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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규(도비아) - “사랑하는 어머니. 모든 것을 당신께 맡깁니다. 저의 감각 저의 전 존재를 당신께 맡깁니다. 제 능력과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당신께 드립니다. 당신은 나약한 이에게 힘을 주시고, 흔들리는 이를 붙들어 주시며 고통 중에 있는 이를 위로하시고 번민하는 이를 도우십니다. 어머니 당신은 제가 세상 한 가운데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잘 알고 계시니 자애로운 눈길을 제게서 떼지 마십시오. 믿음과 겸손의 모범이신 마리아여 당신을 본받아 항상 주님의 뜻만을 찾고 저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겸손 되어 봉사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이 기도를 신부님께서 “죄인들의 피난처Pr” 제1000차 주회 기념 때 주신 기도문입니다. 이번 성모승천대축일 봉헌 때 이 기도를 바치면서 성모님이 우리 죄인들에게 베풀어주신 크나큰 사랑과 은총에 감사드리고 방학 전 미사 때 시몬 신부님의 강론 말씀 중 “기적이란 무엇인가?” 불가능과 한계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보여주셨던 “오병이어”의 기적과 마르코 복음 9장23절 말씀 중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게 가능하다.”란 말씀처럼 인간의 상식과 과학적인 이론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 또한 믿음의 삶 그 자체를 가져야한다. 또한 우리의 삶에 베풀어 주신 은총의 삶을 우리 인간의 잣대로 생각하지 말고 하느님의 기준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하느님의 믿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강론 말씀을 깊이깊이 되새기며 죄인의 신앙생활에 무엇이 부족하였고 잘못된 믿음은 무엇이었나를 깨우치도록 노력하며 열심히 신앙생활에 전념하겠습니다. 알렐루야! 이제 이번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끝으로 아마도 이곳 마태오 성당에서의 미사는 더 이상 드릴 수 없게 될 것 같습니다. 원래 2012년 9월27일이 출소일 이었는데 잘못된 행정으로 2012년 10월11로 출소일이 15일 더 늦어졌습니다. 저도 모르게 바뀐 출소 일에 황당하였지만 어느 곳의 행정 착오인지 (법원, 검찰, 교도소) 꼭 밝혀야 하기에 재판회복신청을 하였기에 8월 말일쯤 구치소로 이송을 갈 것 갔습니다. 그곳에서 10월11일 날 출소를 하겠지요. 재판은 출소후도 계속 될 것이고 하지만 이번 이곳 대구교도소 담 안 마태오성당에서의 생활은 너무도 큰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축복의 나날들이었습니다. 너무도 멋있는 시몬신부님을 알게 된 것 신부님의 이곳 담 안형제들을 사랑하시는 마음이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으며 미사를 집전 할 때의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또한 이정희 베드로 수녀님의 모습에서 성모마리아님의 모성적이자 순명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신앙생활에 너무도 큰 힘이 될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 회장님과 봉사자 자매님들의 깊은 자애와 사랑 속에 담 안형제들의 밝은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때마다 죄인 스스로도 다짐하곤 합니다. 하느님의 주신 이 깊은 사랑을 나도 이곳에 있던 사회에 나가서든 항상 이웃과 함께 나누고 살자며, 신부님, 수녀님, 봉사자, 자매님들 모든 분들 덕분에 사십년 가까이 잊고 있었던 하느님을 다시 모실 수 있어서 너무도 기뻤습니다. 알렐루야! 마음 같아서야 이미 정해진 출소일 어쩔 수 없다는 교도소 측 말대로 14일 더 살고 나가야 할까 내가 지은 죄로 인하여 피해를 입었던 피해자 분들과 나로 인하여 고통 받았던 가족들을 더 이상 고통을 주고 싶진 않지만, 힘이 없어서 당해야 하는 그렇게 당하면서도 쉽게 포기 하는 사진이 싫어 끝까지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랑과 평화의 주님. 또한 죄인들의 어머니이신 성모마리아님 이 어리석고 못난 죄인에게 우리 주 그리스도의 깊으신 사랑과 평화를 이웃의 고통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시고, 하느님의 곁을 떠났다 이곳 담장 안 마태오 성당에서 쭈뼛쭈뼛 돌아온 죄인을 너무도 따뜻이 안아주신 하느님 이제는 어디를 가든 어디서든 하느님을 잊지 않겠습니다. 언제가 됐든 하느님이 이 죄인에게 베풀어 주셨던 사랑을 언젠가는 이 죄인도 이웃과 함께 할 수 있겠지요! 알렐루야! 일 년 가까이 했던 레지오 단원들 또한 담 안 마태오 성당형제들을 위하여 많은 봉사를 하는 회장님과 간부 여러 형제들 모두모두 건강하시어 하루 빨리 가족을 기다리는 사회로 복귀할 수 있게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며, 이번 성모승천대축일 봉헌의 글을 올립니다. 아멘
※담 안 형제들을 위하여 순명의 삶을 살아가시는 봉사자 자매님들 그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주님의 사랑과 평화가 함께하시길 주 그리스도님을 통하여 비옵나이다. 아멘.
