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비전시리즈에서 성숙한 면모를 보였던 야시엘 푸이그. 우승 세리머니에선 가장 신나고 재미있게 분위기를 즐겼다.>
29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해 트레이드 해온 다르빗슈 유가 LA 다저스의 디비전시리즈를 3차전을 제대로 마무리했다. 다저스는 10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 체이스필드에서 열린 2017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 3차전에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3-1로 제압하고 3연승을 거두며 챔피언십시리즈 진출을 확정했다. 이로써 다저스는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된 셈이다. 시리즈 내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애리조나는 디비전시리즈에서 스윕을 당하며 가을야구를 마감해야 했다.
LA 다저스가 디비전시리즈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요인들을 살펴본다.
# 가치 증명한 다르빗슈
다르빗슈 유는 LA 다저스 이적 후 첫 경기에서 잘 던졌지만 이후 5경기에서 평균자책점 6.94로 무너졌다. 커쇼와 짝을 이룰 것으로 믿었던 팬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르빗슈와 다저스 프런트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당장의 성적보다는 포스트시즌에 맞춰 문제점을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췄고, 등판 일까지 조정하며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정규시즌 마지막 3경기에서 19.1이닝 2실점으로 회복세를 보인 다르빗슈는 디비전시리즈 3차전에서 5이닝 2피안타 1피홈런 7탈삼진 1실점 호투로 시리즈 스윕의 견인차 역할을 해냈다. 이적 후 다르빗슈는 팔 각도를 살짝 내리는 등 투구 동작을 수정하고, 레퍼토리에 변화를 줘 장점을 극대화했다. 애리조나 좌타자들에게 커터 위주의 투구를 펼쳤고 우타자를 상대론 전매 특허와 다름없는 슬라이더 융단 폭격을 가했다.
경기 후 기자회견을 가진 다르빗슈 유는 경기 소감으로 다음과 같은 얘기를 전했다.
“지난 번 체이스필드에서 투구했을 때는 지붕이 닫혀 있어서 그런지 변화구의 움직임이 좋았는데 지붕이 열렸던 오늘은 불펜에서 공을 던질 때부터 이전과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마치 콜로라도(쿠어스필드)에서 공을 던지는 듯했다. 거의 완벽하게 변화구를 던져야만 했다. 전반적으로 오늘은 잘 던졌다고 생각한다.”
다르빗슈는 경기 전 로버츠 감독과 대화를 나눴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자신이 감독에게 “애리조나는 내일 경기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오늘 그들을 이길 것”이란 말을 했더니 로버츠 감독이 자신의 말을 인정했다고 소개했다. 다르빗슈는 어떻게 해서든 3차전에서 시리즈를 끝내고 싶었다는 속내도 내비쳤다. 만약 오늘 애리조나가 승리를 가져간다면 그 흐름이 애리조나한테 갈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
다르빗슈는 6회 첫 타자를 사구로 내보낸 후 교체됐다. 투구수가 74개라 투수로선 아쉬움이 남을 수 있는 상황. 그러나 그는 “감독의 의견을 존중한다. 3-1로 점수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경기라 상대팀에게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다”면서 “내가 감독이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란 말로 이른 교체를 수긍하고 받아들였다.
다르빗슈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해선)앞으로 8번을 더 승리해야 한다.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 모두 최선을 다할 것”이란 각오를 내비쳤다.
<코디 벨린저. 루키란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활약을 펼친 올시즌이다.(사진=이영미)>
# 올 시즌 최고의 발견, 코디 벨린저
누가 이런 신인을 기대했을까. 벨린저가 4월 데뷔했을 때만 해도 이만큼 활약할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이너리그 한 시즌 홈런 개수도 2015년 128경기에서 기록한 30개가 전부였다. 그러나 벨린저는 메이저리그 데뷔 첫 해, 자신의 프로 통산 최고 기록인 39홈런을 때려내며 다저스의 중심 타자로 자리매김했다. 타석뿐만 아니라 수비에서도 1루, 외야를 오가며 다재다능함을 뽐냈다.
