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손보다 얼굴을 구합시다
33: 15-18
15.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16.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의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18.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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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의 위대한 인물들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베드로, 바울은 자신들의 약점에 대한 처절한 절망과 좌절감을 느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오른 팔로 그들을 붙잡아 주셨을 때 비겁하고 거짓말 잘하고 겁쟁이였던 못난 사람들이 위대한 축복의 조상 아브라함이 되었고 이삭이 되었으며 야곱이 되었고 모세와 엘리야와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손길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도저히 불가능하고 도무지 희망이 없는 것도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역사하시면 기적적인 방법, 기적적인 역사로 일이 성취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을 구합니다. 그러나 여기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약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손길이 늘 이렇게 역사해 주시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게 보이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경우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급하고 강한 불처럼 역사 하실 때도 있어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안 되는 것을 반드시 되게, 도저히 절망적인 상황을 눈부신 희망의 상황으로 바꾸어 주시면 우리는 살맛을 느끼고 신바람 나고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연발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엔 가는 그런 하나님의 손길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형통하고 잘되었던 때와는 달리 내 앞에 캄캄한 안개와 먹구름만 자욱합니다. 그리고 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위대하신 하나님의 손길은 어디로 가셔 버렸는지 도무지 답답해 죽겠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멀리 계시기만 하고 나를 떠나 버린 것 같습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 원망, 불평하기를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이 안 나타나면 얼마나 절망하고 좌절합니까? 그렇게 감격하던 마음, 그렇게 감사하던 입술이 원망과 불평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 신앙의 우선 순위이고 하나님의 손길을 구하는 것은 차선 순위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 사실을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먼저 말씀하십니다.(출33:1-3)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섭섭하셨기 때문에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은 함께 하시지만 하나님의 인격적인 동행은 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모세는 하나님께서 출애굽 시켜 구별하신 구원의 행동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사실에 대해서 동행 거부 선언을 철회해주실 것에 대해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출 33:12-13) 이에 하나님께서 동행에 대한 약속을 하셨고(14절) 언약 백성으로서의 회복을 약속하셨습니다.(17절)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는데도 모세는 하나님께 "하나님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18절) 라고 계속 부르짖습니다.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라는 말은 주님의 얼굴을 내게 보여 달란 말입니다. 모세의 이 한마디의 부르짖음에는 엄청난 신앙고백이 들어 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의 영광을 보여 주지 않으면 가나안 땅도 싫습니다. 아무리 약속된 땅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래도 주님의 영광이 없는 곳은 싫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절대로 그곳에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여! 이제 저에게 주의 영광을 보이소서."
이처럼 모세의 항변은 인간적인 항변이 아니라 약속에 대한 신앙의 고백이며 확신의 표현이었습니다. 이러한 끈기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사랑하심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약속된 가나안 땅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구했습니다. 하나님 없는 가나안 땅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영광도 보았고 그의 임재도 깊이 경험하였습니다.(출33:20-23) 물론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정면으로 보지 못하고 후면에서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적으로 대면하면 누구나 죽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모세를 살리시려고 후면에서 당신의 영광을 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스런 임재 속에서 하나님이 가나안에 함께 가시겠다는 약속까지도 확실하게 받아 낼 수 있었습니다.(출34장) 우리가 본문에서 꼭 배워야 할 것은 우리가 먼저 구할 것이 하나님의 손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 곧 하나님의 임재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자에게는 하나님의 손길이 자동적으로 따라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본 자에게는 하나님의 손길이 언제나 따라서 역사 합니다.(마6:33)
그러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까? 누가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까?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손보다 하나님의 얼굴과 인격을 구하는 자입니다. 사람도 자꾸 상대방과 인격적인 관계를 돈독히 하고 신뢰가 있는 사랑을 추구해야 하지 날마다 그 사람 호주머니와 손에서 뭐가 나올까만 기대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하나님의 손에 먼저 관심을 갖지 맙시다. 약속된 가나안 땅부터 욕심을 내지 맙시다. 먼저 하나님의 얼굴, 하나님의 가슴, 하나님의 품을 사모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먼저 구합시다. 이것이 진짜 신앙입니다. 그럴 때 구하지 않는 가나안도 내게 오게 되며 하나님의 위대한 손길도 따라서 함께 역사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새 천년에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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