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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해 5천국은 회개 후에 옵니다.(마 3:1-12)
2016. 5. 22.
프롤로그
-미국의 유명한 신학자로 목회자였던 마빈 감독이, 내란으로 인하여 그의 가족과 집을 떠나, 아캔자스 지방의 황야를 홀로 헤매고 있을 때였다.
마음에는 평안이 없고 실망과 곤혹스런 마음으로, 어느 마을을 지나고 있을 때에, 한 여인의 찬송 소리를 듣게 되었다.
천국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 길 되나니 은혜로다
천사 날 부르니 늘 찬송하면서
주께도 나가기 원합니다
-찬송 소리에 이끌려 발길을 그곳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찾아 들어간 곳은 가난한 과부가 홀로 사는 낡고 허름한 집이었다.
뜰에 앉아 무슨 일을 하면서 낡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행복한 여인의 얼굴은 소망의 빛으로 가득해 보였다.
-한참 동안이나 넋을 잃고, 여인이 부르는 찬송 소리를 듣고 있던 마빈 감독은,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오 나의 하나님 나도 주께로 가까이 가기를 원합니다. 나를 주께로 가까이 이끌어 주옵소서”
그렇게 외친 다음에 그 여인과 함께 찬송을 불렀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마빈 감독은 그 때의 경험을 이렇게 기록했다.
‘세상의 소망의 끊어진 것 같은 지독한 가난함 속에서도, 주와 함께 사는 한 여인이 부른 찬송은, 수만 명의 설교자들보다 더 분명하게 나의 심령을 울려주었다.’
-심령 천국이 참 중요하다.
아무리 많이 가졌으면 뭐하나?
마음이 지옥인데....
아무리 많은 걸 쌓아두었으면 뭐하나?
매일매일 마음이 지옥인데...
-일반적으로 천국은 심령천국과 내세천국이 있다.
같은 천국이지만 조금 다르다.
심령천국에 치우쳐도 안 되고, 내세천국에 치우쳐도 안 된다.
내세천국이 없으면 심령천국은 무의미하다.
심령천국이 없으면 내세천국은 까마득하다.
심령천국은 이 세상에서 누리는 천국이요, 내세천국은 저 세상에서 누리는 천국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지금 심령천국을 누리는 사람이, 다가오는 내세 천국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 심령이 지옥인 사람이, 내세에서 천국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럴 거 같지 않다.
-심령 천국을 잘 표현한 찬양이 있다.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이다.
이 찬양은 미국의 교회 음악가인 버틀러가, 누가복음 17:20-21을 배경으로 지었다.
눅 17: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우리 가운데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신 것이다.
더 좁은 의미로는 우리 심령 천국을 말씀하신 것이다.
-438장은 한국 기독교인이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 중에 하나로 뽑히기도 했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예수 믿는다고 “슬픔 많은 이 세상”이 슬픔 없는 세상으로 바뀌는 게 아니다.
내 주 예수 모셨다고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사라지는 게 아니고 초막이 갑자기 궁궐로 변신하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곧 천국이 되는 것이다.
-사실 천국은 예수님이 전하신 메시지의 핵심이다.
이 천국은 예수님의 초림을 통해 부분적으로 실현되었지만, 재림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완성된다.
신학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천국은 이미(already) 왔지만, 아직(notyet) 완성되지 않은 상태이다.
천국이 하늘나라(하나님나라)니까 영토 개념으로 이해하기 쉬운데, 그보다는 하나님의 통치권이 미치는 영역이라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하나님이 그의 권세와 능력으로 통치하시면, 그게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천국인 것이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면 천국이 된다.
우리 가정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면 천국이 된다.
우리 일터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면 역시 천국이 된다.
우리 심령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면 당연히 천국이 된다.
-이 시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심령천국만 있고, 내세천국은 너무 멀리 있는 거 같다.
먹고 살기가 너무 편해서 그럴 수 있다.
-전해 내려오는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저승의 황금밭보다는 이승의 개똥밭이 낫다는 말인데, 정말 그럴까?
내세천국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배리 스트라우스가 쓴 책 [트로이 전쟁]에 나오는 이야기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2년이 지났을 무렵이다.
아킬레우스의 혼백이 오디세우스를 찾아와서 말했다.
“길고 지루한 삶 대신 영예롭게 일찍 죽는 것을 선택한 것은 잘못 되었소.”
-그 때 오디세우스가 항의했다.
“아킬레우스...그대는 저승에서 왕으로 추앙받고 있지 않는가?”
-그러자 아킬레우스가 대답했다.
