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5일 수요일. 수필
달뜨는 달력
박경선
저물어가는 해, 12월 끝자락이면 거리마다 성탄절 노래가 울려 퍼지고, 상점마다 걸어놓은 크리스마스 카드가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으며 반짝이던 시대가 있었다.
스마트 폰 시대가 되면서부터 카드가 슬며시 자취를 감추더니, 결혼 청첩장조차도 스마트폰 속으로 스며들어 ‘스마트폰 청첩장’이 오가니, 스마트폰이 종이 감추는 귀신같은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도 그나마 아직 스마트폰이 감추지 못하는 종이 달력이 있다. 물론, 스마트폰 첫 화면에도 달력이 떡하니 들어앉아 있지만, 벽걸이용 큰 달력이나 탁상달력은 아직, 은행이나 우체국, 기업 같은 데서 홍보용으로 나눠준다.
덕택에 우리 집에서는 해마다 성당에서 나눠주는 벽걸이 큰 달력을 얻어와 벽에 건다. 성당 행사도 볼 수 있지만, 가족이나 친척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기일 같은 것들을 적어놓고 보는 ‘가족 행사 메모판’ 달력이다. 은행에서 얻어온 탁상 달력에는 여러 단체나 회에 가입되어 있어서 회비 보낼 날짜랑 계좌번호 등, 기억해야 할 일들을 적는 메모용 달력으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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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해마다 달이 365개 그려진 달 그림 달력을 받는다. 단기 4355년으로 명기된 달력인데, 월, 화, 수, 목 금, 토로 표시되는 요일도 달, 불, 물, 나무, 쇠, 흙, 해라는 우리 말로 적혀있다. 매일 매일의 숫자를 노란 달 그림으로 둘러 두었다. 설날 1자는 빨간 해가 둘러싸고 밑에 ‘설날’이라고 써두었다. 15일은 15라는 숫자 밑에 ‘대보름’이라는 글씨를 적고 노란 대보름달이 둘러싸고 있으니 날마다 달이 뜨는 달력이다. 신기하게도 올해 양력 2월 1일은 음력으로 1월 1일 설날이라 딱 한 달만 양력과 음력이 같은 날이다. 그 덕에, 아직 음력으로 생일을 챙기는 우리 집안에서는 이번 달에 두 아들 생일과 내 생일과 사돈 생일, 시누이와 친정 동생 생일까지 여섯 명의 생일을 쉽게 기억할 수 있어 좋다. 또, 달 달력을 보면 하늘을 보지 않아도 오늘 달 모양이 하현달인지 상현달인지 그저 보인다. 해마다 이오덕 학교에서 제작해서 보내주는 고마운 선물이다. 내게 특히 고마운 것은 달마다 달력 밑에 이오덕 학교 정신이 쓰여 있어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셔서도 내게 가르침을 주시는 선물이 되는 달력이라서이다.
<9월-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 말을 읽다가, 새해 1월 2일 KBS 1TV 나눔 경영 쇼, <사장님이 美쳤어요>라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중소기업 ‘넥스틴’의 박태훈 사장이 하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가 회사 경영을 개인의 이익 추구에 앞서 개인 복지와 인간 중심 경영으로 하게 된 바탕에는 어린 날 아픈 추억이 자원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친구들과 학교 마치고 가는 길에 어머니가 막일하는 현장을 지나치며 자기 어머니가 아닌 듯 외면했던 기억을 울먹이며 털어놓았다.
“저는 어린 날 가난 앞에 왜 떳떳하지 못했을까요?“
그 물음은 내 가슴에 비수로 꽂혔다. 내게도 그런 부끄러운 유년 시절이 있었기에. 6학년 때다. 학교에서 불우이웃돕기 성미를 모으는 날 어머니는 쌀독에 얼마 들어있지 않는 쌀을 긁어모아 우리 형제가 가져가서 내어야 할 성미 봉투에 담아 주셨다. 학교가 끝나 집에 돌아와 혼자 있는데 담임선생님과 우리 반 회장이 학교에서 거둔 쌀 봉투를 담은 쌀자루를 우리 집에 들고 오셨다. 비록 달동네에 있는 집이었지만, 우리 집이 불우이웃 돕기 쌀을 얻어먹을 만큼 가난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고, 더군다나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학교에서는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해 온 터라 도저히 그 자리에 그냥 서 있을 수 없어서 부끄러움으로 달아오르는 얼굴을 감추려고 선생님과 회장을 마당에 세워둔 채 집 밖으로 내달려 산으로 도망쳐버렸던 기억이 아픔으로 생생하다.
2월 <이름 없이 정직하고 가난하게 사는 삶을 귀하게 여길 줄 알고 그 참뜻을 몸에 붙인다.>고 적혀 있다.
“나는 어린 날 가난 앞에 왜 떳떳하지 못했을까?”
하지만 6.25 사변 3년 뒤에 태어난 내가 자라던 어린 시절에는 대부분 가난하게 살면서도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의 직업을 존중하거나 귀히 여기는 풍토가 아니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배고픔이나 구멍난 런닝구나 양말을 숨기고 싶었던 가난은 부끄러움 그 자체일 뿐이였다. 만약, 그때 ‘땀 흘리며 일하는 삶이 고귀하다’는 것을 알고, ‘정직하게 사는 가난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나는 불우이웃돕기 성미를 거두어 오신 선생님을 마당에 세워두고 도망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 내게 단단한 꿈만 있었더라도 정말이지, 선생님께 그런 무례한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5월 달력 밑에는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몸소 행하는 사람을 기른다.>는 말이 적혀 있다.
