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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 찬양대 은혜로운 찬양 감사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헌금을 준비하라 매우 도전적인 설교 제목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에베소를 떠난 사도 바울은 이제 마기에도니아와 헬라에 자신이 세운 교회들을 방문하게 됩니다. 10개월 정도가 걸렸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바울은 마게도냐와 헬라에서 고린도 후서와 로마서를 쓰게 됩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보면 소요가 거침에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그 지방을 다녀가서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마게도냐에는 빌립보교회, 데살로니가 교회, 베레아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헬라 아가야 지역에는 성경에 서신서에는 없지만 아테네 교회가 있었을 것이고 또 고린도 교회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곳을 들러서 말씀을 전하고 고난당하는 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또 잘못된 신앙을 바로잡는 목회적인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목회자의 마음, 그는 복음을 전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아비처럼 어미처럼 돌보는 목회자의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찾아갔습니다. 바울은 마게도냐에서 고린도 후서를 기록합니다. 고린도교회는 문제가 많은 교회예요. 오늘날까지 교회에 나타나는 모든 대부분의 문제는 고린도교회에 이미 있었습니다. 고린도서를 강의하게 되면 교회의 문제를 다뤄야 하는 그런 본문입니다. 바울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어요. 그 안에는 윤리의 문제도 있고 무질서한 성만찬의 문제도 있고 혼인의 문제도 있고 당파, 지나친 열심으로 서로 당파를 짓는 거예요. 바울파, 게바파, 예수파, 그리고 바울을 적극 옹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바울을 적대시하고 공격하는 무리들이 있었어요.
사실 바울에게는 굉장히 껄끄러운 곳이에요. 그냥 문제가 많다. 그거 신경 쓰기도 힘든데 바울을 대놓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교회이기 때문에 여러분 누군가가 여러분들을 막 헐뜯고 공격하고 루머를 퍼뜨리고 그런다. 근데 그 사람을 만나야 된다. 내일 만나야 된다. 오늘 밥이 넘어갑니까? 안 넘어가요 꿈자리가 사나워요. 누구나 같은 마음이에요. 이 사람들은 바울이 거기서 재정 지원을 받으면 사도가 돈 욕심이 많다고 욕하고 아니 거기 가가지고 자비량하면서 아무것도 받지 않고 일했더니 아무것도 안 받는 거 보니까 저 사람은 가짜 사도라고 또 그러고 이래도 욕하고 저래도 욕하는 사람들이 그런 교회가 고린도교회예요.
그래도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또 목회자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편지도 보내고 또 몸소 찾아가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고린도전서를 받은 일곱은 고린도 교회가 변화되지 않는 거예요. 바울이 또 찾아가서 그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그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 만나기 힘든 괴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시간을 보냈지만 에베소로 다시 돌아오니까 여전히 문제가 있더라.
그래서 바울이 이번에는 눈물로 편지를 썼어요. 글자 하나하나에 자신의 마음을 담고 눈물을 쏟으면서 편지를 썼어요. 그것을 기도를 통해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냈습니다. 고린도후서 2장 4절에 바울이 직접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다.
이제 바울의 마음속에는 앞으로 마게도냐 아가야에 가서 고린도 교회를 가려고 계획을 하는데, 아니 그렇게 싫어하고 아직 문제가 많은 걸 생각하면 가기가 너무 힘든 거예요. 마음이 벌써부터 눌림이 있어요. 고통이 있어요. 걱정이 있어요. 그래서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얼마나 눈물의 눈물을 담은 글을 썼으면 여기에 대놓고 많은 눈물로 이 편지를 썼다.
이거예요.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바울의 마음입니다. 그렇게 괴롭히고 그렇게 욕하고 배은 망덕해도 바울이 그들에게 가고자 하는 거예요.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편지를 보내는 근본적인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사실 사랑 안 하면 그 제끼면 되잖아요. 단절하면 되잖아요. 그래도 그 사람을 마음에 담고 기도하고 애쓰는 것은 사랑이 있기 때문이예요. 고린도교회는 그걸 잘 몰라.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눈물로 쓴 편지를 받아본 고린도 교회가 변화되기 시작한 거예요.
