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 『쩐의 전쟁』 작가 박인권


박인권 화백은 ‘백 가지 면(麵)에 대해 익히려면 백 년이 걸린다’는 옛말을 인용했다. 그는 “민족음식 국수의 넓고 깊은 세계를 맛보는 데 ‘국수의 신’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화백이 국수 한 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몇 년 전 중국 신장(新疆)을 여행하던 그는 끼니를 해결하러 현지 시장에 갔다.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구수한 냄새에 자신도 모르게 발길을 옮겼다. 허름한 국숫집이었다. 주인 노파가 때가 잔뜩 낀 손으로 국수를 말아줬다. ‘라그만’이라는 현지 전통국수였다. 별 볼일 없어 보였다. 손으로 대강 주물러 뽑은 투박한 면발, 양고기와 부추를 대충 썰어 올린 생김새. 마뜩잖았다.
하지만 별 기대 없이 한 젓가락 입에 넣은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국수도, 반찬도, 팥죽도, 밥도 마음대로 양껏 먹을 수 있는'뷔페식 잔치국수집' 부산 '대저할매국수'. / 조선영상미디어 김승완 기자 wanfoto@chosun.com
국수 맛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그 집은 100년 넘게 대를 이어 국수를 만들어온 전통의 식당. 그 노파는 평생 아침마다 산을 향해 ‘맛있는 국수를 만들게 해달라’고 정성스레 기도를 드린다고 했다.
그가 국수에 빠져든 건 그때부터였다. 더 정확히 음식의 맛을 종국에 좌우하는 ‘손맛’의 비밀이 궁금했다. 이 비밀을 캐다 보면 근사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다.
오늘(26일자)부터 본지 경제섹션에 주 5회 만화 ‘국수의 신(神)’을 연재하는 박인권(57) 화백. 그는 TV 드라마로도 큰 인기를 끈 ‘대물’과 ‘쩐의 전쟁’ 작가다. 현실밀착형 소재를 세밀한 현장 취재와 자료 조사로 흥미진진하게 그려내는, 소위 ‘소재극화’의 1인자로 꼽힌다.
박 화백은 “뭐든지 ‘최초’가 아니면 ‘최고’가 될 수 없다”고 믿는다. ‘대물’은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주인공이었고, ‘쩐의 전쟁’은 국내 최초로 사채업계의 빛과 그늘을 조명했다. ‘국수의 신’도 국내 처음 시도되는 국수 소재 만화다. “쭉 스포츠신문 연재만 하다 처음으로 종합일간지에 그리게 돼 조심스럽고 떨린다”는 그를 지난 21일 만났다.

