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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문학에 대해 잘 모른다. 소설을 자주 접하지는 않았다. 시는 소설보다 더 어려워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들만 단편적으로 접할 뿐이다. 더우기 그 소설과 시를 쓴 작가가 누군지는 잘 모른다. 알아볼 생각도 안 했고, 전작읽기는 생각 밖 영역이었다. 그래도 조금은 소설을 읽었는데 특히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읽었다. 젊은 시절 역사의 진실에 다가가고 싶었던 때라, 소설적 재미보다 역사서로 읽은 것 같다. 소설의 내용을 난 다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러고 보니 남부군도 읽었고 러시아 혁명 소설도 읽은 것 같다.
그러다 우연히 2006년 부터 독서 모임에 가입하게 되고 한 달에 한 권씩 인문서를 읽었다. 선물형식의 책 선정으로 인해 다양한 책들을 보게 되었고 소설도 읽게 되었다. 이문구의 <<관촌수필>>을 읽고 그 배경이 보령이며 특히 내가 사는 갈머리의 왕소나무밭이 주인공이 뛰놀던 뒷동산인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전율했던가. 관촌의 우리나라말이 갈머리라는 것도 그 때 알았고, 갈머리는 마을 지형이 양반들이 쓰는 갓모양과 같다는 것에서 유래한 것도 그 때 알았다. 갈머리에 이러 저런 사연이 많은 것도 대천 장에 들어 오려면 청라,홍성,광천등 서북쪽 사람들이 반드시 갈머리 길로 들어와야 하기 때문인 것도 그 때 알았다.
관촌수필의 첫 장에 나오는 장면은 주인공이 대천역에서 내려 집에까지 걸어오면서 상념에 젖는 모습이다. 대천역과 갈머리까지의 구도로의 거리와 풍경을 대략 아는 독자로서 상념의 시공간이 정확히 이입되는 느낌을 받았을 때 감동은 배가 되었다. 내가 보령에 내려온 것이 2002년 01월 19일 잔눈이 내리던 날이었고, 그 눈이 서설이라 하며 내 앞 날에 희망이 함께하기를 기도한 기억이 난다. 이문구작가가 2002년 02월에 위앙으로 돌아가셨고 그 사실을 나중에 안 것을 안타까워 했다. 다행히 이문구작가의 애제자인 안학수, 서희작가를 알게 되어 독자로서 많은 갈증을 해소했고, 이후 책마을에서는 이문구작품 전작읽기 행사(작가의 모든 작품을 발굴하여 책마을 사람들이 나눠 읽고 그 독후감을 카페에 올리자고 한 것)를 가졌고, 서거 10주기때는 인문학페스티벌을 아예 이문구특집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그 기록은 이 카페 어딘가에 숨어 있어 독서순례자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난 황현산이라는 사람을 잘 모른다. 우연히 누가 이야기 해서 책을 읽게 되었다. 당시(지금도 그렇지만) 처음 책을 접할때는 공공의대 정책을 가지고 의사와 정부가 첨예하게 대랍하고 있던 때라 마음이 신숭생숭 하던 때였다. 한편으로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의료인들에 대한 친송이 자자하면서, 또 한편으로 자기들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들이라고 매도되는 역설 속에 감정적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물론 안정된(?) 개원의로서 코로나19에 적극 나서지도 않았고, 사실 정부정책이 이렇게 되든 저렇게 되든 내 개인이 어떤 이득이나 손해를 볼 것이 없는데도 사회적 존재로서 내 심리는 심히 불편했다. 문제는 정답이 그렇게 칼로 무우 베듯이 확실하다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공공의사 인력이 늘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있는 공공인프라라도 제대로 운영하라는 말을 하고 싶지만, 한편 공공의대가 설립되면 그에 따른 인프라 구축과 질적 개선을 노력하면 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게 하겠냐는 신뢰의 문제는 남고. 그러다가 이거 혹시 정부가 조막막한 의료 공공인프라를 만들어 놓고 나머지는 의료영리화하고 민간자본의 의료산업 진출을 허용하는 식으로 방향을 돌리려는 수작은 아닌지 하는 의심도 든다. 왜냐하면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의료정책은 원격의료 도입과 의료영리화 정책을 계속 시도해 왔기 때문이다. 미국도 자유방임의료제도라고 비판하지만 조막막한 공공의료제도(메디케어등)는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도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항상 명심할 것은 권력은 공공에 기대지 않으며 자본에 기댄다. 정부는 권력의 집행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 것도 은밀하고 친절하게. 잔가지를 핵심이라 여기며 친절하게 여론을 호도하고 본가지를 은밀하게 밀고 나가는 것이다. 하여 정책은 선하지 않다. 이면을 보고 선을 긋는 것을 통해 배제되는 쪽이 어디인지 봐야 한다. 벽을 세워 햇빛을 박아들인다 할 때 어두워지는 쪽이 무엇인지 봐야 한다.
