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륜산 산행을 하는 날, 강진 읍내 식당에서 이른 아침을 들었다. 열 가지 남짓 종류의 반찬 그릇이 담긴 큰 쟁반을 그대로 식탁에 올리는 남도 식당의 상차림이 생경하고 독특하다. 강진 읍내에서 출발하여 대흥사로 향했다. 강진만 포구 쪽 하늘이 아침노을로 불그레 물들고 있다. 깃대봉 줄기를 관통하는 고개를 넘어 해남의 경계로 들어섰다. 두륜산 입구에서 봄이 오래 머무는 숲이라는 뜻의 ‘장춘(長春) 숲 길’ 4km여를 달려 대흥사에 도착했다.
오늘 산행을 대흥사에서 출발하여 북미륵암, 오심재, 노승봉, 가련봉을 차례로 지나 두륜봉에 오른 후, 진불암과 일지암을 거쳐 대흥사로 되돌아오는 약 10km 원점 회귀 코스로 대여섯 시간이 소요될 예정이다. 텅 빈 너른 주차장 저편에 여성 산객 여섯 명이 차에서 내려 산행 채비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스틱을 펴고 등산화 끈을 조이는 등 산행 준비를 하고, ‘두륜산 대흥사(頭輪山大興寺)’ 편액이 걸린 일주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남겼다. 계곡 위에 걸린 돌다리를 건너 대흥사 경내로 들어섰다. 대흥사는 신라 진흥왕 때인 544년 아도화상(阿度和尙)이 창건하고, 자장(慈藏)과 도선(道詵)이 중건했다고 한다.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와 함께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천년 고찰이다.
대흥사 경내를 스쳐 지나며, 대웅전과 그 옆 백설당에 걸린 원교 이광사(圓嶠 李匡師, 1705-1777)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가 쓴 ‘대웅보전(大雄寶殿)’과 ‘무량수각(無量壽閣)’ 현판을 찬찬히 올려다보았다. 추사는 1840년 제주도 유배 길에 이곳에 들러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 현판 글씨를 자신의 글씨로 바꾸었다. 그 후 1848년 해배(解配) 되어 돌아가는 길에 자신이 쓴 편액을 이광사의 편액으로 다시 되돌려 놓았다고 한다. 문신이자 양명학자로 중국 서체를 탈피한 동국진체(東國眞體), 즉 ‘원교체(圓嶠體)’를 완성한 서예가 이광사의 진면목을 뒤늦게 알아본 것일까.
응진전 앞의 통일신라 시대에 조성된 3층 석탑 옆을 지나서, 고계봉과 노승봉 사이 오심재로 향한다. 규모가 남다르게 거대한 호국대전 뒤로 오르는 길에 바람이 모자를 벗겨버릴 태세로 거세게 몰아친다. '구름다리'라는 돌다리는 오심재와 가련봉 방향 갈림길을 내놓는다. 주차장에서 잠시 얘기를 나눴던 여성 산객들은 진불암 쪽으로 앞서 걸음을 옮기고 있다. 오심재 쪽으로 가파른 비탈의 산길이 이어지며 금세 온몸을 땀으로 적신다. 어른 키보다 크게 자란 산죽이 무성하게 숲을 이룬 곳 평편한 터, 해발 450여 m에 자리한 북미륵암이 쉬어가라 손짓한다.
북미륵암 용화전에는 거대한 자연석 암벽에 마애여래좌상과 비천상 네 위(位)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신라 하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여래좌상과 공양비천상(供養飛天像)은 통일신라 전성기 조각 양식에 비견될 만한 수작으로 국보로 지정되었다. 북미륵암 마당의 삼층석탑과 모양이 흡사한 동 삼층석탑으로 가는 계단으로 올라서니, 용화전 앞뜰이 보여주던 한쪽 서남해 바다가 더욱 넓게 조망된다.
오심재로 이어지는 길로 접어들면, 바위 봉우리를 곧추세운 고계봉이 눈에 들어온다. 대흥사로 드는 계곡길 초입의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에서 고계봉 산정 바로 아래까지는 케이블카가 운행된다. 성긴 단풍나무 사이 산죽이 촘촘한 숲 사이로 난 평탄한 산길을 따라, 고계봉과 가련봉 사이에 넓고 평평한 지대를 이룬 오심재로 올라섰다. 노승봉으로 오르는 초입 양팔 넓이 가파른 산길 양쪽으로 산죽이 빽빽이 시립해 있고, 잎사귀를 거의 다 떨군 단풍나무들은 줄기마다 대흥사 대웅보전 이광사의 글씨처럼 골계미를 한껏 풍긴다. 비탈길 옆에는 제 멋대로 생긴 자연석으로 무릎 높이로 쌓은 돌탑들이 산죽과 어우러져 서있다. 산객들은 이곳을 지나며 저마다 불심(佛心)의 징표로써 돌탑을 쌓았는지 모른다.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며 뒤를 돌아보니, 고계봉에서 뻗어 내린 능선은 서남해 바다에 닿았고, 해수면은 햇빛을 반사하며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다. 노승봉 길목에 자리한 흔들바위(動石) 전망대에 서니, 단풍으로 물든 산비탈 아래 아늑히 자리한 대흥사와 다도해를 품은 바다가 온전히 눈에 들어온다. 너른 헬기장을 지나고, 봉우리 좌측으로 휘도는 암봉 아래에서 감을 한쪽씩 나눠 먹으며 숨을 골랐다. 노승봉 쪽에서 내려오는 산객이 노승봉 위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어 한기가 느껴진다고 한다. 사방이 탁 트인 해발 685m 노승봉 정상에 올라서니 바람이 드세게 몰아친다. 바다와 멀고 가까운 여러 산군들이 모두 발아래 굽어 보여, 말 그대로 일망무제(一望無際)다. 두륜산 암봉들을 멀리서 바라다보면 하늘을 보고 누운 와불을 닮았다고 한다. 서로 깊고 넓은 안부를 끼고 서있는 암봉은 각기 또는 한데 어우러져 기묘한 수석을 닮았다.
