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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솔민예배
제 목 : 행복지수/신33 : 26 - 29절
김성덕목사
금년에 영국의 민간 재단인 "싱크탱크 신 경제재단(NEF)"이
전 세계 143개국을 대상으로 해서 국가별 행복지수를 산출 발표했습니다.
1위 코스타리카로 100점 만점에 행복지수 76.1점으로
삶의 만족도 부분에서 최고점을 기록하고 있으며
평균 수명은 78.5세로 장수국에 속한다고 합니다.
2위 도미니카공화국, 3위 자메이카, 4위 과테말라, 남미국가들이고
5위 베트남으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10위안에 들어 있고.
대한민국은 44.5점으로 68위에 올라있습니다
위의 사실이 무엇을 말해 주고 있습니까?
행복이 돈이나 환경에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만족도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순전한 기독교’를 쓴 ,C.S. Lewis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 인생의 행복 정도는 인생을 호텔로 보느냐
포로수용소로 보느냐?”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호텔로 생각하면 너무나도 불편한 곳입니다.
그러나 포로수용소로 생각하면 너무나도 편한 곳입니다.
사실 70년도 발표된 행복지수 가운데서는 한국이 15위 였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추락을 했습니까?
70년대 사람들은 6.25전쟁, 60년대 보리고개를 겪었기 때문에
70년대 산업사회로 접어드니 하루 세끼 먹는 문제가 해결되니
등 따시고 배부르니 행복해짐을 느꼈습니다만
지금 X.Y세대는 가진 것보다 욕망을 이루지 못한
부족함을 더 많이 느끼고 있으므로
행복지수가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행복은 결코 소유에 있지 아니함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영도자 모세가
가나안 땅 입경과 죽음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는 축도의 마지막 결론부분으로 그 백성들을 향하여 29절에
“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1.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는 행복자라고 말씀합니까?
이 말씀 한 마디 이스라엘이 받은 복을 함축성 있게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도 하시는 말씀으로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들 앞에는 낙관적인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전쟁과 어려움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또한 가나안에 들어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들이 그들 앞에 가로 놓여 있습니다.
런데도 하나님의 종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 그가 이 땅에서 남길 수 있는 마지막 말,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적은 민족입니다. 그들 나라만큼 침략을 많이 당하고
고난을 많히 겪은 나라가 없습니다. " 너는 행복한 사람 " 이라고 말하는 지금도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나그네로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하여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런 형편에 무엇을 가리켜 복 받은 민족이라 하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이스라엘의 행복을 외적인 조건에 있는 것으로 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영원하고 신령한 복을 영적인 시각에서 볼 때 지금의 이스라엘이 진정한 행복의 사람들인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솔민가족들도 이 시각이 열려지시기 바랍니다.2. 그럼 이스라엘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29절 [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 우리의 행복의 근거는 바로 구원에 있다는 것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세상에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어도,
세상살이가 고난과 역경뿐이라 해도
우리들은 세상이 알지 못하고, 세상이 줄 수 없고, 세상이 뺏을 수 없는
너무나 귀한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엡1:3절에 보면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은 자라고 말합니다.
이 행복감을 누리시기 바랍니다.사랑하는 솔민 가족 여러분 !
내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대하여 감격해 보셨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무한한 행복감에 젖어 보셨습니까?
그러면 참으로 행복한 사람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원은 세상의 금은보화나, 부유함이나 권력이나, 쾌락으로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귀한 것입니다.
구원의 감격에 마음이 뜨거워지면 삶에도 눈이 뜨여집니다.
즉 삶도 달라진다는 말씀입니다.
영국의 에드워드 모트라는 사람은 37세까지 캐비닛 제조공으로 일했습니다.
이 사람은 공장에서 일하면서 열등의식과 불평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의 삶은 전혀 의미가 없었고 소망이 없었습니다.