여러분 인간 변하기가 진짜 어려운데 이 편지 한 장으로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어요. 사실 이 눈물로 쓴 편지는 사라졌습니다. 그래 성경에 없어요. 그 어디서 발견돼서 꼭 한번 읽어보고 싶은 편지입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을 어떻게 썼길래 그렇게 안 변하던 그 인간들이 변했냐 이거야 말씀의 힘입니다. 그리고 진정성의 힘입니다.
우리가 말을 해도 진정성 있는 말이 있어요. 그건 호소력이 있어요. 뭐 서울 말로 하든 충청도 사투리로 하든 전라도 경상도 프랑스 말 영어로 하든 더 중요한 건 뭐냐 하면 그 말에 진정성이 있느냐는 거예요. 마음이 담겨 있느냐는 거예요. 그건 호소력이 있고 사람을 변화시키고 움직이는 힘이 있어요. 우리가 글을 써도 그렇고 글도 어떤 글은 그 안에 영혼이 없는 글이 있어요.
수려한 문장을 썼는데 감동이 안 와 그건 작가가 거기에 마음을 담지 않은 거예요. 조금 거친 문장이라도 마음을 담으면 마음을 터치합니다. 말도 영혼 없는 말이 있어요. 고맙습니다. 하는데 고맙지 않아 영혼이 없어 덕이 없어 그 말은 그냥 울리는 꽹가리 같은 거예요. 막 시끄러워 귀만. 그런데 한마디에 진정성을 담으면 마음을 담으면 그게 우리 마음에 와닿고 변화의 역사를 일으키는 거예요. 바울이 이 눈물로 쓴 편지에 그런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에베소를 떠날 때쯤 바울은 이 소식을 못 들었어요. 변화되고 있었는데 그 그 편지가 막 역사하고 있었는데 그걸 통해서 성령이 역사하고 계셨는데 아니 소식이 안 오는 거예요. 소식이. 그러니까 지금 에베소를 막 폭동이 일어난 다음에 이제 떠나는데 꼭 가야 되는 방문해야 되는 이 고린도교회만 생각하면 마음이 착잡한데 도대체가 소식이 없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어떻게 된 건가 조금 변화라도 있었나 뭔가 뭔가 회개가 일어났나 그 답답한 마음으로 떠납니다. 얼마나 궁금했겠어요 얼마나 발걸음이 무거웠겠어요? 얼마나 고민스러웠겠어요. 자기를 적대시하는 사람이 드글드글한 그 현장에 가야 되는 바울의 마음.
그런데 마게도니아에 딱 도착했더니 그 편지 들고 갔던 디도가 거기 와 바울을 만나는 거예요. 물어보기도 물어보기도 조심스러워요. 여러분 물어보기 조심스러울 때가 있어요. 혹시 부정적 대답이 나오면 어떡할까 이런 상황에서.
그런데 뒤돌아 와서 전해준 소식은 눈물로 쓴 편지 효과가 있었다는 거예요. 그 편지를 읽고 고린도 교회가 변화됐다는 거예요. 그들이 갈등을 멈추고 잘못된 생활을 멈추고 당파 짓기를 멈추고 변화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똑같은 소식을 들어도 금방 답이 오면 그냥 조금 좋고 그러려니 합니다. 근데 이렇게 막 마지막 마지노선까지 벼랑 끝까지 몰려서 최후의 순간에 우리가 축구를 해도 막 마지막 언저리 타임에 한 골 넣는 거하고 초반에 한 골 넣는 거하곤 달라요.
