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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욕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런 정의에 발끈하시는 분들 분명히 있다. 그것이 고전을 읽는 이유이고 재미이다. 읽을 때마다 다르고 읽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미친 듯한 사랑이 이해되지 않다가도 어느 순간 연민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들의 폭풍 같은 사랑이 너무 뜨거워 난 오랜 동안 식히는 과정이 필요했다. 뜨거운 사랑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는 자꾸 이성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려 한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열병처럼 사랑했던 한 순간이 나에게도 있었음을 기억하며 잉걸불처럼 그 안의 열정만은 그대로 간직하는 것이 그 사랑에 대한 예의이며 나에 대한 예의이며, 이 시대 서툰 사랑에 아파하는 모든 영혼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 열병이 꼭 이성을 향한 사랑이 아니어도..., 뜨거웠던 삶의 한 순간이 떠오른다면 잠시 눈을 감고 꿈길처럼 그 순간을 기억하자.
폭풍우 치는 어느 날 캐서린 언쇼의 아버지는 얼굴이 까만 사내 아이 하나를 데리고 온다. 그 아이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날로 성난 야생마 같은 그 아이는 가족이 된다. 그 아이 이름은 히스클리프. 광활한 자연 속에 고립된 워터링 하이츠의 아이들. 캐서린의 오빠인 힌들리 언쇼는 히스클리프를 싫어한다는 간단한 말로 정의 내릴 수 없을 만큼 그를 학대한다. 그리고 캐서린 언쇼, 둘은 하나이기도 하고 둘이 되기도 하며 서로 사랑한다. 이들의 운명은 캐서린의 아버지가 일찍 죽음으로 거세지기 시작한다. 힌들리는 히스클리프를 짐승처럼 다룬다. 타고난 거침과 단련되지 못한 인격, 보호 받지 못하는 어린 영혼은 캐서린의 사랑마저 배신당한다. 캐서린은 이웃 마을에 새로 이사온 신사 에드거 린턴과 결혼한다. 그의 사랑이 상처 받은 날 히스클리프는 워터링 하이츠를 떠난다. 그가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부자가 되어 다시 워터링 하이츠를 찾아왔다. 이로써 그의 저주 받은 사랑은 복수를 시작한다.
‘히스클리프’ 그의 이름은 절벽 끝에 핀 히스꽃이다. 폭풍우 치는 들판에서 거친 바람을 온 몸으로 맞아야 했던 그의 삶. 사랑했음을 알면서도 떠난 캐서린. 세상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했던 삐툴린 영혼 힌들리. 그들을 두고 나는 세 가지 물음을 해본다.
첫 번째 질문은 “사랑(혹은 결혼)을 선택하는 당신의 기준” 이다.
에드거 린턴과 결혼을 결심하는 캐서린에게 이 책의 주요 화자인 하녀 엘렌은 묻는다
“아가씨는 그 분이 잘생기고 젊고 명랑하고 부자인데다 아가씨를 사랑하니까 그 분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처음 네 가지 매력이 없다면 그분을 사랑하지 않을 테니까요. 현재만이 문제라면 그분과 결혼하세요.”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와 결혼하면 자신의 품위가 떨어질 것을 염려한다. 히스클리프를 자신 보다 더 사랑함을 알면서도 그가 없는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없다고 고백하면서도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에게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고 야생마처럼 키운 오빠를 원망할 뿐 자신의 문제는 돌아보지 않는다. 캐서린은 자신의 욕망에 따라 에드거 린턴과 결혼한다. 그리고 에드거의 돈으로 히스클리프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엘렌은 에드거의 돈으로 히스클리프를 가르치고 돌볼 수 있을 것이라는 캐서린의 말에
“지금하신 말씀은 도련님의 아내가 되는데 대해 지금까지 아가씨가 말씀하신 이유 가운데 제일 나쁜 것 같아요” 라고 말한다.
그렇다. 가장 나쁜 이유이다. 우리의 욕망의 끝엔 돈이 있고 그 돈이면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다고 속삭이는 악귀가 있는 거다. 그 악귀는 나의 속삭임이다. 타인의 욕망이 아닌 나의 욕망이, 사랑의 불나방이 되고 싶지 않은 나의 욕망으로 인해 결국 파멸될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탄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든, 돈이든.
