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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2강
창12;2-3절 – 믿음의 약속과 축복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다.
누구든지 이 예수를 믿고 받아들이면 구원을 얻게 된다.
이 말이 어렵다. 말뜻을 몰라서가 아니라 잘 이해가 안되서 그렇다.
아니 – 어떻게 2처년전에 죽은 예수를 믿으면 내가 구원을 받는 다는 말인가?
도데체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믿는 사람에게는 별 문제 없겠지만
아직 안 믿는 사람에게는 이 말이 어렵다.
롬10;13절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행4;12절 – 예수 외에는 구원이 없다.
행16;31절 –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믿음의 비밀 –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이 믿음의 비밀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택함 받지 않고, 성령이 임하지 못하고 , 인간적인 사람들은 이 말 이해 못한다.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래전에 아브라함을 택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바독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이냐를 말로 설명하지 않고 글로 설명하지 않고 아브라함이라고하는 한 사람을 택해서 25년동안 하나님이 그 인생에 개입하고 역사하셔서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하여 믿음이라는 것을 설명해 준다.
그것이 창세기 12장이후에 나타나는 아브라함의 믿음 이야기이다.
우리는 이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하여 믿음은 이람 무엇인가? 하나님이 원하는 그런 믿음이란 무엇인가?
왜, 어떻게 믿음이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는 가를 아브라함의 생애를 잘 살펴보고, 탐색하고 더듬어 보면 나도 모르게 알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창세기 12장을 시작한다.
1절을 읽어 보면 창12장 이후에 아브라함에게서 나타나는 것, 믿음이 한 작은 시작을 보여준다.
다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어떻게 왜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주셔서 믿음의 살마으로 만들어 가는가 하는 그 과정을 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믿음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믿음 없는 사람,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찾아가 주셔서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주신다.
그러니까 – 일본 선교는 아브라함 선교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얼마나 많은 실수와 실패를 했겠나? 얼마나 많은 절망과 불안과 좌절을 했겠나?
믿음을 갖기 위해서 그 실패와 실수, 좌절, 두려움과 절망이 우리 모두가 경험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같은 보통 사람,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택하셔서 믿음의 조상까지 영광스럽게 예수 그리스도에 비밀을 깨닫는 자리까지 가게 해 주신다.
그 시작이 1절이다.
1절의 말씀을 읽어 봅시다. - 1절의 말씀은 할 이야기가 너무 많은 말씀이다. 믿음에 대해서 많은 것은 암시해 주는 말씀이다.
첫째 – 12;1절의 믿음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아브라함이 믿음이 있어서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믿음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내가 믿지만 믿음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안샘해도 된다. 믿음 없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믿음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내 노력, 내 의지로 믿음을 갖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은총이다. 그것은 믿음의 대상은 인간이 아니다는 뜻이다.
믿음의 대상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엘로힘의 하나님 – 창1장의 하나님) 나를 지으신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 –창2장의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나의 믿음의 대상이다.
눅23;42절 – 십자가 강도는 십자가 지신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을 봤다. 그리고 고백하는 것이다.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
(막10;46-52 - 바데메오의 자기 의지와 결단의 표현은 이런 신앙 고백이다. 그런데 믿음은 자기 의지 표현이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면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구원을 이룬다고 오해 해 버린다. 예를 들어 줄탁 동시-라는 말로 설명해 보리는 목사의 설교가 있다.
줄탁 동시 - 병아리가 안에서 계란을 깨고 나오고 밖에서 어미 닭이 병아리 탄생을 돕는다는 뜻이다. – 이것이 어거스틴과 패라기우스 논쟁이다. 그러나 어거스틴의 완전 은총과 패러기우스의 최소한의 인간의 노력 구원은 이단으로 정죄 됐지만 이 사상이 지금까지 나타나고 있다.
인간 – 그래도 인간이 구원에 대해서 자기 의를 주장하고 싶어한다. 이것이 아담의 범죄 원인인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
믿음의 대상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나를 지으신 하니님이시다. 예배의 대상이고, 경배의 대상이다.
인간은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인간이나 돌, 동물 나무를 믿음의 대상으로 본다.
