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 같았다.>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자비
그때에 30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3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32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33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3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마르코 6,30-34
연중 제4주간 토요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들처럼 여겨진 군중에 대해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을 가르치십니다. 여기서 ‘가엾은 마음이 들다’(스플랑크니조마이, splangkhnizomai)라는 동사는 ‘배 속’, ‘내장’을 의미하는 낱말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가엾은 마음’이란 속이 요동칠 정도의 감정을 의미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이 동사는 예수님의 마음 상태를 묘사할 때 자주 등장합니다.
또 복음서의 세 가지 비유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그 비유들도 온갖 사랑으로 가득한 경우입니다. 첫 번째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29-37 참조)입니다. 한 사마리아 사람은 길에서 강도에게 폭행당해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서는 속이 요동칠 정도의 연민을 느낍니다.
두 번째는 만 탈렌트를 빚진 종에 대해 그 주인이 가엾은 마음을 갖습니다(마태 18,27 참조). 비록 비유의 말씀에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한 탈렌트가 6천 데나리온이고, 한 데나리온이 하루 품삯이니, 한 데나리온을 우리 돈의 5만 원으로 친다 해도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이 엄청난 빚을 그냥 탕감해 줍니다.
세 번째는 돌아온 아들을 멀리서 아버지가 알아보고 느낀 마음입니다(루카 15,20 참조). 미리 유산을 받고 도망친 아들, 호화로운 옷을 입고 ‘먼 고장’으로 가버린 아들, 이제는 거지가 되어 누가 보아도 그 아들이라고 알아볼 수 없는 아들을 아버지는 알아봅니다. 그것도 멀리서 알아보고 가엾은 마음을 갖습니다.
이처럼 가엾은 마음이 든다는 것은 상대방의 고통과 아픔이 그대로 나에게 전달되어 내 마음이 요동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감정을 예수님께서 느끼시어 꿀맛 같은 휴식도 포기하시고서 사람들을 만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예수님을 찾을 때 그분께서는 그러한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매일 미사 「오늘의 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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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신부님 글 드립니다~~~
「대책 없는 신앙?」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이 좋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대책 없는 긍정적인 생각은 오히려 큰 절망을 가져올 수가 있다고 합니다.
나치의 수용소에서의 체험으로 의미치료의 창시했던 빅터 프랭클이 자신의 체험을 이렇게 전해줍니다.
한 작곡가가 희망찬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달 후면 모든 게 끝날 거야. 꿈을 꿨는데 3월 30일에 독일군이 항복하게 되거든.”
하지만 3월 30일이 되었지만 모든 것은 그대로였습니다. 이 작곡가는 시름시름 앓다가 1945년 3월 31일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생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여기에 더불어 그 상태에 대한 백업플랜을 준비해야 한다고 합니다. 가능한 위험 사태를 비관적으로 예상하고 대치할 수 있는 계획도 세워야 한다는 것이지요.
단순히 성당에 나가면 무조건 구원을 얻는다는 막연한 긍정적인 마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여기에 주님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주님 뜻을 따르지 않는 삶을 사는 내 모습과 주님과 일치하는 삶을 사는 내 모습을 떠올려보면서 구체적인 내 삶을 꾸려나가면 어떨까요? 보다 더 주님과 더욱 더 가까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막연하고 대책 없는 신앙은 이제 버려야 할 때입니다.
***<내가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들여다보세요. 남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는지, 원망과 투정을 하는지, 칭찬과 감사의 말을 하는지, 과거 이야기만 하는지. 주로 하는 그 이야기가 내 인생이 됩니다(혜민)>
연중 제4주간 토요일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마르 6,30-34)
イエスは舟から上がり、
大勢の群衆を見て、
飼い主のいない羊のような有様を深く憐れみ、
いろいろと教え始められた。
(マルコ6・30-34)
His heart was moved with pity for them,
for they were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and he began to teach them many things.
