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어느날이다. 국민대학교 명원박물관을 방문하기 위해 지하철 '우이신설선'을 타고 '북한산보국문역'에서 내렸다. 아래 사진은 미용실 앞을 지나며 한 컷 찍은 것이다. 서울인데 왠지 서울같지 않은, 추억의 영화나 드라마에 나올 법한 길거리와 미용실 풍경에 나도 모르게 셔터가 눌렀다.

국민대학교 '명원박물관'이 130년된 한규설 고택을 활용한 명원민속관(아래 사진 오른쪽), 새로 지은 한옥 형태의 신관(아래 사진의 왼쪽)으로 새롭게 단장하고, 개관 전시회를 열었다. <시선, 비전의 예술가>(2022.10.22~11.13)

왼쪽의 신관과 오른쪽의 구관(한규설고택)이 공존한다. 그리스 혹은 르네상스 고전 회화와 동일한 기법으로 오늘날 그린 그림이 나란히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물론 다를 것이다. 테크닉적으로 어떤 것이 우세하냐는 의미가 없다. 시대성이 중요하다. 그래서 과거의 것이 이긴다.

한옥 안에서의 추상 회화들이 펼쳐진다. 어울릴까 안 어울릴까? 나는 당연히 어울릴 것이라 생각한다. 4명의 현대 작가의 작품들이 한옥 안에 전시되어 있다. 브리짓 라일리(Bridget Riley), 루크 엘비스(Luke Elwes), 바키(Vakki), 새미 리(Sammy Lee)의 작품들이 한옥 안에 스며들어 있다. 관람 순서는 신관부터이다.

영국의 옵아티스트인 브리짓 라일리의 작품이다. 1960년대 옵아트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여성 작가이다. 후기 인상파 화풍으로 그림을 그리다가 추상으로 전환했다. 항상 재현에서 추상으로가 프로세스인 듯하다. 1968년 베니스 비엔날레 최초의 여성 작가 최고상 수상자이다.

Bridget Riley <Places for Change>(2009)
한옥 안에서 라일리의 붉은색, 푸른색 변주의 작품들이 춤추고 있다.

종이를 오려붙인 듯한, 앙리 마티스가 생각나기도 한다. 한국에서 유명 작가들의 이런 작품들은 잘 팔린다고 한다. 왜냐면 인지도는 높은데, 판화 작품이라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다만, 마음대로 복제는 안되고, 원본 작가가 작품 아래쪽에 에디션 번호를 써 놓고 싸인을 해야 한다.


이것도 브리짓 라일리의 대표 작품이다. 전형적인 옵아트이다. <Measure for Measure>(2020)이다. 어디선가 본듯한 영문 글귀인데 했더니, 셰익스피어의 <자에는 자로 Measure for Measure> 타이틀과 동일하다. 물론 연관 관계가 있지는 않겠지만, 현대 시대에는 답이 정해져 있지 않아, 관람객이 나름대로 해석을 확장해 나갈 수 있으니, 내 버전으로 셰익스피어와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직선이 어느새 곡선으로 바뀌어 있다. 교묘하다. 우리는 살 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내 인생도 직선이던 것이 나도 모르게 어느새 곡선으로 바뀌어 있을 수 있다.




옵아트는 어찌보면 착시 현상으로 보이기도 하다. 내가 보는 세상이 맞는 세상인가. 사람마다 아래 그림을 보고 그리면 다르게 그릴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떤 누군가는 직선으로 그릴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는 대로 다름 사람이 세상을 보지 않는다. 그것을 꼭 염두에 두고 살아가야 한다.

루크 엘비스(Luke Elves)의 그림은 옵아트 대비 상대적으로 따뜻하다. 1961 런던 태생의 영국 작가이다. 그는 런던 출신이지만 어릴 때 이란에서 보낸 경험으로 물과 빛의 탐구와 사막의 공간감을 체험하여 자연을 추상화했다. 아래의 그림은 사실 추상화라기보다는 나무로 보인다. 나무와 나뭇잎과 자연이 합쳐진 공간이다.

신관을 나와 구관으로 가는 길목이다. 한참 공사가 진행 중이다. 아마도 2023년에 뭔가 더 새롭게 개관하지 않을까 한다.

구관 입구이다. 한규설 고택은 1890년에 지어진 130년된 집이다. 대하넺국 의정부 참정대신(총리)를 지낸 한규설이 살았던 곳이다. 본래 중구 장교동에 있던 집인데, 1980년 도시개발계획으로 허물어질 위기에 있던 것을, 국민대학교가 소유주로부터 기증받아 국민대학교 안으로 옮겼다고 한다. 솟을대문(양 옆의 행랑보다 지붕을 높게 올린 것)으로 입장한다.

솟을대문으로 들어왔더니, 또 다른 문이 나온다. 대감집이라서 그런가 보다.

솟을대문 안에서 바깥쪽으로 촬영한 것이다. 문의 양 옆이 행랑채이다. 문 뒤로 신관이 보인다.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도 그렇지만, 신과 구는 동일한 재료라도 색깔이 다르다. 세월의 흔적이다. 나이 들어 그런 연륜이 느껴지면 얼마나 좋겠는가~




안채의 대청마루가 보인다. 그 한가운데 오늘의 세 번째 아티스트인 새미 리(Sammy Lee)의 <Aviary, Tate St Ive Commission>(2021)이 단풍나무 사이로 엿보인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캐나다 작가이다. 그는 건축, 미디어, 인공지능, 음악의 경계를 아우르는 아티스트이다.

네 번째 작가는 빠키(Vakki)이다.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예술학교를 나온 디자인, 미디어아트, 설치, 음악 등을 망라한 그야말로 현대 포스트모던 아티스트이다. 장독대 앞에 방석을 던져 놓았다. 관람객은 그 위에 앉아도 된다.

방 안에도 동일한 패턴의 방석이 놓여 있다. 안 밖의 구분 없이 방석이 놓여 있다 보니, 어디든지 앉아서 쉴 수 있겠다 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래의 작품도 빠키의 작품들이다. 왼쪽은 <빨간색 작은 점>(2021), 오른쪽 방 안에 있는 작품은 <연속적인 간격>(2020)이다.

같은 것이라도 시각을 달리하면 다른 각도로 보면 다르게 보인다. 그런데 아무리 편협하지 않으려 노력해도 아마 인간이 자기가 가진 편견에서 벗어나긴 어려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