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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수님의 비유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2/2) <마13장을중심으로>
3. 강조점
비유의 강조점을 씨뿌리는 자와 씨앗에 두고 해석한 C.H. Dodd 는 씨뿌리고 밭을
가는 팔레스틴의 전경속에서 이해해야 된다고 하였다. 그가 이 비유에서 가르치려
고 하는 것은 농부가 헛된 노동 (여기서는 4분의 3)에 직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만족할 만한 추수가 있음을 가르치는데 있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나
라의 현재의 활동을 강조한 것으로는 씨앗의 풍성한 열매에 대한 비젼과 격려를 주
면서 또 한편으로는 헛된 수고가 따를 것을 경고한다는 것이다. 반면 흙을 강조한
학자들은 비유의 해석을 청중의 결단과 변화된 삶으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비유로 그
결과는 씨뿌리는 자나 씨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듣는자 곧 밭에 달려있다
고 하였다. 그런데 로이드 오길비는 단호하게 이 비유는 씨뿌리는 자와 흙의 비유
를 두가지로 따로 떼어 놓을 수 없다고 선언한다. 본 필자도 또한 이 견해를 동의
하며 이 비유를 해석함에 있어서 씨만을 강조해도 안되고 그렇다고 밭만을 강조할
수도 없는 비유라고 생각한다. 특히 예수님이 직접 비유를 해석한 성경 본문을 대하
노라면 그는 분명히 자신을 씨뿌리는 자로, 씨를 하나님 나라의 말씀으로, 그리고
밭을 청취자들의 마음으로 말씀하셨다.
W.W.위어스비는 이 비유를 해석하기를 씨앗은 생명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씨
뿌리는 자는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는 자이다. 그리고 밭은 사람의 마음을 가르킨다
고 말했다. 즉 씨앗과 씨뿌리는 자와 밭을 성경 문맥에서 이탈하지 아니한 범위에
서 이 씨뿌리는 자의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얻는 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
되어질때 듣는자들이 구분되어 진다. 하나님 백성은 말씀을 받아듣고 이해하며 순종
한다. 그러나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듣는데 실패한다.
즉 비유는 하나님 메시지를 수용하는 인생들의 태도에 대하여 주께서 그 모습과 그
결과까지를 말씀하신 것이라고 믿는다.
B. 알곡과 가라지 비유 (13:24 - 30,36 - 43)
1.배경
배경적인 연구로 가라지에 대해 살펴보면 가라지는 독보리의 일종으로 60cm 가량되
며 풀같으며 검은 이삭을 내는데 밀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에 초기 단계에서는 구별
할 수 없으므로 유대인들은 이것을 거짓밀이라고 불렀다. 또한 가라지가 눈에 띄
게될때에는, 이미 밀에 알곡이 맺혀 있을때이며, 두 식물의 뿌리가 서로 얽혀 있어
서 가라지를 뽑을 때에는 밀에 손상을 주므로 가라지를 뽑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
로 성급한 추수를 시도하는데 대해 경고를 하는 것이다.
2.해석
이 비유는 예수님이 씨뿌리는 자의 비유와 함께 친히 제자들에게 해석해 주신 비유
이다. 그런데 문제가 되어지는 것은 밭에 대한 견해이다. 일반적으로 많은 학자들
이 알곡과 가라지가 자라는 밭을 교회로 본다. 그러나 이를 예수님께서 밭을 세상
이라고 해석한 점을 강조하여 G.E. Ladd같은 이는 밭이 교회라는 해석을 비판하기
도 한다. 그러나 밭을 세상에만 한정시키는 것은 지나친 편견이라 하며 밭인 세상
에도 가시적 교회가 있고, 가시적 교회에도 가라지와 좋은 곡식이 공존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넓게는 세상안에 좋은 곡식과 가라지가 공존
하고 있으며, 좁게는 교회안에 좋은 곡식과 가라지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3.강조점
이 비유의 강조점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으나 하나
님의 나라가 즉각적으로 죄를 멸하고 악을 뿌리 뽑아 버리는 것이 아니며, 영광스러
운 분리가 일어날 세상 끝까지, 선인과 악인이 교회와 세상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것을 미리 알고서 낙심하지 말고 소망중에 참아 나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잡초를 뽑기 보다는 알곡을 가꾸는데 힘쓰라는 것이 본
비유의 교훈이다.
C. 겨자씨 비유 (마13:31 - 32)
이 겨자씨 비유는, 예수님께서 앞의 비유들은 해석을 주셨으나 이 비유는 해석해
주시지 않고 제자들에게 해석이 맡겨진 것 같다.