어느 겨울 그는 런던 거리를 배회하다가 한 교회를 보고 예배당에 들어갔다.
그때 존 하야트 목사가
요한복음 3장으로 ‘거듭나는 도리’에 대한 설교를 하고 있었는데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그래,나도 거듭나야 한다’는
강렬한 소원을 가지게 됐었습니다.
성령께서 그의 마음의 문을 여셔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것이다.
이후 그는 “내 망치 소리는 이제 노래하기 시작했다.
내 망치는 이제 춤을 춘다.
그리고 마음속에는 생수가 솟는다.
예수께서 내 마음에 오셨기 때문이다. 나는 거듭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소망을 가졌습니다. 그 소망은 산 소망이었습니다.
그는 전에 하던 일을 계속했지만 행복한 목공으로 완전히 변화됐습니다.
삶도 점점 풍요로워졌습니다.
자기하던 일하던 목공소가 그의 소유가 됐고 점점 번영햇습니다.
결국 에드워드 모트는 성공적인 사업가가 됐고
예수님의 첫사랑을 기억하면서 감사의 찬송시를 기록했습니다.
바로 찬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우리 주 예수 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
우리의 진정한 행복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행복에 대해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운수대통', '복된 운수'라고 말하기도 하고,
'삶의 보람과 만족을 느끼는 흐뭇한 마음'이라고도 합니다.세상은 행복을 [운수대통]이니,
[복된 운수]라는 말로 행복을 정의합니다.사전이 요사이 만들어졌다면 뭐라고 했겠어요?
대박이죠? 그런데 이건 뭔가 잘못된 정의입니다.
역대로 복권 당선되어서 행복해진 사람 아무도 없데요.
그런데 [ 삶의 보람과 만족을 느끼는 흐뭇한 마음 ] 이라고 하는 것은
좀 그럴싸한 정의인 것 같습니다. 행복이 마음에 있다고 하니깐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 삶의 보람과 만족을 느끼는
흐뭇한 마음을 가지게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정의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지식인들은 불행한 이유를 무식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모순이 있습니다.
무식한자들이 불행하다면 유식한 자들은 행복해야하는데
유식하다고 행복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가 선진국이라 자처하는 미국이나 일본이 아니라
코스타리카라고 하는 것 보면
반드시 행복지수와 지식지수가 정비례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회학자들은 인간의 불행을 사회적 환경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회환경이 개선되면 될수록 인간은 행복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은 부유한 자들을 부러워합니다.
아픈 자들은 건강한 자들을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보다는 너무 좋은 환경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명이기를 누리고 있는데 과거 사람들 보다 행복합니까?
분명히 '편리한 세상'이라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만,
'보다 행복한 세상'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구원 받은 성도의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26절 [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 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분은 우리에게 행복자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행복의 근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여수룬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이 호칭은
성도 여러분들께서 자주 들어보지 못한 호칭으로 신33:5절, 26절과 사44:2절에 나옵니다.
이 호칭은 이스라엘을 좀 더 명예롭게 일컫는 시적 표현이며,
또한 이스라엘의 별명으로 쓰이는 호칭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과의 특별한 관계를 설명하실 때
<여수룬>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수룬은 사랑 받는 자, 옳은 자, 의로운 자라는 의미로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의로운 자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들을 때 ‘나도 여기에 포함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드실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택함 받고 죄사함을 얻고 의로운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잘나서 택한 것이 아니라 숫자가 많고 강해서 택한 것이 아니라 가장 연약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신 것은 그들을 사랑하시고 기뻐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신7:7절에 [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지만 여수룬이 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백성, 택하신 백성이기 때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구원 받은 백성 여수룬을 도와주십니다.26절 [ [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
이 말은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고
거기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복을 누리게 하고 행복한 삶을 안겨다 주십니다.
그럼 오늘 성경은 이스라엘이 축복 받은 모습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까?
