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9대
국왕
성종의
계비이자
제10대왕
연산군의
친모이며
아들
연산군이
즉위후에
올린
시호는
제헌왕후
였으나
중종반정
이후
추탈
되었다
능호는
회묘이다
판봉상시사
윤기견과
부부인
고령
신씨의
딸이자
4남1녀중
장녀이다
고려시대
명장윤관
장군의
직계
후손이다
윤씨는
윤관의
장남의
후손이며
정희왕후
정현왕후
장경왕후
문정왕후
숙빈윤씨
등은
윤관의
4남의
후손
들이다
외가
쪽으로는
친정
어머니의
친사촌
오빠가
신숙주
였다
성종의
중전
이었던
공혜왕후
한씨가
몸이
약하고
혼인후6년
가까이
아이가
없어
신하들이
후궁을
들일
것을청해
첫후궁
으로
간택돼
입궁하여
숙의로
책봉
되었다
1년후
중전이
승하하고
그로부터
공혜
왕후의
3년상이
끝난2년후
성종은
따로
중전을
간택하지
않고
후궁인
숙의
윤씨를
중전으로
책봉
하였다
당시숙의
신분
이었던
윤씨를
포함해서
소용
신분
이었던
숙용
정씨와
숙의
엄씨등
총4명의
후궁들이
있었는데
결국
왕에게
제일
총애를
많이받고
있었고
유일하게
임신
중이었던
윤씨가
왕비로
책봉된
것이다
또한
어렵게
자라
소박한
차림과
성격에다
친정세력도
죽고없고
무엇보다
태아가
아들
이라면
중전의
몸에서
원자로
출생하게
하려는
의도가
겹쳐
면접에서
높은
점수도
얻었다
성종7년
왕의
계비로
윤씨는
마침내
왕실이
고대하던
아들을
낳는데
그아이가
바로왕의
적장자이자
훗날의
연산군이다
전술했듯
연산군은
왕의
적장자
였으므로
자연스레
원자
칭호를
받게
되었다
윤씨가
중전이
되던날
반포했던
글에서
궁내외로
평판이
좋았고
임금은
물론
대비들
에게
총애를
듬뿍
받으며
때맞게
원자를
임신한
운까지
더해
지면서
일개
후궁에서
왕비가
되었으니
가만히만
있었더라면
자신의
아들이
무사히
왕위에
오르고
왕실의
최고
어른인
대비가
되어
편안하게
호강할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왕비가된
직후부터
무슨
이유에선지
도를넘은
패악질을
부려
남편과
시어른들의
학을떼게
만들면서
결국명을
재촉한다.
윤씨는
야사에
의하면
마치
선녀와
같고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주위가
서늘해질
만큼의
대단한
미녀였다고
한다
연산군은
기록에
따르면
키가크고
말랐다는데
키는
아버지를
전체적인
외모는
어머니를
닮았다
왕이
어머니의
얼굴이보고
싶다고
했을때
한신하가
그러면
거울을
보라는
말을한적이
있다고한다
중전이
연산군을
낳은후
급격하게
성격이
변한
원인이
산후
우울증이
아닐까라는
주장이
나왔다
실제
기록에서도
중전이
되기전의
윤씨는
몸가짐이
바르고
예의가
넘쳤으며
왕실
가족들과의
사이도
괜찮았다
하지만
중전에
책봉되어
원자를
출산한
후부터
행동이
달라지더니
겸손이나
예의는
어디에도
없고
언행까지
극단적으로
변해버렸다
정신
질환이
맞다면
그중에서도
경계선
성격장애가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충동적인면
사람을
해치겠다는
말을
달고살며
왕에게
무도한말을
퍼붓고
사람을
극도로
혐오
하면서도
왕의처소에
무례하게
무단
침입하는
등의
상대를
안가리는
극단적
언행에따른
인간관계
파탄
심한집착은
전부경계선
성격장애
환자들이
보이는
대표적인
모습들이다
경계선
성격장애는
청소년기와
성년기초기
잘나타나며
중전이
이런모습을
보이기
시작한것도
22살경이다
또한
왕에게
내뱉었다는
폭언의
수위를
감안
한다면
독살하려고
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으며
애초에
왕궁에
독약을
가지고
온다는것
자체가
역모에
준하는
중죄이기
때문에
성종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폐비에
대한왕의
처우가
부당했다고
보기어렵다
윤씨가
폐서인이후
이후3년
동안
매우
조용히
근신하면서
슬슬
동정론이
나오고
조정
내에서도
원자의
생모이니
그만용서
해주자는
의견이
고개를
들게되었다
하지만
윤씨의
패악을
지근거리
에서
보고듣고
직접
겪었던
성종은
그녀와
두번다시
엮이고싶지
않은데다
대신들
까지
이리나오자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는지
결국윤씨의
사사를
집행했다
성종
입장에서는
윤씨가
자신이죽고
원자가
즉위한
후까지
살아
남아면
그성격에
무슨짓을
할지
후환이
두려웠을
것이다
폐비의
사사와
관련된
야사가
하나있다
성종때의
유명한
재상인
허종과
허침형제가
폐비에게
사약을
내리기위한
어전
회의에
참석
하라는
명을받고
궁궐로
가려던
도중에
누나의
집에
들렀는데
누나가
만약
어느양반집
주인이
종들과
상의하여
부인을
내쫓았는데
훗날그의
아들이
주인이
된다면
종들은과연
어떻게될까
말했다
허종과
허침
형제는
그말의뜻을
이해
하고는
누나의
집을나와서
계속궁궐
쪽으로
말을몰고
가다가
어느
다리에서
일부러
굴러
떨어졌는데
낙상을
핑계삼아
어전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훗날
연산군이
갑자사화를
일으키고
당시
어전회의에
참석해
폐비의
사사에
동의했던
신하들을
모조리
숙청할때
당시
어전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던
허종과
허침
형제는
숙청을
피해갔고
허종과
허침
형제가
일부러굴러
떨어졌던
다리는
종침교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