노승봉과 가련봉 사이 안부로 내려가는 나무 계단 길에 울긋불긋 단풍이 물든 숲 위에 하늘을 향해 치솟은 암봉군을 거느린 가련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위틈과 안부의 너른 평원에서 몸을 휘청거리며 바람과 씨름하는 억새가 장관을 펼친다. 두륜산 최고봉인 해발 703m 가련봉은 오늘 산행 코스의 중간 지점쯤에 해당된다. 두륜봉 쪽 안부로 내려가면서 완도 섬 부근에 점점 흩어져 있는 다도해를 눈에 담아 본다. 대흥사에서 만났던 여성 산객 여섯 분이 하나 둘 멀찍이 사이를 두고, 가련봉으로 난 가파른 계단을 올라오고 있다. 일지암과 진불암까지 이어진 포장도로를 휘돌아 두륜봉을 거쳐 오는 것이라는데, 모두 힘겨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가련봉과 두륜봉 사이 분지처럼 너른 만일재에는 산죽과 억새가 어우러져 춤을 추듯 경쾌하게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이삭에 남아 있는 꽃털에 햇살이 부서지며 눈부시게 빛난다. 만일재는 두륜봉 좌측으로 휘돌아 산정으로 향하는 길을 내놓는다. 두륜봉 정상 턱밑에서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보면, 대흥사 8경의 하나인 돌다리 모양 바위 구름다리(白雲臺)가 산객을 맞는다. 그 밑을 통과해서 해발 630m 두륜봉에 올라섰다. 거대한 암봉인 두륜봉에서는 지나온 여러 봉우리를 비롯해서, 남쪽 땅끝으로 뻗은 대둔산과 달마산 줄기, 그리고 서남해 수많은 섬을 조망할 수 있다.
여러 암봉이 선사하는 절경에 넋을 빼앗기다 보니, 어느새 대흥사로의 하산 길로 접어들었다. 두륜봉 아래 너덜바윗길, 나무 계단 길, 무성한 숲 속으로 난 흙길을 차례로 지나면, 아스팔트 포장길이 진불암으로 인도한다. 진불암의 응진전에 봉안되어 있는 16 나한상을 살펴보고, 북미륵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북미륵암, 만일재, 일지암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닿으면, 가파른 시멘트 포장도로가 일지암을 거쳐 대흥사 뒤편까지 깔려있다.
자연석 축대 위 담장 아래 비탈에 차나무 밭을 끼고 일지암(一枝庵)이 자리한다.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초의선사(草衣禪師, 1786-1866)가 1824년에 세운 암자로, 이곳에서 ‘동다송(東茶頌)’, ‘다신전(茶神傳)’ 등을 저술하며 우리나라 다도를 정립시킨 차문화(茶文化)의 성지로 알려진 곳이다.
스님은 보이지 않고, 일지암 초정과 나란히 자리한 자우홍련사 마루 위에 누워서 한가로움을 즐기던 견공 한 마리가 일어나서 다가오며 객을 맞아준다. 연못에 평석을 쌓아올린 4개의 돌기둥이 누마루를 받치고 있는 자우홍련사가 독특한 운치를 자아낸다. 일지암 초정(草亭)마루에 걸터앉아, 이 자리에서 차를 들며 교유했을 다산과 추사의 모습을 그려 본다.
일지암을 뒤로하고 포장도로 비탈을 미끄러지듯 내려서니, 좌우 계곡에서 시원스러운 물소리가 맞아주며 대흥사 뒤편으로 안내한다. 호국대전 뒤로 휘돌아 서산대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표충사 경내를 둘러보고, 대흥사로 내려서며 산행을 마무리한다. 추사, 원교, 다산, 초의선사, 서산대사 등 수많은 명사고승(名師高僧)의 일화와 전설 등 들려줄 얘기가 많다는 두륜산을 뒤로하자니, 아쉬움이 적지 않다. 해남 땅끝 마을에서 일몰을 보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조금 덜 수 있을 것이다. 24-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