지금 바울의 심정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마음에 기쁨과 환희가 솟아났어요. 너무 좋은 거예요. 마음도 편하고 고린도교회에 가는 것에 대한 기대가 넘쳤어요. 그래서 우선 일어나가지고 펜을 들어서 글을 씁니다. 그 마음으로 그게 바로 고린도 후서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후서를 읽어보면 그런 느낌이 벌써 들었어요. 이걸 알고 고린도후서를 읽으면 새롭게 성경이 읽혀지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바울이 쭉 돌아서 고린도교회를 가 헬라 이 헬라 지역입니다. 거기 가서 얼마를 있느냐 3개월을 지냅니다. 20장 2절 3절에 헬라에 이르러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3개월 다른 지역 살짝살짝 지나가는데 이 고린도에 가면 1년 6개월 3개월 이렇게 있는 거예요. 문제가 많은데 원래 오래 있게 돼 있어요. 그것 때문에 그러고 이렇게 잘 해결돼도 기분 좋아서 오래 있는 거예요.
거기서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행복한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 마지막을 지내면서 바울이 여기서 또 하나의 놀라운 일을 하는데 로마서를 씁니다. 로마서는 신구약 성경에 반지로 말하면 반지 안에 있는 다이아몬드 같은 거예요. 복음의 핵심 최고의 작품 이 편안한 마음에서 그런 작품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이 로마서에서 매우 중요한 일 중에 하나는 바울이 드디어 다음 3차 선교 여행을 마친 후에 다음 목적지를 여기서 선언하는 거예요.
거기가 로마다 로마서 1장 10절에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길을 얻기를 구하노라.
바울의 마음속에는 에베소를 떠나면서 이제 쫙 돌아가지고 예루살렘 갔다가 그다음에 3차 전도여행 때 이제 로마 가야 되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떠났는데 여기서 로마서를 쓰면서 로마에 편지를 보내면서 이제 확정을 해버렸어요.
나 거기로 갈 거다.
사실 바울은 로마가 최종 목적지는 아니었어요. 당시 세계관으로는 지구가 평평해요. 그래서 지구 끝이 있다는 거예요. 땅 끝 그러면 쫙 돼서 지중해까지 쫙 가가지고 어딘가는 딱 바다가 끝나는 데가 있는데 거기가 스페인입니다. 거기까지 가면 주님의 명령,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는 내 증인 되라고 하는 예수님이 주신 명령을 완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섭안화 성경에는 섭안화로 번역이 돼 있어요.
거기가 바로 스페인입니다.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전할 계획을 가졌고 나중에 여러 전승에 의하면 로마 감옥에 있으면서 자유인의 신분이 됐을 때 스페인까지 다녀왔을 것이다 하는 전승도 있어요.
어쨌든 바울은 다음 목적지로 로마를 정했어요. 바울은 이렇게 늘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었지만 여러분 바울처럼 예수님 다음으로 가장 성령 충만한 사람 하면 일단 누구를 찍겠어요? 사도바울이 사도바울 바울만큼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성령과 더불어서 그는 살아갔어요. 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나 동시에 그는 계획적이고 전략적으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성령이 잘못된 신앙에 빠진 사람들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 그러면 계획도 없고 전략도 없고 아침에 일어나 아무 생각도 없고 눈이 풀려가지고 그냥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가는 것이 맞지 성령이 인도함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요즘 유튜브 같은 데 보면 막 자기 그런 엑스타시에 빠진 그런 상태를 생중계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눈이 풀려가지고 방언해가면서 하는데 그게 정말 덕이 될까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미쳤다. 그렇게 한다는 거예요.
고린도서에 의하면 그렇게 하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 성령이 충만하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 우리의 정신세계가 흐리멍텅해지는 게 아니라 더 자명해지고 마음이 더 깨끗해지고 지성이 더 예리해지는 거예요.
여러분 성령 충만한 상태는요. 내 머리가 밝아요. 눈이 풀리지 않아요. 더 이성적이고 더 지성적이고 더 결단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상태에서 성령께 도움을 청하면서 미래에 대한 계획을 말씀드리고 또 계획하고 거기에 대한 전략을 세우는 거 중요합니다.
