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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크리스찬 영의 세계 원문보기 글쓴이: 죤.웨슬리
▲ 신반포중앙교회에서의 성경신학회 정기논문발표회 모습 |
한국성경신학회(회장 박형룡)에 속한 구약학자들이 구약의 열왕기서 주해 발제를 통해 목회자들에게 ‘이렇게 설교해 보라’고 제언했다. 20일 오후 신반포중앙교회에서 열린 ‘제39회 정기논문발표회’에서다.
‘열왕기서 주해와 설교’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발표회에는 김진수(합동신학대학원)ㆍ강정주(계약신학대학원)ㆍ장세훈(국제신학대학원)ㆍ황선우(총신대신학대학원) 교수가 발제했다.
김진수 교수는 ‘솔로몬 성전의 구속사적 의미’라는 논문을 통해 솔로몬 성전과 에덴-시내산 –광야-예수 그리스도-신약의 교회와 성도와의 관계를 규명했다.
김 교수는 먼저 “솔로몬 성전에 나타났던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왕상 8:10-11))은 출애굽 광야의 성막(출 40:34-35)의 여호와의 영광이 본질적으로 깊이 연결된다.”며, “구속사의 곡선을 뒤로 늘리면 성막을 가득 채운 하나님의 영광은 시내 산 정상에 나타난 영광의 구름(출 24:15-17)을 지나 에덴동산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하나님의 영광으로 이어진다(창 2:9-14; 겔 28:13; 31:18 참조)”고 설명했다.
하지만 “다윗-솔로몬 시대이후 이스라엘은 ‘성전의 백성’에 걸맞지 않는 행실로 인해 ‘하나님의 전(展)’을 각종 가증한 우상숭배와 부도덕한 일로 더럽혀(겔 8:6-18 참조) 도둑의 소굴로 만들어 버림으로써(렘 7:11)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는 일이 벌어진다(겔 9:3; 10:18-19; 11:22-23)”며, “그 결과 이스라엘 자손들은 포로기를 거치는 동안 영광을 잃은 자들의 불행과 저주를 뼈저리게 경험해야 했다.”고 전했다.
이어 “놀랍게도 때가 되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성전이 도래했다(요 1:14). 이는 에덴 성소, 시내산 성소, 광야의 성막, 솔로몬 성전을 가득 채웠던 하나님의 영광이 이제 인간의 모양으로 임한 ‘새 성전’을 충만하게 채웠다.”며, “그 결과 하나님의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으로 지어져(엡 2:20-22) 새 언약백성의 공동체인 교회가 영광으로 충만하게 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진수 교수는 열왕기서에 소개된 솔로몬 성전 관련 본문의 경우 솔로몬 성전의 구속사적 의미를 설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성전 건축의 때가 이르렀음을 밝히는 솔로몬의 말을 담고 있는 열왕기서 5장 2-4절과 관련 “다윗을 통해 모든 원수들이 정복돼 그 땅에 온전한 평화가 이뤄지고, 솔로몬이 왕으로 등극했을 때 성전이 건축돼야 한다는 것이 다윗에게 게시된 하나님의 뜻이었다”며 솔로몬의 성전은 평화(안식)와 연결돼 있다고 주해했다.
김 교수는 또 “구약이 그리고 있는 성전과 평화(안식)의 연결은 예수에게서 마침내 최종 목표에 도달한 것”이라면서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만한 성전으로 지어진다”고 말했다.
그런데 김 교수는 “솔로몬 성전의 평화(안식)이 깨진 것은 율법에 대한 불순종의 결말”이라면서 “이는 ‘성전이 표상하는 평화(안식)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 없이는 보장되지 않고, 향유될 수 없음’을 선명하게 가르친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김 교수는 “오늘의 설교자는 ‘하나님의 백성인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누려야 할 평화(안식)는 참 성전인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할 때 향유될 수 있음’과 ‘말씀에 불순종할 때 그 평화(안식)는 깨질 수 있음’을 설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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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주 박사는 ‘열왕기상 13장 주해와 설교, 메시지’에서 13장 본문이 가지는 내러티브, 상호관계성, 역사성과 신학적 측면에 기초를 두고, 미드(J. K. Mead; 서언-제1~2막-제1~4장-결언)와 윌쉬(J. T. Walsh; 13:22-23과 12:30-31의 어휘와 구절의 수미쌍관)의 구조분석의 비교를 통해 “늙은 선지자와 하나님의 사람, 회개하지 않은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돌이키심, 그리고 회복을, 왕하 23:15-20과 연결시켜 “포로기 백성들에게 하나님 말씀의 성취 능력을 믿고 돌이키며 소망하라.”로 귀결시켜 눈길을 끌었다.