김진식(미카엘) - 처음으로 성모님께 글을 드려 봅니다. 어색함, 오글거림, 쑥스러움 무슨 말을 할까? 괜스레 날씨이야기며 햇살, 더위, 바람, 비... 이런 저런 이야기들만 끄적끄적 썼다 지웠다... 또 썼다 지웠다... 무슨 거창한 글을 쓰고자 이렇게도 주빚 대며 꾸물 거리는지... 에이구~, 땀나라~, 날은 더운데 이 무슨 궁상인지... 그래도 잘 써서 성모님께 드리고픈 마음에 초안 잡는 데만 한참을 끙끙 거리고 있었네요. 같은 공장에 조 땡땡 형님한테 가서 성모님께 드리는 글을 쓰려는데 하고 두루 뭉실 조언도 구해보곤 했지만... 이러다 할 답은 없네요. 나름 끙끙 거리며 생각하다 끝에 내린 결론은 그냥 쓰렵니다. 이놈이 쓰는 글이 뭔 말인지 아리송해도 이해하시고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시간은 과거로 한 시절 죄악으로 인한 큰 시련과 고통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가고 예고 없이 뜬금없이 흐르던 눈물의 시간들, 반성, 용서구함, 밑도 끝도 없는 세상에서의 분노, 그리고 떠오르던 온갖 생각의 끝에는 항상 “죽음”과 ”자살“이라는 무책임함이란 단어로 표현되는 결론을 지으려만 했던 자학의 시간, 시련과 고통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항상 그래 왔듯이 시련과 고통이 불가항력적으로 찾아올 때면 어떠한 절대적 힘을 갖은 대상에 의지하고픈 마음이 저를 지금껏 살아오게끔 합니다. 그렇게 하느님을 의지의 대상, 치유자로서 접하였고 신앙을 갖고 살아보게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고 새로운 마음으로 지내는 것도 잠간 또 다시 기회를 엿보던 마음속 시커먼 놈이 꿈틀됨을 느꼈고 그놈의 유혹이란 것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그 유혹에 넘어가 제 자신이 또 다시 점점 어둠에 잠식당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때 번뜩 든 생각이 지난 죄의 결과로 보냈던 악몽 같던 시간의 경험, 그 시간을 다시 되풀이 하여 겪고 싶지 않아 그 꿈틀거리는 검은 놈 보다 더욱 강한 분께 의탁함을 청하고자 레지오 활동을 하며 평소보다 성서도 조금 더 보게 되었고 스스로 저의 지난 시간들을 뒤 돌아 보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 보았습니다. 그로인해 얻은 은총과 같은 많은 시간들이 있었고 많은 반상과 묵상, 감사, 그리고 나름의 앞날에 대한 각오와 다짐들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성모님! 저 미카엘의 이러한 생각과 각오, 다짐들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또 빌어주시옵소서! 죄로 인해 죽음과 같은 시간을 보내는 일이 없도록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시길 간절히 청해봅니다. 무엇보다 저의 노력이 최우선이 됨을 물론이구요. 또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또 다른 마음의 소리를 글로써 성모님께 전해 드리게 될 것 같습니다. 그대까지 성모님께 많이 부족한 저이지만 기억해 주시길 성모님께 청합니다.