1.배 경
본 비유를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먼저 겨자씨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겨자씨는 팔레스틴의 모든 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나무는 아니지만, 3 -
45m로 자라며 년중 가을에 그 가지가 단단히 되었을 때 여러 종류의 새들이 폭풍우
가운데 이곳에서 피난처를 발견하고, 피곤할 때 휴식처가 되며, 햇빛이 뜨거울때 그
늘을 여기서 발견한다. 그런데 이 겨자씨는 너무 작아서 육안으로는 쉽게 발견하
기가 어렵다. 그래서 고대 셈족 관용어에 있어서는 작고 미미한 것을 가르칠때 이
단어를 사용한다.
2.해 석
겨자씨 자체를 "가장 작은것"과 "가장 큰것"으로 묘사함으로 미미한 처음과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큰 나중을 대조하고 있다는 것에는 학자들 사이에 모두 일치한다.
나무가 자라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현세계 속에서 작고 보잘 것 없는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예시해 준다. 하나님의 나라가 비록 처음에는 작게 시작하지만 나
중에는 창대해 진다는 견해가 현대 주석가들의 공통된 동의점이다. 그런데 이 비
유에서 새들이 깃든다는 것을 잘못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에서
공중의 새가 악한자와 동일시되고, 누가복음에서 '마귀'와 연결되며, 구약에서도 좋
은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다고 보아서 이것을 마귀와 그의 부하들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새들이 깃든다는 것은 단순히 거기에 의지하는 자에게 안식처를 제공해 준다
는 의미로 보아야 하며, 또 겨자씨가 최종적으로 새들이 깃들만큼 최종적으로 성장
했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3.강조점
일반적으로 비유의 강조점을 겨자씨가 놀라운 성장을 한것으로 보고 성장에 관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G.E. Ladd는 이 비유의 강조점은 성장이 아니라 겨자씨
한 알 자체에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비유에서 주는 교훈은 언젠가는 거대한
나무처럼될 하나님 나라가 겨자씨 처럼 보이지 않게,또는 보잘것 없는 미미한 형태
로 이미 이 세상에 현존한다는 진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D. 누룩비유 (마13:33)
1.배 경
이 비유의 배경적 고찰로서 누룩에 대해 살펴보자. 누룩은 일반적으로 각 가정에
서 떡을 만들때 사용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떡을 만드는
것을 종종 보았다. 넓은 그릇을 준비하고 나서 밀가루,물, 누룩을 취하여 한 줌의
소금을 그곳에 더하였다. 그리고 이 내용물을 혼합시켜 비비고 반죽한 후 반죽 덩
어리를 잠시 놓아둔다. 그리고 누룩은 발효되어서 반죽 덩어리를 부풀게 한다. 이
부푸는 작용이 다한 후에 빵을 굽기 시작허다.
2.해 석
유대인의 언어나 사상에서는 누룩이 언제나 악한 세력과 연관되어 사용되었다.
또한 성경안에도 누룩은 악한 것으로 묘사한 것이 나오며, 예수님 자신도 "누룩"을
나쁜 의미로 사용하신 적이 있다 (마8:15). 그래서 많은 해석자들이 누룩을 악한
것으로 해석한다. 예를들어 누룩은 악의 형태이며, 천국의 성장에 도움을 주기 보
다는 방해요소가 된다고 보거나, 교회안에 부식하게된 이단사상이나 세상의 황금만
능주의 같은 세속주의등을 경고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잘못된
것이다. 이 비유에서 나타나는 누룩은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전
체를 부풀게한 누룩으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즉 전체에 영향을 주는 힘을 나
타낸다고 볼 수 있다. 즉 예수께서 누룩을 가지고 천국을 설명하려고 하셨을때,
그의 의도는 누룩이 떡덩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예수 자신의 활동도 당시
사회속에서 누룩과 같이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겨자씨의 비유가 하나님 나라의 외적인 광대한 성장을 말한다면 누룩의 비유는 하
나님 나라의 운동이 비밀스럽게 침투하여 확장되고 그리고 피할 수 없는 결과를 가
져오는 점진적이고 내적인 성장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누룩의 비유는 겨자씨 비
유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는 점과 결말에는 광대
한 성장의 완성을 가져 오리라는 사실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성장의 비유이다.
