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게
산딸기를 한 달 동안 새벽에 따면서 끝나면 여행을 가자고 했다. 잠 못 자고 모기에게 물리면서 일한 것에 대한 위로와 희망이기도 하다. 산기슭과 풀밭의 뱀, 거미에 싫증을 갖고 잔뜩 꺼리는 아들이다. 힘써 도와 판로도 만들며 애썼는데 그 제안에 흔쾌히 좋다며 어디로 갈까 기대를 보였다.
정자항에 홍게를 먹으러 가자 정했다. 그곳에 많이 난다니 이름도 좋고 동해안을 굽어보며 가는 게 여름날 시원할 것 같다. 집에 내려와 산딸기 수확을 도우며 머무는 든든한 머슴이다. 운전하면 나이 들어서 생각에 잠긴다. 신호도 그냥 지나치고 속도도 어느새 나는 등 산만하다. 위험해서 나다니길 꺼리는데 마침 잘 됐다.
날마다 한 곳씩 늘어난다. 붉은 것이 먹음직해 그곳에 가기로 했다가 이왕 나섰는데 그 주위도 둘러보고 싶다. 구룡포일본인가옥거리를 가잔다. 며칠 뒤엔 또 신년 포항 뉴스에 잘 나오는 호미곶 상생의의 손이 있는 데도 보았으면 한다. 아내는 그곳을 가면 말만 들은 죽도시장 구경도 하고 해물을 사고 싶어 한다.
다 가기로 했다. 그런데 장마가 시작되면서 매일 비오니 가지겠나 걱정이 생겼다. 우중충하고 질척거리는 궂은날에 어찌 나설까이다. 중부 지방에는 너무 와서 비 피해가 생긴다니 떠났다가 흠뻑 비를 맞으면 어쩌나. 좋은 날로 연기하자는 말이 나왔다. 장마에도 햇볕 나오는 때가 있으니 기왕 잡은 날 가는 게 괜찮다고 타 일렀다.
내일로 다가왔다. 비바람이 쳐 형편없는 사나운 날씨다. 어쩌나 미안한 생각이 들어 정말 뒤로 미뤄야 하나 망설였다. 좋은 날 두고 비 올 때 가야 하나. 그랬다가 못 가게 되는 걸 자주 봐와서 그리 말했는데 차로 가니 어떻겠나 그냥 가자 굳혔다. 처음과는 달리 요즘 찬찬히 모는 석환의 운전이 안전해 보였다.
날씨 예보를 들으니 매일 비 오다가 내일은 오전에 잠깐 오고 오훈 갠다고 한다. 잘 됐다. 그럼 떠나자 맘먹고 일찍 자리에 들었다. 준비하던 아내가 고향 건천도 가봤으면 한다. 돌고 오다가 둘러본다 했다. 하나 더 늘었다. 출발하면서 역순으로 했다. 어두울 때보다 밝을 때 생가를 먼저 보는 게 순서라 생각이 들었다.
경부고속도로로 치뺐다. 떠날 때 빨래하는 버릇은 그대로여서 좀 늦게 출발했다. 집은 바닷가여서 시원한데 내륙은 후텁지근하다. 푹푹 찐다. 37도를 가리키니 그리 높은 온도는 처음 봤다. 차내는 시원해서 못 느끼는데 바깥은 덥다. 말레이시아 페낭에 몇 달 있을 때도 이렇게는 덥지 않았다.
습한 날씨가 비 오고 흐리려나 걱정이다. 가는 곳마다 비 올 듯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올라 솟았다 밀려나고 파란 하늘이 어여쁘게 나타났다. 구 년 홍수에 해 안 뜨는 날 없다더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맑았다. 이 나이에 아이처럼 들 뜨게 만들었다. 어쩜 이리 화창할까. 정말 시골 장날이다. 아내 다니던 학교에도 들어가 벤치에 앉아봤다.
서둘러 가던 아내가 씁쓸해하면서 살던 집이 뜯겨 빈터만 남았다고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포항으로 갔다. 첩첩 산과 골짝으로 길이 나 있다. 시청 옆 참가자미 물회를 들었다. 맛있다며 ‘음음’ 하면서 먹었다. 크다는 죽도시장으로 가서 동해안에 나는 풍성한 온갖 해물을 살피고 물오징어를 몇 마리 샀다.
