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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이 진정한 평화의 왕이십니다.(행24:3, 갈5:22-23, 눅19:41-42)
2014, 8/3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행24:3, 갈5:22-23, 눅19:41-42절 말씀으로“주님이 진정한 평화의 왕이십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선포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태풍이 올라와 신경 쓰입니다.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도해주십시오. 지금이 휴가피크인데 어딜 가든 안전운전하시고 건강한 휴가 되시기 바라고, 이왕가시면 이해하고 양보하면서 기분 좋게 다녀오십시오.
우리 모두 앞뒤, 옆에 계신 분들과 함께 인사 나눕니다. 샬롬, 사랑합니다.
본서는 복음의 뿌리가 견고하지 못한 갈라디아교회에 이단들이 들어와 예수만 믿는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율법도 지키고, 할례도 행해야한다고 주장한 것에 동조하여 교인들의 신앙이 크게 흔들렸고, 목회자의 권위까지도 부인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위기감속에서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다는 십자가복음의 우월성을 성령의 감동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말씀이 좀 전투적이고, 격앙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데 이단과 싸우는데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하나님은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세상이 주는 평화, 팍스(Pax)입니다.(행24:3절)
둘째로,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 샬롬입니다.(갈5:22-23절)
셋째로 주님이 진정한 평화의 왕이십니다.(눅19:41-42)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사회를 보면 전투적이고 적대적인 분위기가 팽배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귀한 존재들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섬기고 이해하고 용서하면서 살면 안 되는 것일까요? 네 사단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어서 안 됩니다. 때문에 갈수록 진실이 사라지고 거짓과 권모술수가 난무하고, 자극적이고 엽기적이고, 갈수록 하나님께 적대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달라야합니다. 왜냐면 우리는 거듭난 하나님나라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살아가는 방법도 저들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은 힘에 의한 사랑, 힘의 의한 평화, 네가 죽어야 내가 살고, 네가 실패해야 내가 성공한다는 제로섬게임이지만 하나님나라백성은 주님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진정한 평화, 샬롬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항상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진정한 평화, 샬롬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따라가면서 진정한 평화를 누리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세상이 주는 평화, 팍스(Pax)입니다.(행24:3절)
본문 행24:3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을 인하여 여러 가지로 개량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감사무지 하옵나이다.”아멘.
본문은 사도바울이 벨릭스 로마총독 앞에서 변론하면서 벨릭스의 힘으로 평안을 누린다고 말하는데 이런 평화가 바로 팍스(Pax)라는 세상이 주는 평화입니다.
흔히 팍스로마나, 팍스아메리카나로 부르는데 로마 힘에 의한 세계질서, 미국의 힘에 의한 세계평화를 말합니다. 이 평화는 힘에 의해 강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힘의 균형이 깨지면 힘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혼란과 무질서, 반역과 전쟁을 겪습니다. 마지막 주님 재림 때도 잠시잠깐 적그리스도의 힘에 의한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미국이 강력한 힘으로 세계경찰국가 노릇을 했는데 힘이 빠지자 중국이 그 빈틈을 메우면서 중국과 미국이 힘겨루기를 하여 세계가 불안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는 힘 있는 두 나라 사이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하고 있는데 말이 좋아 두나라 사이에서 균형자역할이지 눈치 보는 겁니다. 힘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갖고, 힘없는 사람은 힘 있는 사람 눈치 보면서 살아가는 이런 팍스, 이런 평화는 오래가지도 못하고 하나님과도 상관없습니다.
살전5:3절 말씀에“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천국시민권자인 기독인도 세상 사람과 똑같이 내가 가진 힘으로 평화를 이루려고 합니다.
천국백성은 태생이 다르고 나중결과도 다르기 때문에 힘에 의존하면 안 됩니다.
사람들이 돈과 권력과 명예를 가지려고 발버둥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혹시 그걸 통해 내가 높아지고, 존경받고, 사람들이 굽신거리길 원하거나 대접받는 것을 좋아한다면 이미 세상의 방법으로 평화를 추구한 것입니다.
또 교회를 사유화하거나 교회성장을 자신을 드러내는 도구로 삼거나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대접받으려는 마음으로 목회한다면 그것도 팍스입니다.
높아질수록, 힘이 생길수록 겸손해지고 낮아지는 것이 진정한 예수쟁이입니다.