두 번째 질문은 “‘너는 나야’가 의미하는 이 책 속의 사랑이 가져오는 파국”이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를 타인과 지나치게 일치시키려는 자만심이 가득하다. 캐서린은 히스크리프에게
“그가 나 자신보다도 더 나를 닮았어. 그와 나의 영혼은 똑같아. 내가 바로 히스클리프야” 라는 고백을 한다.
자신을 어린 시절부터 학대했던 힌들리 언쇼가 죽자 히스클리프는 힌들리의 어린 아들 헤이턴에게 말한다.
“자, 내 귀여운 아가야. 이제 너는 내 것이다. 그리고 바람을 맞아 휘면서 자란 나무치고 구부러지지 않은 나무가 있나 어디 두고 보자.”
히스클리프는 죽은 캐서린에게 이렇게 말한다.
“캐서린 언쇼. 내가 살아 괴로워하는 한 너에게도 안식은 없을 지어다! 내가 너를 죽였다고 말했어… 그렇다면 유령이 되어 나에게 붙어다오! 피살자는 살인자에게 붙은 법이야. 나는 유령이 땅 위를 방황하고 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어. 나와 함께 있어다오… 어떤 모습으로라도 좋다. 차라리 나를 미치게 해다오! 다만 네가 없는 이 지옥 같은 곳에 나를 혼자 내버리고 가지 말아다오! 오오, 하느님이시여! 너무하십니다. 나의 생명 없이 나는 어찌 살라고! 나의 영혼 없이 나는 어찌 살라고!”
그에게 캐서린은 자신의 생명이었고 영혼이었다. 타인과 자신을 분리시키지 못하는 그의 사랑. 캐서린도 자신이 바로 히스클리프라고 고백했던 적이 있었다. 서로를 분리시키지 못했던 그들의 폐쇄적인 사랑을 나는 소유욕이라고 생각한다. 그 소유욕은 타인을 자신으로 보면서 서로 파멸되어 간다.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위험하지만 매혹적이다. 한 번이라도 누군가를 죽을 듯 사랑해본 경험이 있다면 그의 사랑 앞에 우리 사랑은 온실 속의 화초에 불과할 것이다. 죽은 영혼이라도 자신에게 붙들어 두고 싶은 마음.
분명 한때는 사랑했는데 세월이 지나면 오직 한 사람만 남고 그 나머지는 모두 거짓이었다는 느낌이 올 때가 있지 않는가? 그렇게 오롯이 서서 사라지지 않는 오직 한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면 히스클리프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을까?
마지막 질문은 “사랑의 끝엔 뭐가 있을까?” 이다.
캐서린 언쇼의 죽음으로 1세대가 끝났다면 그들의 자녀들이 등장한다. 캐서린 언쇼와 에드거 린턴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캐서린 린턴, 힌들리 언쇼의 아들 헤이턴 언쇼. 히스클리프와 이사벨라 사이에 태어난 린턴 히스클리프. 자신의 완벽한 복수를 위해 히스클리프는 이 아이들에게도 창끝을 겨눈다.
“배반과 폭력은 양끝이 다 뾰족한 창과도 같아요. 이것을 쓰는 사람이 상대방보다 더 많이 다치는 법이예요.” 이 책의 화자인 엘렌의 말대로 히스클리프는 더 많이 아프고 더 많이 다친 사람이다.
언쇼가와 린턴가의 좋은 점을 이어 받은 캐서린 린턴, 그녀가 그 황량한 들판에 꽃을 피울 물을 주고 있다. 엘렌은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헤이턴에게 이런 모습을 발견한다.
“무성한 잡초 속에서 쓸 만한 풀이 숨겨져 있는 격이었다. 환경만 좋았다면 풍요한 수확을 거둘 수 있었을지도 모를 비옥한 토질의 헤이턴”
그런 헤이턴을 부끄럼과 열정을 심어주는 건 캐서린이었다. 사랑의 끝에서 다른 사랑이 태어난다. 야생마 같은 헤이턴. 캐서린의 멸시를 받고서야 비로소 부끄러운 마음과 그녀의 칭찬을 받고자 하는 마음에서 공부하고 싶은 생각을 했다. 다가가려는 캐서린에게 헤이턴은 말한다.
