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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무엇인가?
성경본문: 전도서5:18-20
18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19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20 그는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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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해 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막상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꼭 집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일종에 ‘행복 노이로제’에 걸려있는 것만 같습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행복해야 한다.’며 행복에 대해 집착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면 행복은 무엇일까요? 그 답을 찾기 전에 한 가지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과 성경이 말씀하는 행복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말하는 행복이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선 세상에서 말하는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영어로 행복을 ‘Happiness’라고 합니다. 이 말은 영어 동사 ‘happen’에서 파생되어 나왔습니다. 이 말은 ‘우연히 발생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말하는 행복이라는 것은 인생을 살다가 우연하게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일이 잘 풀리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좋아 지고 기분이 좋아질 때 우연히 행복하다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출판되었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탈 벤 샤하르라는 교수가 심리학 과목으로 개설했던 강의 내용을 정리해서 책으로 펴낸 것입니다.
이 책에서 샤하르 교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어놓고는 막상 행복이 무엇이라고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구지 행복에 대해 정의해 놓은 것을 찾아본다면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감정이라고 할 것입니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여러 가지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방법이 다른 사람들과 잘 재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의외인데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랍니다. 그러니까 행복은 일상을 성실하게 사는 중에 어느 날 우연히 느끼게 되는 그런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언제 어떻게 오는 것인지 모른 채 우연히 맛보고 누리게 되는 감정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성경은 행복을 영어로 ‘Blessing’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복 또는 축복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이 말은 영어 동사 ‘bleed’라는 말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이 말은 ‘피를 흘리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말씀하는 행복은 피를 흘리는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이라는 말입니다.
민 6:23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제사장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축복하라고 일러주신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한마디로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어떻게 복을 빌어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이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우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행복이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은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로부터 얻어진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행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핵심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행복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체험할 수 있는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깨달음을 통해서
본문 18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전도자가 인생을 두루 살펴보니 각 사람에게 저마다 각양 다른 것들을 베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먹고 사는 것, 가지고 누리는 것, 그리고 일하고 땀 흘리는 것들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것 그것이 행복이라는 말씀입니다.
윌리엄 제임스라는 저명한 심리학자의 상담 사례 가운데 전해오는 이야기입니다.
뉴욕에 에밀리라는 처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불행한 여자라고 한탄하고 살았습니다. 다른 친구들처럼 멋진 남자와 데이트도 하고 사랑을 나누고 싶었지만 어떤 남자도 자기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슬퍼했습니다.
그녀가 제임스 박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제임스 박사가 자세히 살펴본 뒤 세 가지 처방을 내렸습니다. 하나 내일 백화점에 가서 새 옷을 사 입을 것 단 점원이 골라주는 것으로 살 것, 둘 내일 미장원에 가서 헤어스타일을 바꿀 것 단 미용사가 권하는 스타일로 할 것, 셋 우리 집 파티에 와서 파티 진행을 도울 것.
다음 날 에밀리는 제임스 교수가 시킨 대로 백화점 점원이 골라준 새 드레스를 입고, 미용사가 멋을 내 만들어준 헤어스타일을 하고, 제임스 박사의 파티 장에 와서 파티가 성공적으로 끝나도록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도왔습니다.
그러는 동안 쳐져있던 어깨가 춤추듯 신명이 나있었고, 두 눈은 바짝 거리고 있었고, 남을 배려하며 봉사하는 그 모습은 정말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파티가 끝나자 에밀리를 집에까지 바래다주겠다는 멋진 청년이 여럿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 날 에밀리는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자기도 충분히 매력이 있고,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는 남자들도 여럿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날 에밀리는 큰 행복을 맛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깨달음을 통해서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너무도 많은 것들, 너무도 귀한 것들, 너무도 멋진 것들을 주셨는데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고 우리가 깨닫지 못해서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약 1:16 이하를 보면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을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우리가 속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무도 귀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풍성하게 베푸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정말 소중한 사람들로 이 땅에 살아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중하게 만드셨고 귀한 것들을 풍성하게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늘 우리를 속입니다. 남들의 장점과 우리의 부족한 점을 비교하게 합니다. 우리의 욕망을 부추겨서 불평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게 만듭니다. 속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만의 장점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풍성하게 채우셨습니다. 이 점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누림을 통해서
19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우리가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 소중한 것 그리고 멋진 것들을 주셨다는 것을 깨달을 뿐 아니라 그것들을 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귀한 선물로 여기고 잘 사용하고 누릴 때 행복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 경복궁 가까이에 있는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매일 경복궁 앞을 지나며 등하교를 했습니다. 언젠가 경복궁이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가 궁금했습니다. 그러던 중 역사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역성혁명을 하고는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기로 하고, 그 모든 책임을 정도전에게 맡겼습니다. 정도전이 공사를 마치고 그 이름을 시경에 나오는 ‘군자만년 개이경복’(君子萬年 介爾景福) 이라는 구절에서 마지막 경복이라는 말을 따서 경복궁이라고 지었습니다. 그 뜻은 “큰 복을 누리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경복궁이라는 이름은 이 궁에서 다스리는 왕의 통치와 함께 백성들이 큰 복은 누리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이름인 것입니다. 나라를 새로 세우면서 국정철학이 경복 즉 백성이 큰 복을 누리기를 기원했다는 것이 참 귀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마음이 이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면서 그 땅에서 복을 누리며 살기를 바라셨습니다.