또 한가지 12;1절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믿음은 언제 시작되는가?
말씀을 들음으로 시작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가서 무슨 말씀을 했다.
이 말씀은 씨와 같은 것이다. 말씀은 생명과 같은 것이다. 이 말씀이 내게 접촉될 때 성령의 역사하셔서 하나님에 대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구원해 대해서 눈을 뜨게 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시작되는 것이다.
예화 – 북한 선교 – 봉수 교회 / 칠곡 교회 – 북한 위장 교회 모습 –
20여년 전에 북한 방문하는 한국 목사님 많았다. 북한에서는 북한 교회 소개하고 형식적이지만 예배드리는 시간도 갖었다. 웃기는 것은 그때 특송한 목사님이 가라오케처럼 돈을 내고 특송을 했는데 그 돈이 헌금인가? 아무튼 그 액수가 1천만원이 기본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제가 느끼는 것은 아무리 형식적인 예배라할지라도 북한 사람들이 예배에 참석하고 말씀 듣고 찬양하고 교회라는 곳을 방문했다할 지라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성령은 역사하신다.
말씀은 불의 혀캍이 우리의 심령과 골수를 쪼개는 역사를 일으키는 것이다.
북한 체제는 이것까지 막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 성령의 역사
(마르크스는 종교를 ‘민중의 아편’으로 표현했다하고 김일성은 ‘종교는 미신’이라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공산주의자들은 종교가 자기들 이념을 해친다고 생각했다.
이념에는 종교적인 이념과 사상적 이념이 다른 것 같으면서 직결된다. 그러니 공산주의에서는 아주 싫어하게 돼있다.
그리고 종교인들을 대량 학살했다. 그 죄과를 그들은 분명히 받게 된다.
이아침에 북한 봉수교회와 칠곡교회를 다녀온 필아델피아 그레이스교회 담임 민영선목사가 북한을 5년 동안 네 번을 다녀온 소감을 읽어본다.
봉수교회에 갔을 때는 250여명 여성들이 한복 차림으로 모였단다.
열심히 설교를 할 때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라는 말을 했을 때 마이크가 꺼졌다고 한다. 그러나 계속 목청을 크게 올려 열변을 토하고 있노라니 강당 전기를 꺼버렸다고 한다. 결국 봉수교회 담임목사가 와서 “고만하시래요.”하더란다.
그러나 끌어내리지는 않더라고 한다.
그리고 북한의 칠곡교회에서의 일이다.
그곳에서는 설교는 하지 못하게 하고 단지 성찬식을 할 수 있었는데 주민들은 온데 간 데 없고 성가대와 교역자들만 남아 있었다는 증언이다.
그 칠곡교회는 남한 교회 교인들이 낸 성금으로 지어진 것인데 하나의 위장교회로 하여 세계 선전용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실토하고 있다.
교회가 없는 사회는 죄와 악을 육성하는 사회다.
교회를 하나의 위장 선전용으로 하는 저들의 사회는 얼마나 곪아 있다는 말인가!
이러니 저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동요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믿음은 말씀을 들음으로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10-20년 교회다녀도 말씀 듣지 못하고, 하나님 음성 듣지 못했다면 믿음 시작되지 않았다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설교 듣고 / 성경 공부 / 말씀 접촉 기회 갖길 바랍니다.
씨를 뿌리면 그 씨는 땅에 떨어져 그 씨는 썩어 죽지만 새 싹이 나오는 것이다.
이것을 1절에서 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또 12;1절을 보면,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단절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떠나라 – 라는 말이 나온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 – 그리고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여기서 두 단어에 주목한다. – 떠나라 – 가라 – 믿음은 이 두 단어로 설명된다.
믿음의 시작과 완성은 떠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 하나님이 가라는 곳에 감으로 믿음은 완성된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래서 내 안에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에 내가 믿음을 갖는 것이다. 단 믿음을 갖는 자격도 없다. 이것이 저의 희망이요 하나님이 믿음이 있으시기 때문에 나에게 그 믿음을 주셔서 처엄에는 실수하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넘어지고 하지만 마치 어린 아이가 자라는 것처럼 그러면서 하나님이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원하는 믿음까지 우리를 가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마지막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보게 하는 것이 믿음의 목적이다.