그러나 의사파업을 반대하는 글들을 봐도 아쉽다. <<작은 책>>이라는 것이 있다. 예전 대천문화원에서 시민들을 위한 무료 공연 이벤트를 어느 시민단체에서 진행을 했는데 그 주관자가 작은 책을 낸다고 해서 구독하게 되었다 주로 서민들, 노동자 농민, 자연생태적 삶을 사는 분들의 글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어렵게 운영되지만 20년 이상 끈질기게 출판되고 있다. 여기에서 나오는 글들을 샘터같은 글들과 결이 좀 다르다. 보다 민중적이 계급적이고 반외세적이면서 우리민족을 지향하고 있다. 물론 그 기세에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의사파업에 대한 반대하는 글들을 읽으며 아쉬움이 많았다. 단지 돈 많이 벌기 위해 벌이는 투쟁이라고 하거나, 나는 그런거 따지지 않고 선하게 환자를 위해서 열심히 일한다는- 그렇게 이야기 하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느낄 수 밖에 없는- 반대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 쪽 사정도 모르는 바가 아니여서 함부로 이야기 못하겠다는 글을 읽을 때는 비위가 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정도 글쓰기를 하시는 분들이라면 사태가 칼로 물 베듯이 싶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텐데....
글들 중에는 부자들의 자식들이 의사가 되면 공공의료에 헌신하겠느냐는 말에, 민중의 자식이 의사가 되는 길을 만들어야(역차별 정책) 되다는 것도 있다. 이러니 공공의대가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자식들이 들어가게 하려는 꼼수가 아니겠냐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 지금 소위 부자들이 된 사람들이 누군가? 민중의 자식들이 아니던가? 그리고 의사들의 수입이 평균노동자들보다 4배 더 많다고 하면서 OECD 평균보다 높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의도가 들어있는 걸까? 인간의 본성인 이기심과 역사 이래 가장 치사한 시스템이라고 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우린 어떻게 대처하고 살아야 되나? 환자들이 시골의사 믿지 못하겠다고 다들 서울 큰 병원으로 가고, 또한 그와 동시에 의료사고 발생율은 서울 큰 병원들이 수위를 차지한다. 폐업율 10%를 유지하고 생각보다 신용 불량자가 많은 의사들의 궁핍한 것은 무엇이고, 그래도 시골에서 돈 벌어 가족들 다들 서울로 떠매고 가는 의사도 있다. 사람과 세상이 다 균질하지 않듯이 의사와 의료가 한마디로 말하지 못하는 복잡함이 있다. 계급적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고 성찰의 기회를 주는 장점은 있지만 그 상대방을 끝까지 적으로 만들어 결국 본인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본다.
시골에 사는 나는 당연히 의료 공공성을 지지한다. 특히 공적 건겅보험제도의 통제를 받는 민간의료제도인 우리나라 제도가 안으로는 지지고 볶고 싸우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세계 최고의 의료 수준과 효율을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동적 평형이 기조가 되어야 한다고 나는 본다. 그리고 각 시군 혹은 몇 몇 시군 통합으로 적자가 나도 반드시 운영되는 공공병원을 하나 갖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민간에서 의사를 구하면 된다. 돈을 주면 된다. 의료의 핵심은 의사다. 의사의 헌신과 기술 수준이 의료의 질을 결정한다. 물론 이 것이 다는 아니지만. 이 것이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처방이라 본다. 공공의대 만들고 의무근무연수를 만들 하면서 어느 시절에 효과를 볼 수 있단 말인가? 20년 이나 지나야 효과를 볼 수 있는 이 정책이 20년 후에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세상에. 적합할까 의문이 든다.
아~ 근데 내가 왜 이런 글을 쓰지? ㅜㅜ 원래 쓰려고 하는 것은 황현산선생님의 산문을 읽고 느낀 점을 쓰려고 한 건데....
우선, 왜 앞에 이문구선생님을 언급했냐면, 이 분도 2018년에 별세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따뜻하고 또한 지조있게 문장을 쓰시는 분을 지금에사 알았다니...하나는 이 분은 불어불문학자이면서 친구들이 다들 고시에 매달리고 정치에 입문하고 할 때, 문학에 헌신하신 분이다. 오로지 고시공부에 매달리는 친구가 선생에게 물었단다. " 왜 고시 공부를 하지 않니?"
