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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오기 위해 어젯밤부터 광명시 장애인콜택시(아래 장콜)에 예약을 했습니다. 아침 10시, 11시로 예약하면 넉넉히 밥 먹고 들어올 수 있는데 그 시간대에는 예약이 다 되어 있더라구요.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8시 장콜 첫차 타고 지하철 1호선 역까지 갔죠. 장콜 예약은 늦으면 안 되기에 아침부터 서둘러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토론회는 1시 30분인데 수원역에 너무 일찍 온 거예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수원역에 내려서 TV도 보고 거기 계신 노숙자분들이랑 같이 놀고. 수원역에는 장애인이 와서 시간 보낼 곳이 없더라구요. 한참 놀다 경기도의회에 가려고 저상버스를 타러 갔습니다. 저상버스가 오고 휠체어 리프트가 내려오는데, 아니, 나는 인도 위에 있는데 리프트는 인도 아래로 내려오는 거예요. 그런데 운전기사는 장애인이 못 타고 있는데도 내려와 보지도 않았습니다. 인도 아래 리프트로 쿵 하고 내려가서 간신히 기어 올라가 버스 탔습니다. 그런데 버스 타서도 기사분이 좌석을 치워주지도, 안전띠 매주지도, 내 목적지를 물어보지도 않아요. 이게 바로 경기도 저상버스 운전기사분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 수준입니다. 세무사거리에 내려서는 여기 도청까지 등산하듯 올라왔습니다. 날씨가 좀 추웠는데 다 올라오니 덥더라구요.”
장애인이동권 관련 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장콜과 저상버스를 타고 온 광명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태균 소장의 말이다.
경기도 장애인 이동편의정책 실태와 대안 토론회가 11일 늦은 1시 30분,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와 경기장애인인권포럼 주최로 수원시 경기도의회 1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김 소장은 자신이 사는 경기도 광명에서 수원까지 오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으로 토론 내용을 대신했다.
김 소장은 “이것만으로도 경기도 중증장애인의 삶과 이동이 얼마나 어려운지, 도로사정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 수 있다”라면서 “비장애인이 사는 곳에는 버스 노선이 알아서 잘만 생기는데 왜 유독 장애인이 사는 곳은 그렇게 만들어 주지 않나”라고 꼬집었다.김 소장은 “교통약자 이동권을 보장하는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아래 편의증진법)이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장애인이 땅바닥을 기고 단식 농성하며 법 지키라고 요구해야 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중증장애인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2005년도에 제정된 편의증진법은 장애인과 교통약자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저상버스, 특별교통수단(장콜)의 도입을 의무화하고 있다. 1차 편의증진 5개년 계획(2007~11년) 후 현재 2016년까지 2차 편의증진 5개년 계획이 시행 중이다.
오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 강경남 사무국장은 거리에서의 이동만 이동권 영역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부터 나오는 것 자체가 이동권의 시작”이라고 지적했다.
강 사무국장은 “무엇보다 장애인은 반드시 시군 경계를 넘을 수 있어야 한다”라며 “경기 남부에서 북부로 가려면 보통 7, 8시간 걸리는데, 이는 서울에서 부산 가는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라며 광역이동지원센터 설립을 촉구했다.
강 사무국장은 오산시 특별교통수단 도입과정을 이야기하며 “당시 오산시는 오산지역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600명이니 1~2급 등록장애인 200명당 1대로 규정된 특별교통수단 법정대수에 따라 특별교통수단은 3대만 있으면 된다고 주장했다”라고 밝혔다.
강 사무국장은 “그러나 교통약자는 단순히 휠체어 이용 장애인만을 위한 게 아니라 이동에 차별받는 교통약자 모두를 포함해야 한다”라면서 “오산센터는 1, 2, 3급 장애인과 교통약자(노인, 임산부, 영유아, 심신미약자 등)로 대상범위를 확대하라고 요구했다”라고 전했다.
