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물고기 이야기...다금바리
귀한만큼 값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했다. 많은 사람들은 다금바리 회로 불리는 자바리 회가 비싼 줄은 아는데 정확히 얼마인줄 잘 모른다. 보통 횟집에도 가격에는 ‘시가’로 표시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1kg에 보통 20만원을 훌쩍 넘는다. 이 비싼 고기를 ‘회’아닌 다른 요리로 활용한다는 것은 그래서 실행에 옮기기가 어렵다. 만일 직접 아는 누구의 누구를 통해서 어부가 직접 잡은 다금바리회를 아주 싸게 구했다면 그 중 태반은 ‘능성어’를 먹은 것이 된다.
제주에서 횟집 앞 수조에는 보통 커다란 자바리가 한 두 마리씩은 꼭 있다. 언뜻 보기에도 3~4kg은 족히 돼 보이는데 그렇다면 그 가격은 상상에 맡기겠다. 제주에 살다보니 주변에 널린 횟집을 자주 보게되고 그러다보니 이제 ‘자바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정도는 눈에 익게 된다. 그러니 제주 다금바리를 소문으로만 들었던 관광객들은 그게 도무지 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능성어’가 꼭 그렇게 생겼다. 똑같은 농어목 바리과 물고기다.
‘슬로푸드 국제본부’에서 진행하는 전통 음식 및 문화 보전 프로젝트 ‘맛의 방주’에 등재된 설명에 따르면 다금바리, 자바리의 ‘바리’는 심마니들 사이에서 호랑이를 뜻하는 ‘두루바리’에서 유래된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호랑이가 없었던 제주에서 호랑이를 뜻하는 말이 있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김영하 작가가 서귀포 앞바다에 ‘범섬’이 있는걸 보고는 제주 사람도 호랑이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언급한 것을 보더라도 아주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바리(왼쪽)와 능성어는 똑같이 호랑이 무늬가 있어 성장하면 구분하기 어렵다. (출처: 우리바다 어류도감. 예조원)
어쨌든 자바리와 능성어는 똑같이 호랑이 무늬가 있다. 자바리는 이 호랑이 무늬가 정형화되지 않은 반면 능성어는 뚜렷해 일부에선 ‘아디다스 무늬’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자바리든 능성어든 크면 구분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능성어도 횟감으로 맛이 떨어지는게 아닌데 워낙 비싼 제주 다금바리로 속여 파는 경우가 많아 억울하게도 찬밥 신세가 됐다.
성산에 있는 식당의 사장님이 제주에서의 첫 직장과 거래 관계였는데 직접 아는 어부가 ‘다금바리’를 잡았다며 직장 회식 겸 초대를 한 적이 있다. 제주 토박이인데다가 ‘누구의 누구를 통한’ 중간 유통과정이 생략된 채 바로 공수받은 것이라 아마도 진짜였을 것이다. 더군다나 토속 음식점으로 꽤나 유명한 식당 사장님의 입맛이니 더욱 틀림없을 것이었다. 아마도 자바리를 성산 앞바다에서 잡은 모양이었다. 보통은 자바리하면 모슬포 쪽과 성산에서 잡힌다.
서귀포 사계리 남경미락 식당의 제주 다금바리(자바리)회(출처: VISIT JEJU)
물론 표선에 있는 양식장에서 탈출한 자바리이거나 치어로 방류된 것일 수도 있다. 성산과 가까운 표선엔 자바리 양식장이 있다. 자바리는 2004년 자연산란에 성공한데 이어 2005년에는 인공종묘생산에 성공하는 등 양식기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왔다. 또 어족 자원을 늘리기 위해 매년 치어를 방류하고 있기도 하다. 올해 4월엔 바리과에서도 최고급 어종으로 손꼽는 붉바리도 양식에 성공해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아직 자연산이든 양식이든 쉽사리 선택할 수 없는 가격임에는 분명하다. 그런 귀한 회를 먹는다면 아무리 맛이 없더라도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것 같다. 실제로 제주 자바리회를 맛본 이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그러나 정확하지 않다. 심리적인 까닭에서 기인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진짜 맛있다는 이도 귀한 회를 직접 맛보았다는 성취감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높고, 다른 회랑 뭐가 다르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너무 높은 기대치를 갖고 맛보았다가 실망한 까닭이겠다. 게다가 값비싼 회를 맛보면서 얼마나 충분히 맛보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한국 맛의 방주’에 등재된 기록에 따르면 3kg이하의 자바리는 11개 부위를, 3kg이상인 경우 32개의 부위를 맛볼 수 있다고 한다. 맛에 관해서도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고, 비린맛이 없으면서도 적당히 기름지고 담백한 풍미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아직 제주 다금바리회의 진미를 다 맛본 이들은 극히 드물다.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는 늘 구미를 당기게 하는 법이다. 어쩌면 아직도 나에겐 제주 곳곳이 그런 곳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많은 이들이 오가는 곳이라도 제주는 여전히 미지의 맛이 있다. 미지의 세계에서 미지의 맛을 본다는 것만큼 설레이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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