특히 난해구절로 이해됐던 벧엘의 늙은 선지자가 속여서 유다의 하나님의 사람을 불순종의 길로 되돌아가게 한 것(13:19-20, 23, 26)에 대해 “열왕기하 17장에 나타난 북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예표적 기능”으로 보고,“말씀의 성취에 의한 여로보암 종교의 멸망의 확실성과 돌이키심((בושׁ)과 회복의 가능성을 또한 확증해 준다.”고 보았다.
또한 “13:2에서 벧엘 성소를 더럽힐 요시야라는 이름의 갑작스런 등장과 열왕기하 23장에서 요시야에 의한 제단의 파괴와 개혁으로의 연결은 이 본문을 요시야 시대의 저작으로 여기게 했지만, 오히려 요시야 개혁(돌이킴) 자체보다는 말씀의 성취의 능력과 늙은 선지자의 믿음의 실현에 더 강조점을 두어야 한다(23:15-20)”고 주장했다.
이어 “불순종한 유다의 하나님의 사람의 뼈가 그대로 보존된 것처럼 영원한 다윗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삼하 7:12-16) 또한 성취되는 능력이 암시된다(왕하 25:27-30; 사 30:18-19; 65:16).”며, “여로보암이 열왕기에서 최악의 왕인 반면 요시야는 말씀을 순종하는 최선의 왕이지만 하나님의 심판을 돌이키기에 너무 늦은 개인적 개혁(왕하 22:15-20; 23:36-27)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표지가 된다.”고 설득력을 더했다.
구약학자들 사이에 주해와 메시지 도출이 난해한 ‘열왕기상 13장의 주해와 설교, 메시지’를 주제로 발제한 김정주 교수는 “해당 본문의 바른 주해를 통해서 ‘하나님 말씀은 전달자들의 순종이나 불순종과 상관없이 성취되며, 대적자들까지도 말씀의 성취를 지지하는 자들로 바꾸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믿고 전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맡은 ‘하나님의 사람’이 늙은 선지자의 권유를 따르다가 죽게 된 것과 관련 김 교수는, ‘하나님의 사람’이 늙은 선지자에게 속은 것으로 주해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으로 주해해야 함을 강조했다.
‘하나님의 사람’이 받은 명령은 ‘벧엘에서는 먹지도 마시지도 말고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도 말라’는 쉬운 명령이었는데, 피곤하거나 여러 다른 이유들에 의해 하나님의 명령을 의도적으로 무시했을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김 교수는 “’하나님의 사람’의 이러한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전하시고자 했던 메시지가 성취되게 하셨는바, 설교자는 ‘말씀에 대한 순종의 중요성’과 함께 ‘하나님께서는 언약하신 말씀을 이뤄 가시는 분이심’을 설교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김 교수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을 신뢰하고, 돌이키며, 소망할 수 있도록 설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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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훈 박사는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 왕하 16-17장 주해와 적용’에서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 3세의 팔레스타인 정복정책에 대한 아람왕 르신과 북이스라엘의 베가 동맹, 남유다의 아하스의 친 앗수르 정책 사이의 역사적 배경을 이사야서 7-8장과 연결시켜 의미를 더했다.
장 박사는 “아하스가 절대 절명의 위기 속에서 이사야 선지자의 메시지를 무시하고 외교정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크나큰 패착을 행했다. 정치적 동맹을 통해 위기의 순간에서 잠시나마 벗어났지만, 그토록 의지했던 앗수르로 공격받아 그의 아들 히스기야 때는 동성이 함락되어 예루살렘만 남게 되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황하 18:13).”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는 구원자라는 뜻을 가졌음에도 여호와를 버리고 역시 외세에 의존함으로써 멸망당한 것은 아하스의 문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평했다.
이어 “아하스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강퍅한 왕이었지만 하나님은 그의 아들 스알야숩(남은 자가 돌아오리라/회개하리라)을 통해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다시 회복시키실 것”과 “비록 멸망당하고 포로로 잡혀갔지만, 앗수르의 타민족 이주정책을 통해 사마리아에 거주(17:24)하면서 제사장을 세워 여호와를 경배하는 법을 배우게 하신 것 등으로 열왕기 저자가 독자들로 하여금 참된 신앙의 태도가 무엇인지를 암시적으로 전달하고 있다.”고 제시했다.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열왕기하 16-17장 주해와 적용을 발제한 장세훈 교수는, 열왕기하 16-17장을 통해서 유일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 자체가 우선순위가 돼야 함에도 자신들의 판단에 따라 차선으로 밀어내버리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불신앙을 반추해 줄 것을 조언했다.