그렇다고 걱정이 없지는 않았다. 많은 삼진 숫자 때문에 언제든 슬럼프에 빠질 수 있다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고, 실제 디비전시리즈 2차전까지도 10타수 1안타 6삼진으로 부진했다. 하지만 3차전에서 2점차로 달아나는 솔로 홈런을 날리며 무서운 신인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코디 벨린저는 우승 소감으로 “디비전시리즈에서 3연승을 이뤘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면서 “그런데 우리가 함께 그 일을 해냈다. 정말 선수들이 자랑스럽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벨린저는 3연승의 비결로 “선수들이 건강하다는 게 가장 중요하고 투수들의 활약이 컸다”면서 “마운드가 강하고, 마운드를 돕는 라인업도 탄탄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코디 벨린저는 5회말 원정 더그아웃으로 향하는 파울 타구를 몸을 날리면서 잡아냈다. 그 상황에 대해 묻자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공을 잡으려고 더그아웃 울타리로 빨리 뛰어 가려 했다. 그런데 공이 약간 빗나가더라. 그래서 공을 잡으려고 점프를 했는데 잠시 후 내가 땅에 누워 있는 게 아닌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사실 나도 내가 어떻게 해서 넘어졌는지 잘 모르겠다. 아직 비디오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웃음).”
애리조나 선발인 잭 그레인키를 상대로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던 벨린저. 그는 경기 전 그레인키를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타선이 강하기 때문에 모두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줘야만 했다. 그레인키가 오늘 잘 던졌지만 우리가 더 좋은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벨린저는 디비전시리즈에서 첫 홈런을 날리기 전까지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사실도 토로했다.
“시리즈 내내 나를 상대로 투수들이 공격하기 어려운 공들을 던졌다. 헛스윙 유도가 많았다. 그렇다고 포기하진 않았다. 언젠가는 내가 제대로 칠 수 있는 공을 던질 거란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홈런이 나온 공은 내가 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방망이를 휘두른 상황이었다. 그런데 진짜 홈런이 되더라. 1,2차전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런데 로버츠 감독이 타석에서 너무 많은 걸 하려들지 말라고 조언해주시더라. 그 말이 큰 도움이 됐다.”
올시즌 루키 신분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코디 벨린저는 수비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이게 바로 야구의 매력이다. 타자는 타석에서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수비를 잘 하는 것도 중요하다. 수비하는 상황에선 어떻게 하면 최고의 수비를 보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미워할 수 없는 '악동' 야시엘 푸이그.(사진=이영미)>
# 성숙한 에너자이저 푸이그
그동안 푸이그의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는 다저스의 독이 됐던 적이 더 많았다. 첫 해 활약을 기다리는 팬들의 기대엔 성적이 못 미쳤고, 야구장 밖에선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비판을 받았다. 그렇지만 다저스의 기다림은 올해 작은 결실을 맺었다. 타석에선 좋은 공을 기다리며 볼넷을 얻는 비율을 늘렸고, 필드에선 자신의 운동 능력을 십분 살려 골드글러브 급 호수비를 펼쳤다. 여기에 디비전 시리즈에서도 맹타를 휘두르며 ‘혓바닥 세리머니’로 자신의 에너지를 과시했다. 경기 후 클럽하우스에서 벌어진 샴페인 세리머니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앞장 선 이가 푸이그였다.
<야스마니 그랜달보다 수비와 공격에서 더 존재감을 보이는 오스틴 반스.(사진=이영미)>
# 착실한 안방마님 오스틴 반스
올해 다저스의 주전 포수는 야스마니 그랜달이었지만, 이번 포스트시즌에는 판도가 바뀔지도 모르겠다. 그랜달을 보조하며 그 이상의 성적을 내던 반스가 가을 다저스의 ‘미친 선수’가 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반스는 다저스의 두 번째 포수였지만 타격과 수비에서 그랜달에 뒤지지 않았다. 특히 그랜달의 장점이라는 프레이밍 실력은 대등한 수준을 자랑했다(프레이밍 득점 그랜달 20.2점, 반스 14.5점).
포스트시즌의 반스는 묵혀뒀던 타격 잠재력을 폭발시키고 있다. 3경기에서 타율 5할을 기록했고, OPS도 다저스 선수진에서 가장 높다. 그랜달을 중용하던 로버츠 감독도 반스가 타석에서 선보인 선구안과 끈질김을 칭찬하며 그를 3차전 선발로 기용했다. 내야 수비까지 소화 가능한 팔방미인 반스, 그가 바로 다저스 우승의 숨은 공신이다.
