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의 <첼로 협주곡>은 1967년 동백림 사건으로 한국으로 끌려와 감옥에서 모진 고문과 참담한 감금상황을 겪었던 고통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 1975년에 완성한 곡입니다. 그가 자신의 분신처럼 사랑한 첼로에 당시 그의 내면에서 울림을 멈추지 않았던 영혼의 소리를 담은, 음으로 표현된 그의 자화상 같은 곡입니다.
1997년 윤이상 선생이 작고하기 1년 전, 독일의 한 방송에서 작곡가 윤이상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습니다. 이 다큐에서 윤이상은 자신이 무고하게 연루되었던 동백림 사건과 그로 인해 입었던 깊은 상처를 다시 떠올립니다. 1967년 독일에 있던 그는 한국정보부에 의해 끌려와 잔혹한 고문을 당하고 투옥되어 첫 공판에서 종신형을 선고 받습니다. 둘째 공판이 오기 전에는 자신이 어쩌면 사형을 선고받게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겨울이면 감방 물그룻에 물이 꽁꽁 얼어붙을 정도로 혹독하게 추웠고 인권이 유린된 감금생활과 고문의 기억을 극복하는데 윤이상 선생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둘째 공판에서 20년, 셋째 공판에서 10년으로 감형되었다가 마침내 세계적으로 명망있는 그의 친구들이 주선하고 독일정부의 도움으로 2년 만에 극적으로 풀려나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그 처참했던 기억을 어느 정도 추스르고 쓸 수 있게 된 곡이 바로 이 <첼로 협주곡>입니다. “첼로는 나 자신입니다.” 첼로는 윤이상에게 아주 각별한 의미가 있는 악기입니다. 청년시절 일제치하에서 항일 지하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다 지명수배에 쫓겨 피신할 때도 남의 눈에 띄기 쉽고 도피에 방해될 수 있는 이 악기를 버리지 않고 항상 지니고 다녔다 합니다. “첼로는 내가 소유했던 유일한 것이었어요. 첼로가 없었더라면 나는 마음기댈 곳이 아무것도 없었을 겁니다. 첼로는 나의 친구이고 나의 파트너였어요.” (루이제 린저와의 대화에서) 지독한 감금상태에서 종신형을 선고를 받은 심정을 어찌 절망이란 한 단어에 뭉뚱그릴 수 있을까요. 당시 죽는다는 것보다 곡을 더 이상 쓸 수 없는 사실에 더 좌절하고 힘들어했던 윤이상은 실낱같은 희망의 틈조차 기대할 수 없는 극한 경계상황에서 삶과 죽음이라는 근본적인 생각에 몰두하게 됩니다. 삶과 죽음의 문제는 문학과 예술에서 끊임없이 성찰되는 주테마지만, 윤이상은 자신이 처한 실제 상황에서 이 주제에 생명의 격동하는 힘과 움직임, 그리고 아름다움과 평화의 이상을 담고자 했습니다. 그를 통해 음악이란 정말 아름다운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진흙탕 같은 지상에 묶인 고통스런 삶에서 숭고하고 지고한 순수의 세계로 비상하는 힘이 그의 음악에 있습니다. 윤이상은 이제 자신이 짊어지고 있던 존재의 짐을 내려놓고, 더는 자신의 생각을 억누르지 않고 자연처럼 흘러가듯 풀어놓고자 했습니다. 그의 음악은 고문과 감금으로 인한 생생한 상처를 헤쳐보이지만 정치적인 성격에 경도되지 않고, 그 자신의 양심을, 사람으로서 가야 할 길과 품어야 할 이상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그가 죽임을 당할 두려움에 차서 감옥에서 들었던, 먼 데서 들려오는 맑은 목탁소리를 떠올리는 음에 이에 허공의 정적을 고요히 가르는 A음. 첼로 협주곡의 이 결말부에 대해 작곡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지막 A음은 절대적인 순수, 절대적이고 완전한 평화입니다.”
다음은 윤이상 선생이 옥중에 처했던 상황을 회상하며 그의 <첼로 협주곡>에 대해 루이제 린저에게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루이제 린저의 필치로 정리된 이 대화록은 어느 해설가의 설명보다도 가슴에 와닿는 감동과 명확한 어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졸역이긴 하지만 독일어 원서 『상처받은 용』 ((Der verwundete Drache 1977년)에서 간추려 옮깁니다.
“상상해보라. 감옥에서의 기나긴 하루가 저무는 저녁이다. ...
일과가 마친 후에는 큰 적막감이 찾아든다. 나는 혼자 감방에 있다. 나에게 사형이 구형될 것이다. 나는 죽음을 기다린다. 죽고 싶지 않다, 나는 살고 싶고 음악을 하고 싶다, 내 안에 가득한 음악을 쓰고 싶다, 나는 죽음에 저항해보지만 항복하고 만다. 탄식해보지만 죽음을 받아들인다. 이런 밤이면 목탁소리를 들었다. 감옥 인근의 절에서 스님들이 저녁예불을 드리며 두드리는 목탁소리다. ... 감옥에 투옥된 수감자 중 누군가 죽으면 스님들이 목탁을 친다. 한 사람, 한 사람 그렇게 사람들이 죽어가고, 다음엔 내 차례가 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강박관념처럼 되어버렸다.“
“이 곡에는 이런 저항과 체험, 고통과 평화가 녹아있다.”
“첼로는 인간이다. 인간은 순수하게 태어나지만 태어남과 동시에 자신이 극복해야만 할 운명 속에 내던져진다. 그것을 협주곡 첫 부분에서 표현했고, 그래서 이 부분이 아주 격렬하다. ...
두 번째 파트에서는 인간이 그의 운명에 적응한다. 그의 힘이 자라고, 그의 인격이 자란다. 그러다가 다시 위협에 빠지고 혼란을 겪는다. 그런 때면 항상 고요함의 동기와 격동의 동기가 나온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인간은 자기의지를 포기해야 하는, 정말 극단적인 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때 비로소 제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진다. ‘나는 도대체 누구이고, 인생에서 세상에서 ‘나’는 지금 어디쯤 있는 것인지.‘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완전히 혼자이며, 이제는 죽음을 응시하고 죽음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렇다. 하지만 나는 고통 속에서, 혼란 속에서 죽고 싶지 않았다. 완전히 평화와 하모니 속에서 죽고 싶었다. 이 하모니는 긴 파트의 첼로 솔로로 곡에 편성되어있다. 그것은 순수한 울림의 하모니가 된다.”
첫댓글 사연을 듣고 들어서 그런가 무척 심오한 곡이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