롬14:17절 말씀에“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외면한 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힘으로 허탄한 평화만을 추구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될 뿐임을 기억하시고, 여러분들이 빌2:12절 말씀처럼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시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 샬롬입니다.(갈5:22-23절)
갈5:22-23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아멘.
우리가 누리는 평화에는 세상의 힘, 다시 말해 원수마귀가 주는 힘으로 평화를 누리는 팍스가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인 샬롬이 있습니다.
이 샬롬은 성령을 쫓아 행할 때 나를 통해 나타나는 열매인데 그 열매가 바로 성령의 9가지 열매 중에서 3번째로 언급된 화평이라는 열매입니다.
히브리어 ‘샬롬’과 헬라어 ‘에이레네’는 화평, 평화, 평강, 평안 등과 같은 말로 번역되는데 완전함, 하나됨, 조화, 번영 등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영적, 정신적, 물질적, 육체적으로 부족함이 없이 완전히 충족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는 사람들을 기쁘고 행복하게 만듭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하나님은 미움대신 사랑이고, 다툼대신 화평이고, 분열대신 일치고, 거짓대신 진실이고, 비 진리대신 진리고, 절망대신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리차드니버는 기독교가 사랑으로 평화를 유지하지 못하면 스스로 실패를 인정하고 교회간판을 내려야한다고 말했답니다. 좀 과격한 표현이지만 그만큼 기독교와 샬롬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럼에도 들려오는 소식들은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들이 더 많습니다.
교우들끼리 반목과 목회자와 교인들 간의 반목으로 교회가 분열되고, 이단들이 침투하여 교회가 이단들에게 넘어가는 가슴 아픈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하나님이 주시는 샬롬보다는 내가 가진 돈과 동원할 수 있는 능력, 세상이 주는 힘에 의지하여 평안을 누리려하기 때문입니다.
샬롬은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해져서 세상의 어떤 유혹도 핍박도 고난도 어려움도 이길 수 있고, 주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어 주님과 함께 천국 되어 살아가는 정말 행복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반목과 불신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이 샬롬도 함께합니다.
눅1:28절에 임신한 처녀에게 천사가 찾아와“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이렇게 말씀합니다. 약혼한 처녀가 임신하면 죽음인데 은혜받은 것은 무엇이고, 평안은 또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처녀가 임신을 해도 샬롬을 누릴 수 있고,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와도, 문제가 산적해 머리가 아파도 샬롬을 누리면 문제를 초월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샬롬의 힘입니다.
① 그런데 이 샬롬이 의로 나타나지 않으면 가짜입니다.
시85:10절 말씀에“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의와 화평이 입 맞추었다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내가 샬롬을 이루었다면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내 샬롬이 열매로 나타나야 된다는 뜻입니다. ‘나는 원리원칙을 좋아하는 사람이야!’ 원리원칙 좋지만 거기에 화평이 없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ex) 영화, 밀양= 유괴범에게 아들을 잃은 여인이 절망속에 있다 예수믿고 회복되어 아들죽인 살인범을 용서하러 교도소에 갔지만 그 살인범이 이미 하나님께 용서받아 평화를 누린다는 말을 듣고 이 여인은 신앙을 버리고 더 깊은 절망에 빠져버림. 렘6:15절 말씀에“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아니할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살인범이 진정 샬롬을 누렸다면 이 여인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구해야 맞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를 거꾸러뜨린다 하셨는데 어떻게 샬롬이 되겠습니까?
나만 잘되고, 내 가족만 평안하면 된다는 극히 이기적인 생각은 샬롬이 아닙니다. 남의 입장과 감정까지 신경 쓰고 배려해야 진짜 샬롬, 하나님이 주신 평강입니다.
사48::22절 말씀에“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하셨느니라.”하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악인에게 평강이 없다고”
때문에 악인이 누리는 샬롬은 위장된 살롬, 가짜 평화일 뿐입니다.
나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됩니다. 먼저 다가가 손 내밀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고 진정한 샬롬입니다.
② 반대로 샬롬을 죽이는 공의도 가짜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열매로 나타나지 못하는 샬롬도 문제지만 그 행위가 너무 지나쳐 샬롬을 죽이는 것도 문제입니다.
예수님당시 바리새인과 종교인들이 얼마나 말씀을 연구하고 철저히 지켰습니까?
