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의 추억 # 8, 사상8교회, 혼쭐난 부산시장
세칭 동방교에서 내가 소속된 교회는 부산의 '사상8교회'이다. 부산의 사상은 서부경남으로 연결되는 간선도로변에 위치한 교통의 요충지였다. 1960년-70년대 당시는 부산시내에서 사상을 통과하여 구포에 이르러 구포대교를 통하여 낙동강을 건너야만 비로소 부산에서 서부경남 각 지역으로 갈 수 있었는데 그렇게 이어지는 간선도로가 유일하게 이것 하나 밖에 없었다.
그것도 겨우 편도1차 단선도로, 왕복 2차선에 불과했다. 지금이야 낙동강 하류 근처에 을숙도대교, 낙동강 하구둑 도로, 신낙동대교(남해제2고속지선 연결), 경전철 연결교, 중앙고속도로 연결교, 구포신대교, 구포철교(부산3호선 연결교), 남해고속도로 연결교, 대동화명대교, 중앙고속지선 연결 양산낙동강교등 10여개의 교량이 건설되어 서부경남으로 이어지는 교통이 원활하게 되어 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든다.
사상정류소에서 버스를 내려 서쪽 방향으로 한참을 걸어가면 700리 낙동강이 그 마지막 긴 여정을 끝내고 바다와 거의 맞닿아 가는 낙동강 하구에 다다르게 된다. 그 낙동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서 구포에서 하단까지 수십리에 이르는 긴 둑이 조성되어 있었다. 지금은 그 둑위에 산책로와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어 놓아 시민들이 즐겨 이용하고 있으며 산책로 양쪽으로 벚꽃나무들이 즐비하게 심겨져있어 벚꽃철이 되면 수십리에 이르는 벚꽃길이 조성되어 장관을 이루고 그 너머 서편으로 광할한 낙동강 둔치에 삼락공원이 더 넓게 조성되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지금도 건재한 그 둑을 경계로 동편의 아래쪽 하천변에 허름한 가옥 몇 채로 조성된 조그만 마을과 고기잡이 배들이 한가로이 매여있는 샛강인 덕포천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지붕이 스레트로 덮혀진 흐름한 목조건물인 창고 비슷한 집 한 채가 있었다. 그때 당시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곳이 무슨 고아원이었다고 한다. 이곳에 40대초반이 될까 말까한 정도로 기억되는 김인경 입다목사라는 분이 세칭 동방교의 '사상8교회' 책임자로 있었는데 그는 시력이 좋지않아 한지를 크게 잘라 수십장을 끈으로 꿰메어 싸인펜으로 쓴 커다란 글씨를 눈앞에 바짝 대놓고 보던 분이다. 그분의 부친이 운영하던 고아원을 그대로 인수받아 당시에 교회로 사용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세칭 동방교의 교주요 자칭 하나님인 노광공이 여기에서 1965년도에 집회를 열었던, 동방교에서는 아주 유서깊은 곳이기도 하다. 나도 그 집회에 중2의 어린 나이로 참석하여 살아있는 자칭 하나님(?)을 만났던 곳이다. 이 유서깊은 곳이 부산시의 도시계획에 포함되어 철거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지금의 하단에서 구포로 이어지는 산업도로를 건설하기 위해서였다. 도시계획 집행을 위한 철거통보가 도착한 날, '사상8교회'에서는 역사적인 이곳이 철거당하게 되었다고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난리가 났다.
그즈음 동방교의 최고간부로 사주(四柱)중의 한사람인 양학식 베드로목사가 부산에 와서 이곳 사상 8교회에 들러 신도들을 모아놓고 집회를 열고 있었는데 설교중에 ‘이곳이 어떤 곳인데 함부로 철거당하게 그대로 둘 줄 아느냐’고 하면서 큰소리를 뻥뻥 치고 있었다. 기도중에 부산시장의 영(靈)을 불러 ‘단단히 혼을 내 주었다’고 하면서 ‘두고 보라’고 주먹을 불끈 쥐고 그의 특기인 어금니를 꽉 물고 씩씩대며 자신있게 큰소리를 치고 갔다.
아니나 다를까 철거한다는 날에 철거는 커녕 아무일도 없지 않은가! 그러면 그렇지, 이곳이 어떤곳인데 제깟놈들이 지 마음데로 이 유서깊은 성전(?)을 철거한단 말인가! 성부 하나님인 이래 조부님께서 직접 오셔서 역사하시던 곳인데... 하면서 모두 의기양양해 있었다. 그때는 몰랐었다. 도시계획실시를 위한 행정집행이라는 것이 민원발생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1차통보, 2차통보, 3차통보, 행정대집행 등의 절차를 거쳐서 가능한 한 시끄럽지 않게 업무를 추진한다는 것을.
얼마의 기간동안 몇 번의 통보를 거쳐서 결국 사상 8교회의 건물은 약간의 보상을 받고 철거당했다. 부산시장의 영(靈)을 불러 단단히 혼을 내 주었다고 큰소리 뻥뻥 쳐대던 그 호기는 어디로 갔는지, 포크레인이 굉음을 내면서 거룩한 성전(?)을 찍어 내려 허물어 버리던 날, 나는 그때 심한 자괴감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사상의 그 산업도로변을 지나치면 눈에 잡힐듯이 생생하게 그 시절이 상기되는데 심한 자괴감으로 얼룩졌던 그곳을 쳐다 보노라면 당시의 뜬구름 같은 환상들이 되살아나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아래 사진 : 위 큰사진 중앙의 다리부분을 확대한 모습 )
위의 사진은 세칭동방교의 ‘사상8교회’가 있었던 장소의 현재 모습이다. 사진의 중앙부분 콘크리트로 조성되어 있는 광장같은 곳이 그 위치다. 큰 사진의 왼편으로 구포에서 하단으로 이어지는 산업도로가 보이고 도로의 왼편쪽으로 우거진 벚꽃나무들이 즐비하게 줄지어 서 있고 벚꽃나무사이로 긴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시민들이 즐겨찾는 명소가 되어있다. 고기잡이 배들이 한가로이 매여있던 샛강 덕포천은 이렇게 정비되어있고 건너다니던 다리는 새로 만들어졌지만 어렴풋한 자취는 그대로 남아 그 시절을 말해주는듯 옛 정취만 드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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