최성열(시몬) - 성모님 앞에서 겸손히 두 손 맞잡고 서서 제 마음속에 감추어둔 성모님의 사랑을 고백합니다. 성모님께 다가가는 붉은 노을녁에 왜 이리 제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성모님이 계신 곳은 금생(今生)이십니까? 저는 돌아가신 분은 믿지 않습니다. 저는 돌아가신 분은 따르지도 않습니다. 오로지 살아계신 주님! 그분의 거룩하신 어머니, 성모 마리아님을 따르며 살겠습니다.
엄동희-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마태 7,12) 음에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는다.” (레위 24,20)를 생각 했는데 마태오 복음서(7,12)를 읽고 내가 생각을 잘못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기에 앞서 내 자신도 돌아보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흔히 남의 잘못은 잘 보이는데 나의 잘못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이 있기에 남을 시기하고 욕하고 싸우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상대의 잘못을 이해(理解)와 배려(配慮)로 받아들이기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희제(예비신자) - 주님, 7月27日 예비신자로 받아들이는 예식을 했습니다. 마음이 많이 떨리고 엄숙(嚴肅)했습니다.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미신(迷信)과 의식(意識)을 끊어버리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저 역시 신부님의 말씀을 하나하나 되새겨 봅니다. 앞으로 계속 저를 바로 잡아주시기를 기원합니다. 많이 노력하는 그런 예비신자가 되겠다고 생각하고 다짐합니다. 7月 27日 이날도 제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신부님, 수녀님 사랑합니다.& 행복합니다.
이우람(마태오) - 주님! 저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주님의 평화 이끌어 주소서. 제 죄(罪)를 너그러이 용서하신 주님의 사랑을 누리면서도 이 나약한 죄인은 저를 시험에 들게 하는 대상을 용서하려고 해도 끊임없이 흔드는 바람처럼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같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것은 지금 반복되는 그의 잘못(보편적)에 너무도 버겁습니다. 다만 더는 미워하고 증오하지 않기 위해 기도와 묵상을 하지만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주님! 더는 미워하지도 증오하지도 않게 그 대상과 잠시 떨어져 마음을 다독이게 하소서. 주님의 진리 속에 살고자 히니 제 스스로의 변론과 정당화는 나약한 변명 같아 괴로움이 되어 스스로의 등을 후려치는 채찍이 됩니다. 그의 잘못되고 이기적인 행태(行態)를 보며 저는 저의 옳음을 두고서 방관하고 무시할 수만은 없어 그를 미워하고 증오합니다. 관대함(寬大-), 이해(理解), 너무 버겁습니다, 당장 제 이기심으로 가득 차 넘치려는 분노를 잠시 누그러트림으로 거리를 허락해 주십시오. 일흔 일곱 번의 용서... 수의 한계가 소통되지 않는 막힘에 더 힘겹습니다. 미움과 분노에 주님께 회개하는 제 자신의 반복되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소서. 사랑하고 소중하지는 못해도 더는 미워함과 분노하지 않게 하소서. 용서하면 끝내 용서하지 못하고 반복되는 잘못에 분노해 하는 제가 주님의 진리에 진정 평화로 살게 하소서. 주님의 진리에 온전하지 못하는 제 방황을 바르게 이끌어 주소서. 주님! 잘못됨과 이기심을 모른 척 방관해야 합니까? 그것을 지적하고 나무라며 그게 미움을 만드는 것입니까? 사회적인 옳고 그름에서 비겁해지고 싶지 않습니다. 주님의 진리에 당당히 고개 들고 정진하며 진리에 속해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로 미움과 분노는 옳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부디... 저를 미움과 분노에서 잠시 멀어져 온전하게 용서와 이해로 살아가게 하소서. 사랑과 나눔으로도 너무도 버거운 세상에서 굿굿이 나아가게 하소서. 아멘.
