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는 1918년에 가족과 함께 오스트리아에서 스위스로 이주했습니다.
그녀는 1933년 18세의 나이로, 당시 58세로 원숙했던 C.G. 융 교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의에서 융은 자신이 치료했던 “달에 사는 여인”을 언급했습니다.
젊은 마리 루이제는 그것이 “마치” 달에 사는 것처럼 살았다는 뜻인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융이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마치’가 아니라' 그녀는 바로 달에 살았습니다."
이것이 폰 프란츠가 무의식의 실재(reality)에 처음으로 입문한 사건입니다.
(The Passion of Perpetua, p.8)
이제 저의 입문적 사건을 해명하기 위해 꿈과 융심리학을 15년간 병행한 지금,
입문의례(ritual)는 물리적인 현실에서 경험하는 영적인 충격이구나 합니다.
물리적인 현실에서 실행하는 전통적인 입문의례는 영적인 충격을 주어 정신적인 변환transformation을 일으키는구나 합니다.
아이는 성인식, 통과 의례를 거치면서, 어른의 정신으로 변환합니다.
종교의 입문 의례를 하면 새로운 종교성을 가진 정신으로 변환합니다.
통과의례와 입문의례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죽고 새로 태어나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칡넝쿨을 발에 감고 높은 곳에서 번지 점프하듯 뛰어내리는 의 통과의례는
물리적 죽음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그와 같은 강도의 정신적 죽음을 요구합니다.
사막이나 동굴에서 홀로 며칠 밤을 지내며, 죽음 같은 공포와 씨름해야 하는 통과의례도 마찬가지입니다.
미트라교의 입문의례는, 황소 피를 뒤집어 쓰고, 어두운 복도를 지나 금식하며 죽은 듯이 잠을 잡니다.
잠을 자고 지나가는 어두운 복도에는 물웅덩이가 있어서 저절로 물에 빠졌다가 살아나오는 모습이 됩니다.
예수교의 피흘림이나 세례가 미트라교의 많은 전통을 이어받았다 해서 어떤 종교성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닙니다.
의례는 신비여서,
과학 실험처럼 같은 무대 장치에 언제나 같은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는데,
그래서 개인적이고 일회적이어,
눈 앞의 기적을 요구하는 세태에 부응하지 못하기도 하는데,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분명 정신 변환의 효과는 소실되지 않고 반복된다는 점입니다.
저의 이야기는 또 기승전 꿈입니다만,
통과 의례, 입문 의례, 종교 의례, 영신 수련의 심상화, 불교의 자비명상, 적극적 명상......
이 모든 수단들이 영적 세계로 인도하는데,
이 모든 것이 매일매일 화려하고도 꼭 필요한 무대장치를 배경으로 내게 오는 것이 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영적인 세계를 아는데 꿈만 있는 것은 아니더래도,
꿈이 손쉬운, 그리고 믿을만한 통로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꿈을 보면 자신의 영적 세계를 알 수 있습니다.
물리적인 세계와 분리되지 않는 영적 정신을 체현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