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명견만리 2권. ③ 인공지능과 함께할 미래
70여 대의 로봇이 일하는 호텔
깔끔하고 환한 호텔 로비. 하얀 모자를 똑같이 쓴 직원과 공룡이 나란히 프런트에서 투숙객을 맞이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둘, 로봇이다. 여자 로봇은 일본어 담당인데, 눈과 눈썹을 움직여 짓는 표정이 영락없는 사람 같다. 영어를 쓰는 사람은 공룡 로봇에게 가면 된다. 무섭게 생기긴 했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사람을 인식하고 친절하게 인사한다.
“호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체크인 카드를 작성해주세요.”
체크인 카드를 작성해 건네면 카메라에 얼굴을 스캔하라고 안내한다. 객실에 들어가고 나갈 때 열쇠 대신 안면인식 시스템을 이용하기 위해서다. 체크인을 끝내자 새로운 로봇이 등장한다. 짐을 실어다 주는 벨보이 로봇이다. 방에 들어서니 튜립 모양의 귀여운 서비스 로봇 ‘쥬리’가 인사를 한다. 쥬리는 사람의 목소리를 인식해 전기를 켜고 끄고 일기예보, 모닝콜, 관광명소 안내까지 해준다.
로봇이 나오는 SF 영화 속 장면이 아니다. 2015년 일본 나가사키현의 유명한 관광지 하우스텐보스에 문을 연 한 호텔에서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이상한’이라는 뜻의 일본어 ‘헨나(変な)’가 이름인 이 호텔에는 사람 대신 70여 대의 로봇이 호텔리어로 일하고 있다. 프런트, 짐 운반, 객실 서비스를 담당하는 로봇 외에도 안내 로봇, 투숙객의 짐을 보관하는 로봇까지 있다.
영화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만 가능했던 이야기들이 이렇듯 우리의 현실 속으로 성큼 들어오게 된 것은 모두 인공지능의 눈부신 발전 덕분이다. 로봇이 단순히 입력된 명령을 처리하던 수준을 뛰어넘어, 인간의 두뇌활동을 따라 하고 사람과 유연하게 커뮤니케이션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이미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하나의 예를 더 보기로 하자.
‘지보’는 2016년 미국의 한 벤처기업에서 개발한 세계 최초의 가정형 소셜 로봇이다. 소셜 로봇은 사람과 대화하고 관계 맺는, 말하자면 사람과 ‘통하는’ 로봇이다. 지보는 가족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구별하고, 질문과 관찰을 통해 학습하면서 가족 구성원과 소통한다. 아빠를 매일 아침 7시에 봤는데 어느 날 10시에 봤다면 지보는 자신이 늘 관찰해오던 시간이 아닌 것을 알고 이렇게 말한다. “오늘은 늦었네요.” 말하자면 사람이 친구에 대해 알아가는 것과 유사한 방법으로 지보도 사용자를 익혀가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용자의 행동 패턴과 취향 등을 더 잘 알게 된다.
지보는 중요 일정과 뉴스를 알려주고 메일을 보내는 등 개인비서 역할도 톡톡히 한다. 친구들을 불러 생일파티를 하다가 지보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할 수도 있다.
이렇게 다재다능한 지보의 가격은 얼마일까? 대당 499달러, 우리 돈 56만 원가량으로 크게 비싸지 않다. 출시 전에 이미 크라우드 펀딩으로 막대한 자금을 모을 정도로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지보만 보더라도 인공지능은 사람들의 일상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기술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세계의 주요 기업들은 미래 첨단산업의 최대 화두가 인공지능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구글의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는 대표적인 인공지능 예찬론자다. 그는 인터넷을 거대한 인공지능으로 만드는 것이 구글의 최종 목표라 밝힌 바 있다. 그 말을 입증하듯 구글은 2001년부터 14년간 인공지능 관련 기업을 인수하는 데에만 무려 280억 달러(약 31조 원)를 쏟아부었으며, 2012년부터 2015년까지 3년간 인공지능 관련 기업 17곳을 인수했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맞붙은 세기의 대결로 화제를 모았던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도 그중 하나다.
페이스북의 경우 2015년 1분기에만 수익의 무려 30퍼센트에 달하는 약 1조 2000억 원을 인공지능 관련 분야에 투자했다.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2016년 초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영화 <아이언맨>에 나오는 자비스 같은 인공지능 시스템을 개발하겠다”는 신년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두 기업뿐만이 아니다. 세계 각국은 지금 인공지능 산업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세계 인공지능 시장의 성장 속도가 이를 증명한다. 2013년 8억 달러에 불과했던 시장 규모가 2015년 370억 달러로 껑충 뛰었다. 전문가들은 10년 후 인공지능 시장 규모를 6조 달러, 우리 돈으로 6,700조 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시장이다. (78~81쪽)
인공지능은 인간의 능력을 어디까지 따라잡을까
그렇지만 여전히 인공지능은 일반인에게 낯선 개념이다. 2016년 3월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을 계기로 관심과 정책적 지원이 커나가고는 있지만, 아직 인공지능을 우리 자신의 이야기로 생각하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다. 인공지능이라고 하면 아직까지도 로봇을 먼저 연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로봇의 원조 격인 마징가 Z나 로봇 태권V를 떠올려보자. 그것들은 혼자서 움직이거나 말할 수 없고, 언제나 조종자가 필요했다. 인간처럼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능력은 갖추지 못한, 단순한 기계장치에 불과했다.