3.강조점
이 비유는 하나님 나라가 장차 세력을 얻어 그와 견줄만한 다른 세력이 없음을 가
르쳐준다. 그러므로 이 비유의 강조점은 예수님과 더불어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궁극적이며 완전한 승리를 향해 계속적으로 그 영향력을 행사하는 성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E. 감추인 보화 비유 (마13:44)
1.배 경
배경적 고찰로 '감추인 보화'에 대하여 살펴보면, 고대 팔레스틴에서는 전쟁이 매
우 잦았으며, 도둑으로 부터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종종 사람들이 그들의 보화를 집
에다 숨겨두는데 만약에 주인이 전쟁중에 죽는다면 이 보화가 묻혀있는 사실에 대해
서는 아무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 팔레스틴에서는 '밭에 감
추인 보화'를 발견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오늘날까지도 동방에 있는 사람들
에게는 잘 알려진 정경을 묘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해 석
이 비유는 대상에 있어서 전체군중을 향해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에
게 하신 것이다. 여기서 보화를 그리스도로 보기도 하지만 이 비유는 천국에 관
한 비유이므로 보화는 천국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보화는 밭을 갈다
가 우연히 발견하게된 것이므로 하나님 나라는 자신의노력이나 계획을 세워서 찾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보여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보화를 발견한 다음에
보화의 가치를 깨닫고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 밭을 샀다. 그러나 여기서 소유을
판것을 희생이나 결단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소유를 위해
희생의 문제를 다룬다기 보다는 천국의 귀중한 가치를 소유하기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을 보여준다. 즉 하나님 나라가 무한한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다
른 모든 소유보다는 귀하다는 것이다. 또한 결단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는 비유
의 대상이 제자들이기 때문에 또다시 결단을 요구하셨을리 없기 때문이다.
3.강조점
본문의 비유는 비유를 들은 사람이 어떻게 해야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보다 하나님
나라 그 자체를 나타내는 것이 우선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비유의 강조점은 밭
에 감추인 보화처럼 하나님 나라가 고귀하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모든 소유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귀중한 보물이 하나님 나라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가치를 인
식할 때에 기쁨을 갖게 되어지며 그 다음으로 자연적으로 나의 것을 포기하는 행동
을 하게 되어지는 것이다.
F. 진주장사 비유 (마13:45 - 46)
1.배 경
구약시대에는 진주가 분명히 알려지지 아니했다. 특히 진주는 히브리인들에게는
그리 값진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신약시대 1세기에는 진주는 부자의 신분을 입증
하는 상징이 되어졌으며, 상인들은 홍해로, 페르시아만으로, 심지어는 인도까지 진
주를 찾기위해 갔다. 사실 진주는 홍해에서 산출되었으나 좀 나은것은 페르시아만
에서와 실론 해변과 인도에서 산출되었다. 그래서 상인들은 크고 좀더 나은 진주를
찾기 위해서 여행을 해야만 했다.
2.해 석
이 비유는 내용이 아주 단순하다. 완전히 진주를 찾아 일생을 보낸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사기위해 그가 소유하고 있던 모든 것을 팔았다는 것이다. 그러
나 해석상에 있어서 진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에는 여러가지 견해들이 있다.
천국으로 보는 견해, 와 교회로 보는 견해, 그리스도로 보는 견해 , 복음으로 보는
견해 가 있다.
또한 이 비유에 대한 해석도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지는데, 첫째로 진주는 천국이며
진주장사는 천국을 구하는자라는 해석과, 둘째로 진주는 교회이며 진주장사는 그리
스도라하여 자신의 생명까지 아낌없이 주셨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모든 학자의 공통점이 있다면 천국도, 그리스도도, 복음도 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3.강조점
본 비유의 강조점은 하나님 나라는 외면적인 표시나 가시적인 영광은 없지만 하나
님 나라는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통하여 현재한다. 그러기에 그 나라는 다른 모든
소유보다 값진 보화이며 가치에 있어서 다른 모든 것을 능가하는 진주인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어떤 값을 치루더라도 귀한 가치가 있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 결단
이 요구되는 것이다.
본 비유의 교훈점은 필요한 희생에 관하여 말한다. 상인은 값진 진주를 사기 위하
여 즉 최선을 위해 차선을 버려야 했다. 즉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는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있어야 한다.
G. 그물비유 (마13:47 - 50)
천국에 관한 비유중 마지막에 위치한 이 그물비유는 앞에 나타난 알곡과 가라지 비
유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 강조점에서 약간의 차이
가 있다.
