 입사하였다.
2008년 초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에 선출되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으로도 선출되었으며,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에도 선출되어 활동했다. 2008년 민주노동당 원내 부대표가 되고 2009년 민주노동당 대표가 되었다.
2009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2011년 12월 23일, 아이튠즈 스토어 팟캐스트에 '이정희의 희소식'이라는 제목의 팟캐스트가 업로드 됐다. 민중의 소리가 제작하고, 이정희가 진행을 맡은 이 팟캐스트는, 26일, 30일에 차례로 2회, 3회가 업로드 되는데, 2012년 1월 첫 주, 대한민국 아이튠즈 팟캐스트 인기 순위에서 나는 꼼수다에 이어 전체 2위에 올랐다. 이정희는 이에 앞서, 2011년 10월 23일 업로드 된 나는 꼼수다 25회에 출연했었다. [13]
2011년 11월 16일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가 통합하여 통합진보당이 결성될 때 참여하였고, 2012년 4월의 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관악을 후보로 입후보하였다가 통합 진보당 개표부정 사건이 발생하자 참여당 계열의 조작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개표부정 사건의 파장이 계속되자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후보직에서 중도 사퇴하였다.
2012년 10월 제 18대 대통령 선거에 통합진보당 대선 후보로 입후보하였으며, 12월 4일 진행된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 1차 토론에서 "박근혜를 떨어트리기 위해 나왔다.", "다카키 마사오" 등의 발언을 하여 화제를 불러모으기도 했다.[14] 12월 16일, 정권교체를 목적으로 대선 후보에서 사퇴하였다.[15]
이후 통합진보당은 정치자금법에 후보사퇴시 선거보조금 반환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는 관계로 국고보조금 27억 원을 반환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혔으며[16], 금당사 주지승인 승려 성호는 국고보조금을 반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정희를 고발하였다.[17]
제18대 국회 (2008-2012) 4년 임기동안 총 404건의 의안을 발의하였다. 이중 1인발의한 의안은 총 0건이며 본회의에서 가결된 의안은 총 6건이다.[18]
제18대 국회에서 2010년 11월 24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대한민국의 대연평도를 향해 170여 발을 포격하여 대한민국 해병 2명 및 대한민국 국민인 민간인 2명이 사망한 연평도 포격을 규탄하기위한 북한의 무력도발행위 규탄 결의안(의안번호 1810030)가결을 기권하였다.[19]
또한 이정희는 택시요금에 붙은 부가세 10%중 9%를 택시 운전사들의 복지를 위해 그들에게 돌려주라는 법안을 발의, 통과시켰다. 그의 택시요금법안 개정안이 통과되자 이후 다른 국회의원들에 의해 버스, 택시 운전사들의 복리문제가 2008년말 잠시 국회에 논의되기도 했다.