그렇다. 그 일로 그때의 부끄러움을 딛고 일어서서 나도 잘살게 되면 내 주위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키우게 되었다. 교사가 되고 동화작가가 되어 이오덕 선생님의 추천으로 제일 처음 지은 책 <너는 왜 큰 소리로 말하지 않니> 책 3000권에 대한 첫 인세를 받던 날, 무덤에 누워계시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내게 약속했듯이 네가 책을 써서 받은 인세는 사회 복지 시설이나 불우한 제자들에게 나누어라.”
그래서 지금껏 23권의 책을 출간해 받은 인세나 문학상 상금은 둘레에 나누고 있다.
4월 달력 밑에는 <일하는 삶을 즐기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말이 적혀있다. 이 말은 내가 해마다 보내는 우리 반 문집<색동>이나 내 동화 원고들을 꼼꼼히 살펴보는 일을 즐기며 친절하게 가르침 주시던 이오덕 선생님이 생각나게 한다.
또 한편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가 되도록 건물을 설계한 가우디가 생각나게 한다. 2012년에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골고다 언덕을 오르다 쓰러진 예수님께 머릿수건을 건넨 ‘베로니카’가 있는 바로셀리나 성가족성당을 구경하고 싶어 스페인에 여행 갔을 때다. 성가족성당을 지은 안토니 가우디는 그 성당을 비롯한 건축물 일곱 개를 세계 문화유산에 올린 천재적 건축가였다. 장엄하고 창조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가 나를 압도하였다. 그가 성당을 짓기 시작했을 때 익명의 부인이 14000두로를 기부했기 때문에 저렇게 장엄하게 만들 생각을 할 수 있었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하더라도 곡선으로 장엄함을 표현한 그의 비범성은 경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일요일마다 방파제에 나가 빛과 색이 서로 다른 색조를 바라보며 영감을 얻었단다. 그런 영감이 베로니카가 들고 있는 땀수건에 까지 생명의 감각을 불어넣었나 보다고 생각했다. 나는 펄럭이는 땀수건을 한참이나 올려다보았다. 예수가 골고다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십자가의 무게에 눌려 지쳐 쓰러질 때 그 뒤를 따르던 베로니카가 머릿수건을 황급히 풀어 예수에게 내밀었겠다. 예수는 겨우 수건을 집어 들고 얼굴의 피와 땀을 닦았다. 그 수건에 ‘사람의 손으로 그려지지 않은 그림(아케이로 포이 에토스-acheiropoietos), 예수님 얼굴이 새겨졌다. 가우디도 예수의 고통을 함께 하며 베로니카와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그러니 그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가 되도록 건물을 설계하며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성당 바깥쪽, 그것도 정면에 베로니카의 땀수건을 새겨 놓았다.(요즘은 입장료를 40,000원 정도로 받고 있다니 부자만 들어가 볼 수 있는 성당이 되어 가우디가 슬퍼할 것 같다.) ‘누구라도 세상에 자식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아들의 마지막 가는 저 길의 수난을 어떻게 담담히 볼 수 있을까?’ 나는 사람들이 볼세라 성당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었다. 성모님과 함께 울었다. 성모님의 슬픔 속에 내 슬픔도 담아 울었다. 성당을 물러 나올 때는 성모님의 온화해진 눈빛을 보았다. 44년간 성가족성당을 지은 뒤 개인의 공적을 높이려는 욕심을 버리고 후배들에게 기회를 넘겨준 가우디에게 보내는 따스한 눈빛이었다. 부실 공사와 날림 건축물이 판을 치는 건축 현장과 자기 공덕 내세우기에 급급한 우리들 사는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 어떤 것보다 내가 감동한 것은 그의 죽음이었다. 가우디가 전차에 치였을 때 노숙자 차림새 때문에 세인들이 냉대하며 구조가 늦어졌고 빈민자 병원으로 옮겨졌을 때 신원이 밝혀지자 신부님이 와서 큰 병원으로 옮겨가자 했다. 그때 그는 세상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 돌리기를 바라
“나는 가난한 이들 사이에 머물겠다.”
고 고집하며 죽음도 서슴지 않았던 만큼 성인으로 추대되었으니 그야말로 <일하는 삶을 즐기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다>간 고귀한 성인이었다.
6월 달력 밑에는 <삶은 곧 일이고 배움이다>는 말이 적혀있다.
그렇다. 우리의 삶에는 모두 귀한 일이 깃들어 있고 배움의 나날이다. 늙어가더라도 삶이 끝나는 날까지 일을 놓지 않고 배워간다면, 죽음의 순간에도 두려움이나 슬픔 없이 바람 속으로 신나게 날아갈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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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달 뜨는 달력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동안 내 안에도 커다란 보름달이 휘영청 밝게 떠오르고 있다.
2022년 1월 6일 목요일 완, 21매
덧붙임:
해마다 이오덕 학교 달 뜨는 달력을 그저 보내주시는 이정우 선생님과 조언년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 담아 이 글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