“죽음에 대해 그럴싸하게 말하지 마시오. 영광스러운 오디세우스여! 나는 세상을 떠난 죽은 자들을 통치하느니... 차라리 지상에서 머슴이 되어 농토도 없고 재산도 많지 않은 가난한 사람 밑에서 품이라도 팔고 싶소이다.”
-아킬레우스가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보는가?
그리스도인의 눈으로 보면, 아킬레우스의 말은 정말 말 같지도 않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 중에, 100수를 자랑하고, 100수를 소망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100살이 돼도 지게질을 할 정도로 건강하다면 별 문제가 안 되겠지만, 100수를 한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100수에 한 살이 모자라게 살았던 한경직 목사님 같은 분도, 나중에 치매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주님은 33살 때에 “다 이루었다” 하고 가셨다.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다 이루셨기에,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나셨다.
그 때가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주님이 부르시는데 이런저런 이유대며 “아직 못간다고 전해라” 그래서 되겠는가?
히스기야가 15년 수명 연장 받아서, 무슨 좋은 꼴 봤는가?
정리하고 오라고 했을 때, 할렐루야 하고 갔으면, 훨씬 좋을 뻔 했다.
-언론매체에서 <저출산 고령화의 저주>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저출산이 저주이다.
저출산은 생산가능 인구가 감소해 사회 활력이 떨어지고, 내수시장 등이 급감해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고령화를 저주라고 하는 건 왜인가?
고령화로 인해 경제성장은 침체되고, 경제 기초 경제여건이 급속히 약화되기 때문이다.
-어떤 블러그에서 본 글이다.
“지금 20~30대가 애를 둘 이상 낳지 않는 이상, 이 나라는 고령화의 저주를 피할 길이 없다.”
-고령화의 저주가, 나라에만 해당된다고 생각하는가?
당연히 교회도 해당된다.
나라의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교회의 고령화는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물론 나이 드는 것은 죄가 아니다.
나이 드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나이 드는 것이 좋은 것이다.
내세 천국이 가깝기 때문이다.
돌아갈 본향이 가깝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얼굴을 직접 뵐 날이 가깝기 때문이다.
-중세의 수도사 버나드는 이렇게 고백했다.
구주를 생각만 해도 이렇게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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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이 역사의 무대에 홀연히 등장을 했다.
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그의 무대는 화려하지도 요란하지도 않았다.
남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레드 카펫 위의 인기 배우나, 열광적인 팬들의 환호성을 받는 그라운드의 스타플레이어로 등장하지 않았다.
그의 사역의 주 무대는 유대 광야였다.
-“그 때에”로 시작하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복음서에 의하면,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빨리 출생을 했다.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럼 성전에서 사역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의 사역지는 성전이 아닌 유대 광야였다.
-당시 성전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크고 웅장하고, 거기에 아름답기까지 한 성전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유대 광야를 사역의 무대로 삼았다.
하나님이 그리로 보냈는지, 자기가 그리로 갔는지는 모르겠다.
-신학교 1학년 때는 용감하게 불렀지만, 차츰 자신이 없어 못 부르는 찬송이 있다.
이호운 목사님이 지은 323장인데, 아무 생각없이 부르면 모를까, 가사를 생각하면서 부르려고 하면,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만 따라 가오리니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세례 요한처럼 유대 광야로 보냄을 받을 때 신명을 바쳐 사역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유대 광야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교회에서 사역하는 것도 힘들어 하는 우리인데....
교회에서 사역하며 불평이 많은 사람은 광야 유학을 보내자.
-세례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전한 메시지가 무엇이었는가?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회개(悔改)가 무슨 뜻인가?
국어사전에 보면 ‘잘못을 뉘우치고 고침’ 이라고 뜻풀이를 했다.
이보다 회개를 정확하게 풀이할 수도 없다.
우리의 회개의 상당수는 뉘우침에서 끝난다.
고침까지 가지 않는다.
고침으로 잠깐 갔다가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가고 만다.
-그래서 신앙이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이다.
교회 다닌 햇수는 늘어가지만 신앙의 깊이는 그대로다.
직분을 받았어도 가치관과 생활 습관은 달라지지 않았다.
진짜 회개를 하지 못해서이다.
-회개의 국어사전의 두 번째 뜻풀이는 ‘신앙생활로 들어가는 데 필요한 요건의 하나’이다.
‘살아온 삶이 잘못되었음을 자각하여 죄인임을 반성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뜻을 세워, 새로운 생활로 들어가는 일’을 이른다.
-배가 망망대해를 향해 출발하려면 먼저 할 일이 있다.
항구에 묶여 있는 밧줄을 풀어야 한다.
