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1월 23일 (화) 맑음 –23세-
8시 기상, 청명한 날씨다.
허겁지겁 출근. ― 컨디션이 안 좋다. 건강을 헤쳐서는 싸울 수 없다. 건강이 제일의 싸움이다. 체질을 바꿔 나아가는 것, 건강하게 되는 것은 당연히 신심 외에는 없다.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하자. ―
오후에 가나가와 방면으로 출장.
돌아오는 길에 회사에 들르지 않고 바로 귀가.
취침 10시 조금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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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월 23일 (금) 쾌청 –25세-
좋은 날씨가 계속된다.
세계의 정세, 다사다난하다. 신문지상에서 밝은 뉴스는 사라지고 말았다. 공포에 가득 찬 세계다.
젊은 가슴이 아플 정도로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목숨을 완전히 버리고 대담하게 나의 신심으로 전진하는 것 외에 안온은 없다.
《법률원론》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선생님의 강의, 선생님의 사색,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
쓰루미 방면에 Y군과 함께 올해 처음으로 방문 교섭을 하러 갔다.
마상(馬上)에 오른 젊은 무사, 가는 곳 마다 반드시 승리로 장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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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1월 23일 (일) 맑음 – 27세-
8시 40분, 이타미(伊丹)비행장에서 S, A, T씨와 함께 극동항공편으로 고치(高知)에 갔다.
9시 55분, 들판 같은 고치비행장에 착륙. 전쟁 중에는 해군 비행장이었다고 한다.
마중 나온 차 3대, 산스이원(三翠園)에 도착.
1시 30분, 고치 지구 총회 개최.
선생님, 루소의 《사회계약론》사상을 기반으로 자유민권을 위해 일어선 이타가키 다이스케(1837~1919, 정치가), 나카에 초민(1847~1901) 등의 혁명에 대한 강연. ― 신시대의 평화 혁명 대사상은 이 니치렌 대성인 불법뿐이라고 ―.
나는 섭외부장으로서 인사.
‘고치의 광선유포는 여러분 손으로’라는 취지로 인사했다.
7시부터 축하연, 시고쿠(西國) 전 지역에서 모인 10명 이상의 승려와 함께.
11시 30분발 야간열차를 타고 오사카로 향했다.
피곤하다. 이 긴 여정과 야간열차는 생애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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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1월 23일 (목) 쾌청 –30세-
아침에 주사를 맞았다.
선생님도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
“투쟁의 원천은 강철 같은 육체이며 생명력이고 건강한 몸이다.”라고 항상 말하면서도 그 스승과 제자가 늘 병약하다니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괴롭다.
M군, W군을 본부 직원으로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대국적인 견지에서 어쩔 수 없다. 건투를 기원한다.
본부에서 돌아오는 길에 신주쿠의 F에 들러 아내와 둘이서 신년을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주운 밤이다. 밤하늘 가득히 별들이 반짝였다. 몇 년 전처럼.
독수리도 사자도 쉴 때가 있으리오.
그렇다면 쉬지 않는 자는 만용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세키가하라 전투(역주: 1600년 9월13일, 도요토미 사망 후 정권의 동요를 틈타 이를 저지하려는 정권 탈취를 노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 과 이를 저지하려는 이시다 미쓰나리의 서군이 벌인 전투) 때, 이에야스는 쉬면서 싸웠고 미쓰나리는 쉴 새 없이 싸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귀가, 12시가 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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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월 23일 (토) 흐림 –31세-
후쿠오카 강의. 활기가 넘쳤다.
젊은 날의 일기 (1월 23일).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