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의 ‘대팽고회 大烹高會’
석야 신 웅 순
대팽두부
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
위대한 반찬은 두부·오이·생강(원서엔 가지)·나물이고,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손자가 함께하는 것
명나라 말기의 유신 오동리 「중추가연中秋家宴」이라는 시의 경련구 “大烹豆腐瓜茄菜, 高會荊妻兒女孫.‘에서 이끌어 쓴 명구로 추정된다.
이 대팽고회의 예서체 대련은 봉은사의 판전과 함께 추사가 칠십일과 시절에 쓴 명작이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대팽과 고회, 인생의 참의미를 깨닫게 된 것이다.
협서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此爲村夫子第一樂上樂
雖腰間斗大黃金印
食前方丈
侍妾數百
能享有此味者畿人
-爲古農書.七十一果.
이것은 촌 늙은이의 제일 가는 즐거움이다.
비록 허리춤에 한 말(斗)만한 큰 황금인을 차고,
밥 앞에 시중을 드는 여인들이 수백 명 있다 해도
능히 이런 맛 누릴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고농을 위해 쓴다. 71살의 과천노인
소박한 밥상과 사랑하는 가족이 그가 71세에 얻은 명제이다. 굳이 대련의 뜻을 설명한 것은 간절한 마음 때문아닐까. 추사 만년의 따뜻한 인간미가 묻어나는 명구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대팽을 찾아다니며 세상을 돌아다녔던가. 산해진미 다 먹어보았으나 돌아와 보니 소박한 두부와 오이・ 생강 ・나물이 최고의 반찬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많은 회합을 가져보았으나 돌아와 보니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딸, 손자의 가족이 최고의 모임이라는 것이다. 인생 만년에 깨달은 그의 위대한 발견이었다.
유홍준은 글씨를 이렇게 평가했다.
글씨 또한 글의 내용만큼이나 소박하고 욕심 없고 꾸밈이 없는 순후함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글 씨의 골격에는 역사적 연륜조차 느끼게 하는 옛비문의 졸함에 뼈속까지 배어있다.그러나 엄청난 기교이면서도 그 기교가 드러나지 않고 그저 천연스럽고 순박하게만 보이는 것이다. 그야말로 불 계공졸이고 대교약졸이며 허화로운 경지이다. 그런 경지에서 완당은 생을 마감하고 있었다.
이 글귀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절실한 화두이다. 웰빙의 먹거리와 가족 사랑만큼 소중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사람이 사는 세상은 고금이나 지위고하, 빈부를 막론하고나 다를 바 없다. 위대한 것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사소하고 가까운 곳에 있다. 가족과 함께 먹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행복한 세상이 아닌가. 이것이 위대한 밥상이고 최고의 모임이다.
말년의 과천시절 추사가 남긴 '대팽고회는' 인생의 좌표가 어디에 있는지를 말해주는, 평범성과 불계공졸의 아름다운 깨달음이었다.
공장식 가축 사육이 낳은 구제역 확산으로
소 돼지 사슴 수백만 마리가 생매장되었다고 한다
어느 지역 샘물에서는 핏물이 나왔다고 하니
선진국 타령을 하다가 선짓국을 먼저 먹게 된 것이다
추사 선생이 칠십 넘겨 남기신 마지막 예서隸書작품은
어린이 글씨처럼 쓴 대팽두부大烹豆腐 대련이었다
한자를 해석하면 이렇다
"가장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
"가장 좋은 모임은 남편 아내 아들 딸 손자 손녀"
- 공광규의 시 ‘대팽두부’전문
주간 한국문학신문,2016.3.2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