제18대 국회에서 2010년 3월 2일에 탈북자들을 위한 지역적응센터, 상담사제도,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설립등을 위해 발의된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의안번호 1807771)을 찬성하였다.[20]
제18대 국회에서 복수국적법이 발의대자 그는 반대입장을 천명했다. 2009년 12월 29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혼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결혼이민자, 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거나, 우수 외국인재로서 특별귀화한 자, 국적회복허가를 받은 자로서 특별한 공로가 있거나, 우수 외국인재로 인정되는 자, 해외입양 되었다가 우리 국적을 회복한 자, 그리고 외국에 장기 거주하다가 국내에 영주 귀국하여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한 65세 이상의 자들을 대상으로 복수국적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기위해 발의한 국적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1807200)의 수정가결에 반대하였다.[21]
2009년 8월 12일, 이정희 의원은 국군 기무사 신 모대위가 민간인을 사찰한 증거로 수첩과 수첩에 쓰여있는 메모, 감시 동영상을 제시했다. 8월 5일, 쌍용자동차노조에 대한 경찰의 탄압에 항의하는 평택 집회 현장에 있던 그 날 신 모 대위가 가지고 있던 수첩에는 민주노동당 당직자, 금속노조 관계자, 인터넷 카페 동호인 등 10여명의 지난 1월 이후의 행적과 주소, 차량번호 등이 적혀있었는데, 심지어 민간인 들의 평소 생활 모습이 녹화된 영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기무사 측은 동영상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있는 장병 8명의 동향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메모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을 피하면서도 국가기밀 사항 유출에 대한 수사 문건이라고 주장하며, 합법적인 수사활동에 의해 수집된 자료라고 해명했다. [22]
17일, 민주노동당은 당원의 가족들을 불법사찰 한 사실도 폭로했다. 회수한 영상에는 민주노동당 당원 엄윤섭이 자신의 작업실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 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가 직장인 약국에서 일하는 모습까지 찍혀있었다. 엄윤섭은 18대 총선, 서울 관악구에 출마해 3.6%를 득표하고 낙선했던 적이 있다. [23]
다음달인 9월 1일, 민주당 원혜영 전 원내대표와 이정희 의원은 기자간담회에서 기무사가 재일본 민족학교에 책보내기 운동을 벌여온 민간 자선단체에 대해서까지 불법 사찰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24] 이어 동호회 관계자의 세부 인적사항이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오래전 부터 집요하고 광범위하게 사찰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10년 4월 22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민간사찰의 책임을 묻기 위해 기무사 장교에게 민주노동당 당원과 인터넷 카페 회원 15명을 대리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며, 1인당 2천 만원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25]
국민의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교육부총리), 참여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했던 이해찬 전 총리는 2009년 9월 3일, '시민주권모임'창립 취지를 밝히면서 이정희가 기무사 사찰 폭로를 비롯한 최근 보여준 행동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최근 대학교에서 한 강연료 일부를 이정희에게 후원금으로 냈다고 밝혔다. 그는 2009년 7월에도 기자들 앞에서 '개인적으로 이정희 의원이 너무 좋다'고 말한 적이 있다. [26]
이정희는 2010년 8월 4일 KBS 라디오 '열린토론'에 출연, “6·25가 남침이냐, 북침이냐”는 청취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역사적인 논쟁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문제는 좀 더 치밀하게 생각해서 나중에 블로그에 답을 드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고 답했다.[27] 2011년 4월 1일 KBS 라디오'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에 출연, "블로그에 답을 올렸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역사적으로는 그것이 남침인 거라는 게 확인된 일이지만 우리가 그 속에서 교훈을 찾을 것은 별도로 있는 것 같다. 그때 우리 민족이 전체가 있는 과제는 어떻게 친일 청산하고 그리고 민주주의적으로 발전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였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힘을 모으지 못한 것은 대단히 안타깝다. 어떻게 힘을 모을지, 역사적 과제를 어떻게 설정할지, 그것이 우리의 과제다."라고 답했다.[28]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가 통합진보정당의 정책으로 ‘북한의 3대 세습 반대 입장을 채택하자’는 진보신당의 요구에 대해 “분단의 이분법”이라고 거부입장을 밝혔다. 이정희는 "뿌리깊은 분단의식을 극복하는 것은 진보정당이 커 나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며 "진보통합정당을 새롭게 만들어놓고 또다시 북한을 비판하는 말을 안 하면 종북세력이라며 동료에게 상처를 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29]
2010년 10월 8일, 이정희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이며, 그것이 남북관계를 발전시켜온 경험에서 이끌어낸 대응방식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권력구조가 북한 사회를 특징짓는 정체성의 하나인 것이 현실인 이상, 그것을 언급하기 시작하면 남북관계는 급격히 악화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보수정당과 여러 언론이 북한의 3대 세습을 비난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보정당까지 갈등을 더해서는 안 된다며 북한의 3대 세습과 관련한 언급을 거부하였다. [30]
2010년 11월 24일, 이정희는 자신의 트위터에“연평도에서 군인이 사망하고 주민들이 불길 속에서 두려움에 떨었다.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결과를 정부는 똑똑히 봐야 한다. 대결로 생겨나는 것은 비극뿐이다.”라는 글을 게재했다.[31]
2010년 11월 25일, 국회는 25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북한의 서해 연평도 포격을 규탄하는 대북규탄 결의안 표결. 이 중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 5명(이정희, 권영길, 곽정숙, 홍희덕, 강기갑) 전원을 포함해 창조한국당 유원일, 민주당 장세환, 무소속 유성엽 의원 등 총 9명이 기권 [32]
[33] 민주당과 야권연대를 한 통합진보당은 “남북관계를 고려해 비난하지 않는다”(이정희 공동대표)는 기조아래 천안함 추모식에 전원 불참한다. 4명의 공동대표 모두 통상적인 업무를 보거나 지역 일정을 잡았을 뿐이다. 유시민 공동대표는 경제 개혁콘서트를, 조준호 공동대표는 서울역에서 열리는 장애인 대회에 참석한다. 모두 천안함 2주기와는 관련 없는 일정이다.