노형식(안드레아) - 찬미예수님, 여름의 더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넓히더라도 서로를 향한 우리의 마음이 갈라져선 안되겠지요? 그리스도가 내 삶의 중심에 오면 가난해도 슬퍼도 고통 받아도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하느님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써 믿음을 지켜내며 행복과 사랑의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담는 소박한 꿈을 주시는 분 당신을 사랑합니다. 자신이 서 있는 삵의 자리에서 진지하게 그 자리를 돌아보게 하시는 하느님 스스로에게 잘못의 깨달음을 뉘우치게 하시는 하느님 잘못을 용서해주시는 당신이 계시기에 오늘도 내일의 소박한 다짐으로 당신의 완전한 품속에 안기고자 합니다.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탓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의 일상을 잠시 벗어나 잠시 잠깐이라도 하느님께 의탁하는 믿음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희망과 소망의 불씨를 끌어안고 지탱 할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보다 해를 닮듯이 하느님을 바라보고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려는 신앙의 자세로 기도하며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가짐으로 하루의 삶에 충실히 해 가고자 합니다. 평온한 마음은 몸의 생명이고 질투는 뼈의 염증이다. 주님을 섬기는 사람은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야지 자기 이름에 미련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몰랐다면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마음에 무엇을 품고 인생을 살고 있을까? 그저 약하고 죄 많은 존재로 머무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 등으로 방학동안 나의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면서 담 안의 형제들을 위해 적게는 내 자신과 가족을 위해 충실히 살아야겠다는 믿음으로 성령님께 예수그리스도께 기도 했는데 제 마음에 와 닿는지 모르겠습니다. 믿기만 하여라. 아직 끝나지 않았다. 좋은 일을 할 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곧 죄가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일상에서 복음적 기도를 드리며 희생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단단히 챙겨야 합니다. 기분 뿐 아니라, 성경말씀 읽기를 열심히 한다. 숨을 쉬고 있다고 살아있는 것이 아닐진대 마음을 열어 남을 받아들이고 고통을 받는 이들에게 사랑의 생명을 불어 넣는 사람이 살아 깨어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생명의 싹을 틔우려면 이기적인 욕망을 버리고 그 자리에 사랑을 심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보여주신 사랑을 본받고자 합니다. 신앙인은 시련과 어려움에 놓일 때에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를 잇는 아름다운 다리는 무지개입니다. 천주님과 사람사이를 잇는 무지개다리는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우리가 기쁘고 즐거울 때도 당신은 함께하시지만 더 많이 우리가 슬프고 괴로울 때 근심의 이마를 짚어 주시는 어머니! 그러하기에 자비로운 전구자 이신 당신의 승천의 영광은 저토록 광휘롭습니다. 아멘.