바울이 그렇게 했어요. 그리고 성령께서 바울이 세운 그 계획과 전략을 인정하시고 지원하시는 거예요. 이 두 가지를 균형 있게 해야 됩니다. 그렇다고 어떤 사람은 전략과 계획은 다 세우는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그건 실패 확률이 커요. 그리고 성령님과 함께하는 그 계획 전략 우리의 선언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저도 목회 20년 우리 교회 하면서 돌아보면 우리 처음부터 있었던 분들은 알아요. 그때는 너무나 막연한 것 같았던 저는 보통 한 10년 정도를 내다보면서 이렇게 계획을 세워나가요. 10년 후에는 이렇게 대했으면 좋겠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그리고 그게 마음의 확정이 오면 얘기도 하고 선언도 하고 나눠요.
황당한 일들이 많아요. 처음에는 이제 교회에 몇 명 모이도 않는데 거기서 무슨 뭐 사역자들이 나오겠어 뭐가 되겠어 그런데 돌아보면 한두 가지 일이 아직 해결이 안 되고 거의 대부분은 그 초창기에 하나님 마음 주신 대로 계획하고 전략을 수립하고 선언했던 것들이 이루어졌고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험이고 고백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바울처럼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으면서 동시에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를 활용해서 우리의 인생에 장단기 계획도 세우고 전략도 세우고 또 때로는 수정하고 왜 우리가 하는 그 전략과 계획은 불완전하니까 늘 성령님께 물으면서 수정해가면서 발전을 시키면 교회도 그렇고 여러분의 직장이나 인생도 어느 시간 후에는 하나님이 역사하셨음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 바울이 이제 그다음에 이렇게 그 지역으로 가면서 또 하나 하는 일이 뭐냐면 예루살렘으로 가져갈 헌금을 지금 모으는 거예요. 헌금 모금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떠나면서 두 가지 목표가 있었어요.
에베소에 교회를 세우리라. 또 하나는 헌금을 모으리라.
그래서 갈라디아 교회를 지나면서 거기도 얘기했어요.
내가 이게 다음에 오든지 아니면 누구를 시킬 테니까 헌금 모아놔.
그리고 에베소에 있으면서 사람을 계속 보내가지고 고린도교회에 헌금 모아놓으라고 마게도니아 교회에 헌금 모아노라고 이 사역 잘하다가 바울이 마지막 3차 여행 지금 사역의 하이라이트에 자꾸 헌금 얘기를 하는 거예요.
헌금 얘기를 헌금을 준비하라.
얼마나 부담스럽고 도발적인 주제입니까? 여러분도 부담스럽지 않아요 목사가 여기 와가지고 맨날 헌금 얘기만 하고 여러분 하나님 사랑하셨어요. 십자가에 여러분을 위해 죽으셨어요.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그러면 아멘하는데 헌금을 준비하라고요. 그러면 마지못해 아멘을 해도 뒤에서는 부담스러운 거예요. 이 교회 그만둬야 되겠다. 이 교회 그 설교를 하는 목사도 부담스러워 얘기 듣고 오늘 몇 명이나 떠날까? 또 그런 생각도 하는 거예요. 그럴 수 있어요. 그래서 이 헌금 설교를 못 하는 거예요.
나도 사실 못 했어요. 근데 오늘 이 본문이 그렇게 됐습니다. 근데 바울은 3차 전도 여행 내내 아주 집요할 정도로 이 문제를 다룹니다.
나는 그 계획을 가지고 떠났고 계속 가는 곳마다 헌금을 준비하라고.
고린도전서 16장 12절에 보면 이렇게 돼 있어요.
성도를 위하여 위하는 연부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이미 명한 것 같이 너희에게도 그렇게 하라.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두었다가 내가 갈 때에 따로 연보하지 않게 하라. 미리미리 준비해 놓으라는 거예요. 그때 가가지고 헌금을 어떻게 이래 하지 말고 미리미리 준비했다가 서로 부담 없이 내가 받아갈 수 있도록 하라.