롬4;17-25절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75세 부름 받아서 그가 믿음의 클라이막스 때는 누구를 죽여야 하냐면 자기 사랑하는 아들을 죽여야 된다.
포기하지 않으면 믿음 안 생기고 믿음의 신비를 깨닫지 못한다.
포기 / 단절하지 않으면 믿음은 안 생긴다. 갈데아 우르를 떠나지 않으면 믿음이 안 생긴다.
이것이 믿음의 비밀 / 믿음의 세계다.,
이삭이 청소년된 자기 아들 / 그렇게 사랑스런 아들 / 예쁘고 / 100세에 낳은 아들을 자기 손으로 찔러 죽이려는 결단이 없으면 믿음이 안 생긴다.
믿음의 조상이 되지 못한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완성 되지 못한다.
뭔 말인가? 하나님이 보여 주시고자 하는 것 / 하나님이 가르치시고자 하는 멧세지는 뭔가?
하나님의 인류 구원 계획을 아브라함은 이 비밀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는 것이다. 이것을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서 미리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아들을 결코 죽이지 않으실 것을 믿었다. 마지막 순간에 살리실 것이다. 나는 그것이 뭔지 모르지만, 순종하고 하나님이 지시하고 가라는 모리아 산에 가면 하나님의 준비하심이 있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끝이 없다.
이삭을 제단위에 올려 놓고 칼로 찌르려는 그 순간에 하나님은 나타나셨다. 아브라함아 – 멈춰라!
내가 너의 믿음을 보았노라! – 그리고 어린 양을 준비해 두셨다. – 여호와 이례 – 준비하시는 하나님 –
아브라함 시대 – 그 당시는 예수, 십자가 이런 단어가 없었다. 그러나 개념은 있었다. - 대신 죽는 것 -
내 아들 이삭 대신 누군가 죽는 그것이 어린 양이라는 것은 그때 알았다.
그때 하나님이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셨다. 이것이 믿음이다. 그래서 예수까지 /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피흘려 죽었다는 그 사실까지 가는 것, 이것이 믿음이고 하나님의 목표다.
내가 믿음을 가지려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떠나고 / 가는 것이다. 포기하는 것이다. 이것이 없이는 내가 믿음을 시직하지 않는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멧세지다.
우리들의 미등ㅁ의 약점은 자기 것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 뭘 더 달라는 것이다.
건강 / 축복받고 / 오래 사는 것 - 이것 3가지 원하는 것 – 행복의 최대 조건을 요구한다.
내 생각 / 내 성격 / 내 의지 이런 것 상관하지 마세요! 대신 내가 원하는 것 잘 되게 해 주세요!
잘 되게 해 달라고 요구한다.
여기서 우리의 갈등이 시작된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성도의 모습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 /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이런 갈등 전혀 없다.
마6;33절 –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막10;37절 – 하나님 나라가 되면 하는 주의 오른 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세요!
하나님은 그때 말씀하신다. 너 그렇게 하면 망한다 –
그러나 인간은 죄인아라서 끝까지 간다. 갈등과 싸움에서 욕망을 추구해 따라가 버리는 사람 많다.
죽는 길인줄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가는 사람있다. – 자기 의 / 자기 고집 / 자기가 하고 싶은 것 하고 싶어서 창조론을 믿지 않는 사람들 / 하나님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 절대 다른 사람 말 안듣는다.
책 – 괴테 – 파우스트 – 독일 사람의 필독서 – 성경과 파우스트
세상 욕망과 자기 영혼을 가지고 사탄과 계약을 맺는다는 이야기다. 사탄은 파우스트에게 제안한다. 세상 사랑과 재물과 권력을 줄테니 네가 죽을 때 네 영혼을 내게 줘라! 그래서 계약한다.
책의 결론은- 무덤에서 천사의 도움으로 그 영혼은 아름다운 하늘로 올라간다.
이것이 하나님과 인간과 갈등이고 싸움이다. 나의 옛 사람이 죽지 않으면 새 사람은 없다.
