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공부자의 고향인 중국 곡부에 거주하는 권혁범입니다.
작년에 오셨던 곡부공씨 용인지역 여러분들이 올 해도 오셨습니다.
우선 구면이신 분들이라 더욱 반가운 마음이었지요.
곡부, 공부자의 터전이 마음에 들고, 한국에서 책으로만 배웠던 공부자와 유학의 가르침을
좀더 심도있게 공부하고자 하는 욕심으로 곡부에 자리잡은 것이 어느 새 4년 세월이 가깝습니다.
생각과는 다르게 생활이 생업으로 이어져 공부할 분위기나 시간이 되질 않는 것이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귀동냥 눈어림으로 한 공부가 약간은 되어서 스스로 위안을 삼습니다.
제가 곡부에 있으니 당연히 수많은 곡부공씨 종친들과 유학관련 공부를 하시는 분들, 교직에 계시는 분들을
접할 기회가 많습니다.
한국인으로써 외국에 사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만, 한국에서 불원천리 찾아오시는 손님들을 뵙고,
또 그분들이 만족한 마음으로 귀국하시는 것을 보노라면 가슴 깊은 곳에서 만족한 즐거움이 느껴집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닙니다.
아니, 다른 때보다 더욱 큰 기쁨이 함께 했습니다.
작년에도 제사를 모실 때 동행하며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긴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올 해는 현지의 신문기자를 불렀습니다.
한국에 살고 계시는 공씨문중의 66인이 오셔서 조상님께 제사를 드리니 취재를 하라고....
공석기회장님 말씀이 올 해로 여섯 차례 곡부에 오셨지만 인터뷰 요청은 처음이라고 하시는군요.
5월 5일에 제사를 드리고 그 기사를 송고하면 6일자 신문으로 볼 수 있겠지 하고 본 사이트에 소개하는 것을
미루었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해서 이렇게 늦었지요.
편집과정에서 여러분께서 절을 올리는 사진이 거부된 것입니다.
이유같지도 않은 이유를 대면서..... 이것이 아직도 공산주의사상의 잔재가 남아있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하루 이틀 ..... 오늘에서야 신문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이 없는 기사만 올랐군요.
마침 오늘도 곡부공씨 종친회에서 곡부를 찾아주셨습니다.
역시 어촌공파 여러분이고 저와 고향이 같은 용인의 완장리에서 오신 공병진씨도 일행중에 있었습니다.
공일섭님이 오늘 오신 일행의 대표이십니다.
그분은 공석기회장님과도 잘 아는 사이이시기도 하군요.
기자에게 전달받은 신문 여러부를 전달해 주십사 부탁을 드렸습니다.
이곳 사이트에는 신문의 내용과 오셨을 때 제가 찍은 사진을 올려드리겠습니다.
제사를 모실 때의 사진은 역광이 있어서 질이 좋지 않습니다만 이해하고 보아주십시오.
자칭 타칭 "천하제일가"인 곡부공씨, 대성인 공부자의 후예이심을 잊지 말고 생활하실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금번 곡부를 찾아주신 공석기회장님, 공천식회장님, 공돈희회장님 이하 여러 곡부공씨 종친들의 가정에 행복이 가득하고,
곡부공씨 문중에 영광이 함께 하시기를 충심으로 기원합니다.
곡부에서 말학 가인 권혁범 배상
(어찌된 일인지 사진을 올릴 수가 없군요. 아마도 이곳 인터넷망의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회장님의 메일 등에 사진을 올려드리겠습니다. 저를 대신해서 다시 올려주시는 분이 계시기를 바랍니다. 죄송 -_- )
첫댓글 감사합니다. 곡부공씨 미수공파 일가님들께서 곡부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셨읍니다. 권사장님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權不十年의 출전과 본래 의미를 추적하다 가 선생님의 花無十日紅 관련 글을 읽었습니다.
花無十日紅은 선생님께서 쓰신대로 그 출전이 확인되는데 權不十年에 관해서는
중국 포털에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더군요.
왜 선생님께서 花無十日紅만을 말씀하셨는지 대충 알 것 같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선생님의 글을 자주 읽고 눈을 틔우게 되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