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Aftershock)
최용현(수필가)
지진을 소재로 한 영화는 상당히 많고, ‘대지진’이라는 제목을 가진 영화도 5~6편이나 된다. 그중에서 진도 7.8 규모의 단 23초간의 지진으로 27만 명이 사망(공식사망자 25만 5천명)하여 20세기 최고의 피해를 기록한 당산대지진을 다룬 중국영화 ‘대지진’(2010년)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러닝 타임 136분.
펑 샤오강 감독은 당산대지진으로 희생된 영혼들을 기리는 영화를 제작해 달라는 당산시의 부탁을 받고 여류작가 장링의 소설 ‘여진’을 원작으로 하여 ‘대지진(Aftershock)’을 연출하게 된다. 이 영화는 영어 제목에서 드러나듯 지진 이후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겪어온 고통과 치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1976년 7월 28일 중국 하북성 당산. 위엔니(쉬판 扮)는 남편과 일곱 살 쌍둥이 남매 팡다, 팡등과 함께 평온하게 살아가고 있다. 부부가 함께 무더위를 피해 빌라 밖으로 나와 자신들의 화물차에 머물던 중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 빌라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남편은 아이들을 구하러 빌라 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아비규환 속에서 무너진 건물잔해 사이를 정신없이 헤집고 다니던 위엔니가 먼저 찾은 남편은 이미 숨졌고, 쌍둥이 남매는 콘크리트 덩어리 양쪽에 깔려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었다. 콘크리트를 한쪽으로 들어 올리면 반대쪽은 치명타가 되는 상황이었다. 구조요원들이 누구를 살릴 것인지 묻자, 위엔니가 ‘둘 다 살려주세요.’ 하고 대답한다.
구조요원들이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자, 그때서야 위엔니는 ‘아들을 살려주세요.’ 하고 외친다. 이 소리를 들은 딸 팡등은 눈물을 흘리면서 죽어가고, 한쪽 팔이 깔린 아들 팡다는 살아남게 된다. 죽은 딸의 시체를 안은 위엔니는 오열하면서 지진사망자 안치소로 가서 남편의 사체 옆에 팡등을 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죽은 줄 알았던 팡등은 기적적으로 일어나 폐허 속에서 헤매다가 구조요원에게 발견되어 이재민보호소로 옮겨진다. 그러다가 구조대로 파견된, 아이가 없는 군인 부부에게 입양된다. 팡등은 실어증으로 한동안 말을 하지 못한다.
한편, 위엔니는 새로 이사한 집 거실 벽에 죽은 남편과 딸의 액자를 걸어놓고 봉제공장에서 일하면서 한쪽 팔을 잃은 아들 팡다를 꿋꿋이 키워낸다. 재혼을 하려고 접근하는 남자도 있었지만 단호히 거절한다. 성장한 아들 팡다(리천 扮)는 대학에 가지 않고 항주로 가서 관광안내원을 하며 억척같이 돈을 번다.
양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 팡등(장징추 扮)은 양아버지(진도명 扮)의 지나친 보살핌을 양어머니가 경계하자,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항주의 의대에 진학하여 기숙사에 입소한다. 몇 년 후, 병에 걸린 양어머니는 팡등에게 ‘당산에 가서 가족을 찾으라.’고 말하고 세상을 뜬다. 팡등은 친절한 남자선배와 사귀다가 그의 아이를 임신을 하게 되는데, 그가 낙태를 강요하자 학교를 자퇴하고 사라진다.
한편, 돈을 많이 벌어서 회사를 차린 팡다는 어머니를 항주로 모셔가려고 여자친구와 함께 찾아오는데, 어머니는 이곳을 떠나면 네 아버지와 누이의 영혼이 찾아올 수 없다며 한사코 당산을 떠나지 않겠다고 한다. 여자친구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은 팡다는 봉제 일을 하는 어머니를 쉬게 하려고 아이를 맡기고 간다.
10년 후, 딸을 데리고 양아버지를 찾아온 팡등은 당산대지진 때 자신이 어머니에게 버려진 기억 때문에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후 나이 많은 외국인 남편을 만나서 캐나다에서 살게 된 사연까지….
2008년, 사천성에 대지진이 발생한다. 뉴스를 본 팡다와 팡등은 구조대원을 자원하여 지진현장으로 온다. 팡등은 건물잔해에 다리가 깔린 어린 딸을 살리기 위해 한쪽 다리를 절단케 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자신의 어머니가 짊어졌던 마음의 짐과 고통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던 중, 옆에서 두 남자가 당산대지진 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한 남자가 자신의 쌍둥이 오빠임을 알게 된다.
팡등은 오빠를 따라와서 32년 만에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 어머니가 무릎을 꿇고 ‘날 용서하렴….’ 하고 말하자 팡등은 ‘어머니, 일어나세요.’ 하면서 눈물만 뚝뚝 흘린다. 다음날, 가족들은 당산대지진 희생자 묘지를 찾아가는데, 어머니가 아버지의 무덤 옆에 팡등의 가상무덤을 만들어놓고 그 곳에 책가방과 함께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해마다 교과서들을 갖다놓은 것을 보고 팡등은 ‘32년 동안 어머니를 괴롭혀서 죄송해요.’ 하면서 울면서 사죄한다. 두 모녀가 부둥켜안으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는 당산 대지진 때 헤어진 모녀가 사천성 대지진을 계기로 다시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중국 최초로 IMAX 스크린에 담아 아시아권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 또 개봉 17일 만에 6억6천만 위안(한화 1,130억 원)의 매출을 올려, 중국 및 아시아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는데, 어인 일인지 우리나라에서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당산시 인구가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 정도로 참혹하게 폐허가 된 당산대지진의 현장은 어디까지가 실사이고 어느 부분이 컴퓨터그래픽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리얼하다. 이 장면들은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에 참여했던 우리나라 특수 분장 팀과 특수 효과 팀이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재난에서 살아남은 것은 분명히 행운이지만, 그 행운아들은 남들이 모르는 후유증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살아가게 된다. 이 영화의 어머니와 쌍둥이 아들딸도 지진 이후에 살아온 날들이 눈물겹지 않은가.
세상의 때가 많이 묻어서 그런지 이제 영화를 봐도 웬만하면 눈물을 흘리지 않는데, 32년 만에 모녀가 상봉하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울컥하며 눈물을 쏟고 말았다.
첫댓글 영화를 못 봐서 어떤 작품인지 잘 모르지만, 중국 영화라고 하니 왠지(?) 그렇네요.
코로나 이후론 중국이라는 이름만 들어도(죄송)
코로나와 영화를 결부시키는 것은 넌센스죠.
코로나는 코로나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평가해야죠.^^
등업 되면 꼭 보고 싶네요. 영화에 관한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케이블에서 가끔씩 상영하더군요.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는, 가끔이 찡해지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