윤금철(베드로다미아노) - 세상과 단절한 채로 담 장속에 삶을 시작한지 15년하고 보름이 흘러갑니다. 담 속에서 삶은 콘크리트 구조물과 사방을 둘러보아도 쇠창살과 높게 쳐진 담뿐입니다. 어쩌다 자연을 보려면 눈에 익숙해진 메마른 콘크리트 속을 벗어나 일주일에 한 번 미사를 참석하러 가는 길에 원예화원과 운동장 저 멀리 바라보이는 낮은 산입니다. 자연적으로 정서적인 삶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때마다 미사 때 제단 앞에 꽃꽂이 작품을 보며 자연의 신비에 대한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보며 마음에 위안을 삼고 돌아옵니다. 가끔씩 행사 때마다 아름다운 산에 절경 또 꽃을 찍은 사진들을 선물로 받으면서 창조주 하느님의 놀라우신 섭리에 한 동안 매료되어다가 이런 대자연 속에서 호흡하며 살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러고 보니 담 장속에서 너무도 많은 사랑을 과분하게 받고 살아가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하느님을 찾지 않았다면 오늘도 콘크리트 구조물 속에 꽉 막힌 방충망으로 인해 희뿌연 하늘을 바라볼 것인데 아름다운 산, 설경, 상고내린 나뭇가지, 활짝 핀 자태의 꽃 그리고 성경말씀을 묵상 할 수 있음이 행복(幸福) 그 자체입니다. 아름다운 손길에 의하여 가만히 앉아서 호사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쉴 세 없이 연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당신의 사랑을 펼쳐 보이심을 보여주십니다. 언젠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제가 가진 조그만 것도 함께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행복합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삶 속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전호식(이시도로) - 주 나의 하느님! 무더운 기온으로 인해서 이곳 담 안 저희들에게도 방학 시일 주셔서 감사 하나이다. 하루 주님의 기도드리면서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깨우쳐 보려 하지만 일시적인 기억은 하면서 마음속에 담아 둘 수 있는 기억 없음에 안타까운 마음임을 주님께 죄인의 마음 전하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은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은 옷보다 소중하다.” (루카 12, 22-23) 죄인의 눈에 보이지 않으신 주 하느님, 성경에 담아 두신 주님의 말씀 깨닫지 못하는 죄인임을 알고계신 주님이시니 무엇을 차려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마라,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셨으니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 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하셨기에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작은일 하나라도 기도하면서 마음가짐을 올바르게 하겠습니다. 주님! 저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도록 받기만 하는 생각을 남에게도 할 수 있도록 사회생활에서 아니 담 안에서도 할 수 있는 마음가짐으로 생각 하겠습니다. 아~멘.
- 주 하느님! 연일 무더운 날씨라 생활에 모두들 힘겨워 하면서 지난날을 생각하면 반성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도 하였는데 오늘은 흐린 날씨에 비까지 내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生活에 여유로움이 있을 적에 성경 말씀대로 행하지 아니 하였으나 힘들어하면서 지쳐있을 때에 주님의 말씀을 깨닫고 간절한 마음임을 자신이 잘 알기에 이 시간 부끄러운 마음 죄인의 가슴속에 담겨져 있음에 반성하여 보기도 합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옥중서한(獄中書翰) 한 구절 “천주를 섬기는데 뒤 걸음치지 말자.” 성경책에 있는 주님의 말씀에 부족함이 많고 기억에 담아 두지 못할 정도로 아둔한 죄인이지만 미안할 일이 아니니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경향잡지에 실린 글을 생각하면서 한 구절씩 주님의 뜻에 따라 실천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이오니 성인(聖人)들의 말씀 깨달을 수 있음에 잊지 않도록 죄인의 마음을 이끌어 주옵소서. 로마서의 바오로 사도의 고백처럼 실수와 그릇됨을 통해서 그냥 주어지는 깨달음의 은총이 이 죄인에게도 내려주시옵길 간절한 죄인(罪人)의 마음으로 기도 올리옵니다. 아멘.
박병수(프란치스코) - 오늘은 은혜롭고 지극하신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께서 지상에서의 생애를 마치신 다음, 거룩하신 하느님이 살아 계시는 하늘나라로 불려 올라가신 날, ”성모승천 대축일”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그리스도 안에서 산 사람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누리게 될 구원의 영광을 보여주는 “위로이자 희망”의 표지이며 “여인들 중에 가장 복되신 분” 이시기에 찬미와 영광을 드리며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나의 자신을 오롯이 맡기며 예수님의 제자이신 루카의 말씀을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사랑이신 주님! 구세주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하늘의 영광에 불러들이시고 올리시며 천상모후의 관을 씌워 주신 하느님 아버지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감사드리며 성모님의 승천을 기뻐하는 교회와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다가가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고 위로해 주시길 바라며 주님의 사랑을 온 세상에 베풀어 주소서. 아멘.
