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두 가지 길 신 30:15~20
악어는 어금니가 없는데 몸속의 위에 모래주머니가 있는데, 위석(胃石)은 모래주머니에서 음식물을 소화시키는데 쓰이는 것과 몸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마치 배 맨 아래 밑바닥에 무거운 짐들을 싣는 이치와 같이(세월호) 이 큰 돌멩이(胃石) 덕분에 악어가 늪에서 헤엄을 할 때 기울어지지 않고 평행을 유지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이라는 넓은 바다를 항해하면서 마음을 지키고 중심을 잡기 위한 돌멩이가 무엇인가?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론 견디기 힘든 세찬파도와 폭풍으로 위기를 맞이할 때가 있다. 그럴 때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아 평행을 유지시켜 주는 돌멩이가 생명의 말씀이다. 말씀이 삶의 중심이 되면 어떤 풍파가 와도 흔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을 잡는 돌덩이가 되어서 삶의 안정을 유지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섬김으로 축복된 삶을 누리느냐 아니면 세상의 것을 좇음으로 저주를 초래하느냐 하는 문제에는 머뭇거림이 허용될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를 동시에 섬길 수 없음을 분명히 깨달아(마6:24) 진정하고 영원한 행복과 참된 생명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삶 속에서 늘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을 잘 섬김으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들이 잘 되는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한다.
미국에 ‘유로 마드리아’라는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오하이오 주립대학 의학과를 다니며 미인대회까지 나갈 정도로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인기 있는 여학생이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했다. 남자는 호텔 옆 구석진 조그만 사무실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데, 가진 것도 없고 대학도 아직 졸업 못하고 몸도 바짝 마른 사람이었다. 그녀는 프로포즈를 받고 “도대체 당신 같은 남자가 나를 어떻게 보고 프로포즈 하느냐?”며 화를 냈다. 거절당한 이 남자는 40세가 되기 전에 세계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었다. 그 사람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회장 ‘빌 게이츠’였다. 반면에 빌 게이츠의 부인이 될 뻔하였던 그 여자는 어느 요트업자와 결혼했다 이혼한 후에 혼자 외롭고 쓸쓸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반면 빌 게이츠의 부인 멜린다 게이츠는 세계 가장 존경받는 여성으로 지구촌 곳곳에 다니면서 기부를 많이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자선재단을 운영하면서 활동하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후 선택의 자유를 주셨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 때부터 사탄의 유혹에 빠져 선택의 실수를 계속했다. 마귀의 전략은 언제나 인간으로 하여금 선택의 실수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성공의 길인 줄 알고 선택했는데 실패의 길이었다. 행복의 길인 줄 알고 선택했는데 불행의 길이었다. 그래서 인간의 어리석은 모습을 보신 하나님은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성경이라는 안내서를 주셨다. 교회에 잘 나오는 교인이라 할지라도 말씀대로 살때 복을 받고, 말씀대로 살지 않을 때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신 30:19)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가 우리의 선택 여하에 달려있다. 여러분은 무엇을 택하겠는가?
첫째로 생명과 복의 길을 선택하려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1957년에 노벨상을 수상한 인물들이 있다. 선교사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와 소설가 카뮈(Albert Camus)이다. 슈바이처는 노벨평화상을, 카뮈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상금으로 각각 10만 달러(1억 21,210,000원 정도)를 받았다. 카뮈는 그 상금으로 파리 근교에 멋진 별장과 고급 승용차를 구입했다. 하지만 1960년 1월 4일, 고급 승용차를 타고 별장으로 가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상금으로 아프리카 랑바레네에 병원을 지었다. 그 병원에서 원주민들을 치료하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일생을 바쳤다. 카뮈는 어떻게 하면 내게 유익이 되고, 평안과 즐거움을 주며, 나를 영화롭게 할까 하는 것이 그의 관심사였다. 반면에 슈바이처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느냐가 전적 관심사였다.
중요한 것은 말씀에 순종하고 지키라는 말씀에 앞서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30:20) 하셨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먼저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듣게 되어 있다. 무엇을 사랑하는가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된다. 세상에 속한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그 인격은 세상만큼 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에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선택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생명과 복으로 나아가게 된다. 생명과 복의 길을 가기 위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둘째로 생명과 복의 길을 선택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크리슈나무르티의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책이 있다. 아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는 것에 포로가 되어 있다. 그래서 아는 것이 병이 되어버렸다. 아는 것에서 해방 되어야 하는데 아는 것의 포로가 되어버렸다. 내가 안다는 것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고, 내가 잘 안다고 하는 고집 때문에 많은 실수를 한다. 베드로는 자신이 안다고 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다. 내가 아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해 잘못된 길을 걸어 간다. 그 앎을 내려놓는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가 필요하다.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신 30:20)
이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이는 모습을 가리킨다. 죄악으로 병든 영혼을 고침 받아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처방이 곧 성경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청종해야 한다. 그 속에 생명이 있고, 복이 있다. 말씀을 듣는 자에게 주어지는 열매가 생명과 복이다. 기도를 하던 하지 않던 자유이다. 그러나 응답은 기도하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특권이다. 선택은 자유롭게 할 수 있으나 찾아오는 결과에 지배를 당할 수밖에 없다. 선택은 내 자유이지만,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은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그러므로 선택이 중요하다. 생명과 사망, 저주와 복이 선택에 의하여 결정되기 때문이다. 성도 여러분, 생명과 복에 이르기 원한다면 말씀을 청종하는 길을 택하시기를 축원한다.
셋째로, 생명과 복을 선택하려면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라.”(신 30:17~18)
이스라엘 자손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으나 우상 숭배에 빠졌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그래서 북왕국은 앗수르에게, 남왕국은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섬김으로만 생명과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신앙 속에서 생명과 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섬겨야 한다.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할 적에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성막을 만들고, 아론과 네 아들을 구별하여 제사장으로 세웠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막에서 섬기는 법을 말씀해 주셨다. 그러나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다른 불을 담아 분향을 하던 중 그만 불이 나와 그들을 삼켜 죽었다. 하나님을 섬기되 하나님께서 명하신 법도에 따라 섬겨야 생명과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본받아 나눔과 섬김의 길을 걸어간다. 특히 이번 피택된 장로들은 그 섬김과 나눔의 길을 기도함으로 잘 걸어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섬김의 장에는 반드시 넘어야할 큰 걸림돌이 있다. ‘자기애(自己愛)와 자기의(自己義)’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아직도 자기 사랑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과 하나님의 일을 여전히 자기의 생각과 방식으로 일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자기애(愛)와 의(義)를 내려놓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내려놓음도 내 노력으로는 내려놓을 수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맘을 가질 때 성령이 도와주신다. 일의 성공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오직 그것만으로 만족하는 자리에 설 때 진정한 내려놓음과 섬김이 가능하다.
이제 선택해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 변화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선택을 ‘오늘’ 하라고 명하신다. 본문의 다섯 구절 중 ‘오늘’ 이라는 시간을 나타내는 부사가 네 번 기록되어 있다. 결정하고 택할 시간은 바로 오늘이다. 우리 앞에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가 놓여 있다. 어느 편을 택하시겠는가? 우리와 자손이 살기위하여 오늘 생명과 복을 택하여야 한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며, 그리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김으로 생명과 복의 길을 택하여 살아가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