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 석고상과 바나나
소마미술관의 누드전을 관람한다. 뷔페식당에서 빈 접시들고 홀을 이동하다가
식욕이 당기는 음식 앞에서 한 점을 덜어담듯 그렇게 작품을 내 머리의 생각코너에 담았다.
비너스의 토르소 석고상 앞에 싱싱한 바나나 송이가 놓여 있는 작품이다. 지극히 단순한
두 개의 이미지를 그냥 놓아둔 듯하여 별 관심을 두지않고 지나다가 퍼뜩 생각이 떠올라서
되돌아가 보았다.
토르소의 여성 성기 앞에 바나나 대까지 놓여있는데 한 개는 잘려나갔다.
아, 성 이야기다.
겉 봐서 아름다운 몸매를 가졌으나 성감이 죽은 여성은 석고상으로,
그녀 앞에 줄을 서는 남성은 두어손의 바나나로 상징했다.
이럴 때는 이미지가 문자보다 전달력이 훨씬 강하고 빠르다는 생각을 했다.
뭘 모르고 스쳐 지나가는 관람객들은 저 그림을 어떻게 생각할까 말을 시켜보고 싶어졌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작품 앞에서 오래 머물게 되지 않는 나를 보았다.
끌리는 그림만 눈여겨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전시장에서 굳이 지치고 체할 만큼 보면서 피곤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애써 생각하지 않아도 관람 이후에는 그림이 생각창고에 들어있다가
수시로 현실로 들락거린다.
길가다가도 잠시 멈추어 서며 "맞아" 하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여러가지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그러다가 예기치 않은 시간에 터널이 뚫리듯 생각이 관통하는 느낌이 드는 순간을 맞을 때면
쾌감이 생긴다.
그러니까 나는 미대생들 과제물 제출해주기 딱 좋은 관람객이다.
저들은 아무 것도 집중하지 않고 몇몇 작품 앞에서 웃으며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고 지나간다. 들리는 말로는 삼겹살 구워먹으러 간다는 내용이다.
예술을 향수하고 흥미를 느끼며 감동에 이르기까지에는 소속이나 전공이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보고 즐기며,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가가 관람자의 자격 기준이 된다.
영국의 테이트 미술관 현지에 가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감상할 기회가 온다는 것만으로도
무한 감사다.
사물에 대한 통찰력과 그것이 상징하는 다양한 것들을 그림 속에서 만나면
작가와 깊이 만난 듯 친밀감이 든다.
현대인에게 가장 큰 적은 소통하지 못해 진득하게 배어들어오는 외로움이다.
전시장에서 그림과 대화하는 시간만은 그 외로움을 물리칠 수 있다. 작가와 동행하니까.
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