1.배 경
먼저 배경적 연구로서 그물에 대하여 살펴보자. 예수님 당시에는 그물로 고기를
잡는 것이 매우 효율적인 고기잡이 방법이었으며, 예수님의 제자들의 직업은 대부
분 어부였기 때문에 이 비유는 쉽게 제자들에게 이해되어 진듯하다. 이 비유에 나
타난 그물은 예망이라고 불려지는 것으로 높이가 약 2m, 길이는 100m정도 되었으며,
윗부분은 무거워서 밑으로 잠기게 되어 있다. 이 그물을 바다에 펴서 양끝을 잡아
당겨 그안에 걸려든 물고기는 모두 해변가로 끌어내어오게 된다. 그물속의 고기는
여러가지가 뒤섞여 있기 때문에 어부들이 먹을 수 있는 고기와 먹을 수 없는 고기를
가려내지 않으면 안된다. 이와같은 정황 가운데 예수님은 그물 비유를 통해 하나
님 나라의 마지막 심판에 대한 표현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2.해 석
예수님께서는 심판의 날을 묘사하기 위하여 그물 비유를 사용하셨다. 여기서 '좋
은것'과 '못된것'은 식용 가능한 고기와 불가능한 고기를 말하는데 이것은 '의인'과
'악인'을 의미한다(마13:49). 여기서 그물은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인 복음전파와
목회의 사역을 뜻하고, 바다는 타락한 전 인류를 말하며 어부는 그리스도와 그의 명
령에 따라 복음을 전하는 종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비유는 심판의 비유라는 점에는 일치점을 보였으나 교회의 심판으로 보는 견해
와 세상의 전체적 심판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교회의 심판으로 보는 견해는 '의인
중에서' 라는 표현과, 바다의 모든 고기를 잡은 것이 아니라 일부를 잡았기 때문에
최후의 심판을 말하기 보다는 교회의 심판을 말하는 것으로 보았다. R.C. Trench는
교회의 최후 완성을 지지하고 그것은 그 현재에 있어서의 긴장과 점차적 발전을 의
미한다고 한다. J. Jeremias는 이 비유를 생의 정황으로서 바리새인이 율법에 충
성을 바치는 순수한 교단을 세워 보려고 애쓴 것에 대립하여 주신 가르침이라고 한
다. 그러나 전체적인 심판으로 보는 견해는 예수님께서는 보편적인 진리를 나타내
기 위해 제한된 유추를 사용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그와같은 유추가 여기에서도
적용되어 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일부분의 물고기라고 그의미를 축소해서 보
는 것은 잘못이며, 또한 심판은 부분적 심판이 아니라 전체적 심판이므로 교회에 대
한 심판만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물비유는 전체적으로 그
분리에 촤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즉 마지막 심판을 지칭하고 있는 점이다.
3.강조점
이 비유의 강조점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최종적인 심판을 경고하셨으며, 그
것에 대비해야 할 것을 권면하신 것이라 하겠다.
이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적용해야 할 교훈은 선악간에 완전한 분리는 앞으로 이루
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백성으로 발견되기위해 현재 주어진 자기 은혜의 모
든 수단을 사용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H.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비유 (마13:51 - 52)
천국에 대한 7가지 비유를 다 마치신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고 물으셨고 제자들은 그러하다고 대답했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천국
비밀을 제자들은 깨달았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깨달았다는 제자들에게 말씀하
시기를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이 비유는 Trench, Dodd, Guthrie, Scoffid등 많은 주
석학자들로 부터 따돌림을 받는 고아가 되고 있다. 물론 이 비유는 천국의 비밀에
대한 직접적인 비유라고는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비유가 천국과 이미 관계를 맺
은 제자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의 질문에서 부터
나타난다.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는 질문은 천국의 특성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 중에서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질문할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다 깨달았다고 대답하므로 질문할 것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다 깨달았다
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제 사명을 주셨다. 제자들의 사명은 주님이 떠나시고
나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천국비밀을 맡아서 전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옛
것" 과 "새것"에 대한 견해는 다양한데 Calvin은 각 사람의 이해에 지혜롭고 적합
하게 적용하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말씀의 분배로 보았고 이레네우스는 구약과 신
약으로 보았으며 옛 집필가들은 율법과 복음으로 보았다. 여기서 "새것"과 "옛것"
을 신약과 구약, 혹은 복음과 율법으로 보는 것은 문맥상으로는 큰 결함이 없다.
다만 그 근거가 희박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7가지 비유로 천국의 비밀을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제자들
은 그 비유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했다. 깨달은 천국의 제자들은 그들의 사역을 통
해서 "옛것" 과 "새것"을 꺼내오는 일을 해야 했는데, 제자들은 그 역사를 잘 감당
했다. 사도행전 2장 이후에 보면 그들은 율법으로 백성의 죄를 지적하고 복음의 은
혜로 그들을 초대하여 백성앞에 천국의 비밀을 알리는 사명을 훌륭히 수행한 것을
볼 수 있다. 천국의 제자된 이들은 그들의 사역에서 천국의 자유함과 풍성함에 들
어가도록 허락되어 있는 것과 그 나라의 은헤와 영광등을 분명히 드러내는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아름답게 잘 감당했다.