28절 [ 이스라엘이 완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땅의 풍요로움과 하늘의 신령한 복을 누리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축복을 받는 이스라엘이 행복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만 축복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도 축복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저주에서도 구원하셔서 삶에 눈을 뜨게 하시고
물질적으로도 축복해 주십니다.
<다윗보다 행복한 사람>의 주인공 심 복순 권사의 간증입니다.
천안에 호두과자로 유명한 할머니가 있습니다.
바로 일제시대부터 변함없는 맛으로 전통을 지켜 온 심복순 권사입니다.
심 권사는 호두과자 상자 안에
전도지를 넣어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심 권사는 "나는 다윗보다 행복합니다"라는 고백을 곧잘 합니다.
왜 자신이 다윗보다 행복하다고 말했을까요?
심 권사가 호두, 밀가루, 설탕, 계란, 우유 등을 섞어
호두과자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34년부터입니다.
그녀는 제과 사업이 번창할수록
'육신의 배고픔을 채워주는 빵뿐만 아니라
생명의 빵을 공급하는 복음 사역자로 쓰임 받는 기회를 주십시오'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의 열매로 전도지 발송을 평생 해왔고,
많은 곳에 사회 봉사와 구제사업을 하며
교회를 7개나 지어 봉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평생 호두과자를 구운 심 권사가 행복한 이유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남을 위해 물질을 사용하면서도 행복해합니다.
이런 행복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땅의 돈을 하늘보화로 바꾸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 물질을 사용함으로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히 쓸 수 있는 돈을 저축하는 데서
행복을 찾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내일의 솔민가족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와 축복을 받아
행복한 사람이 된 성도는 남다른 사명이 있습니다.
그 행복을 우리만 누릴 것이 아니라 아직도 어둠에 처해 있는 세상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를 몰라 구원받지 못한 저 백성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여 그들도 우리와 같이 행복자가 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 복의 근원 삼으신 이유요
또한 우리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들께서는 하나님께 복을 받은 자일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복을 끼치는 자가 되어 살 맛 나는 세상 만들어 가는
행복한 60. 더 행복한 70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느 노인이 사과나무 묘목을 심고 있는데 손자가 말을 걸었습니다.
[ 할아버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서 할아버지가 심으신 나무의 사과도 많이 드셔요.
"손자의 말을 들은 노인이 삽질을 멈추고 말했습니다."아니다. 할아버지는 많이 살았단다.
할아버지는 이 나무의 열매를 따먹을 생각은 별로 없어.
이 나무를 심는 것은 너랑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야. 난 일생동안 사과를 많이 먹었단다.
그것들은 모두 내가 심지 않은 나무에서 난 것들이지.
그래서 나도 보답하는 마음에서 이 나무를 심는 것이야. ]
우리는 내가 심지 않은 것으로 많은 은혜를 입고 살아 왔습니다.이제 내가 심음으로
살 맛 나는 세상 만들어 가는 행복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우리가 이렇게 구원의 잔을 높이 드는 솔민가족주님의 기쁨이 되는
행복한 교회살 맛 나는 세상 만들어 가는 행복한 교회가 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안아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 합니다.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보호하시는
그 모습을 27절에서는 [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 로 묘사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팔은 권능과 능력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능력 있는 팔로
우리를 건져주시고 우리를 안아 주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보호입니까? 이 하나님의 팔에 붙들려 지시기 바랍니다.추운 겨울날,
영국의 어느 길거리 한 모퉁이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바이올린을 켜며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루 종일 그 자리에서 바이올린을 켰지만 누구 한 사람 귀 기울여 들어주거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날이 어두워지자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기 바빠
할아버지의 바이올린 연주에 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외국인이 다가오더니
할아버지의 연주를 서서 듣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할아버지의 연주를 듣고 있던
그 외국인은 할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빌려달라고 하더니 직접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그 외국인의 연주를 듣기 시작하더니
채 5분도 안되어 동전을 구걸하던 할아버지의 모자에 돈이 가득 찼습니다.