밧줄을 풀지 않고도, 엔진에 시동을 걸 수 있다.
출발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밧줄 길이만큼 갔다가, 되돌아 올 수밖에 없다.
-이은상이 쓴 <그 집 앞>이란 가곡이 있다.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오히려 눈에 띌까 다시 걸어도
되 오면 그 자리에 서졌습니다
-왜 그 집 앞인가?
왜 그 집 앞을 떠나지 못하는가?
왜 그 집 앞을 떠나지 못하고 또 자리인가?
정 때문이다.
옛 정에 미련이 있어서이다.
-죄의 자리에 정을 주면 안 된다.
결혼한 사람이 옛 정을 끊지 않고 있다면, 그 가정은 오래 못 간다.
-결혼의 원리는 심지어 부모까지도 떠나는 것이다.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예수 믿는 것을, 예수님과 결혼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그 어떤 것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
옛 신랑 죄와 인연을 끊고 연락도 끊고 받은 것도 돌려줘야 한다.
예수 신랑 사랑만 받아야 하고, 예수 신랑만 사랑해야 한다.
그게 예수 제대로 믿는 것이다.
왜 신앙생활이 삐걱대는가?
예수 신랑 두고 한 눈 팔아서이다.
예수 신랑과 옛 신랑에 양다리를 걸쳐서이다.
-회개는 하나만 선택하는 것이다.
예수 신랑으로 만족하고, 예수 신랑을 전부로 여기는 것이다.
-특정 음식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
다른 것은 먹어도 괜찮은데, 유독 그 음식만 먹으면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통풍에 걸리면서, 이제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토피가 심해 사탕을 먹으면 안 되는 애들이 있다.
다른 애들이 사탕 먹는 것을 보면, 너무 힘들어 한다.
처음부터 사탕을 먹어보지 않았으면 힘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탕의 달콤한 맛을 아는 애는 고통스러워한다.
-죄가 주는 달콤함이 있다.
죄가 주는 중독성 맛이 있다.
그래서 온전한 회개가 힘든 것이다.
-아니 그렇게 힘든 회개를 왜 꼭 해야 하는가?
회개를 하지 않으면 무슨 문제라도 생기는가?
당연히 문제가 생긴다.
천국이 회개 후에 오니 그렇다.
천국에 무관심한 사람은, 회개하지 않아도 괜찮다.
자신이 지옥체질인 사람은, 굳이 회개할 필요가 없다.
옛 신랑인 죄와 재미있게 지내다가, 지옥 아랫목에 가서 견딜 자신이 있는 사람은, 회개를 우습게 알아도 된다.
-회개의 필요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회개의 때이다.
언제 회개해야 하느냐이다.
-학생과 교수가 이야기를 했다.
“교수님, 사람이 죽는 준비를 하는 데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그거야 몇 분이면 되지 않겠나?”
-“천당 가는 준비를 하는데 얼마나 걸립니까?”
“그것도 몇 분이 되네. 예수님 곁의 십자가에 달렸던 강도는 잠깐 예수 믿고도 구원받지 않았나?”
-“그렇다면 괜찮겠군요....저는 즐기다가 마지막에 가서 예수를 믿으렵니다.”
그리고는 학생이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교수는 가던 학생을 불러놓고 진지하게 물었다.
“이 사람아, 내가 한 마디 묻겠네...자네는 자네가 언제 죽을지 알고 있나?”
“그야 모르지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래, 바로 그것이 문제일세.”
-회개는 미룰 수 없다.
회개는 미뤄서 될 일이 아니다.
천국이 가까이 와 있기 때문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천국문은 회개한 자에게 열린다.
지옥은 죄를 지어서 가는 게 아니라, 회개하지 않아서 가는 것이다.
지옥문은 회개하지 않은 자에게 활짝 열려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했다고 지옥에 간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배신하여 은 30에 팔았다가 뉘우치고 가서 받았던 돈을 되돌려주고 물리려고 했던 가룟 유다의 죄도 크지만,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되 마지막에는 저주하면서까지 부인했던 베드로의 죄도 그에 못지않게 크다.
그러나 베드로는 천국에 갔고, 가룟 유다는 지옥에 갔다.
-죄의 대소의 차이가 아니다.
죄의 경중의 차이가 아니다.
베드로는 회개하여 천국에 갔고, 가룟 유다는 뉘우침으로 끝나 지옥에 갔다.
-일반인이 보면, 가룟 유다가 훨씬 양심적이다.
스승한테 그런 몹쓸 짓을 하고, 어떻게 목숨을 부지하는가?