그럼에도 주님께 책망을 받습니다. 그 이유가 그들은 내 평안을 누리자고 남의 평안을 짓밟고 독선과 계율을 강요하여 의와 인과 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자기들도 지키지 못하는 높은 기준으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오죽하면 주님이 자기들도 지지 못한 짐을 남에게 지운다고 비판했겠습니까?
눅6:37절에“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이렇게 말씀하시는데 만약 저들이 이 말씀의 의미를 알았다면 절대 남의 샬롬을 짓밟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같은 의미로 생각해봅니다. 형제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기 보다는 트집을 잡고, 뒷 담화하는 것은 안 됩니다. 내 눈의 티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들보만을 보는 행위는 샬롬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또 내 아이의 샬롬을 무시하고 일방적이고 감정적 훈육도 안 됩니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한 것은 어떨런지요?
ex) 어떤 사람.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가다 고장 나 갓길에 세우고 견인을 기다리다 백밀러를 통해 급하게 돌진하는 차를 보고 핸들을 꽉 붙들었지만 추돌사고로 기절➝ 깨어나 보니 차가 종이처럼 구겨졌지만 한군데도 다치지 않음.➝이때 깨달은 것= 늘 악착같이 움켜쥐고 바쁘게 살아온 과거가 허무하다는 것을 깨달음.
여러분!!! 악착같이 움켜진 손을 내려놓을 때, 여기서부터 샬롬이 시작되지 않을까요? 가끔씩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보며 지금 내가 가는 길이 정말 샬롬을 누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샬롬을 주는 길인지를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힘에 의한 평화는 오래 못갑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를 누리십시오.
여러분들이 주안에서 가정과 직장, 이웃이나 교회에서 피스메이커의 역할을 하시면 참된 평화, 진정한 샬롬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주님이 진정한 평화의 왕이십니다.(눅19:41-42)
눅19:41-4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가까이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아멘.
본문은 주님이 주일날 예루살렘성으로 들어가기 위해 베다니에서 벳바게를 지나 감람산에 도착해 산 밑에 보이는 성전을 보시고 갑자기 울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성아, 성아 네가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다면 좋았을 뗀데 네 눈에 숨겨져 평화를 모르는 것이 가슴 아프구나.’ 이런 말입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주님은 이 땅에 평강의 왕으로 오셔서(사9:6, 히7:2)화평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행10:36, 엡6:15) 그런데도 저들은 평화의 왕으로 오신 이 예수님을 배척하여 구원에서 멀어지는 것이 안타까워 우셨던 겁니다.
여러분!!! 우리주님은 그분 자체가 평화고,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주님이 때어났을 때 천사가나타나“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로다”라고 하신말씀도 평화자체이신 주님이 이땅에 오셨기 때문에 이땅에 평화가 임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주님의 강력한 힘으로 팍스 이스라엘을 원했지만 주님의 생각과 자기들의 생각이 다르자 실망하여 결국 은30에 주님을 팔아버린 겁니다. 여러분!!! 진정한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을 배척한 저들에게 임할 심판이 무엇일까요? 이어지는 눅19:43-44절 말씀입니다.“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아멘. 권고 받을 때 빨리 깨닫고 주님께 나와야합니다.
결국 이 예언은 AD70년 로마의 티도장군에 의해 성취되었고, 2차 성취는 주님이 재림하실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것을 예언의 이중적의미라고 말합니다.
그날 주님이 성전으로 들어갔을 때 사람들이 무슨 짓들을 하고 있었습니까?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질 가짜평안에 취하여 하나님을 멀리하고 돈벌이에 눈이 멀어 있었던 것입니다.(눅19:45-48)
하지만 사랑의 하나님은 이 유대인들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다시 회복시켜주십니다.
본문41절에‘지금(은)네 눈에 숨기워졌(지만)’나중에는 유대인들도 참 평화이신 주님을 바로 볼날이 올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롬11장에서 밝힙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것은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지기 위함이었는데 마지막 때는 그 유대인들도 구원받을 것을 말씀합니다.
계시록7장에서 144천의 유대인들이 인 맞는 장면을 통해서도 확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말씀에서 하나님은 당신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은혜를 베풀고 평강을 주시겠다 말씀하셨고(민6:25-26) 고전14:33절에서도“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이 화평의 하나님을 붙드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샬롬을 통해 정말 행복한 예수쟁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