강원도 막국수. 비빕막국수라고도 한다.
-‘대물’과 ‘쩐의 전쟁’ 작가로 유명합니다. 이번엔 국수인데요.
“평소에도 워낙 짬뽕·우동·바지락칼국수 등 면으로 된 음식을 좋아합니다. 특히 국물은 거의 남기질 않습니다. 아내가 ‘염분이 많아 건강에 좋지 않으니 조금만 먹으라’고 언짢아할 정도지요. 신장의 전통국수 ‘라그만’을 만난 게 7년쯤 전입니다. 먹고 나서 알았는데, 라그만은 현지 사람들도 자주 맛보지 못하는 귀한 음식이라고 하더군요. 국수 취재를 본격적으로 한 건 3년 전부터입니다. 스토리 디렉터 2명과 함께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과 몽골 등을 여러 차례 갔습니다. 대략 70~80가지 국수를 먹어본 것 같습니다.”
부산 '구포촌국수'. / 조선영상미디어 김승완 기자
- 일반인은 국수 하면 멸치국수를 떠올리게 되는데요.
“문헌에 따르면 국수 종류가 2000가지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 중 현존하는 건 300가지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실생활에서 먹는 건 100여 가지 정도죠. 육수도 멸치 외에 쇠고기·닭고기·돼지고기 등 다양한 재료를 씁니다. 조선시대 궁중에선 꿩고기로 국물을 냈어요.”
- 취재한 국수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요.
“경기도 청평을 가면 ‘죽도면(竹刀麵)’이 있어요. 대나무로 칼을 만들어 면을 뽑는 거예요. 그냥 칼은 쇠의 독이 오른다는 거죠. 칼국수의 유래가 중국의 ‘절면(切麵)’이라고 하는데, 칼로 밀가루를 탁탁 끊어서 면을 만든 겁니다. 죽도면을 만드는 분에게 ‘쇠칼을 쓰는 것과 죽도를 쓰는 것이 뭐가 다르냐’고 물으니까 ‘쇠칼엔 쇠의 독이 남아 있을 수 있다. 대나무는 음식 안의 독을 중화시킨다. 결과는 같을지 몰라도 (국수 뽑는) 마음이 다르다’고 답하더군요. ‘맛은 멋에서 나온다’는 거예요. ‘왜 일부러 고생을 하느냐’고 하니까 ‘그 멋 때문에 손님들이 찾아온다’고 하더군요. 일리 있는 말이죠. 중국 허난(河南)성의 태면(太麵)도 충격이었죠. 국수 끓이는 물의 온도가 110도나 되는데 그 온도를 맞추기 위해 조리사가 그 뜨거운 물에 손가락을 담그는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하도 담가 열 손가락 모두 쇳덩어리같이 굳은살이 박이더군요.”
대구 '할매칼국수'. / 조선영상미디어 김승완 기자
- 우리 국수의 특징은 한마디로 무엇인가요.
“우리 국수는 서민음식이었어요. 지금은 국수가 식간(食間)에 가볍게 먹는 ‘사이음식’, 육류를 먹은 뒤 입가심하는 마무리음식이죠. 못살던 시절엔 ‘생존음식’이었습니다. 오죽하면 ‘면복(麵腹)’이란 말도 있었겠어요? ‘국수 먹고 부른 배는 헛배’란 얘기죠. 강원도 정선엔 ‘꼴두국수’가 있어요. 배고픈 시절 하도 물리게 먹어서 ‘꼴두 비기(꼴도 보기) 싫다’고 해서 ‘꼴두’랍니다. 서민의 배고픔 속에 자리 잡은 음식이 국수죠. 그런데 조선 궁궐에선 꿩국물로 만든 국수를 임금이 먹었거든요. ‘임금의 힘을 솟구치게 만드는 음식 7가지’ 중 하나였다고 해요. 꼴두국수에서 어면(御麵)까지 하늘과 땅을 어우르는 음식은 국수가 유일합니다. 천지면(天地麵)이죠. 『고려도경』을 보면 고려 때 국수는 제사 지낼 때 쓰는 제례면이었어요. 면도 절에서 뽑았을 정도로 엄격하게 관리했죠. 국수는 우리의 역사가 배어있는 자랑스러운 음식입니다.”
같은 생선이지만 만드는 이의 손길에 따 라 우러나오는 맛이 달라진다. 왼쪽 위부 터 시계방향으로 조샌집 어탕국수, 면천 가든 어죽, 어부의 집 밑반찬, 늘비식당 에서 물고기 살을 발라내는 모습, 강변가든 뱅뱅이.
- 1954년생이니 유년 시절 추억에 국수가 있을 법도 한데요.
“초등학생 때 어머니 심부름으로 국수를 사오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에 그만 국수를 다 쏟아버렸어요. 엉엉 울었죠. 그런데 어머니가 흙탕물에 엉망이 된 국수를 줍더니 물에 헹구는 거예요. 어린 마음에 ‘국수는 저렇게 빨아서 먹기도 하나 보다’ 했죠. 가난해 버릴 수가 없던 걸 모르고요. 그때의 기억이 지금까지도 짠하게 남아 있습니다.”
- 고급 음식으로서의 국수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안타까워요. 중국식당 비싼 데 가면 짜장면이 1만5000원씩 하고 그래요. 국수는 아니죠. ‘국수=싼 음식’이라는 인식이 있어요. 그런데 국수 만드는 데 짜장면보다 10배 이상 공이 들어갑니다. 고명 가짓수만 해도 얼마나 많은데요. 진달래꽃을 올리거나 진달래꽃 즙을 짜서 뿌리기도 해요. ‘국수의 신’에서 ‘면(麵)’의 ‘면(面)’을 한 번 제대로 세워보고 싶습니다.”
▲ 현대막국수 물메밀, 신일식당 꼴뚜국수, 송원막국수(왼쪽부터) / 레스토랑 가이드 다이어리알 제공
박 화백은 경기도 구리에 있는 작업실에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틀어박히는 시계추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데뷔 30년째다. 그가 시나리오와 콘티를 짜고 기본 데생을 해서 넘기면, 30여 명에 달하는 팀원들이 그림 작업을 한다. 시간을 아끼려고 회의는 서서 간단하게 한다. 소위 ‘기립회의 1분 회의’다. 정식 식사는 퇴근 후 저녁 한 끼만 먹는다. “작가는 생각을 물동이처럼 이고 다닌다. 동선(動線)이 짧을수록 물은 덜 출렁거린다”는 생각에서다. 이 지독한 노력이 또 한번의 ‘최초’를 통해 ‘최고’가 될 수 있을까. ‘국수의 신’이 기대되는 이유다.
글=기선민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조선 ‘금계면’ 만들다 혀 잃은 아버지 아픔 딛고 …
‘국수의 신’은 어떤 만화
‘국수의 신’ 주인공은 청년 하류다. 하류는 갖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국수의 신’으로 성장해 메밀국수의 원조 격인 일본의 ‘소바키리(そば切り)’를 제압한다. 그의 성장 과정엔 조선 궁중국수 ‘금계면(金鷄麵)’을 만들려다 혀를 잘린 아버지의 아픔과 집념이 숨어 있다. ‘국수의 신’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대부터 현대까지를 아우르며 다양한 국수 이야기와 음식 대결을 보여준다. 조선후기 궁중요리사 고현묵의 4대손 대천, 대천의 사위이자 120년 가업을 저버리고 5000원대 최고급 ‘웰빙라면’을 출시하는 길도 등 개성 강한 주변 인물들이 이야기를 한층 흥미롭게 만든다. 박인권 화백은 국수 에피소드를 얻기 위해 3년에 걸쳐 취재했다. 궁중음식 전문가 한복선·박미숙씨에게 자문도 했다.
박인권 화백은 …
● 1954년 서울 출생 ● 73년 만화계 입문 ● 81년 ‘재벌군단’으로 데뷔 ● 주요 작품: 『쩐의 전쟁』 『대물』 『열혈장사꾼』 『전갈』 『악종과 독종』 ● 대만 ‘문예춘추 월보’에 ‘갈채’ 연재 ● 현재 스포츠경향에 옴니버스 장편극화 ‘여자전쟁’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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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잔치국수의 사진이죠. 영어로 굳이 옮기자면 [파티누들 PARTY NOODLE]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이름과 달리 수수한 먹거리가 바로 이 잔치국수입니다. 아마 무조건 최초가 최고라는 정신으로 만든 국수의 신의 박인권화백의 말대로 국수속에는 오묘한 철학이 들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치가 폄하되는 한국전통먹거리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초밥 하나를 가지고도 오따꾸정신으로 초밥세계관까지 정립시키는 일본인들과는 반대로 한국사람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자부심은 커녕 업신여기기까지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앞으로 고쳐야 할 점입니다. 미국에서 살다보면 역사가 상대적으로 한국보다 짧은 미국인들조차도 자국산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죠. ( 햄버거를 그렇게 자랑해대니...)
▲ 투박한 메밀의 맛은‘고향’의 동의어이다. 경기도 가평의 송원 막국수(왼쪽), 강원도 횡성의 삼군리메밀촌 메밀국수. / 레스토랑 가이드 다이어리알 제공
무조건 애국심을 자극시켜 칭찬하자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치열하게 연구해서 개발/발전시켜보는 정신은 비단 국수만들기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것에도 중요하게 적용되는 황금률이겠죠.
그런 정신으로 국수를 만드는 집이 LA에 하나 있는 것 같아 한번 소개해 봅니다.
바로 6가와 알렉산더 코너의 시티센타의 푸드코드에서 우연히 발견한 국수집 [안동국시]