특히 고린도교회는 끔찍한 교회 아니에요. 생각하면 막 계속 공격자들이 나오고 말 한마디만 잘못해 봐. 막 무슨 반응이 나올지 모르는데 거기에 벌써 고린도전서에서 헌금을 준비하란 말이야.
이게 쉽지 않은 얘기입니다. 바울의 마음 이 말을 해야 되는 그 마음이 얼마나 껄끄러웠겠어요? 제일 좋은 건 알아서 하는 거죠. 알아서 어디 소문 듣고 알아서.
그런데 안 하니까 그 교회가 기도를 통해서 들리는 소식이 변화됐다는 거예요. 헌금도 준비하고 있다는 거예요. 바울의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고린도후서에 헌금 얘기를 또 합니다.
그 정도 했으면 됐지. 그 소식 들었으면 됐지 뭘 또 해 근데 바울이 또 해요. 이 바울은 분명히 이분은 기질로 말하면 뭘까요? 다혈질이 아니고 뭐예요? 이 사람 목표를 세우면 피도 눈물도 없어 반드시 일을 해야 된다. 딱 결정을 했기 때문에 욕을 하든 말든 그냥 하고 또 들었어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이게 바울입니다.
어떻게 헌금을 준비할 것이냐?
넉넉한 마음으로 하라. 찌질하게 하지 말고 주일날 헌금할 때 10유로로 할까 1유로로 할까 성뜀으로 할까 그래가지고 넣었는데 자꾸 10유로짜리가 걸려 제끼고 이렇게 해서 손톱으로 긁어보는 거예요. 2유로짜리 걸리면 어떡하지? 이 찌질한 인생이에요. 즐거운 마음으로 하라. 힘에 진하도록 하라. 아유 나는 지금 요즘 코로나 이후에 살기도 어렵고 월급은 안 올랐고 뭐여? 식당에 식비는 오르고 물가는 오르고 큰일 났네. 못 하겠어 그러지 말라는 거예요.
힘에 지나도록 초대교회도 가난했어요. 고린도후서 9장 1절에서 9절은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헌금에 대한 소식이에요.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힘을 내서 큰 소리로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는 내가 너에게 쓸 것이 필요 없나니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야가에서는 1년 전부터 준비하였다는 것을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의 열심이 더욱 많은 사람을 분별하게 하였느니라.
그런데 이 형제들이 보내온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가 말한 것이 준비되게 하려 함이라. 혹 마게도니아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가 준비 아니하는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
잠깐만요. 지금 바울이 지금 이게 약간 협박을 하는 거예요. 내가 이미 마귀도니아에 있는 교인들한테 너희들 잘 준비한다고 얘기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마게도냐 사람 몇 사람을 데리고 갔는데 너희가 준비를 안 했으면 너희도 부끄럽고 나도 부끄럽고 이게 이게 뭐냐 이거예요. 그리고 고린도 교회가 잘 준비했기 때문에 그 소식을 듣고 마케도니아에 있는 교회들이 또 열심을 위해서 준비했는데 가서 보니까 준비를 안 했어. 그런 일이 없도록 확실히 해두는 겁니다. 그러면서 계속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노니.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부답고 억지가 아니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오. 인색함으로나 억지로나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마음에 정한 대로 어떻게 준비하라고요? 마음에 정한 대로. 근데 마음은 마음은 매일 바뀌잖아요. 언제 마음이 진짜냐? 처음 들은 마음이 기도하다가 처음 들은 마음이 와요. 그러면 빨리 움직여야 돼. 근데 한 일주일 지나면 반값 대. 일주일 지나면 마음이 바뀌어가지고 반으로 잘러 또 일주일 지나면 또 자르는 거예요.