최근 서울 관악을 야권연대 경선여론조사 조작 의혹에 휩싸여 사퇴한 이 대표는 천안함 사건 당시 “북한이 아니면 누가 했겠느냐는 것은 정황, 심증에 불과하다”고 말한 바 있다. [34]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은 검찰 수사결과 구당권파가 아닌 신당권파(탈당파, 유시민 심상정 조준호등)의 범죄라는 의혹이 있다.[35] [36] 통진당 부정경선 사태가 터진 직후, 그는 문제에 대해 당분간 침묵하였다. 그러자 그가 의혹에 관련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에 그는 참여당계 인사가 이석기, 김재연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37]
한편 그가 개입됐다는 의혹이 돌면서, 이정희 역시 수사를 받았다. 그러나 관악을 경선 여론조작건은 검찰 수사결과 이정희 前대표에게 혐의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자세한 경과는 아래와 같다.[38]
19대 총선을 앞두고 관악을 [39] 야권단일후보 경선에서 김희철의원과의 경쟁을 할 때, 보좌관이 문자를 보내 여론 조사에서 나이를 속일 것을 요구하여 김희철 의원을 꺾었다. 이후 온라인사이트에“ARS 60대 종료, 60대로 응답하면 모두 버려짐”,“ARS 60대 이어 40~50대도 모두 종료. 20~30대로 응답하지 않으면 버려짐”,“ARS 종료 후 전화면접 시행함. 전화 착신 전환을 유지한 채 기다릴 것”이라는 문자를 캡처한 사진이 퍼지며 비난을 받았다[40] . 보좌관이 아닌 다른 인물이 여론조작에 개입한 증거도 드러났으며[41] , 민주통합당은 이정희 후보의 사퇴를 촉구했으나 이 후보는 이를 거부하고 [42] 상대 후보인 김희철 후보의 사퇴 요구를 '야권연대를 깨는 행위' 라며 반발했다. 대신 이 후보는 재경선을 요구했다. 결국 민주통합당은 이 후보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에 2012년 3월 20일 국회에서 야권 단일화 경선관리위원회가 요구한[43] 재경선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44] .한편 온라인상에서는 이를 비꼬는 패러디가 양산되며 이 대표의 여론 조작을 비판하는 여론이 확산되었다[45] .
결국 3월 23일 이정희는 기자회견을 통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자신이 출마했던 관악(을)에 통합진보당 이상규에게 양보하였고, 이상규는 제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2010년 11월27일, 서울 향린교회에서 열린 ‘평화를 기원하는 시국기도회’에서 이정희는“이 불안한 때에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를 서해에 보내 한반도의 긴장을 높여야만 하나. 한국 국민에게 예고된 참극을 향해 미국이 앞장서 달려가서는 안 된다.” 라고 말했다.[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