오늘날 로봇은 과거와 다르다. 점점 진화하여 이제는 사람처럼 말하고, 나아가 창의적이고 고도로 숙련된 업무가 필요한 분야에서도 이미 활약하고 있다. 이렇게 ‘사람처럼’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인공지능이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로봇처럼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를 갖춘 형태일 수도 있고, 컴퓨터 프로그램과 같이 형체가 없는 소프트웨어일 수도 있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있다.
2011년 미국의 유명 TV 퀴즈쇼에 출연하여 우승을 차지한 IBM의 슈퍼컴퓨터 ‘왓슨’이다. 자연어 형식으로 된 질문에 답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 된 인공지능 시스템 왓슨은 74연승을 기록한 인간 챔피언을 제치고 100만 달러의 우승 상금을 거머쥐었다. 퀴즈쇼가 진행되는 동안 왓슨은 질문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분석하여 정답을 막힘없이 외쳐댔다. 이는 왓슨에게 1초에 책 100만 권 분량의 엄청난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인간 퀴즈왕이 틀리고 왓슨이 맞힌 문제는 ‘7만 명의 종업원이 1년에 4개월만 일하는 회사의 이름’이었다. 이쯤 되면 제아무리 기억력이 좋고 박학다식한 사람도 왓슨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82~83쪽)
2030년까지 20억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 91쪽)
미국의 산업용 로봇 수는 지난 2000년 이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2000년 9만 대에서 2014년 25만대로 로봇이 3배 가까이 많아졌다. 그와 정반대로 노동자의 숫자는 반비례하여 줄어들고 있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노동력을 로봇으로 대체하고 있는 나라가 어디일까? 놀랍게도 바로 대한민국이다. 한국은 근로자 1만 명당 약 400대의 로봇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로봇 강국인 일본, 제조업 강국인 독일, 세계 경제대국인 미국보다도 더 높은 수치다. 그리고 앞으로 10년 뒤, 한국은 로봇을 사용해 인건비를 가장 많이 줄이는 나라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손가락을 만들지 않는 일본의 로봇 회사.
(95~96쪽)
인공지능 개발자가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로봇 3원칙도 있다. 미국 SF의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가 자신의 소설에서 제안한 로봇의 작동 원리인데, 다음과 같다. 제1원칙,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되며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척해서도 안 된다. 제2원칙,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제3원칙, (제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로봇 자신을 지켜야 한다.
일본의 한 로봇 회사는 자신들의 로봇이 범죄나 전쟁, 테러에 이용되지 않도록 로봇에 손가락을 만들지 않았다. 폭탄을 들고 테러리스트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또 범죄에 악용되지 않도록 사진을 찍을 때는 반드시 소리를 내도록 만들었다. 이렇듯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사람의 판단과 노력이 올바른 방향을 향해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97쪽)
미국의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의료 분야 인공지능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데이비드 팅 박사는 인공지능이 기존에 의사가 하던 일의 많은 부분을 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다고 인공지능이 의사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이 필요한 기록을 단번에 찾아내고 진료 추적까지 해줌으로써 의사는 잡무에서 벗어나 고차원적인 일을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의사의 믿음직한 파트너로 활동하는 것이다. 의사는 환자를 진료할 때 컴퓨터가 알아서 데이터를 기록하기 때문에 환자에게 더 집중할 수 있다. 그 덕분에 환자는 의사에게 더욱 정교한 상담을 받을 수 있고, 세계 어디에서나 보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본의 논리로 병원을 운영하지 않을 때의 이야기다. 이윤만을 추구한다면 의사는 로봇에 밀려날 것이고, 가난한 환자는 진료를 받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인공지능과 조화를 이루는 미래, 인간의 선한 의지에 달렸다
(99쪽)
지난 2011년 엄청난 희생자를 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발전소의 밸브 하나를 로봇이 대신 잠글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2015년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메르스 사태 때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잘 활용해 메르스 감염을 조기에 차단했다면 어땠을까? 인공지능은 사람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했던 많은 일들을 가능하게 하고, 기후변화, 질병, 범죄, 재해 등 인류를 위협하는 수많은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인류가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연산과 같은 능력 때문이 아니었다. 희생, 양보, 사랑과 같은 인간 본연의 숭고한 정신이 그 바탕이었다. 기계들이 아무리 똑똑해진다 해도 인류가 고난과 좌절을 극복하고 획득한 자유, 인권, 민주주의를 이룰 수는 없다. 그러니 결국 인공지능이 인류 문명과 아름답게 공존하는 미래를 만드는 열쇠는 인간의 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