하나님, 나만 건드리지 마시고 축복만 주세요!
이럴 때 믿음은 안 생긴다. 믿음이 없는 것이다. 믿음은 죽는 것이고 그러면 살아난다.
부활은 믿음으로 일어난다. 이것이 믿음의 신비 / 믿음의 세계다.
포기하라 그러면 얻으리라!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진척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그런데 현실은 뭔가? 아무것도 안 보인다, 오직 보이는 것은 순간 순간 하루 하루의 삶 뿐이다.
찬송 – 하루 하루 살아요, - 내일 일은 난 몰라요!
믿음의 삶은 내일이 안 보이는 것이다. 믿음으로 보이지만 현실은 안 보인다. – 18년 일본 선교 -
하루 하루 / 날마다 날마다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음은 다 설명해 주시지 않으셨다. 이것이 재미있는 내 인생 / 일본 선교다.
하나님은 믿음을 어떻게 가르쳐 주셨느냐 – 너의 삶을 통해서 – 죽을 때까지 – 우릴 통해 주의 영광 보이시기를 원하시고 우릴 통해 하나님 나라 이루길 원하신다.
미일 매일 믿음을 보여 줄 것이다. 그래서 성도의 삶은 놀랍고 기쁘고 두근 두근의 삶 / 매일 매일 새로운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이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던 새로운 사건이기 때문이다.
믿음을 다 아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을 다 아는 사람 없다. 설교 준비하면서 하나님 너무 새로운 분이시다. 옛날에 만난 분이 아니다. / 새로운 분이다. 이것이 믿음의 세계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 / 포기하는 신앙 -
예화 – 가보로 고려 자기가 있는 집에서 손자가 고려 자기에 손을 넣고 빼지 못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손자의 손이 몇 천만원짜리 고려 자기 손에 낀 것이다. 그래서 바지지 않아서 같이 다녀야 한다.
결국 고려 자기를 깨기로 결정했다. 깨서 보니 아이가 주먹을 쥐고 있는데 구슬을 쥐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화 – 필리핀의 원숭이 잡는 방법 -
인도/ 동남 아시아/ 아프리카/ 아마존에 사는 원주민들은 원숭이를 잡을 때 야자열매를 사용한다고 한다. 먼저 야자열매를 따서 원숭이 손이 들어갈 만한 작은 구멍을 내고 거기 땅콩/ 바나나 / 돌멩이를 하나 넣어둔 다음 원숭이가 잘 다니는 길바닥에 떨어뜨려 둔다. 원숭이가 다니다가 야자열매를 툭 건들 때 안에서 나는 돌멩이 소리가 원숭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게 된다. 원숭이는 야자열매의 작은 구멍 속에 손을 넣고는 돌멩이를 잡는데, 나중에 돌멩이를 빼려고 하면 주먹 쥔 손을 작은 구멍에서 뺄 수가 없다. 손을 빼려면 돌을 놔야 하는데 손에 잡힌 것에 대한 강한 집착 때문에 결코 그것을 놓치 못하게 된다. 그래서 원주민들이 야자열매 안에 손을 넣은 원숭이를 쉽게 잡을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인생도 내가 꼭 쥐고 있는 것보다 예수님께 모두 맡길 때 멸망치 않고 복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너무 시시한 것을 목숨 보다 더 귀하게 여기며 꽉 쥐고 살고 있다.
성경은 가르친다. – 영원한 것을 잊어 버리지 말라!
네 손에 너무 많은 것을 쥐고 있다면 그 손을 펴라! 성경의 가르침이다.
자신을 내려 놓으면 하나님이 보인다. – 하나님은 나를 봐라 – 하시고 나는 내가 가진 것을 소중하게 본다.
2절을 읽어 봅시다. 2절에서 하나님은 약속과 축복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신다.
2절은 믿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 믿음의 내용은 무엇인가? / 믿음은 어떤 약속이 있는가? / 그리고 어떤 결과가 있는가? 하는 것을 가르쳐 준다.
믿음은 인간에게는 없는 것이고 /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인데 -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에는 약속이 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축복이다.