오전 한때 비 온다던 날씨가 여기에는 말끔하다. 어떨 땐 구름 한 점 없이 해맑다. 불의 정원으로 가서 공사 중 땅속 천연가스가 터져 나와 여러 해째 불이 훨훨 타오르는 신기한 곳을 구경했다. 지난번에 왔을 때 안 뵈었던 증기차와 물 폭포가 보여 꺼져서 이걸 만들었나 했다. 아들이 저쪽에 불이 타오른다 해서 찾았다. 굴착기도 그대로 묻힌 채 내뿜어 더 더워 보였다. 겨울에 오면 따스하겠구나. 호미곶으로 향했다.
검푸른 바닷가로만 길이 나 있어 멋진 해안로를 따라 한참을 갔다. 정어리나 꽁치를 말리는 비릿한 과메기가 즐비하더니 여름이어선가 안 보인다. 바다 가운데 손바닥을 치켜든 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해초 사이 사이에 물고기가 노니는 것을 봤다. 지도에 꼬리처럼 보이는 곳이다. 사방이 밋밋한 게 삐죽한 것은 보이질 않았다.
다시 바닷길을 따라 꼬불꼬불 내려가다가 구룡포에 닿았다. 꽤 큰 항구다. 배들이 많아 보인다. 대게를 파는 집이 늘어섰다. 시장도 큼직하다. 일인이 살던 가옥 거리에 들어섰다. 일제 때 혼슈 중남부 지방 어민들이 몰려와서 살던 곳이다. 비늘 판잣집이 다닥다닥 옹기종기 붙어섰다. 시장을 이뤘다. 세월 비바람에 바래지고 퇴락한 곳을 고쳐 흔적이 조금씩 남았다. 그 가운데 온전한 집이 있어 들어가 봤다.
2층 목조 건물이다. 1층은 부부 거처 공간이고 위층은 딸이 있던 방이다. 1백 년이 지났어도 어제 있었던 듯 깔끔하다. 격자나 완자창이 아닌 독특한 문양의 가녀린 나무 창살이다. 한지가 아닌 모두 유리로 된 문이다. 그때 재봉틀과 잉걸불 담아 쓰는 다리미, 저울추, 남포등, 부엌의 왜식 집기 등이 가지런하다. 금방 살다 떠난 집 같아 허전함이 느껴진다. 시에서 목조가 상하지 않도록 잘 보호하여 관리하고 입구에 관리인도 있어서 일일이 건사하고 있었다.
딸 방 옆 마루에 뒹굴고 바람을 쐬며 쉬다가 내려왔다. 다다미방이 정갈하다. 삐걱 소리가 나지 않게 지은 집이다. 한참을 걸어서 그들 거처지를 빠져나왔다. 다방과 책방, 식당, 옷집, 어구, 잡화상, 소목 가구점 등의 거리가 길쭉했다. 몇 해를 살다 나온 기분이다. 여름 해는 길어 뉘엿한 석양을 따라 정자항으로 갔다. 고래로 이름난 울산 방어진 옆이다. 횟집이 죽 늘어서고 수족관에 온갖 해물이 넘쳐난다.
수산어시장에 들어가 이쪽저쪽을 살펴 홍게를 찾았다. 대게는 삶으면 붉다. 이는 살아있어도 홍색이어서 붙여졌다. 여러 마리 삶아 저녁 먹고 집에도 가져가려 했다. 아무 데도 안 보여서 홍게가 어디 있느냐 물으니 다 끝나 지금은 없단다. 내년이 되어야 나온다니 때를 모르고 와서 헛걸음이다.
장마철이고 무더위 속에서도 나들이가 재밌어 홍게가 엉금엉금 옆걸음치는 게 어른거린다.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홍게 나는 철 모르고 ...아쉬웠겠서요
울진 후포가 홍게가 제일 많이 나는곳인데
선생님 고향쪽....
내년 3,4월 홍게 먹으려 같이 가십시다
예 내년 봄에 후포를 갑시다.
가족끼리 나들이 가시는데 더 무게가 실리진 않으셨을까?..하는 생각입니다. 내년홍게나 대게철엔 기억하셨다고 꼭 드시길 바랍니다.
홍게 대게보다는 어릴적 고향집을 보고싶어하시는 사모님의 마음이 더 와 닿습니다. 더구나 집은 허물어지고 빈터만 덩그러니 남아있다니...말입니다. 저희 시골집도 생각납니다. 엄마 떠나시고 텅..하니 비어있을텐데...
성도님 고향집 어머니 생각이 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