강 사무국장은 “법정대수는 최소한의 기준선”이라며 “200명당 1대라는 법적 기준은 위헌적 기준임에도 이러한 기준이 존재하는 것은 예산 논리가 적용되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날 토론회 발제를 맡은 나사렛대학교 인간재활학과 우주형 교수의 발표를 보면, 경기도 31개 시군 그 어느 곳에서도 저상버스와 특별교통수단의 법정도입대수를 지키지 않고 있었다.
국토해양부(아래 국토부)가 발표한 조사를 보면(2011년 기준) 경기도에는 총 849대의 저상버스가 운행하고 있으나, 이는 전체 버스 대비 8.7%로 전국 평균 12%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경기도는 편의증진법에 따라 앞으로 2016년까지 41.5%의 법정기준을 채워야 한다. 이러한 2차 편의증진 5개년 계획조차 애초 1차 계획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다. 1차에서는 '2013년까지 저상버스 50% 도입'이었으나 2차에서 '2016년까지 41.5% 도입'으로 하향 조정되었다.
이날 우 교수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현재 저상버스가 한 대도 없는 경기도 10개 시군(가평, 과천, 광주, 군포, 동두천, 부천, 양평, 여주, 의왕, 이천)은 2016년까지도 도입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조사되었다. 경기도 전체의 1/3가량 되는 지역에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버스가 한 대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우 교수는 “2011년 기준으로 전국 저상버스는 3,850대인데 이 중 서울시와 경기도 저상버스가 2,514대로 전체의 65%를 차지한다”라면서 “수도권 중심으로 몰려 있어 지역별 편차가 매우 크다”라고 밝혔다. 수도권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장애인 이동권 상황은 이보다 더욱 열악하다는 것이다.
휠체어 탑승설비 등을 장착한 특별교통수단(장콜) 역시 상황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우 교수는 “경기도의 특별교통수단 도입률은 23%로 이는 법정대수에서 443대가 부족하다”라며 “31개 시군 중에서 장콜을 10대 이상 운행하는 곳은 6개 시(의정부, 용인, 성남, 수원, 부천, 고양)에 그치고 있으며, 이 6개 시가 전체 경기도 장콜의 71.8%를 차지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우 교수는 “특별교통수단 수치가 2011년 국토부 조사와 다른데 국토부 조사에는 시각장애인심부름센터 차량과 임차택시까지 포함되어 있어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의 자료를 이용했다”라면서 “편의증진법에 따라 특별교통수단으로 인정될 수 있는 차량은 시군 소유로 운행되는 장콜과 휠체어리프트 설비가 갖춰져 있고 지정노선을 운행하는 셔틀버스로 한정되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우 교수는 “경기도 16개 시군(가평, 과천, 구리, 군포, 김포, 남양주, 동두천, 안성, 양평, 여주, 연천, 오산, 의왕, 이천, 파주, 포천)은 현재 장콜이 한 대도 없다”라며 “이 중 12곳은 2016년까지도 도입계획이 없다고 밝혔다”라고 전했다.
장애인이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과 더불어 우 교수는 '야간운행의 자유'에 대해 지적했다. 우 교수는 “현재 의정부를 제외하곤 야간운행(22시~07시)을 아예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한 대만 배차(고양, 성남, 수원, 용인, 하남)하고 있다”라면서 "이러한 시간제한은 장애인 이동권을 침해한다"라고 지적했다.
이날 발표자와 토론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입을 모아 “편의증진법에 명시된 법정도입대수를 철저히 지킬 것”을 촉구했다.
좌장을 맡은 경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 총연합회 한동식 대표는 “경기도는 이러한 법정도입대수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라며 “장콜은 시군 연계가 되어 있지 않아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시군 경계를 넘으려면 6, 7번은 갈아타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라면서 광역이동지원센터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는 경기도 건설교통위원회와 관련 집행부에 경기도 장애인 이동권 현황을 알리고 정책 제안을 하기 위한 자리였으나 관련 의원들은 모두 참석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