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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세상을 덮는 하나님의 은혜
로마서 5장 12-21절
신앙을 점검하는 두 가지 기준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감사’와 ‘기쁨’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누리면서 감사하며 살아가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을 빼앗기지 않고 잘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래서 바른 성도들의 삶은 생활 가운데 자신의 ‘자랑’이 아닌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환경에 대한 ‘불평’이 아닌 삶에 대한 ‘기쁨’을 누리고 살아갑니다. 당신의 삶 속에 항상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삶이 되길 축복합니다.
앞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한 사람의 죽으심과 부활이 어떻게 모든 인류에게 구원을 줄 수 있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바울은 시조 아담과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함으로 설명합니다. 그것은 첫 아담이 불순종함으로 모든 인류에게 사망의 권세를 시작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순종함으로 모든 인류에게 생명의 권세를 시작되게 하셨습니다. 아담과 그리스도는 인류의 대표로서 한 사람의 행위가 선악 간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음을 말해 줍니다.
첫 아담을 통한 사망(12-14)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면 아담 때문에 죄가 들어왔다는 주장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항변합니다. 그들은 ‘왜 아담 한 사람이 범죄 했는데, 모든 인류가 죄를 지었다고 하는가?’라는 반문합니다. 그 질문을 다음에서 설명합니다.
12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14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12-14)
하나님의 화해 사역의 대상인 인간들을 연약하고(6), 경건하지 못하고(6), 죄인이며(8), 하나님의 원수로 묘사한 바울은 이제 죄와 사망의 기원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⑴ 한 사람으로 시작된 죄(12)
사도 바울은 첫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를 둘째 아담이라고 표현하면서 설명합니다. 먼저 시조인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오고 모든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고 제시합니다(12). 이 말을 들으면서 ‘아담 한 사람이 범죄 했는데, 모든 인류가 죄를 지었다고 하는가?’라는 기초적인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한 사람 첫 아담이 가져다준 결과는 사망이었습니다. 첫 아담은 인류의 대표로서 범죄 했기 때문에, 그 자손인 모든 인류는 죄의 영향력 아래 탄생한 것입니다. 이는 조상이 노예이면 자동적으로 그 후손들은 모두 노예인 것과 같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합니다. 한국 대표 팀들이 경기할 때마다 열광적으로 응원합니다. 한국 대표 팀이 승리하면, 마치 자신이 승리한 것처럼 기뻐합니다. 패하면 자신이 패한 것처럼 괴로워합니다. 우리들이 실제로 그라운드에서 뛰는 것도 아닙니다. 축구장의 승패를 마치 자신의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대표성의 원리입니다. 우리들이 한국 대표팀과 동일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첫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인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은 이러한 영적인 정체성 때문입니다. 첫 아담을 통한 생명을 얻은 사람들은 사망이 왕노릇 하고, 사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사망의 역사입니다. 세상의 역사에는 장수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모두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족보나 세상의 족보들은 모두 죽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담이 범죄 함으로 그 죄악의 뿌리가 우리에게 임하였습니다. 우리들이 범죄 하는 것은 그 죄의 뿌리가 낳은 열매입니다. 우리는 죄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 한, 이 땅을 살면서 죄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습니다. 우리들이 죄를 범할 때, 하나님께서 그 죄를 심판하심입니다. 그 심판의 결과는 사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죄의 삯(대가)을 사망으로 지불해야할 원칙입니다.
⑵ 죄를 위해 투입된 율법(13-14)
사망이 모든 사람들을 지배하게 된 사실을 역사적으로 설명합니다(13-14). 죄가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이 없는 시절에도 아담 이후 모두가 죽었습니다. 율법을 통해 죽게 된 이유가 확연하게 들어났습니다. 마치 어두운 방 안에 먼저는 빛을 비추면 들어납니다. 그 먼저는 빛을 비추기 전에도 있었지만, 단지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들을 율법을 통해 알게 되어 집니다. 그래서 율법은 우리의 죄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는 세상에 있었습니다. 율법 전에 살았다할지라도 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아담 이후로 속한 모든 인류는 사망의 그늘 아래서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위해 아담과 같은 또 다른 분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둘째 아담을 통한 은혜(15-19)
첫 아담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이는 아담이 모든 인류에게 영향력을 끼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그리스도가 끼친 영향력에 대해 비교하고 있습니다.
15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16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15-19)
모든 인류가 아담의 영향력 아래 있을 때, 사망이 왕노릇 함으로 죽음으로부터 자유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새로운 아담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사망의 효력을 발휘하였지만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의 효력을 발휘합니다(15-17). 아담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아 넘칩니다. 결국 아담은 죽음을 가져다주지만 그리스도는 생명을 가져다줍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정죄 받았는데, 또 다른 한 사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에 속한 모든 사람이 의롭다 칭함을 받아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됩니다. 첫 아담이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하지만 효력의 방향은 정반대입니다. 아담은 사망을 퍼뜨렸지만, 그리스도는 생명을 퍼뜨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모든 인류에게 미친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믿음의 원리로 하나님과 함께하게 된다는 사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누린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말씀합니다.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인류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수고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께로 피한 자들은 사망으로부터 자유한 자들입니다. 2011년 3월, 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폭발된 적이 있습니다. 일본과 주변 국가들이 원자로에서 새어나온 방사능(放射能) 때문에 고민했습니다. 각 정부에서는 방사능 비가 좋지 않기 때문에 맞지 말고 피하라고 권했습니다. 만약 그런 정부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많은 방사능이 포함된 비를 맞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방사능의 영향력 아래서 피폭을 당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죽음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인류를 살리셔서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이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향력이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까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여전히 아담의 영향력 아래 존재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왕노릇하고 사망의 권세 앞에 붙잡힌 인생으로 사망의 영향력 아래 존재하는 임하는 것입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그 대표성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은혜 아래서 율법의 역할(20-21)
하나님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라면 율법의 무용론(無用論)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은혜 아래 있는 사람들은 율법 없이 아무렇게나 살아도 좋은가?’라는 숙제가 발생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류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20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20-21)
우리들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는 말씀에 대해 잘못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음대로 죄를 짓고 살아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절대로 죄가 많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많아진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율법이 없을 때는 사람들이 범죄하면서 양심이 마비되어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했습니다(13).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다면 죄인을 위해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동안 율법을 통해서 자신의 범죄를 사실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쳐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모든 인류가 죄인이라고 고소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면 점점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연약함과 죄악성이 들어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영적인 탄식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이러한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21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7:21-25)
모든 인류는 율법을 통해 자신의 죄악을 들여다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감사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왕노릇 하다는 사실입니다. 이제는 죄와 사망에 구원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잘 받아들여 합니다. 예수님의 뜻을 따라 생각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각과 마음이 당신을 지배해야 합니다.
이상에서 모든 인류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발견하였습니다.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얼마나 엄청난 축복을 받았으며, 그 은혜를 누리고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아담 이후 죄를 통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죽음을 통해 속죄해 주셨고 그 은혜 안으로 피하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굳게 잡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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