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02
대통령이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40%를 마지노선으로 주장한 기획재정부에 “근거가 뭐냐”고 질타하자 갑자기 채무 비율 기준은 60%로 ‘순간이동’했다. 결국 기획재정부는 재정준칙을 도입하면서 국가채무 비율은 60%, 통합재정수지(국민연금, 사학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포함) 비율은 –3%를 유지하겠다는 기준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기재부 스스로 2024년에 국가채무 비율 58.6%를 전망하고 있다는 점. 2025년 도입되는 재정준칙 기준 60%는 지금 재정 지출 속도라면 어차피 지킬 수 없는 숫자인 셈이다.
사실 국가채무 비율 40% 마지노선은 근거가 있는 숫자다. 국가채무와 경제성장률의 관계에 대한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렇다. 미국⋅EU 같은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가 국채 발행을 크게 늘리면 국가신용도가 떨어지고 환율이 불안해질 수 있다.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글로벌 경제에 크게 영향받기 때문에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재정 건전성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개방 경제 국가들의 적정 채무 비율은 40% 초반대이고, 비기축통화국의 적정 채무 비율은 30% 후반대라는 연구 결과는 국가채무 비율 40%가 심리적 숫자가 아니고 과학적 수치라는 걸 의미한다.
이 정부 국정 과제에는 모든 연령대에 대한 현금 살포 공약이 포진해 있다. 무상 보육과 자녀 장려금 제도가 있음에도 아동 수당을 도입했다. 기초연금은 이전 정부 10만원에서 30만원으로 껑충 뛴다. 세금으로 만드는 노인 일자리는 두 배 증가하였고, 1인당 40만원을 준다. 국민 취업 지원 제도 도입으로 청년들에게는 구직 촉진 수당 300만원이 제공된다. 모두 국가채무 비율을 높이지만 정책 효과는 확인하기 어렵다.
협의(狹義)의 국가채무 비율만이 아니라, 비금융 공기업들이 정부 사업을 수행하면서 발생하는 광의(廣義)의 국가부채 증가도 심각하다. 세계 최고 기술의 원전 포기와 태양광을 비롯한 경제성이 떨어지는 신재생 사업 밀어붙이기로 발생한 한전의 적자, 청년들 공분을 산 무원칙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인한 인건비 증가, MRI 검사 급여 확대 등으로 도덕적 해이를 부추겨 8년 만에 적자로 돌아선 건강보험기금 재정이 대표적이다. 의사 결정 과정에 경제적 합리성은 사라지고 정치적·이념적 이해관계로 점철된 절름발이 정책들 탓에 대한민국 전체가 골병이 들어가고 있다.
감사원의 월성 1호기 감사 결과는 더 가관이다. 우리나라 전기 요금은 원자력, 석탄, 가스 등 실제 운용하는 발전기 중 가장 값비싼 발전기의 전력 생산가를 기준으로 결정되는 구조다. 전력 수요가 적으면 발전 단가가 상대적으로 싼 원전, 석탄 등만으로 대부분 충당할 수 있어 전기 판매가가 싸진다. 반면 전력 수요가 많은 피크 시간대는 비싼 가스 발전기까지 동원해야 하기 때문에 전기 판매가가 비싸진다. 원전은 발전원 중 가장 싼 연료라 원전 가동률이 높으면 전기 판매가가 내려가는 셈이다.
그런데 이번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과정에서 한수원은 월성 1호기 가동률을 60%로 제시, 원전 가동률이 낮다고 예측해놓고선 전기 판매가를 계산할 때는 원전 가동률을 84%로 입력했다. 그래야 전기 판매가가 싸져 가동률도 낮고 전기 판매 수입도 빈약한 ‘비효율’을 보여줄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같은 보고서에서 가동률을 항목에 따라 다르게 산정한 것이다. 감사원 보고서를 보면 그 외에도 가동할 경우 수익은 과소 추정하고, 비용은 과다 추정한 부분들이 지적되어 있다. 7000여억원을 들여 안전 설비를 보강하여 가동 시한을 늘리기로 해놓고,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정당화하려면 월성 1호기 가동에 경제성이 없다는 결과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원전 사고 발생 확률과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고려해도 원전은 신재생에너지와 비교할 때, 값싼 청정 에너지원이다. 그런데도 돈을 들여 설비를 보강하여 연장 운전하기로 한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을 부당하게 저평가하여 폐쇄하고, 전국에 태양광 패널을 깔고 있다. 한전은 신재생에너지 구입 대금까지 발전 자회사에 정산해주면서 적자를 늘려 가고 있고, 이는 광의의 국가부채 증가를 의미한다. 그 사이 세계 최고 원전 기술은 사장되고 있으며, 민간 원전 사업자는 빚더미 속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정부 돈 풀기와 공기업 적자로 국가부채를 증가시켰으면 괜찮은 일자리라도 만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민간의 투자와 질 좋은 일자리를 ‘구축(crowding out)’하고 있다. 경제성을 저평가하면서까지 이념 정책에 전념하느라 거의 모든 경제 정책이 기·승·전·국가부채로 귀결되는 게 이 정부 수준이다.
김현숙 /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