신 11:10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들어가 차지하려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그리고 11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는 것을 14절에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애굽 땅은 사막입니다.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일 강에서부터 물을 끌어와야 했습니다. 사막이라서 물이 바로 땅 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집니다. 그래서 계속 물을 끌어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매년 한 차례 홍수가 납니다. 그러니까 애굽 땅에서 산다는 것은 늘 불안하고 늘 염려하고 죽도록 고생하며 살아야 하는 땅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돌봐주시는 땅입니다. 늦은 비와 이른 비를 적당한 때 내려주십니다. 그러니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보살핌 속에서 주신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땅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가나안 땅과 애굽 땅의 차이는 하나님께서 보살펴주시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사람이 자기가 스스로 돌보며 살아야 하느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누리며 사느냐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가나안 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미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염려하거나 무엇인가 내 힘으로 해 보려고 쩔쩔매며 살 필요가 없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늦은 비와 이른 비를 또 주실 것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오늘 우리에게 주신 분복을 누리며 살면 됩니다. 그러는 중에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청소년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행복해 질 거야!’ 좋은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좋은 회사에 취업하고 예쁜 여자와 결혼하면 행복해 질 거야!’ 좋은 회사 다니고 예쁜 여자와 결혼하며 사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승진하고 부자 되면 행복해 질 거야!’ 도대체 언제 행복해 질까요? 이런 생각들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오늘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너무도 많은 것들을 주셨습니다. 참 좋은 것들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것을 누리며 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오늘 당장 행복할 수 있습니다.
기쁨을 통해서
오늘 본문 20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
전도자는 인생을 사는 동안 괴로움과 어려움들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문제를 너무 깊이 생각하다보면 그 문제에 사로잡혀서 근심하게 됩니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설프게 알고 생각하다 보면 근심만 가득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차라리 잘 모르면 편한데 무엇인가 조금 아는 것 가지고 생각을 골똘하게 하다보면 근심만 쌓입니다.
만수우환(萬愁憂患)이란 말도 있습니다. 만 가지를 생각하고 고민하는 가운데 근심만 쌓여간다는 말입니다. 공연히 쓸 데 없는 것을 자꾸 생각하다보면 마음속에 근심만 쌓여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근심이란 하나님께서 마침표를 찍은 것에 물음표를 붙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마!”고 약속하신 일에 대해 “정말 그럴까?”라고 생각할 때 근심이 밀려듭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인생의 힘든 문제 때문에 염려가 되면 그 염려를 주님께 맡기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맡아주시고 우리를 돌봐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힘든 문제는 우리가 고민할 문제가 아니라 주님께 맡겨버릴 문제입니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중대한 일들은 내가 골똘히 생각할 일이 아니고 주님께 맡겨버릴 일입니다. 그것을 내가 붙잡고 고민하고 내가 골똘하게 생각하게 되면 근심, 걱정이 내 안에 가득 쌓이게 되고 행복은 다 달아나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 속에서 전도자는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뻐하며 사는 사람들을 좋아하시고 그에게 더 풍성한 것을 채우신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보면 참 여러 곳에서 기뻐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뻐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고난 중에서도 기뻐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기뻐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보실 때 기뻐해야 마땅한데 잘 기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가운데서 구원 받았고, 죄인을 자녀 삼아주셨고, 지금도 함께 하시면서 지켜주시고 돌봐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당연히 기뻐해야 합니다. 그런데 시큰둥합니다. 때로 힘들어 하고 슬퍼하기까지 합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황당하실까요?
저는 사진을 찍을 때 사진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웃으라는 것입니다. “스마일”, “김치” 웃음을 유도하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어떤 분은 하도 안 웃으니까 “스마일!”하면서 자기 바지를 내리는 시늉을 하더라구요 왜 그럴까요? 웃어야 사진이 예쁘기 때문입니다. 좋은 날 사진이 우중충하면 되겠습니까?
우리가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너무 커서 참 좋은 날인데 우리가 웃지 않습니다.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진사처럼 “스마일!”을 외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웃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우리가 기뻐하면 마음속에 행복이 가득 차게 됩니다. 참된 행복은 우리가 사소한 일에도 기뻐하고, 항상 기뻐하려고 애쓸 때 어느새 우리 마음속에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기쁨은 우리 마음속에 등불과 같아서 우리 마음을 환하게 해 줍니다. 그리고 환하게 밝은 우리 마음속에 행복의 꽃이 활짝 피어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은혜도 풍성하게 베풀어주셨습니다. 먼저 우리가 이점을 다시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풍성한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 마음에는 행복이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