그렇게 하지 말라는 거예요. 또 인색함으로 하지 말라. 인색함으로 하지 말라. 억지로 하지 말라. 그러니까 잘 됐네. 내가 억지로 마음이 안 생길 때까지 못 하겠습니다.
또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그렇게 해석하지 말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은 누구를 사랑하셔요? 하나님이 어떤 성도를 사랑하셔요? 헌금을 내는 걸 즐거워하는 사람을 사랑하신대요. 아멘도 없으시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기를 원하지만, 여러 가지 중에 하나가 뭐냐면 연보를 즐겁게 내는 자 인색하지 않고 억지로가 아니라 기꺼이 준비해서 즐겁게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냐 아멘은 자에게 큰 갑절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정말이에요. 내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 예수님이 오셔서 얘기한 거예요. 우리가 주식에 돈을 투자해 놓으면 매일 주식 들여다보잖아요. 왜 들여다봐요 거기 내 돈 들어가 있으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 내 물질을 드리고 나면 그분에 대해서 늘 생각하고 매일 펼쳐보고 성경 읽어보고 어떻게 됐나 보고 그러는 거예요. 그게 중요한 겁니다. 인간은 그렇게 따라가게 돼 있어요.
사실은 하나님이 무슨 그게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이 땅에 있는 교회가 필요하죠. 하나님이 또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받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이요. 여러분 우리가 더 하나님 앞에 드리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거죠.
이번에 권 노아 선교사와 단기 선교사와 우리 성 볼 이 임무를 1년 1개월 임무를 마치고 어제 그저께 귀임했습니다. 군대 제대한 거 똑같아요. 1년 1개월 13개월 갔다 왔어요. 여러분 아프리카 쉽잖아요. 여기 오니까 뭐가 좋냐 그랬더니 너무 색깔이 다양하다는 거예요. 거기 가니까 아프리카 사람들 좋아서 갔지만 한국 사람 빼고는 다 흑인들이요.
처음엔 좋지만 그것도 답답해 우리가 한국 가면 갑자기 공항에 내리면 다 머리 검은 사람의 다리 짧은 사람들 쫙 있는 거 보면 답답하잖아요. 한국 그건 힘든 거예요. 걔가 그래가지고 너무 파리가 좋다는 거 이제 파리 좋다는 걸 이제 알았어요. 여기서 태어나가지고 사는 걸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해 그리고 또 힘들었던 게 뭐냐 너무 심심하다는 거예요.
애들도 없고 비슷한 또래는 둘밖에 없어요. 그리고 다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 그분들하고 놀아야 되고 일해야 되고 일하는 거 외에는 그때 이제 성경도 보고 영성으로 깊어졌어요.
하여튼 그러니까 둘이 맨날 붙어서 웃고 장난치다가 막 깨지고 그런 거예요. 둘이 영광의 상처도 가지고 좋은 우정 영혼의 친구인데 근데 이제 너네 그러면 마무리를 잘해라. 목사님께 잘 인사하고 그 은혜 받은 장로님들 권사님들께 잘 인사하고 와라 이랬더니 그런다고 하면서 무슨 얘기를 하냐면 자기들이 그동안 받은 용돈 여기서 아르바이트해서 가져간 그걸 다 다 모아가지고 거기 가서 1년 동안 학교 다 여기 휴학하고 학교 다 자퇴하고 가서 1년을 군대생활하듯이 거기서 아침 4시면 일어나 가지고 새벽 기도 문 열고 진짜 빡세게 시켰더라고 그런데 그 일 하고 오는데 그냥 와도 되는데 이 두 청년이 자기들 용돈을 싹 모아가지고 3천 유로를 헌금을 했어.