제 장. 마태복음 13장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해석
A.현재적인 하나님 나라와 수용하는 태도의 비유 - 씨뿌리는 비유
이 비유의 핵심은 천국의 성장하는 하나님 나라를 기본 바탕으로한 현재적 하나님
나라이다. G. Bornkamn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베풀어
졌으나 사람들이 그 조짐을 눈치채지 못한데에 대한 현재로 임한 하나님 나라를 말
하고 있다. 래드도 "비밀은 예수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들어왔고 보이지 않는 형태로 사람들 가운데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 말한
다. 하나님 나라는 이처럼 세상에 들어왔고 활동하고 있다. 이 나라는 어떤 이에게
는 영접을 받았지만 어떤 이에게는 거절당했다. 그 나라는 지금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성공도 사람들의 응답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 비유는 하나님 나라
가 곧 사람들 가운데 임했다는 선포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묵시론적 하나님 나라
의 기대와는 달리 강한 능력으로서의 임재보다는 농부가 뿌린 씨앗처럼 현재적 상황
에서 활동하는 그 나라의 임재를 말씀하셨다. 이 비유에서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
는 사람들 중에서 조용하고 은밀하게 그러나 강요없이 거절의 부정적인 면을 안고
뿌려지는 것이다. 이 비유에서는 추수에 대한 강조점보다는 씨뿌리는 일의 본질, 즉
현재적 활동으로서의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강하다. 이 비유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의 현재성은 지금 여기서(Here and Now) 그 나라가 자라고 있으며 그 나라는 성도의
참예를 촉구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받아들여지는 곳에서는 그 나라의 말씀의
말은 열매를 맺게 되며, 하나님 나라의 말씀은 실질적으로 하나님 나라 자체와 동일
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에 이미 현존하고 있다. 또한 이것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알게 하셨으며,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시작된 천국에 대한
기본적인 통찰력을 허락된 -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은 - 자들은 현존하는 하나님 나
라에 참여하여 활동하고 있다.
B.하나님 나라의 성장의 비유 - 겨자씨 비유-누룩비유
성장하는 천국에 대하여 언급하기 전에 언급할 것은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는 결코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성장하는 하나님 나라는 현재적 천국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여기서는 앞에서 언급한 현재적 천국 개념을 함축하고 있
다. 그러면 이 비유들이 내포하고 있는 성장하는 하나님 나라는 어떤 것인가 ? 겨
자씨 비유를 보면 하나님 나라의 성장과 범위를 보여주는데 '가장 작은 것'과 '가장
큰 것'이란 두 최상급의 사용에서 그것을 볼 수 있다. 이 나라는 성장하여 '그 나
무에 새가 깃들고 짐승들이 그늘을 찾는다' 는 말처럼 마지막 때를 향하여 자라가는
외적인 성장을 말한다. 누룩의 비유에서 이 개념은 더 잘 나타난다. 이 비유의 핵
심은 반죽 덩어리 전체가 부푸는데 있다. 누룩은 겨자씨와 약간의 차이를 가지는데
겨자씨는 큰 나무가 될 천국의 현현이 작은 씨와 같다는 것이고 누룩은 하나님 나라
가 부풀고 퍼져 큰 힘의 주권으로 성장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이 두 비
유의 핵심은 한 외적 상태에 비교되는 내적 상태로의 '성장' 에 있다. 마태와 누가
도 겨자씨와 누룩 비유를 짝지어 놓았는데 예레미아스는 두 비유를 '이중비유'라 하
여 겨자씨와 누룩비유를 짝지어 해석한다.
이 성장의 비유를 통해서 얻은 결론은 성장의 비유들은 모두 하나님 나라의 두 가
지 성격, 즉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 모두를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먼저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살펴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세상속에 도래하
였다고 말한다. 마치 겨자씨가 밭에 뿌려지듯이 또는 마치 누룩이 가루반죽 속에
스며들었듯이 하나님의 나라의 운동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예수님
의 삶의 자라에서 찾아본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몇몇의 어부들과 세리 그리고 창기,
소자등에 의해서 아주 보잘것 없이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마치 씨중에 가장 작은
겨자씨와 같이 미미한 것이었다. 이와같이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알리는 예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서기관, 바리새인, 제사장, 그리고 로마제국등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전혀 알아 차라리 못하였다.
다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을 살펴 보자면, 겨자씨와 같이 보잘 것 없이 시작
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미래적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눈에 시시하고 보잘 것 없
이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미래의 위대한 완성은 마치 씨중에 가장 작은 겨자씨가 크
게 자라듯이, 또는 소량의 누룩이 큰 밀가루 반죽 덩어리를 모두 부풀게 하듯이, 또
는 한 알의씨가 30배 60배 100배의 놀라운 결실을 맺듯이 성취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한 모든 사람들에게는 절망과 경악의
사건일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승리와 기쁨의 사건일 것이다.