경상도 출신인 나에게 굉장히 나쁜 선입관이 있는데 그건 경상도레이블이 붙은 메뉴는 별 맛이 없다고 생각하는 점입니다.^^;; ( 변명하자면 인간은 그저 자기 자신의 경험만을 통해서만 일반화 시켜버리는 오류를 잘 범한다.)
그런데 어떤 분이 이집이름을 보고 와서 나에게 경상도에서는 다들 국수를 국시라고 그러냐는..^^;; 이런 젠장… 국수라고 하는 분들이 더 많거든요..씩씩~~

비록 지역감정을 초래하는 작명을 한 국수집이지만… 한번 먹어보니 경상도출신임이 새삼 자랑스러워지게 만듭니다. 위의 사진은 곰탕세트....

사진으로 봐서는 모르는데 먹어보니 구수한 맛이 좋습니다.

곰탕에 국수를 말아 드신다고 생각하시면 되는데….

설렁탕이나 곰탕에 국물 뿌옇게 만든다고 장난치거나 공장제로 대량생산 고깃국깡통에서 나온 국물이 아니라 우족이나 고기를 밑반찬으로 내주는 것을 보니 정말 우려내는 국물이 맞는것 같습니다. ^^

그리고 요즘 각광받고 있는 콜라겐 단백질이 많은 우족국물이 입술에 닿으면 입술이 조금 끈쩍해지는데 이 안동국시의 국물이 바로 바로 그렇습니다.

국수를 이 부추김치와 말아서 드시면 건강에도 참 좋을 듯 합니다. 이런 생각이 먼저 선행되야 정말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거겠죠.


가끔씩 설렁탕집에 가면 국수사리를 더 달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죠. 그런 분들은 이 집 메뉴에 두손두발 다 들면서 환영할 듯 합니다.

이 안동국시는 면의 굵기가 맛결정에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할 것 같습니다.
아주 굵지도 가늘지도 않는 면이 이 우려낸 국물과 조화롭게 입속에 감길려면 무척 힘들텐데 이 음식을 만들려면 아까 [국수의 신]정도의 내공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어라 국물맛이 좋습니다.

몇가지 해물로 국물다시를 만드신 것같은데 고기냉면육수같으면서도 아주 깔끔한 끝맛이 보통이 아닙니다. 전세계적으로 한국인과 일본인만 찬국수를 먹는데 이거 일본에 들어가면 난리가 날 그런 맛입니다.




언제 오픈을 한지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사람이 드문드문하네요.

사실 식당 화학인공조미료 음식에 완전히 찌들어버린 LA분들에게는 이 안동국시가 크게 어필하지 못할듯 합니다. 워낙 맛이 수수하고 구수하니….혹시 이러다가 이 내공의 집도 가게문을 닫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오랜만에 괜찮게 하는 국수집이 있어 소개해드리니 이번주말에 많이 팔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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