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만에 찾은 전라북도 군산은 쇠락해 있었다. 요즘 군산에서 가장 ‘핫하다’는 이성당 빵집은 성황인 반면 주변 건물은 곳곳이 비어 있었다. 이성당 앞길이 군산의 도심을 가리키는 중앙로, 사거리 이름도 중앙사거리인데 주변 상당수 건물이 1층만 영업할 뿐 2층은 문을 닫은 채 임대인을 찾고 있었다.
이성당은 본점 바로 옆에 신관을 개장하고, 2층은 카페로 운영할 정도로 활기가 넘쳤다. 그러나 부근 다른 건물, 다른 가게는 힘이 부쳐 보였다. 군산시가 근대문화도시 군산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옛 시청 자리에 조성했다는 중앙사거리 광장 주차장은 마치 이성당 고객 전용 주차장 같았다.
사실 군산의 쇠락 이미지는 고속버스를 타고 군산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며 실감했다. 시내 관광 안내 팸플릿을 구하려고 대합실을 둘러보았다. 다른 지역 터미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관광 안내문 대신 기술연수생 모집 공고문과 주거급여 신청, 군산사랑상품권 구매 사용 안내문이 꽂혀 있었다.
터미널 건물과 시설도 낡아 보였다. 기록을 찾아보니 1975년 준공돼 올해로 45년 됐다. 군산은 기차 타고 찾아오기가 여의치 않아 상대적으로 버스 이용객이 많다. 월평균 13만6000여명, 한 해 163만여명이 군산을 찾는 첫 관문이 고속․시외버스 터미널이다. 그날 저녁자리 식당에서 주인이 한 말, “버스터미널이 낡아 부끄럽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군산의 눈물…한국 제조업의 현주소
임해 산업도시 군산의 쇠락은 한국 제조업-특히 조선과 자동차산업-의 쇠락과 닮은꼴이다. 2017년 7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가동을 중단했다. 그 충격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인 지난해 5월 한국GM 군산공장이 폐쇄됐다. 군산 지역 총생산액의 26%를 차지했던 두 기둥이 잇따라 무너진 것이다. 조선과 자동차 관련 협력업체가 줄도산했다. 많은 근로자들이 실직했다.
일자리가 사라지며 군산 인구도 줄었다. 2016년 말 27만7551명에서 지난해 11월 27만2798명으로 감소했다. 인구 유출은 지역경기 침체로 이어졌다. 전북도에 따르면 군산 지역 임대아파트의 11% 이상이 빈집이다. GM공장 주변 원룸 공실률은 70%에 이른다. 소비 부진으로 상가 매출이 감소하고, 요식업소의 휴·폐업이 급증했다.
현대조선소와 GM공장이 쌩쌩 돌아가던 시절 ‘군산 개는 만 원짜리도 안 물어간다’고 할 정도로 경기가 좋았다. 그러던 거리 곳곳에 상가와 원룸 임대 안내문이 붙었다. 오죽하면 1899년 개항 이후 가장 혹독한 경제위기라는 말이 나올까.
군산은 1930년대 채만식의 풍자소설 ‘탁류’ 무대였다. 오늘날 쌀 선물거래소인 미곡취인소, 쌀 물류창고인 조선미곡창조주식회사가 군산에 있었다. 군산은 호남과 충청 일대에서 수확한 쌀을 일본으로 수출하고, 일본 공업제품을 수입하던 무역항이었다.
해방 이후에도 백화주조, 고려제지(세대제지), 한국합판 등 크고 작은 산업체가 둥지를 틀었다. 군산국가산업단지와 군장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활기를 띄었다가 현대조선소와 GM공장이 잇따라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군산, ‘한국판 러스트 벨트’로 낙인찍혀 더 낙후하기 이전에 스스로 부활을 노래해야 한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조성된 건축물과 거리(구불길)를 답사하러 오라는 식의 과거 유산을 파먹고 살 수만은 없다. 군산 옆에 서울시 면적의 3분의 2에 이르는 새만금이 있다. 새만금에 국제공항이 건설되면 투자 여건이 달라질 것이다. 2023년에는 새만금에서 168개국 5만여 청소년이 세계잼버리대회를 연다.
‘산업 역전 드라마’를 응원한다
군산 시민과 설에 고향을 찾은 이들이 임대 안내문이 나붙은 중심가에서, 낡은 버스터미널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 지역 경제계와 노동계가 지혜를 모아 군산 부활의 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5년 가까운 논의 끝에 ‘광주형 일자리’가 타결됐다. 기존 완성차 업체의 절반 수준 임금을 받는 대신 중앙정부와 광주시로부터 주거․교육․의료 지원을 사회임금 형태로 받는 노사상생 모델이다. 군산 현대조선소와 GM공장이 경영난으로 문 닫을 상황에 처했을 때 비슷한 고민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이제라도 광주형 이상의 ‘군산형 일자리’ 창출에 나서자.
2002년 대형 크레인을 단돈 1달러에 현대중공업에 팔며 눈물을 흘렸던 스웨덴의 조선도시 말뫼. 조선업 붕괴를 신재생에너지, 정보기술(IT), 바이오 등 첨단산업기지로 바꾸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다. 군산도 말뫼 이상의 대전환을 꾀할 수 있다. 과거 실패를 경험 자산으로 삼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군산은 그럴 만한 저력과 자산을 갖췄다. 1919년 3·1만세운동 나흘 뒤, 한강 이남에서 가장 먼저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킨 고장이다. 고려 말 최무선이 화포로 왜구 배 500여척을 무찌른 진포해전의 현장이다.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의 야구 신화도 여러 차례 썼다. 군산이여, 다시 일어서는 ‘산업 역전’ 드라마를 써라.
※ 이 글은 2019년 2월 8일 발간된 석간 <내일신문> 23면 오피니언 페이지 '양재찬 칼럼'에 쓴 것입니다.
http://www.naeil.com/naeil_todaynews/?date=20190208&npage=23&news=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