“나를 알면 알수록 더욱더 부끄러워할거야. 그것을 나는 견딜 수가 없어”
“그래서 친구가 되지 않겠다는 말인가요?”
너를 견딜 수 없는 게 아니라 나를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치욕스러워하는 나!, 부끄러워할 나! 그러나 현명한 캐서린은 그 모든 것을 이겨낸다. 서로를 인정하고 사랑하고 인정받으려 했으므로....
히스클리프 또한 헤이턴의 모습을 보며 캐서린 언쇼를 생각한다.
“히스클리프는 헤이턴을 육체적으로 학대하지 않았다. 젊은이 특유의 무서움을 모르는 기질 때문에 학대하고픈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소심한 나약성이 조금도 없다. 그래서 이 젊은이를 야수처럼 키우겠다는 쪽으로 악의를 돌렸다.”
히스클리프는 캐서린 린턴의 눈에서도 그가 사랑했던 캐서린 언쇼의 모습을 보게 된다.
캐서린 린턴이 히스클리프를 비난하며 저항하던 날. 캐서린의 머리채를 거머쥐고 죽일 듯한 기세를 보이다가 캐서린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손으로 그녀의 눈을 가리고 잠시 서서 진정한다. 그를 진정시킨 건 캐서린 린턴의 눈 속에서 캐서린 언쇼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랑의 뒤에 뭐가 남을까? 그래 사랑이 남는 거구나. 캐서린 언쇼를 닮은 두 아이의 눈 속에서 히스클리프는 복수의 허상을 보게 된다.
이미, 헤이턴과 히스클리프는 이성으로 끊을 수 없는 강한 유대감이 생성된 후였다.
평생을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산 히스클리프….
그의 마지막 고백이다.
“헤이턴은 인간이 아니라 내 젊은 시절의 화신 같아 보였지. 그 녀석을 보면 심경이 착잡해져서 도저히 이치에 맞는 말이 나오질 않네. 우선 첫째로는 그 녀석이 어찌나 제 고모를 빼어 닮았는지 그 녀석은 무섭도록 캐서린을 연상시킨단 말일세. 그러나 그 점이 내 마음을 가장 강하게 사로잡으리라고 자네는 생각할지 모르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단 말일세. 왜냐하면 내게 있어서 그녀를 생각나게 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느냐 말일세. 이 방바닥을 내려다보기만 해도 돌바닥마다 그녀 얼굴이 어른거린다네. 구름마다, 나무마다 – 밤이면 밤하늘에 가득히, 낮이면 눈에 보이는 물건마다 어른거리는 그녀의 영상에 둘러싸여 산다네. 가장 평범한 남녀의 얼굴이 – 나 자신의 얼굴조차도 – 그녀와 닮아보이니 어떻게 하나. 이 세상 전체가 무서운 비망록이어서 그녀가 살았었다는 것, 그리고 내가 그녀를 잃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네! 그렇지, 헤이턴의 모습은 나의 불멸의 사랑의 망령이며, 내 권리를 유지하려는 억센 나의 노력의 그림자며 나의 타락, 나의 긍지, 나의 행복, 나의 고통의 그림자기도 하지…. 내 영혼의 행복은 내 육체를 죽이면서도 만족할 줄 모른다네. 정말이지 나는 내 천당에 거의 다 왔다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천당은 내게는 아무 가치도 없고 부럽지도 않네.”
엘렌의 마지막 고백 또한 아름답다.
“나는 해맑은 하늘 아래 무덤 주위를 맴돌았다. 그리고 나방들이 히스와 초롱꽃 수풀 속에서 날아다니는 것을 바라보고 부드러운 바람이 풀잎을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이토록 고요한 대지에 묻히고도 고이 잠들지 못한 사람이 있으리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에밀리 브론테는 30이라는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죽음을 맞는다. 부모님도 일찍 돌아가시고 위로 자매들도 죽음을 맞는다. 오빠가 죽은 후 그녀도 병을 얻어 그 이듬해 죽게 된다. 그녀에게 죽음은 늘 그녀 가까이에 있었다. 캐서린이 죽던 날 캐서린의 죽음을 지키며 엘렌은 이런 말을 한다.
