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웨이브New Wave 장르에 속하는 펑크Punk는 일반적으로 변태적이고 세기말적인 분위기의 음악을 표현한다. 주로 영국계의 그룹들이 이런 음악을 들고 나왔지만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영국의 펑크 뮤지션에 영향받은 고고스Go·go’s는 펑크의 기질을 미국적으로 변형시킨 그룹이다. 일반적인 펑크 스타일이라기보다는 고고스만의 독자적인 성격이 짙다고 보면 된다. 1977년 LA에서 유일한 펑크 클럽이었던 The Maszue에서 만난 여성들이 뜻을 모은 고고스는 ‘Our lips are sealed’로 당시 국내 팬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던 팀이다. 귀여운 외모와 자그마한 체격 그리고 남자에게 지기 싫어하는 이 여성 5인조 밴드는 여성으로서의 음악적 긍지를 살려 냉엄한 록계에서 꽃을 피우려는 야심을 지니고 있었다.
정식으로 그룹이 만들어진 건 1978년 초. 5명의 여전사는 미국 서부지역에 맹렬한 진격을 시작했다. 미국 서부지역이면 비교적 부드럽고 달콤한 사운드가 빛을 보기 마련인데 고고스는 그것도 여성 밴드로서 파워풀한 사운드를 과감히 들고 나갔다. 펑크는 미국에서 발을 붙이기 힘든 장르지만 고고스는 여기에 팝적인 감각을 섞는 전략을 택했다.
고고스 탄생 이전의 역사를 돌아보자. 그룹 결성의 핵심 멤버였던 제인 위들린Jane Wiedlin은 과거에 전혀 그룹 활동을 한 적이 없었다. 기타도 잡아본 적 없고 작곡도 아는 것이 없었다. 그는 패션 디자이너였다. 하지만 늘 최고의 인생의 한 부분을 보내기 위해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고 정열적으로 도전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는 그는 1976년 펑크 음악이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를 모았을 때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그러다 LA에서 Belinda Carlisle를 만난 것이 고고스 결성의 모태가 되었다. 두 사람이 그룹을 만들기로 의기투합한 뒤 제인은 디자이너 일을 그만 두고 음악 공부에 들어갔다. 먼저 베이스 기타를 배우고 나중에는 작곡 공부도 병행했다. 벨린다는 제인에 비해 음악에 대한 관심이 더 큰 인물이었다. 고교 졸업 뒤 배우가 되려고 할리우드로 옮겼고 거기서 서서히 음악계에도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는 점차 영화보다 음악에 욕심이 생겨 무명 밴드의 백업 보컬로 활약하기도 했다. 악기는 리듬 기타나 베이스 기타를 연주했다. 2개월 뒤에는 새로운 멤버가 들어왔다. 역시 할리우드에서 만난 Charlotte Caffey. 그는 원래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했고 베이스 기타에도 능한 재주꾼이었다. 1960년대에 라디오광으로 비틀스 노래를 들으며 성장했다고 한다. 1979년 초에는 드럼 주자인 또다른 멤버 Gina Schock이 들어왔다. 지나는 이미 영화배우이자 뮤지션인 Edie Massey의 밴드 Edie and the eggs라는 밴드에서 활약했던 이력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로큰롤 스타가 되는 게 꿈이었던 그는 코미디언을 지망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뮤지션이 된 뒤 9년 동안 드럼을 연주한 실력파였다. 지나가 고고스에 가입한 게 1979년 6월이었다.
펑크의 불모지 LA에서 분장까지 하고 나타난 고고스는 그때까지 일반 클럽의 무명 밴드로 일부 젊은이들에게만 알려져 있었지만 LA를 찾은 영국의 뉴웨이브 그룹 Madness가 ‘Whisky a go go’ 공연 때 오프닝 밴드로 나서면서 Madness의 마음에 들어 곧바로 영국 공연에 합류하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1980년 영국 공연에서 또다른 행운을 만나는 게 되는데, 뉴웨이브 전문 레코드 Stiff 레코드에서 고고스의 곡을 발매하게 된 것. 이때 첫 데뷔곡이 바로 그 유명한 ‘We got the beat’이었다. 영국에서 판매가 순조로웠던 것은 물론 1980년 빌보드 디스코 차트 톱100에 랭크되는 기쁨을 맛봤다. Stiff에서는 싱글 1곡만 취입하고 귀국한 고고스는 드러머 교체에 이어 또한번의 멤버 교체를 맞는다. 16세 때부터 기타를 연주하던 텍사스 출신의 Kathy Valentine이 새로 가입한 것. 캐시는 오래동안 LA에서 활동하는 밴드 The Textones에서 싱어송라이어로, 기타리스트로 활동한 경력이 었었다.
고고스는 여성이 남성 밴드가 판치는 록계에서 비주얼 같은 시각 효과를 노리는 꽃같은 존재가 아니라 여성만의 독자적인 밴드를 이끌어 보겠다는 긍지를 갖고 출발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1981년 4월 드디어 I.R.S 레코드와 전속 계약을 맺고 프로듀서로 Richard Gottehrer와 Rob Freeman을 초대해 첫 데뷔앨범 <Beuty & the beat>를 세상에 내놓았다(한국에서는 1982년 지구레코드에서 나왔다). “1960년대의 The Ronettes의 매력과 1980년대 초반의 현대적 감각이 가미된 가장 현실적인 여성 록밴드”라는 찬사, “블론디Blondie보다 뛰어나다”는 평가 등 각종 매체들로부터 호평을 들었다. 무대 위에서는 남성에지지 않는 힘찬 록 사운드를 구사하지만 “애인 있느냐”는 질문에는 얼굴을 붉히는 수줍은 순둥이들이기도 하다.
컨트리 록과 소프트 & 멜로우의 본고장인 LA에서 고고스가 통했던 것은 무엇보다 미국적인 록사운드를 구사하는 매력 때문이다. 펑크를 기본으로 하지만 멜로디는 뚜렷하다. 이전의 여성 밴드 The Runaway의 과격형과도 다소 거리가 있는 귀여움도 지니고 있다. 고고스의 슬로건은 이렇다. “Happy, wild, sexy, boy crazy, fan, loving!” 그렇게 고고스는 1980년대 초반 한국의 男心을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