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돌아갈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남은 일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카작 민요의 가사 녹취물을 얻는 일입니다. 김계원 선교사가 소장으로 있는 중앙아시아 언어문화연구소에서 일하는 까즈구 대학교 여학생 아이누라가 도와주기로 했던 것인데, 김 선교사가 3개월 예정으로 한국에 들어가면서, 아이누라와 전화 연락이 안되어 답답했는데 오늘 연결이 되어 찾아갔습니다. 그 친구 4학년 2학기말 시험 준비할 때 ‘한국문화’에 대해 내가 도와주고, 연구소에 내가 구한 카작 민요 DVD 두 개를 기증한 일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그 일을 부탁했었는데, 연락이 안되어 조바심내던 차에 만난 것입니다. 상임 연구원인 라우라만 사무실을 지키고 있기에 옆에 앉아 <가시고기> 마지막 대목을 읽고 있으니 아이누라가 나타납니다. 졸업을 축하한다고 인사했더니만 고맙다며 내 앞에 무슨 노트를 꺼내 보여줍니다. 무엇인가 했더니만, 카작 민요 가사를 적고 있는 것이랍니다. 반가워서 들여다 보니, 네 번째 DVD인 카작 서사민요 대목의 가사를 녹취하는 중이었습니다. “조금 어려운 말들도 있어요.”하기에 고맙다고 했더니, 네 개의 DVD를 다 꺼내 보이며, “다 할까요?” 물어봅니다. 첫 번째 DVD와 네 번째 것만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현대화한 민요 및 악기소리로만 구성된 것이기에 제외하라 한 것입니다. 가만히 지켜 보고 있으니. 컴퓨터에 DVD를 넣더니만, 둘이서 다정하게 앉아, 의논해 가면서 녹취 작업을 합니다. 일단 노래 한 대목을 재생하여 듣다가는 얼른 일시정지하고 나서,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의견을 조율해 가면서 공책에 적고 있었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방학(졸업)하자마자 이 일에 두 사람이 그렇게 매달려 온 모양인데, 그런 줄도 모르고, 연락이 안되자, 약속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여 조바심을 냈던 내가 부끄러웠습니다. 옆 방에 앉아, 연구소에서 소장하고 있는 책들을 읽다가 돌아왔습니다. 동방기독교에 대한 책을 통하여, 4세기경 마리아를 ‘신의 어머니’로 부르는 데 대하여 반대한 것이 빌미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했다 하여 종교회의에서 이단으로 몰린 네스토리우스(종교회의 때 네스토리우스를 지지해 줄 주교들이 이상하게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기다리다 지쳐 개회한 결과 만장일치로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함), 이 사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박해를 피해 동방(중국 포함)으로 퍼져 ‘경교(景敎)’란 이름으로 기독교 신앙생활을 하였고, 근대에 이르러 서구 기독교 교회에서 선교사를 파견할 때까지, 서구와 똑같지는 않으나 기본 교리면에서(창조신앙,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구원과 부활 등) 거의 방불한 내용으로 믿으면서 살아왔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 단군신화에 삼위일체적인 요소가 보인다고 주장하여 파문을 일으킨 감신대 윤성범 교수의 주장도 이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 하겠습니다. 근대 이전에 이미 우리 나라에도 경교를 통해 기독교적인 요소가 들어왔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지요. 이곳 중앙아시아도, 이슬람화하기 전에는 경교가 영향을 미쳤다고 하니, 그렇게 본다면, 중앙아시아나 우리 나라의 선교는, 새로운 일이 아니라, 이미 과거에 믿었던 전통을 회복하거나 이어가는 일이라고 그 개념을 수정해야 할 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