지금 우리들과 우리의 시대는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 사이에 긴장관
계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
성장의 비유들을 통해서 얻은 두 번째 결론은,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 사
이의 긴장관계 속에서 그 나라가 신속하게 그러나 점진적으로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 나라의 이러한 성장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특성을 의미한다는 것
이다. 하나님 나라의 성장은 마치 밭에 뿌려진 씨가 밤마다 은밀하게 또는 비밀스
럽게 자라듯이 그리고 마치 누룩이 가루반죽 덩이를 차츰 차츰 부풀게 하듯이 계속
적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성장은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고 방해하는 여러 요소
들과 원수들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겨자씨와 같은 광대한 외적 성장과, 누
룩과 같이 숨겨진 내적 성장이 미래의 완성을 향해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그
러므로 이 성장의 비유들은 여러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고 방해하는 세력
들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의 성장이 혹시 실패로 끝나지 않을까 염려할찌라도 결국에
는 이 모든 것이 이기고 승리하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보여주며 또한 하나님 나라
의 도래와 성장 그리고 마지막 완성의 기쁨을 말해 주고 있는 비유이다.
C.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결단에 관한 비유 - 감추인 보화-진주장사 비유
이 두 비유가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의 가치인가? 아니면 그 왕국
을 들어가는데 치러야 할 희생인가? C.H. Dodd는 하나님 나라의 초월적인 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불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예수님과
그의 청중 모두에 대하여 주어졌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가 어떤 진귀한 실재라고 말
하는 것은 분명히 조소거리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두 비유는 예수님
이 아낌없는 희생의 요구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 되었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 영웅
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결단이나 희생으로만 본다면 이 비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결정적인 말은 "기뻐하여"( s s )이다. 이 두 비유의
주인공이 소유물을 다 팔아 샀다는 것은 희생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결
심을 촉구한 동기가 그들이 발견한 보화와 진주의 위용에 의해 압도 당한 것이기 때
문이다. 그러므로 리네만은 결단은 희생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희생'이란 용어
는 그 중심 요점을 묘사하기에는 부적절 하다면서 반대한다. 그녀는 일생에 단 한
번 발견하기 어려운 보화와 진주를 발견하고 샀다는 것은 전혀 희생이 아니라고 한
다. 즉 지고한 가치를 획득하기 위하여 보다 가치가 덜한 어떤 것을 양보하는 것은
희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두 비유의 강조점은 진주와 보화를 얻기 위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사는 것처
럼 하나님 나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모든 소유보다
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중한 보물이 하나님 나라이다. 또한 하나님 나라는 사람
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것이며, 그 보화는 너무 귀해서 관심을 가지고 소중히 생각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으며, 발견한 후에는 사람이 그 보화를 얻으려는
마땅한 수고와 기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비유들은 보화를 찾지 않고도 발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하나님 나
라는 사람이 얼마나 오래, 얼마나 열심히 찾았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보화인
하나님 나라를 발견한 후 그 보화의 가치를 알았는가와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팔았
다는데 있다. 즉 하나님 나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와, 그 가치를 느끼는 자가 그
것 때문에 모든 것을 기꺼이 포기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깨닫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자들은 보다 중요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즉각적이며, 적극
적인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 결단은 전부를 제공하고 그것을 사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모든 소유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귀중한 보
물인 이 가치를 인식할때에 기쁨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나의 것을 포기하는
행동을 하게 되어지는 것이다.
D.하나님 나라의 마지막 심판에 대한 비유 - 알곡과 가라지-그물비유.
마지막 심판을 가르키는 비유는 가라지 비유와 그물 비유이다. 이 두 비유는 마태
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는데 장래 하나님 나라의 심판을 경고하고 있다. 이 두 비유
의 차이점이 있다면, 대상에 있어서 가라지 비유가 모든 청중을 가르치고 있다면 그
물 비유는 제자들에게 만으로 제한했고, 전자가 뭍의 광경이라면 후자는 바다를 배
경으로 비유하신다. 그리고 전자는 예수님의 인내 사상을 강조하는데 반해서 후자는
이것이 나타나지 않고, 가라지 비유는 그물 비유에 비해 더욱 서술적이다. 또한
공통점이 있다면 교회에는 선과 악이 한테 섞여 있다는 것과 나아가서 그 둘을 갈라
놓을때가 설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 두 비유의 해석의 촤점은 심판날로 모아
져야 한다. 즉 이 두 비유는 종말론적 심판성을 말한다. 여기서 심판을 받는 모
습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조차도 종말론적 분리까지는 순수한 공동체가 되지 못한다
는 것을 시사한다. 하나님 나라에 들기 위한 마지막 심판에서 공동체는 분류당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이룩될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교
회에 적용되며 제자들의 실제 상황에 적용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 비유에서 주는
위기성과 경고성은 바로 미래적인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가득히 담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는 현재성을 띄면서 점진적으로 성장하여 추수하는 완성된 한 때를 향해
나아감을 본다. 하나님 나라의 이러한 현재성은 미래에 둘려쌓여 있는 즉 미래성을
통해서만 현재적 하나님 나라가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 하나님 나라의 중심
진리는 인간의 의지나 성장 준비등이 어우러질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이라 여겨진
다. N. Perrin은 "이 비유에서 하나님 나라의 현제성과 동시에 종말론적인 결실이
강조된다" 하여 인간 참여의 모습을 언급했다.
