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이라 부르면
아는 사람 하나 없는데 밀양이라 부르면
쇠사슬 칭칭 감은 할매들 마지막 일침
"산에도 주인이 있다
나를 밟고 가거라"
밤늦게 도착한 단장면 사연리는
산이 산을 업어주고 달빛 아직 고운데
철커덕 감전된 하늘
송전탑이 막아선다
가슴으로 우는 바람 손바닥에 닿으면
울력으로 뒤척이다 쏟아지는 문장들
어떻게 지켜온 땅인데
비밀스런 햇살이여
밀양, 하고 부르면 산으로 오르던 사람들
거대한 철탑에 맞서 맨몸으로 버틴 사람들
절절히 부르던 노래
그 노래만 남았다
철원의 별
아마 저 별은
희디흰 뼛조각일 거야
서로의 심장을 향해
겨누던 총구일 거야
밤이면
몰래 내려와
지뢰 찾던
눈일 거야
장두 이재수
1
목숨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었습니다
맨 위에 이름 올리고 머리띠 질끈 동여매고 들불처
럼 일어나라! 신축년 보리 바람 분노할 줄 알아야 세
상이 변합니다 굶주린 들녘으로 푸르게 일어서던 그
옛날 조선 바람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아 바람은 바람
을 낳고 죽창은 죽창을 깎고 빼앗기고 찢긴 가슴에 불
지펴 이끌던 사내.
맨주먹 스물다섯에 장두가 되었습니다
2
제주에서 서울로 압송되던 바닷길
어머니 생각하면 바다가 다 눈물입니다. 배 밑창에
철썩이는 파도가 다 통곡입니다. 뜬 눈으로 보낸 날
이 몇 날 며칠인가요 어떻허민 좋으코, 어떻허민 좋으
코, 물 한 사발 떠 놓고 소리 없이 내뱉던 백혈 같은 촛농
이 작은 산 될 때까지 빌고 또 빌었을 어머니와 동생
순옥이 그 어린 것을 생각하면 온몸 뼈마디가 저려옵
니다 허나 목숨 구걸하지 않겠습니다 절대로 무릎 꿇
지 않겠습니다 남쪽 하늘 향해 절 한번 올리지 못합니
다 서울 땅 어느 언덕 죄수들만 묻힌다는 곳 내 육신
흙이 되어도 푸르게 바람 일어 돌아갈 길 압니다 이제
는 울지 마세요, 어머니 나의 어머니
청보리 익어가는 날 바람처럼 다녀갈게요
-《수국이 세 번 피고 세 번 지는 동안》 영언동인, 제9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