약속이 없으면 그 축복도 이뤄지지 않고 성취도 없다. / 약속이 있으니까 성취도 있다. 그리고 약속은 지금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이제 이뤄질 사건이다. – 히11;1절 –
한국 축구의 희망 – 한국인에게 잠재력 있는 것은 초능력적인 힘이 잠재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발견하라
내가 세상에서 이런 기본적인 개념을 경험한다. 말이 사실이다. 증거나 주석으로 근거를 제시하는 학자들
눈문의 인용하는 근거, 이것이 사실이라고 증명하는 것이다.
게약서 / 요즘 녹음기 / Youtube 유튜브/ 동영상으로 이것 거짓말 아니다라고 증거를 제시한다.
약속이다. 약속있으니 투자하라! 약속 없으면 불안 / 투자 하지 않는다.
히11’1절 – 믿음은 현재 없는 것 = 미래 일들 이뤄질 것이다. – 그러니까 믿음으로 약속이 있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뭘 미기 어려운 것이냐하면 하나님은 약속 하셨다.
여기서 우리 믿음 체크 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믿음 가지고 있는가? – 믿음 없는 것? 꿈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 인간 적인 생각이 문제다. 이것이 우리 믿음을 가로 막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내 의견 / 내 경험 / 내 생각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 – 요나 선교이 출발점이다.
그래서 일본 선교는 요나 선교다.
하나님의 약속 지금 이뤄진 것 아니지만 믿음으로 약속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약속이고 약속은 축복이다.
어려운가? 우리 현실은 아직도 고난이다. 풍요롭다. 생복한다. 현실 안주하기 딱 좋다.
곧이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가 좋사오니 – 갈대아 우르 – 여기서 교회 건축하고 전도하고 살면 안되나요? 믿음으로 살면 안되나요? – 하나님 - 약속 믿고 떠나 가라!
2절에는 어떤 약속이 있는가? - 3가지가 있다.
첫째 – 내가 너로 큰 민족 이뤄 주겠다. 라고 하는 약속이다. 그런 축복이다.
둘째 – 네게 복은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겠다는 약속과 촉복이다.
세번째 -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약속과 축복이다.
이런 일들이 현실적으로 잘 이뤄지지 않는 일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이뤄지는 사람이 있다.
예 – 아브라함 카이퍼 – 네덜란드를 변화시킨 목사이며 총리였다.
미래에 이뤄질 것이라는 약속이다. 그 약속을 바라보고 약속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믿으면 천국간다 이것은 약속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여긴 것처럼 이 믿음의 모델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경험시키는 것이다. 실패를 통해서 이것이 먼 훗날 하나님이 전 인류를 구원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 시바가에 목 박혀 죽게 될 터인데,
어떻게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나에게 구원이 될 수 있는가?
누구든지 이 사실을 아브라함처럼 믿으면 / 믿으면 너는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이 약속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지금 아브라함의 생애가 클라이막스가 올 때
아 – 이것이 믿음이구나 ,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 맏는 다는 것이 이렇게 확실한 것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약속은 3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일방적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요구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한 것은 일방적이고 하나님 그를 가라고 한 것도 일방적이다.
너는 순종하면 믿음은 순종함으로 시작하는데 순종하면 이런 약속을 보장할 것이다. 보장해 주마!
이런 약속을 믿으면 축복이 될 것이다. 라고 하는 약속과 축복을 해 주시는데 이것이 다 일방적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일방적이다.
불가항력적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밀어 부치는 것이다.
종교 개혁자 – 존 녹스 – 설교 – 시편 80;3-7절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와 소명에 대한 설교였다. – 마5;14절 –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일어나 빛을 발하라! – 이사야60;1절- 내 공로는 없고 하나님의 전적 선택의 은혜다.
종교 개혁은 튤립이다.
주님의 무조건 적인 선택 – 하나님이 조건을 걸면 내가 여기 서 있을 수 없다.
우리 조건 / 우리 형편 / 의지를 듣고 했다면 아직도 망설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믿음이 생길 때까지 하나님 기다린다면 구원 받을 사람 한 사람도 없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난 죄인이다. – 인간과 하나님 / 인간과 인간 / 인간과 자연은 서로 적대 적 관계다.