이상에서 본 비유들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그 나라의 양면성
을 강조하고, 비유에 있어서 좋은 씨와 가라지,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등의 비유의
공통점은 현재성과 함께 심판을 나타내는 미래성이다. 이 하나님 나라의 현실성과
미래성 그리고 비유들에 나타난 특성들은 실제적 상황에서는 차이가 있다 할지라도
본질상 천국 백성의 누림의 차원에서는 동질성을 지닌다 하겠다. 하나님 나라는 인
간에게 다가오고 임하며 활동한다. 그리고 성악간에 완전한 분리는 앞으로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한 모든 사람들에게는 절
망과 경악의 사건일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승리와 기쁨의 사건
일 것이다. 이 심판의 비유는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보여준다.
비유속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를 요약해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중에 조용하고
은밀하게 그러나 강요없이 거절의 부정적인 면을 안고 뿌려진다. 그리고 그 하나님
의 나라는 보이지 않게 임하여 성장하고 또한 숨길 수 없이 성장하고 있다. 또한
보화와 진주장사의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보여주며, 그 귀중한 가치
를 위하여 전체가 허비되더라도 그것을 위해 결단할 것을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마지막 종말론적 심판으로 임할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 론
이상으로 예수님의 비유의 기본개념과 해석원리, 비유의 해석 그리고 비유에 나타
난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 보았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비유라는 말의 뜻은 구약과 신약에서 포괄적으로 사용되었는
데 비유란 일상생활이나 상징적인 사건을 통하여 도덕적이고 영적인 진리를 비교하
여 전달하기 위한 길거나 간결한 여러가지 말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리고 예수님께서 비유를 사용하신 목적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위에 대해 마음을 열
지 아니하고 도리어 비방하며 모함하는 인생들에게는 비유를 사용함으로 하나님 나
라의 비밀을 숨기고 심판을 받게 하는 은폐적인 목적과 반대로 마음이 열린 백성들
에게는 하나님 나라를 명백하고 풍성히 가르치려는 계시적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
었다.
또한 비유의 해석사를 통하여 안디옥 학파의 문자적 해석이 있었으나 더 영향력이
있었던 풍유적 해석 방법이 주류를 이루어 19세기 까지 극단적인 풍유적 해석이 지
배적이었다. 그러던 것이 J. Julich의 출현과 C.H. Dodd, J. Jeremias 의 등장으로
풍유적 해석이 결정적으로 무너졌으며 19세기에 이르러는 비평주의적 영향으로 성경
의 영감성을 부인하는 경향과, 최근에는 실존주의 영향으로 인간을 위한 말씀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 것을 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 비유해석에서 실재적인 원리는 철저한 배경 연구와 문맥 연구를 통하여
그 강조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야 할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해석 원리에 의해
마태복음 13장의 8개의 비유를 해석해 보았는데 7개의 비유가 천국에 관한 동일한
주제이지만 그 강조점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씨뿌리는 비유에서는 하나님 나라가 이미 이 세상에 현존하고 있다는 것이며, 겨자
씨 비유에서는 하나님 나라가 겨자씨 처럼 작고 눈에 잘 보이지 않으나 현존하여 성
장하고 있으며 누룩의 비유처럼 급속도로 전체를 변화시키듯이 이 세상을 완전히 변
화 시킬것을 말하며, 감추인 보화와 진주 비유에서는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서 가
장 고귀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며,알곡과 가라지 비유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
상에 현존하고 있지만 이 세상에 선인과 악인이 공존한다는 것이며, 천국의 마지막
비유인 그물 비유에서는 마침내 하나님 나라의 최종적인 심판이 이루어 진다. 그러
므로 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달은 천국의 서기관된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비
밀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을 교훈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천국에
관한 비유는 그 강조점이 다르며 이러한 강조점이 연결되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전체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즉 부분부분이 모여서 전체를 나
타내며 각 부분은 전체와 관련해서 해석될 때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를 올바르
게 이해 할 수 있다고 하겠다.
결론적으로 하나님 나라는 양면성을 보여준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에게 다가오고,
임하며, 활동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깨닫고 결단한 제자된
우리들에게 그 나라를 허락하신다. 인간은 하나님 나라의 받아들임을 거절할 수는
있지만 그 나라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 그리고 그 나라에 거하는 서기관된 제자들
은 그 하나님의 나라의 기쁨을 누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누리고 있으며, 또한 다가
오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기다리며 제자된 서기관의 모습으로 사명을 다하게 한
다.