오스틴 반스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다르빗슈 유의 공에 대한 느낌을 이렇게 설명했다.
“95마일을 던지는 다르빗슈의 공을 받는 게 정말 재미있었다. 오늘 최고의 투구를 선보였다. 그와 배터리를 이뤄 경기에 참여했다는 게 즐거웠다.”
터지기만 하면 강력한 파워를 자랑하는 애리조나의 타선을 어떻게 상대하려 했느냐는 질문에는 “우린 그들을 많이 경험했다. 정규시즌에는 우리가 그들의 공격을 받았지만 오늘은 우리 투수들이 그들을 상대로 더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기쁨을 나타냈다.
반스는 3차전에서 그레인키를 공략한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레인키도 오늘 좋은 투구를 선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더 많은 공을 던지게끔 타석에서 집중력을 발휘했다. 그레인키를 무너트린 건 이전과 달리 그에게 공 하나라도 더 던지게 하려 했던 타자들의 끈질김이 있었기 때문이다.”애리조나의 다니엘 데스칼소를 상대로 홈런을 날린 것과 관련해서 반스는 “디백스에게 바로 답을 해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경기 흐름이 디백스에게 갈 수도 있었다. 점수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 항상 불안했는데 그 순간 홈런을 때려낸 것이다. 정말 최고의 순간이었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팀을 위해 불펜행을 감수한 마에다 겐타. 지금까지는 성공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사진=이영미)>
# 마에다의 철벽 불펜 변신
가을을 앞둔 다저스의 불안 요소 1순위는 ‘믿을맨’ 특히 우완 셋업맨의 부재였다. 클리블랜드하면 앤드류 밀러, 양키스하면 로벗슨과 베탄시스가 생각나지만 다저스에는 1이닝 혹은 그 이상까지 맡길만한 중간계투가 넉넉지 않았다. 정규시즌 평균자책점 2.06의 브랜든 모로우가 있지만 첫 포스트시즌 등판이라는 불안요소가 있었다.
마에다는 이런 불안감을 씻어낼 만한 활약을 펼쳤다. 이틀 연속 시속 95마일의 빠른 공과 오른손타자 바깥쪽에 날카롭게 꽂히는 슬라이더는 과연 이 투수가 선발 경쟁에서 밀려난 그 선수인가 하는 의심을 낳을 정도였다. 막강 애리조나 타선을 상대로 펼친 2이닝 4탈삼진 노히트 투구는 다저스 팬들이 그토록 열망하던 켄리 젠슨과 짝을 이룰 불펜 에이스의 모습에 가까웠다.
샴페인 세리머니를 제대로 즐긴 마에다 겐타는 불펜 투수로 포스트시즌에 참여한 소감을 묻자, “일반 시즌이 아닌 포스트시즌이기 때문에 팀 우승에 어떻게 해서든 도움을 주고 싶었고, 그게 결과로 나타난 것 같아 행복하다”고 말했다. 마에다는 “처음 불펜으로 갔을 때 준비하는 루틴에 변화를 줘야 했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적응이 된 것 같다”면서 “팀의 목표인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해서라면 어떤 역할이든지 할 각오가 돼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편 저스틴 터너는 베테랑답게 지금의 승리에 도취하기 보다는 내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시험은 지금부터이다. 오늘 우리는 즐겁게 파티를 하겠지만 내일부터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 이전의 경험을 토대로 남은 일정들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챔피언십시리즈는 더욱 험난한 여정이 될 수밖에 없다. 더 큰 즐거움, 행복을 위해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고 있는 켄리 젠슨. 3루 수비의 정석을 보인 저스틴 터너. 그리고 아쉽지만 로스터에 들어가지 못한 류현진. 모두가 한 팀이고,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갈 뿐이다. 저스틴 터너는 "오늘만 즐기고, 내일부터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챔피언십시리즈를 준비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사진=이영미)>
<미국 애리조나=이영미 기자, 스탯 박기태, 통역 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