(Mk 6:30-34)
年間第4土曜日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ナヌン クンジュンウル ボシゴ カヨスン マウミ ドショッタ。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クドリ モッチャ オッヌン ヤンドルガ カッタッキ テムニダ。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마르 6,30-34)
イエスは舟から上がり、
이에스와 후네카라 아가리
大勢の群衆を見て、
오오제에노 군슈우오 미테
飼い主のいない羊のような有様を深く憐れみ、
카이누시노 이나이 히츠지노요오나 아리사마오 후카쿠 아와레미
いろいろと教え始められた。
이로이로토 오시에하지메라레타
(マルコ6・30-34)
His heart was moved with pity for them,
for they were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and he began to teach them many things.
(Mk 6:30-34)
Saturday of the Fourth Week in Ordinary Time
Mark 6:30-34
The Apostles gathered together with Jesus
and reported all they had done and taught.
He said to them,
"Come away by yourselves to a deserted place and rest a while."
People were coming and going in great numbers,
and they had no opportunity even to eat.
So they went off in the boat by themselves to a deserted place.
People saw them leaving and many came to know about it.
They hastened there on foot from all the towns
and arrived at the place before them.
When Jesus disembarked and saw the vast crowd,
his heart was moved with pity for them,
for they were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and he began to teach them many things.
2025-02-08「飼い主のいない羊のような有様を深く憐れみ、」
+神をたたえよう。神は偉大、すべては神を造られた。
今日は年間第4土曜日です。
神性の充ち満てるイエズスの聖心といつくしみ深い乙女聖マリア、そして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にお祈り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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マルコによる福音
<飼い主のいない羊のような有様を深く憐れみ、>
そのとき、6・30使徒たちはイエスのところに集まって来て、自分たちが行ったことや教えたことを残らず報告した。31イエスは、「さあ、あなたがただけで人里離れた所へ行って、しばらく休むがよい」と言われた。出入りする人が多くて、食事をする暇もなかったからである。32そこで、一同は舟に乗って、自分たちだけで人里離れた所へ行った。33ところが、多くの人々は彼らが出かけて行くのを見て、それと気づき、すべての町からそこへ一斉に駆けつけ、彼らより先に着いた。34イエスは舟から上がり、大勢の群衆を見て、飼い主のいない羊のような有様を深く憐れみ、いろいろと教え始められた。
(マルコ6・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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毎日ミサの「今日の黙想」です。
イエス様の時代にも、上流階級には常に良いものが捧げられた。法律は土地の小作料の収益を保証していた。貧しい者たちには保護よりも脅威が加えられ、持っているものさえ差し出さ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もあった。病気になっても治療を受けられないのはもちろんのことだった。だからこそ、イエス様について回った群衆の姿は、まるで道に迷った羊の怯えた瞳のように切なく見えた。その姿を御覧になったイエス様の心には、深い憐れみが満ちていた。
人々は何を求めて、イエス様が行かれる所ごとにあれほどまでについて行ったのだろうか? それは、ただイエス様が好きだったからだ。貧しい者たちは時間が多く、見物を好むものだ。しかし、それだけではなく、イエス様のそばに集まると、言葉では説明できない慰めと勇気が満ち、心が通じ合う感動と幸福感があった。
競争の世界では成果によって評価され、認められなければならず、欺かれないよう警戒するうちに心が硬くなってしまう。しかし、教会に来ると、自分の傷や弱さをそのままさらけ出しても、それほど恥ずかしくはない。心が穏やかになり、寛容になるのは、誰もが競争関係でもなく、上下関係でもないからだ。良い心を分かち合う集まりに参加すると、幸福感が生まれる。信仰団体や小教区の集まり、田舎への移住・帰農を考える共同体の集まりが代表的な例である。新しい話を聞き、共に分かち合い、献身しようとする人々の集まりや生活は、いつも言葉にできない平和と幸福をもたらしてくれる。警戒心を解けば、心が澄み、穏やかに開かれる。
この共同体の村には、そのような気配が満ちている。何も所有しない自由、誠実な労働、祈りの生活に専念することで、イエス様の心を迎え入れて生きることができるからだ。訪れる人々も同じである。都会には楽しい催しが多いのに、貧しい山の上の村まで訪ねてくる足取りは、自らを清める行為となる。訪問者も、この村の家族たちも、互いに良い心を分かち合うことで、癒しがもたらされるの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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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処にでもイエス様の憐れみの愛の行いがあるようにわたしたちも主の愛が実践できますように聖霊、きてくだ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