장 교수는 “16장에 나오는 남 유다의 아하스 왕과 17장에 나오는 북 이스라엘의 호세아 왕은 다소 다른 형태의 외교술을 사용하지만 이방과의 동맹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했다는 점에서는 본질상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성경본문에 의하면 앗수르를 의지해 북 이스라엘과 아람의 침략을 극복하고자 했던 아하스는 결국은 앗수르의 신을 섬기는 신봉자가 됐으며, 애굽의 힘을 빌어 앗수르를 견제하려 했던 호세아는 결국 무참한 패망을 맛보게 된다.
이에 장 교수는 “열왕기하 16-17장을 설교할 때 설교자는 ‘위기의 순간에 우리가 궁극적으로 의지해야 할 곳은 어디인가’를 묻고 이에 대한 답을 전해야 한다”면서 이사야서 8장 14절 ‘만군의 여호와 그는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리라’는 말씀을 해답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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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우 박사는‘열왕기의 아하스와 역대기의 아하스’에서 “아람 왕 르슨과 이스라엘 왕 베가가 아하스를 대적하였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였다(왕하 16:1-20)는 것과 여호와께서 아하스를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에 손에 넘기셨다(28:1-27)는 기록이 상충되는 부분을 역대기 사가가 아하스 내러티브에서 강조한 즉각적 보응(immediate retribution) 사상”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특히 “역대기 저자는 주변국가와의 전쟁이라는 열왕기 저자의 틀을 유지한 채 내용에 변화를 가져옴으로써 즉각적인 보응 사상을 강조한다.”며, “아람과 이스라엘의 연합군이 아하스를 이기지 못한 역사적 사건 대신 아람과 이스라엘이 각각 아하스를 쳤던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아하스가 서두에 소개된 그의 죄에 상응하는 벌을 받았음을 기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열왕기에서 아하스는 다메섹의 제단의 구조와 양식을 예루살렘 성전에 적용해 거룩한 성전을 훼손하는 죄를 지은 자로 기록된 반면, 역대기 저자는 보다 직접적으로 아하스가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자신과 온 이스라엘을 망하게 했으며 하나님의 성전 기구를 부수고 성전 문을 닫고 산당을 세워 다른 신에게 제사하여 여호와를 진노하게 했다고 지적한다.”며 아하스의 내러티브의 결론을 ‘즉각적 보응신학’으로 피력했다.
‘열왕기의 아하스와 역대기의 아하스’를 주제로 발제한 황선우 교수는 △’아람 왕 르슨과 이스라엘 왕 베가가 아하스를 대적하였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였다‘는 열왕기하 16장의 기록과 △’여호와께서 아하스를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에 손에 넘기셨다‘는 역대하 27장의 기록이 상충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서 주해했다.
황 교수는 “역대기 본문은 아람과 이스라엘의 연합군이 아하스를 이기지 못한 역사적 사건 대신, 아람과 이스라엘이 각각 아하스를 쳤던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아하스가 서두에 소개된 그의 죄에 상응하는 벌을 받았음을 기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역대기 저자는 주변국가와의 전쟁이라는 열왕기 저자의 틀을 유지한 채 내용에 변화를 가져옴으로써 즉각적인 보응 사상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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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예배에서 박형룡 박사는 고린도전서 13장 본문 설교를 통해 '사랑의 실천'이라는 주제로 “고린도교회는 파당과 음행, 은사, 성찬참여의 문제, 성도를 세상 법정에 고소하는 일, 성경적 부활을 믿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고 서두를 꺼냈다.
이어 “그런데도 사도 바울은 1:2에서 그런 교회를 가리켜 구원받은 성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된 무리라고 하고 있다. 13장을 염두해 12:31에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하면서 ‘사랑’을 가장 좋은 길로 제시했다.”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으로 예수님을 희생시켜 우리를 구원하시는 장치를 만드셨다. 성도된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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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알림-오늘 이후로 카페지기 사정으로 카페운영을 못합니다
카페지기 홀로 아무리 카페를 운영할려고 하였으나
물직적인 어려움으로 카페를 운영 할 수 없습니다
지병때문에 돈도 못벌고 치료받으며 살다보니 남은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돈이없어 데이터 통신비마저 못내고 카페를 지킬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도와 달라고 해도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계시지만 통신비 조차 해결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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