교육부의 관리가 TV에 나와 이랬단다. 프랑스의 불문학 박사 보다 한국의 불문학 박사가 더 많다고. 이른바 프랑스어 교육 불필요론. 작가는 이 분이 불문학과는 불어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아예 듣지도 않을 것 같다고 말하면서 글 말미에 젊은 출판인이 교수 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인용한다. '근래 프랑스에서 발간된 인문학 서적들을 번역하는 일이 시급한데, 마땅한 번역자를 구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 그 까다로운 문장을 읽어내고 그 의미를 깊이 파악하고 그것을 우리의 구체적인 삶고 연결지어, 이 서적들을 번역해낼 만한 소수의 사람들은 저 모욕적인 질문을 자주 받으며 제 공부의 터전에 위기까지 느끼면서 노력해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뭐 먹고 살래? 라든가 왜 고시공부 안 하니? 라는 말은 하지 말자. 근데 가끔(자준가?) 아들에게 도서관에 가서 책 읽고 공부하는 것이 남는거다라는 이야기를 자주한다. 아들은 세상경험 좀 한다고 아르바이트 이것 저것 하고 다니는 것 같은데 이 말 들으면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근데 결국 내 말을 듣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면 공부해라-라는 말을 하면 공부 더 안하고 싶다고 하니 그 말을 하지 말 것인가? 사실 난 해야 한다고 본다. 견제구를 날려야 긴장을 하고 염두에 두고 자기 생활을 하고 다시 한번 자기 생각을 돌려 성찰하게 되니까. 그래도 이 것을 해야 한다는 확신이 들면 그렇게 하겠지 뭐. 문제는 자식들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문제다.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하고 드라마를 히히 거리며 보고 있거나 하면 안되지 않을까? 공부해라 라는 말은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어야 한다.
---- 그래서 의사파업을 반대하는 민중적 시선의 글도 또한 헌신적으로 의사파업을 진행한 의료민초들도 결국 그 주장이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로 돌아옴을 직감했으면 한다. 공공의료는 좋다. 이걸 반대하는 사람과 세력은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어느 정책이 시작되든 이 것이 완성이나 마침표가 아님을 명심하자. 개선해 나가도록 관심을 갖고 지금 내가 서있는 현장에서 열심히 환자를 볼 일이다. 고시 공부 안 하면서 불문학을 공부한 저자가 시골 구석 에 사는 한 독자의 존경을 받게 된 것처럼, 돈 많이 버는 의사가 반드시 세상 사람의 존경을 받지는 못할 것은 분명할 것이고, 또한 이를 비판하는 이가 진정 민중적 삶을 구현해낼 것인지는 모를 일이 것이다. 물론 또한 경계한다. 그렇게 주장했다고 그렇게 살지 못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잘못되었음을.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모든 발언이나 주장이 우리 사회가 좀 더 발전했으면 하는 충정에서 나왔으니..내 말의 그 것이 나의 삶에도 반영되고 강제되도록 노력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 되는대로 쓴 글....지금 시각이 2020년10월 1일 추석날이고 국군의 날이고 아침 8시 30분이다. 바깥 날씨는 안개가 껴있어 흐리고 대기는 정체되어 있다. 누군가가 쓰레기를 태우나 보다 냄새가 스며든다.
붙이자면, 황현산 작가가 그랬다. '사회의 발전에서 앞으로 오게 될 세계의 그림을 문학이 항상 먼저 그려왔으며, 우리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도 그 점은 마찬가지라고...' 그러니 내가 5공 군사독재시절 조정래 작가의 작품에 그렇게 갈망했던 것도 문학의 이런 역할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야기가 왜 문학의 고전이 되었는가? 중세 시대 결혼이란 가문들끼리 이루어지는 그 어떤 정략인 시대에 자유연애를 외치는 소설이 나왔으니.. 지금 이사 이 소설이 시시하고 그저그런 소설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천지가 개벽할만한 글이었을 것이다. 분명 누군가에는 그 책은 금서였을 것이고. 조정래가 국가보안법으로 여러번 고초를 겪은 것처럼. 그 연장선상에 누군가 그랬다. 앞으로의 문학 고전이 될 책은 동성연예를 그린 작품이 될 것이라고.. 난 AI와와 사랑을 나누는 소설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또한 지금 지대에 가장 헌신적으로 민주와 통일을 외치는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작가들이다. 민통선과 휴전선에 서서 작품을 전시하고 퍼모먼스를 구현해내고 공연을 하고 사람을 모으는 작업을 누가 하고 있는가? 지금도 여전히 불의에 휩싸인 사안에 대해 끊임없이 발언을 내는 작가들. 문학과 이를 몸에 담아내는 작가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미래라고 생각한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황현산작가님을 몰랐는데 한번 찾아봤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