정정원(미카엘) - 교회의 어머니 이신 성모님께 드립니다. 인류의 죄에서 해방시키는 새로운 계획에 가장 친근한 협력자이신 어머님! 저 자신의 이 몸을 의탁하며 맡기나이다. 이제 십 여일이 지나면 사회의 한 일원으로 새롭게 살아가려고 하나이다. 삶에 있어서 제 주위에 온갖 악의 유혹이 따를 것입니다. 이 유혹에서 흔들리지 않으며 하느님의 자녀의 참된 모습으로 진실 되고 겸손하며 사랑의 마음을 간직하며 살아 갈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십시오. 레지오의 단원으로써 이곳 담 안에서 수년에 걸쳐 활동을 해왔나이다. 이런 활동을 통하여 이웃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었고 구속 사업에 동참 할 수가 있었습니다. 성모님의 영혼들을 돌보시며 뱀의 머리를 바수는 당신의 영원한 사명을 완수하시는 일에 대리자로서 활용 하시는 사도직 단체에 몸 담으로써 제 자신의 모습을 좀 더 새로운 변화를 가져 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랑의 어머니! 어머님의 아들 미카엘 해와 같이 빛나며 달과 같이 아름다우신 여인이신 성모님! 사랑합니다.
정재덕(프란치스코) -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어디서나 감사드리며 평생을 주님의 뜻에 순명하며 살다 지상생애를 마치신 다음 하늘나라로 올라가셨다는 성모승천대축일. 성모 어머님 세상에 오시어 많은 사랑을 몸소 보이시며 천사들의 손을 잡으시고 천상에 오르시어 하늘과 땅의 모후가 되셨습니다. 성모어머님 성자를 낳으시고 기르신 하느님의 어머니 평생 동안 당신의 사랑과 전구로 촛불 밝혀 감사와 찬미 노래 부르며 가시밭 험한 세상에서 언제나 성모어머님 생각하며 공경과 사랑을 봉헌하나이다. 성모어머님을 보면서 예전에 처음 집 부근에 있는 성당을 몇 번 가본 적이 있습니다. 조금은 웅장한 각진 십자가 탑을 바치고 있는 붉은 벽돌로 둘러싸이고 넓은 정원에는 작은 돌 자갈이 깔려있는 정원입구 오른쪽에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신 하얀 석고상으로 고운모습으로 있는 모습을 보면서 성당 안 내부 고상이신 예수님의 못 박히신 모습과는 달리 어린마음 아무것도 모르던 때에는 성모님의 모습에 그저 그 앞에서 고개 숙이며 무언가 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이렇게 주님의 백성이 된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양심을 찾지 못하고 허공에 헤매는 사탄에 종이 되어 어렵고 힘든 시기에 이렇게 주님을 찾고 주님역사하심을 공부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양심을 찾지 못하고 허공에 헤매는 사탄에 종이 되어 어렵고 힘든 세월을 살아가게 된 지금 죄 많고 잘못이 많은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지켜주고 계신 주님의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모어머님 세상에 많은 말 중에 어머님이란 말은 가장 제 가슴을 감싸주는 참 좋은 말입니다. 묵주 구슬 한알 한알 성심모아 기도할 때에는 사랑 많이 하겠다고 말은 하지만 때로는 살다보니 말만 앞세울 때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나한테 잘해주면 좋은 사람 나한테 못해주면 나쁜 사람 이렇게 생각 할 때도 기도하고 주님 찾고 성모님! 외울 때는 그저 모자라는 청. 바라는 것만 달라고 하는 저 자신입니다. 그래도 주님 모시고 사는 신자로서 주님 때문에 참기도 많이 하고 성모님 생각하며 마음도 온순해져 자신을 낮추며 겸손하게 살아가려고 많이 노력합니다. 이렇게 살다 보면 나 자신을 하나씩 개선하고 영혼의 양식도 쌓으며 후회 없는 내 모습을 만들어 갈 수 있겠지요. 어제 모자랐던 마음을 오늘 깨닫고 또 내일 깨달음 오리라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성모 어머님! 오늘도 내일도 어머님의 사랑을 느끼며 모자라는 마음 성모어머님께 의지하는 저에게 당신의 사랑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간절히 구하나이다. 주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사랑의 초원에서 저희들의 영혼을 굽어 살펴주옵소서. 저의 간절한 기도를 물리치지 마시고 어여삐 여기시어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아멘.