이것을 회복하는 것이 예수 믿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떠난 인간은 스스로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몰랐을 때 하나님은 우릴 사랑하시고 우리가 하나님께 반응할 수 없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우릴 사랑하셨다.
지금까지 그래서 약속은 일방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약속은 상상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너무나 너무나 인간의 지식, 경험으로 이해 할 수 없는 엄청난 약속을 주신 것이다.
예 – 제가 여러분에게 1만엥 구겠다면 좀 이해 할 것이다. 그러나 1천억엔 주겠다면 개념 이해 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일상 생활에서 쓰는 개념의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상상을 초원하는 개념이다.
단지 1억엔을 계산할 수 있다. 하루에 1만엔을 쓰면 얼마나 걸리는지 아는가? 33년 걸리는 액수다.
1년에 365일 - 365만엔이다. 10년이면 3650만엔 / 30년이면 1억 9십5만엔이 된다.
그럼 1천억엔은 얼마나 걸리겠는가? 평생 하루에 1만엔 꼭 써도 다 못쓰는 돈이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왜 믿음의 삶을 받아들기 어렵냐하면 그 약속이 너무나 큰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엄청난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 엄청난 것이다.
네게 천국을 주겠다는 것은 너무나 엄청난 것이다. 너무 엄청나기 때문에 실감이 안나고 잘 못 믿게 되는 것이다.
롯또 복권 당첨된 사람있다. 그러나 하나님 약속을 이해가 안된다.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이것을 공짜로 준다고 한다. 그래서 더 안 믿어지는 것이다.
믿기만 하면 준다니까 이것 안 믿어지는 것이다.
이 약속은 현재에 만족을 주는 축복이 아니다. 미래 이뤄질 축복이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고, - 아직 애기도 없는데 –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겠고,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을 것이다. 너는 복을 받아서 네 이름이 온 인류에 두고 두고 네 이름이 크게 될 것이다.
예 – 하버드대 도서관에 제일 많은 책 – 모세 / 예수 / 다윗이 아니라 아브라함에 관한 책이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자 다 축복을 받고 - 이것 이해 되나?
이 말의 의미를 ?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믿으면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두번째이다. 세번째는 하나님이 하신 약속은 반드시 지켜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특징이다.
사람의 약속은 변하고 바뀐다. 시간 지나면 잊어 버린다.
찬송 – 489장 –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하나님의 약속은 세월이 지나도 더 분명해 진다. 나는 잊어 버릴 지라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
그래서 받드시 그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이 특잉이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 갈데아 우르에 사는 평범한 75세 노인 할아버지에게 찾아가 주셔서
내가 너를 택하겠다. 약속하고 축복하고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겠다라고 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3가지 약속을 더 자세히 살펴보면
첫번째 하신 믿음의 약속은 –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뤄 주겠다하는 것이다.
역사는 수없이 변한다. / 문명도 태어나고 사라진다. 국가도 세워지고 무너진다. 이집트 문화 / 로마 그리스 문화 / 헬라 문화 다 사라졌다.
국가 / 영웅들의 지배 –알렉산더 대왕 / 징기스칸
한국 = 신라-3국 –통일 – 후3국 – 고려 – 조선 – 남과 북의 분단 – 언제까지 갈 것인가? –
변화의 시대를 불별하라!
그렇다면 지금 있는 민족의 미래도 언젠가는 살아질 것이다.
하나님의 민족 – 영원한 민족으로 축복의 약속 –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없다. 이제 시작이고 출발점에 서 있다. 현실을 절망인데 믿음은 희망이다.
한국 1903년 – 1907년 시대적 상황을 보면 현실적으로 일본 식민지가 되어가는 절망의 시대로 접어 들지만 그때 교회와 성령의 역사라 불같이 일어났던 시기라는 것을 교회사에서 배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는 앞으로 자식 낳는다. 네 자식으로 민족이 생길 것이다. 그 민족은 크고 영원할 것이다. 이런 축복이다.
그렇다 이 축복이 우리가 믿음으로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 혈류병든 여인의 믿음 처럼 -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
아브라함의 민족 – 이스라엘에서 태어날 메시아 – 예수 그리스도 – 그분의 나라가 영원하다는 것이다.