“저는 죽은 사람의 방에서 밤샘할 때는 언제나 즐거웠습니다. 이 세상도 지옥도 침범할 수 없는 안식을 보면서 무한하고 어둠이 없는 내세 – 그들이 들어선 영겁의 세계, 즉 생명은 영원하고 사랑은 무한하며 즐거움은 완전한 세계 – 의 약속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저는 주인님의 사랑조차도 이기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씨의 축복받은 해방을 지나치게 원통해 하셨으니까요.”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봐야 했던 브론테의 죽음에 대한 생각은 저리도 발랄하다. 위로 자매들도 죽고 부모도 죽은 어린 브론테가 죽음을 즐거움의 완전한 세계로 해방의 안식처로 인식한 것이다. 그리하여 사랑의 끝엔 사랑이 있다라고 말하고 싶다.
책을 읽으며 소설의 배경지인 워터링 하이츠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감동적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늘 바람이 부는 곳. 폭풍우가 몰아치고 히스꽃이 무리지어 피어 바람에 흔들리고 비바람이 부는 절벽에서도 꽃을 피우는 그 대자연에서 나도 그 바람을 한 번 맞아봤으면 하는 생각을 수없이 했었다. 영상이 보여주는 아름다움 중에서도 나를 가장 감동시킨 부분은 두 소년소녀가 바위산에서 바람을 맞는 모습이었다. 바위틈에 앉아 캐서린은 바람을 맞고 히스클리프는 사랑스런 그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풍경. 이미 그들은 거기서부터 하나가 되었다. 폐쇄적이라고만 생각할 수 없었던 그들. 그들을 키운 건 8할의 바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지극히 제한된 대사로 어둡고 음침하다. 대사가 없이도 꽃이 피고 지는 것만으로도, 바람이 불고 풀이 흔들리는 것만으로도 캐서린이 바람에 머리를 흩날리고 히스클리프가 말을 쓰다듬는 순간만으로도, 나방이 비에 젖어 팔랑이는 순간만으로도 충분히 모든 이야기가 이루어진다.
캐서린의 영혼을 찾아 무덤을 파헤치는 히스클리프의 광적인 절규
캐서린이 죽으며 한 그 말.
“저 바람이 그 집 창가의 전나무에 불어제치는 바람이라면! 바람을 만져보게 해줘. 황야를 불어내리는 바람, 그 바람을 한 모금만 마시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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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편의 모노드라마같은 글... 잘 읽었어요. 정말 멋쟁이...
감사합니다
글을 쓰며 내 안에 있던 폭풍같은 아이들도 바람따라 날아 가라 합니다
온전히 나만 남으려 합니다
부자가 되어 워터링 하이츠를 다시 찾은 히스클리프가....시작하는 .... 복수...
저주받은 사랑의 복수라...
내가 생각하는 복수는 내가 행복하게 사는 거.
내 마음에 사랑이 있어서 행복을 느끼는 거.
어제보다 조금 더,
어제 200그람.? 그럼 오늘 203그람 행복한 거.
배반과 폭력은 양끝이 다 뾰족한 창과같아서 찌르는 사람이 더 아픈 법이니.... 나의 행복이 최고의 복수인 칼가라님이야말로 진정 성숙한 사람 ^^
물론 ..잊지는 않으니...복수는 해야지...유쾌한 복수란...유쾌한 욕을 퍼트려서 나뷔효과가 되어 그 욕들이 그를 반성하게 만들어서 죽기전에 드라마처럼 나를 찾아와 용서를 비는...... 유쾌한 상상 ...ㅋㅋ 드라마를 너무 밨어...
맞아맞아 유쾌한 복수
긍정의 마음과 뜻을 널리널리 유포하여
스스로 자각하는 인간으로 ~~~~
한적한 시골길.
운전하며 다 먹은 아스크림.
차창밖으로 아스크림 껍대기를 버릴까 말까 버릴까 말까 하다 버리고는......
150미터 쯤 더 달렸을까. 이내 찜찜하여 그 휴지 주으러 유턴하는 내 성격으로는....
잔인하게 복수하고 싶은 ..나에게도 있는 저주받은 옛사랑...
아...복수같은 건 할 성격도 못됨.
난 오늘 대답했네
난 쓰네기도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
그랬더니 왈,
정신과치료가 필요하다나,
그래도 좋으네.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냐는
연탄재 한부로 차지말라는
잘자게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