죽음으로서 조금이라도 죄를 씻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걸 의로운 죽음으로 보지 않다.
오히려 불신앙적인 죽음으로 본다.
회개를 거부한 불신앙적인 죽음으로 간주한다.
-사실 가룟 유다에 대해서는, 주님이 마지막까지 회개의 기회를 주셨다.
그 자리는 유월절 마지막 식사 자리였다.
예수님이 식사 자리에서,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했다.
제자들이 몹시 근심하여,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나는 아니지요” 라고 했다.
-가룟 유다의 차례가 되었을 때, 그 역시 예수님께 물었다.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예수님이 직설적으로 대답하셨다.
“네가 말하였도다.”
-가룟 유다가 지옥행을 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회개였다.
그러나 그는 회개 대신, 그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요 13: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고 하셨다.
고후 6: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지금이 구원의 날이란 말은, 지금이 회개의 날이란 말이다.
회개할 기회를 놓치거나 미루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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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은 어떤 사람인가?
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세례 요한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사람이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기가 막히지 않는가?
이사야가 언제적 사람인가?
세례요한이 태어나기 700여년 전 사람이다.
그것도 그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호칭했다.
그 호칭에 그가 무슨 사역을 해야 하는지가 정해져 있다.
외롭고도 힘든 사역이었다.
아니 그건 사역보다는 사명에 가까웠다.
-사역이라면 대신 할 수도 있다.
사역이라면 꼭 내가 하지 않아도 된다.
사역이라면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에게 부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명은 성격이 다르다.
내가 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내가 하기 싫다고 다른 사람에게 시키면 안 되는 일이다.
-세례 요한은 그 일을 묵묵히 감당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렇다. 사명은 묵묵히 감당하는 것이다.
누가 알아준다고 감당하고, 그렇지 않는다고 내려놓는 것은, 사명 감당의 자세가 아니다.
-세례 요한은 변변한 옷도 없었고, 음식도 변변치 않았다.
4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어쩌면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는지 모른다.
사명자의 눈에는 그런 것들이 시시하게 보인다.
그런 것 다 신경 쓰고, 언제 사명 감당하겠는가?
-주님이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어떻게 하라고 하셨는가?
마 10: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10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사명자는 오로지 사명만 보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왜 이것저것 온갖 잡다한 것들이 보이는가?
한 눈 팔아서 그렇다.
오늘날 세상에 얼마나 볼 게 많은가?
-우리나라 한 해 미아 발생 신고가 5000건이라고 한다.
범죄가 아닌 순수한 미아의 경우라면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부모가 다른 것을 보다가 아이를 놓치거나, 아이가 다른 것을 보다가 엄마를 놓치는 것이다.
-우리가 온갖 잡다한 것을 보다가, 사명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사명이 돈 버는데 있는 줄 아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그래서 직분도 버리고, 교회도 버리고, 돈 버는 데 올인한다.
돈을 보다가 사명을 놓쳐서 그렇다.
우리가 사명 때문에 사는 것이다.
사명이 끝나지 않아서 아직 살아있는 것이다.
그것 모르면 ‘못 죽어서 사는’ 불행한 인생이 된다.
-주의 길을 준비하는 것, 또한 우리의 사명이기도 하다.
우리 주 예수님은 다시 오신다.
주님 오실 길을, 우리가 준비해야 한다.
그건 우리가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는 것이다.
1000명의 제자를 삼아, 100명의 셀리더를 세우고, 1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1110세계비전을 이루는 것이다.
-세례 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자신의 사명을 다할 때,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5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에서 요단 강 사방에서 세례 요한을 찾아왔다.
그래서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는 일이 일어났다.
무려 400년 동안이나 하늘이 닫힌 채 말씀 없이 살아서 그랬는지, 세례 요한의 소문은 삽시간에 전국을 강타한 것이다.
-세례 요한을 찾아온 사람들 중에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못 배운 서민층에 속하는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도 있었다.
이들은 이른바 기득권층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사실 그들에게도 말씀이 필요하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그들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7b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바리새인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경건한 사람들이다.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먹고 살기 위해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들이다.
누가 봐도 유대교 안에서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세례 요한의 눈에, 그들은 독사의 자식들로 보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지만, 그게 착각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라는 것이다.
그들은 타작마당의 쭉정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왜 그렇게 혹독한 평가를 받았는가?
회개하지 않아서였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어서였다.
회개하는 건 싫고, 천국은 가고 싶고... 그런 시커먼 속이 보여서였다.
-천국은 회개 후에 온다.
심령천국도 내세천국도 마찬가지다.
회개 전에 천국부터 오는 경우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