그분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까지 간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기 위하여 한 사람을 택하시고 한 민족을 만드신다.
하나님은 구별하고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구별된 사람 / 구별된 민족 / 선택 받는 사람 / 선택된 민족이라 말씀하신다.
그 민족에서 메시아가 태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 민족은 메시아를 죽였다.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제 큰 민족을 만드시고 그 민족은 메시아를 통하여 전 세계를 구원하게 되는 이런 놀라운 비밀이 이 말 한 마디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롬4;1-3절에서 정리되어져 있다. 잃어 봅시다.
믿음으로 의의 길/ 믿음의 길 – 아브라함이 의로 이스라엘 민족에서 메시아가 나올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는 큰 나라 / 큰 민족 / 큰 백성이 될 것이다.
이 예언의 성취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이 된다.
두번째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은 –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고 –
이 말을 듣는 아브라함은 이게 무슨 소리여 – 전혀 이해 할 수 없어 = 아무도 말랐다 죽어도 몰랐다.
하나님의 약속이란 이런 것이다. 단 하나님은 축복해 주신다. / 사랑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모른다.
어느날 인생의 고난을 걷다가 그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다. 축복을 깨닫는다. 그래서 눈물
하나님 어찌 그리 나를 사랑하십니까? / 이렇게 나를 축복해 주십니까?
난 아직 몰라! / 아브라함 처럼 – 죽어도 몰라 –
내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 -
간증 – 결혼 전에 기도 – 간증이 있는 결혼 / 자녀와 결혼 상대자 / 손자 손녀 / 그리고 그 결혼 상대자
하나님 기도하게 하셨다. 지금 현재 진행형이다.
시련 / 고난 / 절망의 현실에서 느끼는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과 약속을 이제 깨닫는다.
그때 절망중에 희망을 보는 것이다.
늘 보회해 주시고 / 인도해 주시고 - 찬미 - 나의 등 뒤에서 -主は みちびき
그 은혜의 축복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다.
두번째 축복은 내가 너에게 복을 주겠는데 네 이름을 창대케 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 속에서 배우는 것은 뭔가?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사람을 복을 받는 존재이지 복을 주는 존재가 아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착각한다. 인간이 복을 줄 수 있는 존재라고 착각을 한다.
모든 인간은 복에 굶주려 있다. 복 받기 원하고 복이 인생의 목적이다.
그래서 자부동/방석에도 복자를 써놓고 / 복자 써있는 장신구를 걸어 놓기도하고 귀걸이도 한다.
복받는 것 싫어 하는 사람 없을 것이다. – 인간은 복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공부하는 목적이 복이다. 돈벌고 좋은 직장 / 오래 사는 것이 행복의 가치관이다. 설득력 있는 상식이다.
그런데 인간이 추구하는 것들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잡았다고 생각하지만 순간 사라지는 것이다.
건강 / 오래 사는 것, 물질 행복을 주지 못한다. 영원할 것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이 인간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이런 복이 아니고 진짜 복을 주겠다는 것이다. 영원까지 이르는 복 / 썩지 않는 복 / 사라지지 않는 복 / 이런 복을 내가 네게 주겠고 하는 것이다.
인간이 뭔가 – 바울의 고백 – 배설물같이 버렸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영원한 복을 붙잡으려 달려 가노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이런 복이라는 것이다. – 복은 예수 그리스도다.
믿음으로 영원한 복을 가지길 축원합니다.
그리고 절망중에도 예수를 만나면 사랑과 용서를 경험한다. 그리고 내가 변하는 복을 누리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축복의 세계를 경험하길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지는 축복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서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민족을 만드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는 것이다.
마1;1절 –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신약 성서는 이렇게 선언으로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믿는 자에게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 미움에서 사랑으로 나오게 된다.
이 놀라운 기적이 이제 너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할렐루야 – 히11;1절 -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
내가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라!
빌2;5-11절 – 예수의 이름 – 이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주사 / 이 이름이 온 인류에 널리 퍼지게 함이다.
