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겨울날에도 따듯한 날이 뽀빠이의 별사탕처럼 간간이 들어 있다. 기쁨 속에 슬픔이, 슬픔 속에 기쁨이 조용히 들어 있는 것처럼….
이런 날에는 목적이 없어도 좋다.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옷차림을 하고 길을 나서면 된다. 나는 지인들과 송광사 위봉산성에서 내어주는 바람을 만지면서 겨울 산의 정취를 만끽했다.
자신을 모두 내려놓고 새로운 잎을 틔우기 위하여 온몸으로 햇볕과 바람을 맞고 있는 등 굽은 굴참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움직일 수 없는 답답함과 무거움에 몸부림치다가 외로움의 뿌리를 내렸나 보다. 그리고 스스로 살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지금은 우리에게 고요와 평온을 선물하고 있다. 고요와 평온을 선물 받은 우리는 소양 고택의 카페로 들어가 전망이 좋은 2층에 자리 잡았다.
온실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의 통유리 카페였다.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면서 한 잔의 커피에 여유와 낭만을 담아 일요일 오후를 수다로 촘촘히 수놓았다.
겨울의 태양은 유리벽을 열심히 오가며 우리에게 따듯한 은빛 햇살을 분에 넘칠 만큼 내어주고 있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비타민D의 과부화다. 과부화의 부작용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다. 살갗이 가렵고 세포가 꿈틀거리는 것 같아서 신경이 쓰였다.
내 몸의 세포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는 모양이다. 겨우내 참고 견딘 나무들이 새싹을 틔우는 것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나는 겉옷과 모자를 벗고 목도리를 풀고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발아하기 알맞은 온도다. 이 정도의 온도면 발아보다 잎을 무성하게 달고 있어도 될 것 같았다.
사람은 매일 오만가지를 생각한다더니 순간 월계수가 뇌리에 스쳤다. 아폴론과 다프네의 슬프고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가 깃든 월계수. 사랑의 화살을 맞은 아폴론이 님프인 다프네를 보고 사랑에 빠져 고백하고 쫓아다니며 시작되는 신화 속의 나무. 아폴론은 다프네로부터 거절당하면서도 사랑의 화살을 맞은 탓에 계속 쫓아다녀야만 하고, 다급한 다프네는 마침내 강가에 이르러 강의 신인 아버지에게 월계수 나무가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한다. 결국 간청대로 월계수가 돼버린 가엾은 다프네. 사랑에 욕심이 많은 아폴론은 운명의 가해자이며, 다프네는 비운의 피해자다.
하지만 월계수가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청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녀의 선택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도망치는 모습조차도 사랑스러워 쫓아다녀야 하는 아폴론의 가엾은 운명의 곡조를 듣고 난 후에 자신의 거처를 정했다면 좀 달라졌을까!
오늘날 영광과 승리의 상징인 월계수 잎은 유용한 식자재로서 각종 요리에 첨가제나 향신료로 기능을 한다. 특히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몸과 마음을 안정시켜 주며 소화 불량을 해결해 주기도 하며, 식욕을 증가시키기도 한다고 하니 다프네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까?
내가 만약 싹을 틔울 수 있다면 월계수 잎이면 좋겠다. 사람들에게 영광과 승리를 꿈꾸게 하고 희망을 줄 수 있으니 이보다 매력 있는 일이 또 있을까!
문득 내면 깊숙한 곳에서 잠자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꿈틀대는 모습을 본다. 욕심이다. 욕심을 햇살에 투영시켜 본다. 이런 나에게 해님이 말한다. 욕심은 죄를 낳는다고…․ 햇살이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이 반짝이며 온몸을 감싼다. 아름답고 따듯한 겨울날의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