사람들은 돌아갈 생각도 않고 그 외국인의 연주를 계속 듣고 서 있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파가니니다!”라고 외쳤습니다. 파가니니는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로
그 곳을 지나가다가 바이올린을 키며 구걸하는 노인이 불쌍하여
대신 바이올린을 연주하므로 불쌍한 노인을 도와주었던 것입니다.
똑같은 바이올린을 가지고 연주하였지만 누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전혀 달라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만 살려고 할 때는 어렵고 곤고하지만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를 도와주시면 평안하고 풍성하며 기쁨의 삶,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그 오른 손으로 우리를 붙잡아 주시며 우리들의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들은 행복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팔에 붙들려지면
하나님이 나의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29절에 [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 라고 합니다.이것은 어떤 어려움과 대적이 앞에 가로 놓여 있어도 승리의 삶을 살아간다는 말씀입니다.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꼭 마음에 깊이 새겨 두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우리가 행복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시험에 대한 승리의 확신과 그기에 따른 훈련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이스라엘 족속이 남의 민족에 빌붙어 사는 종살이로 끝날 민족 같으면
이런 시련과 훈련이 필요 없겠지만
땅의 더 높은 곳을 타고 다니는 빼어난 민족으로 세움 받기 위해서는
신32:10-11절에 보면 1) 하나님이 광야에서 눈동자 같이 지켜 주셨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2) 독수리가 새끼를 훈련시키듯이 훈련시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동굴에 숨어사는 박쥐나, 땅을 파고 숨어사는 두더지 새끼 같으면
이런 훈련이 필요 없겠지요 그러나 땅의 더 높은 곳을 타고 다니는 독수리가 되자면
남다른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29절 마지막 [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라 ]
그러니 신앙의 시련 속에 훈련 받을 때 불평하거나 비명을 지르지 마시고
인내와 의지 속에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여수룬이 되시기 바랍니다.
혹 나의 삶에 어려움이 있다할지라도 하나님의 공사 중이라고 말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수룬에 대해서 축복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경고의 말씀도 있다는 것 알아야 합니다.
신32:15절 [ 그러한데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 ]
성경에 보면 이렇게 하나님의 여수룬 즉 행복한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으나
그 행복을 발로 찬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특히 야곱의 열 두 아들 중 장자 르우벤을 보면창49:3절
[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 마는
물의 끓음 같아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
물의 끓음 같은 인생 뭔가 되려고 하다 만 인생 성경에 보면 많이 있습니다.
에서가 그렇고, 사울 왕이 그렇고, 압살롬이 그랬습니다.
솔민 가족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복을 누리며 복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 결론 >
한 가난한 소년이 일을 마치고 집에 올 때마다
멀리 강 건너편에 있는 집이 황금유리로 번쩍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소년은 생각했습니다.
"야, 저 황금 유리집에 사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저 집에 가보고 싶구나."
그러면서 자신의 처지를 보면 "비참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소년이 큰 결심을 하고 그 "황금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집과 유리창은 황금이 아니었습니다.
창이 많은 그 집은 노을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날 뿐이었습니다.
소년이 '허무한 확인'을 하고 멀리 있는 자신의 집을 보았을 때
자신의 집도 노을을 받아 황금빛으로 번쩍이고 있었습니다.
남의 집 잔디가 더 파랗게 보이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행복은 돈, 권세, 명예 등의 조건에 좌우될 것이라 생각하고
그 뒤를 좇아가려 애쓰나 행복의 자리는
결코 그런 외적인 조건에 있지 않습니다.
행복은 바로 우리의 신앙과 마음속에서 창조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행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때마다구원의 잔을 높이 드는
행복한 60, 더 행복한 70의 여수룬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기쁨이 되는 행복한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아가 살 맛 나는 세상 만들어 가는 행복한 여수룬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