모든 입으로 이 이름을 찬양하게 할 것이고, 그 이름앞에 무릎 꿇고 경배하는 이름 예수 그리스도
요14;14절 - 그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하면 내가 이루리라!
지금 일어나고 있다. 마1;1절 –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구원의 이름 예수가 여기서 예언되고 약속하고 있는 것이다. – 하나님의 약속은 받드시 이뤄진다.
약속은 반드시 성취된다.
그러나 인간이 상상 할 수 없는 것이다. / 축복으로 가득찬 약속이다.
그러나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축복으로 가득찬 약속이다.
그 약속이 어떻게 아브라함의 자손에게서 이뤄질 수 있겠는가?
어떻게 아스라엘 백성에서 일어날 수 있겠는가?
마1;1절에서 너의 이름이 창대케 될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약속이다. 믿음에는 약속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불가항력적인 은혜라고 한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얻기는 불가능한 약속이다.
이런 약속들은 예수를 통해서 나는 너희들에게 주겠다.
그리고 그 이름은 온 세상에 퍼지게 될 것이다. / 우리는 이런 믿음의 약속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현실에서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졌을 때도 믿음으로 약속 믿고 승리한다.
내가 너로 복의 근원으로 만들어 주겠다. 큰 민족 / 네 이름 크게 그리고 복의 근원을 만들어 주겠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지 인간이 아니다. 이 믿음 가지면 하나님의 복을 나눠 주는 사람 될 것이다.
복은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의 복을 가지고 나도 살고 모든 사람에게 다 축복해 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
네가 저 나라에 선교사라면 그 나라는 너로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다.
그 집에 시집가면 그 집에 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예수 믿는 사람의 마음 – 나 만난 사람은 다 복을 받을 것이다.
내가 얼마나 복덩어리인가 이것을 내가 이런 사람이다. 하나님의 복이 내게 왔다. 나는 예술 줄 것이다.
예수가 구원이고 복받고 이것이 복의 근원이다.
우리 자녀는 다 복을 맏게 될 것이고 / 왜냐하면 매번 기도해 주니까 – 감사하다. 하나님 영광
하나님의 축복 / 하나님의 은혜다
내가 복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다.
3절에서 더 설명된다. – 읽어 봅시다.
와 - 이런 진리 – 와 – 다,
나에게 잘 주는 사람 하나님이 다 복을 주시고 /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다 저주 임할 지어다,
이런 말이다.
이렇게 독선적이고
이렇게 편파적이고
이렇게 말이 안되고 그런 말이 여기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다.
할렐루야 – 믿을 수 없다.
믿음의 축복이 이렇게 큰 것이다.
믿음의 약속이 이렇게 큰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역사적으로 다시 살펴보면 맞는 말이다. 역사는 AD와 BC로 나뉜다, 예수가 그 기준이다.
우리 인생도 예수를 믿는 것으로AD와 BC로 나뉜다,
안 믿는 자는AD와 BC로 나뉘지 않는 사람이다. 안 믿는 자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분명한 믿음 되길 바랍니다.
인생 / 사랑이 깊어지면 한 여자만 만난다.
사랑이 깊어지면 하나님만 사랑한다.
너로 축복 /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 너로 모든 민족이 축복을 받을 것이다.
이 교회 때문에 이 지역 / 이 나라가 복을 받을 것이다.
나 때문에 가정 / 직장 / 학교가 축복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여행을 시키는 것이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게 하는 지혜를 발견하게 하옵소서
예수를 믿는 것이 축복임을 깨달아 알게 하옵소서
너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라는 것을 믿음으로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결론; 종교 개혁자 – 존 녹스 – 설교 – 시편 80;3-7절 / 하나님을 바로 알자!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와 소명에 대한 설교였다. – 마5;14절 –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일어나 빛을 발하라! – 이사야60;1절- 내 공로는 없고 하나님의 전적 선택의 은혜다.
종교 개혁은 튤립이다.
주님의 무조건 적인 선택 – 하나님이 조건을 걸면 내가 여기 서 있을 수 없다.
사명 ;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에스겔 3장 17절).”
죽을 때 하는 말 –
요17;7절- 지금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