본 논문을 마무리 하면서 학문적 식견의 비천함으로 만족할만한 큰 성과는 얻지는
못하였으나 나름대로의 비유에 대한 이해와 더 깊은 학문적 연구의 방향에 대해서
한 지표를 얻을 수 있게 되어 자그마한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끝으로 보다 비유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를 통하여 한국교계에 올바른 해석과 적용이 주어졌으면 한다.
도 서 목 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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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신학대학 목회대학원
김 영 윤
예수님의 비유속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지도교수 고 재 봉
77 C.H.Dodd, op.cit., p.98.
78 J.D.Pentecost, op.cit., p.54.
79 Ibid.
80 W.W.Wiersbe, op.cit., p.19.
81 S.Kistermaker, op.cit., p.19.
82 W.W.Barclay, op.cit., p.296.
83 H.Ridderbos, op.cit., p.200.
84 박윤선, [공관복음 주석] (서울:영음사,1982), pp.338-340.
85 G.E.Ladd, op.cit., p.103.
86 이런 견해는 R.Trench, 박윤선, 신성종, 전경연등이 동의한다.
87 오병세, op.cit., p.131.
88 Ibid.
89 W.Hendriskson, op.cit., p.298.
90 오병세, op.cit., p.131.
91 전경연, op.cit., p.55.
92 G.E.Ladd, op.cit., p.105.
93 H.Lockyer, [비유], 로고스 번역 위원회 역(서울:로고스 출판사,19
83), pp.334-337.
94 R.Stein, op.cit., p.161.
95 곽안진, [성서의 비유] (서울:대한 기독교 출판사,1976), p.78.
96 G.E.Ladd, op.cit., p.103.
97 Ibid.
98 W.Barclay, op.cit., p.64.
99 S.Kistermaker, op.cit., p.66.
100 W.Barclay, op.cit., p.131.
101 김득종, op.cit., p.129.
102 신성종, [신약신학] (서울:예수교 문서 선교회,1981), p.94.
103 H.Ridderbos, op.cit., p.211.
104 김득중, op.cit., p.129.
105 G.E.Ladd, op.cit., pp.278-279.
106 S.J.Kistmaker, op.cit., p.70.
107 W.Barclay, op.cit., p.138.
108 S.J.Kistmaker, op.cit., p.73.
109 신성종, op.cit., p.6.
110 오병세, op.cit., p.132.
111 G.E.Ladd, op.cit., p.107.
112 S.Kistermaker, op.cit., p.71.
113 Ibid., pp.71-72.
114 W.Barclay, op.cit., p.80.
115 W.Barciay 는 진주를 천국으로 본다.
116 Loekyer, Trench, 캠멜 몰간.
117 Lensky, 신성종.
118 박윤선, op.cit., p.348.
119 R.C.Trench, op.cit., p.68.
120 G.E.Ladd, op.cit., p.108.
121 W.Barclay, op. cit., p.82.
122 R.Eurle, [비콘 성경주석](서울:보이스사,1976), p.141.
123 S.Kistermaker, op.cit., p.75.
124 R.C.trench, op.cit., p.70.
125 J.D.Pentecost, op.cit., p.69.
126 S.Kistermaker, op.cit., p.76.
127 신성종,[신약신학], op.cit., p.96.
128 R.C.Trench, op.cit., p.51.
129 J.Jeremias, op.cit., p.155.
130 R.H.Stein, op.cit., pp.140-141.
131 H.Ridderbos, op.cit., p.203.
132 R.H.Stein, op.cit., p.142.
133 R.C.Trech, op.cit., p.74.
134 신성종, [신약신학], p.97.
135 W.Hendrikson ,op.cit., p.579.
136 H.Lockyer, op.cit., p.372.
137 J.Calvin, [신약성경주석 1], 칼빈 주석 편찬위원회 역 (서울:아가페 출
판사,1984), p.530.
138 신성종, [신약신학], p.97.
139 G.Bornkam, [나사렛 예수], p.111.
140 G.E.Ladd, [신약신학], p.205.
141 Ibid., p.112.
142 Ibid., p.102.
143 Ibid.
144 R.H.Stein, op.cit., p.147.
145 J.Jeremias, op.cit., p.87.
146 A.M.Hunter, op.cit., p.47.
147 C.H.Dodd, op.cit., p.86.
148 R.H.Stein, op.cit., p.184.
149 J.Jeremias, op.cit., p.194.
150 R.H.Stein, op.cit., pp.78-79.
151 S.Kistermaker, op.cit., p.74.
152 H.Lockyer, op.cit., p.364.
153 S.Kistermaker, op.cit., p.74.
154 G.E.Ladd, [예수와 하나님의 나라], op.cit., p.237.
155 G.E.Ladd, [신약신학], p.108.
156 H.Ridderbos, op.cit., p.73.
157 성장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현제적 천국을 바탕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