그거 쉬운 일 아니에요. 쟤들이 이제 이제 청소년기를 몇 개월 전에 벗어난 거예요. 이제 20살이라고 이제 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잘했다. 그만큼 이 두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께 간 거예요. 아프리카에 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이 두 사람이 사실 여기서 많이 방황했던 친구들이에요. 아마 노아도 그런 것 같고 우리 볼은 막 가출하고 아주 인간 못 됐었어요. 그때는 저거 정말 그 해가지고 뭐 아주 그런데 가가지고 다시 하나님을 만나고 얘네들이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응답해서 두 사람이 다 선교사 목사의 길 목회자의 길로 가기로 결단하고 우리 노안 와서 신학교회 파리 신학교에 등록을 하고 폴은 여기 이제 하여튼 무슨 일본어 학과가 뭔가 왜 그걸 또 했는지 모르겠지만 안 다닌다고 할까 봐 그냥 무조건 악세대다 마치고 또 이제 신학을 하면서 자신들의 인생을 헌신했어요. 이렇게 그게 그만큼 하나님께 마음이 가니까 물질도 가는 거다
가서 보니 고린도교회가 헌금을 풍성하게 준비해 놨어요. 바울이 기분이 좋았어요. 편안한 마음으로 3개월 머물면서 로마서를 썼어요. 그러면서 거기에도 고린도 교회가 준비한 헌금을 언급해요.
또 하여튼 바울은 헌금을 되게 좋아해 로마서 15장에 보면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좀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기쁘게 연부하였음이라 자랑하는 거예요. 바울에게 헌금이 왜 이렇게 중요하냐 이거죠. 첫째는 예루살렘 도가 교회를 도와야 되기 때문에 왜 거기는 모교에 영적으로 그들에게 은혜를 준 교회, 사도들이 있는 교회 그러나 흉년을 만나서 가난한 교회 거기를 누가 도와야 되느냐 우리가 도와야 된다. 그래서 그 빚진 마음으로 헌금을 준비시킨 겁니다. 의무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두 번째는 단순히 그런 휴머니즘이 아니에요. 그걸 넘어서서 신학적 이유가 있었어요. 이사야서 60장 11절에 보면 내 성문이 항상 열려 주야로 닫히지 아니하리니는 사람들이 내게로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가져오며 그들의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오니라 종말론적 예언이에요.
메시아가 오시면 이미 메시아가 오셨잖아요. 다시 오실 메시아 우리가 그 중간 길에 사는데 그리스도의 다스림이 시작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이방 나라들이 재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온다는 거예요.
그게 메시아 왕국 하나님이 종말에 이루실 그 거룩한 메시아 왕국의 상징이에요. 열방 나라들이 예물을 가지고 왕이 계신 예루살렘에 보인다. 바울은 지금 그 표상을 그 예언을 마음에 두고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냥 휴머니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구약의 예언을 이루는 그 사건에 자신을 헌신한 겁니다.
헌금은 이런 의미가 있었어요. 그래서 바울이 매우 집요할 정도로 이렇게 헌금을 준비시킨 겁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는 바울의 헌금 관리예요. 고린도전서 16장 3절에 보면
내가 이를 때에 너희에게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라.
여기 너희의 은혜는 준비한 헌금이에요. 그걸 자기가 가지고 가지 않겠다는 거예요. 너희들이 선택한 대표가 있으면 그 사람들 손으로 헌금의 헌금 관리의 투명성이 교회가 가장 문제되는 게 뭐예요? 불투명성이 헌금은 누가 쓰는 거예요? 그래서 대부분 오해는 누가 많냐면 목사가 받아 우리 개척 초기에 그런 분들이 실제 있었어요.
오늘은 여기 헌금이 많이 들어왔으니까 오늘은 목사님 지갑이 두툼하겠구먼 그렇게 실제로 아니 헌금하면 이걸 내가 가져가는 줄 알아.
여러분 교회에 들여진 헌금은 철저하게 관리됩니다. 특히 우리 교회는 그건 참 잘 돼 있어요. 저는 21년 동안 제 기억 속에는 한 번도 제가 스스로 헌금을 계수하거나 거기에 직접 다이렉트로 관여한 적은 없어요. 그냥 우리가 위원회에서 정하고 재정부에 맡기면 나도 재정부에서 타 썼어요. 정해진 것만 안 된다고 그러면 막 꼭 필요한 비굴하게 좀 조용히 이렇게 하거나 마음 상하거나 포기하거나 이러지 내가 막 마음대로 내가 막 체크 쓰고 그런 거 없어요. 카드 갖다 쓰고 그런 거 없어요. 그거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는 이 헌금을 어떻게 관리하냐면 재정부장은 반드시 2년에 한 번씩 바뀌어요. 아무리 능력 있어도 그 한 분이 너무들 안 한다고 하니까 한 분이 1년 더 한 적 있어요. 한 번 텀을 지나서 근데 다 바뀌었어요.
그러고 세 파트로 나눠 기록 수입 기록 입금 지출 그래 누가 누구도 속일 수가 없어요. 이게 다 맞아떨어져야 돼요. 그리고 여기다가 또 우리 집사님들이 요즘은 무슨 로직 시엘을 또 도입해가지고 그 컴퓨터 로직 시엘은 제가 보기로는 이게 100% 딱 맞아떨어지지 아니면 그걸 찾아내야 돼 스스로 고생하시는 거예요. 그거 해가지고 거기다가 요즘은 이제 외부 감사까지 지금 도입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재정이 많지는 않지만 언젠가 프랑스 정부에서 콘트롤이 들어올 때 문제없도록 하기 위해서 그거 철저하게 준비해요.
바울도 그랬어요. 이 부분을 아주 잘한 거예요. 그래서 거기서 선출해 준 사람들과 자기 동료들과 함께 떠납니다. 20장 4절에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레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그다음에 아리스타고 세군도 가이 또 디모데 툭이고 드로비모 이 사람들이 함께 동행을 하는 거예요.
이 관리가 참 중요해요. 오늘날도 어디든지 교회가 분란이 일어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재정 문제입니다. 재정 문제 이게 이렇게만 관리돼도 그것 때문에 문제될 일은 없어요. 바울은 이미 그런 지혜가 있었던 사람. 그래서 하여튼 그 헌금을 갖다가 예루살렘 교회에 갖다 전달을 하면서 그들을 돕는 그 선한 일뿐만 아니라 또 구약의 예언을 성취시키는 거룩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헌금은 신앙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행위입니다. 사실은 내가 얼마나 주님을 많이 사랑하느냐는 내가 헌금을 얼마나 잘 준비해서 정성껏 풍성하게 드리느냐와 비례된다고 봐야 돼 마음이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이에요. 헌금 생활을 성실히 해주시길 바랍니다.
정말 감사한 것은 우리가 금년 초에 사실 굉장히 어려웠어요. 그래서 재정부에서 재정부장께서 좀 광고를 해달라 그래서 우리가 지금 상반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라고 정말 하기 어려운 말씀을 드렸는데 그때부터 우리 교인들이 이러면 안 되지 그때 딱 한 번 광고로 최선을 다해 주셔서 그 위기를 우리가 일단 넘어갔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함께 마음을 모아서 이 교회 헌금은 첫째는 첫째 목적 이게 프랑스 법적으로도 마찬가지예요. 1906년 5년 법에 의하면 교회에 들여진 헌금은 예배와 직원들의 목회자를 비롯한 직원들의 교회 직원들의 사례비 또는 월급 그런 활동 이런 걸로 쓰여지게 돼 있고 또 교회가 또 한 번 필요로 하면 선교 구제 봉사를 위해서 프랑스는 2차 헌금을 해요. 우리는 한 번 한 거 가지고 나눠가지고 이렇게 쓰지만 이런 목적으로 추진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가 선교를 하거나 정말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도 뭐가 필요하냐면 풍성한 헌금이 필요해요.
아프리카를 한 번 가더라도 단기 팀에 한 번 가더라도 그 물질이 있어야 그 일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마음을 모으고 뜻을 모아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교회는 철저하게 관리해서 하나님 나라의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 헌금 생활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큰 은혜와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