마상태(안드레아) - 우리나라가 일제하에서 해방된 광복절과 같은 날 성모승천대축일이 정해짐은 우연이 아니지 싶다. 우리가 정치적으로 자유를 얻은 날이 광복절이라면 성모승천일은 우리 영혼의 진정한 자유를 얻은 날이니까요. 성모님께서 육신그대로 하느님의 부름을 받아 승천하셨음이 성경에 있다 없다 전승에 있다 없다의 근거보다는 오늘 복음말씀에 있듯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내게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을 가지분으로서 성모님의 모든 것은 표현된다. 우리 역시도 하느님의 뜻이 내안에서 이루어지리라는 나름대로의 사명과 확신으로 신앙을 지켜간다면 분명 행복한 자의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동규(가브리엘) -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며 사셨던 성모님께서는 신앙인들의 모범이십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희망의 표상입니다. 우리역시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면 성모님처럼 영광스럽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성모님을 본받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세상 구원의 작은 도구로 살아갑시다.
김기영(프란치스코) - 자비의 주님 제가 과거의 죄와 단절하여 주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아가는데 저의 의지와 욕심보다는 주님께 온전히 의지하고 따르는 것이 먼저임을 깨닫게 하시고 항상 주님께서 저와 함께 하심을 잊지 않아서 언제나 주님 안에서 바로 설 수 있도록 허락하소서. 아멘.
- 사랑의 주님. 제가 주님께서 보시기에 어떤 모습으로 사는 것이 가장 좋을지 아직도 잘 확신 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 알면서도 저의 인간적인 욕심 때문에 올바르게 실천 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저에게 더욱 굳건한 믿음과 강한 의지를 허락 하시어 제가 주님 안에서 항상 깨어 있도록 살펴 주소서. 아멘.
이국진(욥) -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저울로 인간의 행위로 측량하시는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곧, 인간의 저울로 재면 권세 있고 부유한 이들이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저울로 재면 굶주리고 비천하게 살지만 가난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이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김윤오(베드로) - 제가 있는 거실엔 저를 포함해 4명이 함께 있습니다. 처음 제가 이 거실에 옮겨 왔을 때, 8명이 있었으나 한 명은 출소를 해서 나가게 되었고, 다른 한 명은 공장 일을 해서 방을 옮겨갔습니다. 6명이 있다가 두 명이 다툼이 일어 징벌방으로 갔고, 한명은 22일 또 다른 한명은 33일을 징벌을 먹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조금만 더 슬기롭고 조금만 더 지혜로웠다면 이들이 징벌을 먹는 일이 없었을 텐데, 그동안 나의 부족함고 나의 잘못은 알지 못하고 지내다, 이제야 나의 잘못 등을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들 둘이 저의 잘못된 처사를 용사해 주기만을 바라고 이들 둘이 별 탈 없이 남은 수용생활을 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4명 남은 방 동료들 중에 한 사람이 남은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며 겉돌고만 있습니다. 이 친구 자기 밖에 모르고 조금은 외골진 면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결국 방 사람과 다툼이 생겨 혼자 외로운 생활을 하며 지내는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저에게도 몇 차례 화해의 제스처(gesture)를 보내 왔으나 저는 그의 제스처(gesture)를 보고도 못 본채 외면해 버렸습니다. 주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계시는데 저는 이제 고작 두 번째인데 이 친구의 화해의 제스처(gesture)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자꾸 외면을 하게 됩니다. 이러는 저를 어찌하면 좋을까요? 제가 모두 감싸고, 다독여가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저에게 넓고 깊은 아량을 주시길 간곡히 청하옵니다. 주님 저의 청을 들어주십시오. 아멘.
나에게 죄를 짓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가서 단둘이 만나 그 사람을 타이르고 그 사람이 나의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을 내가 얻을 것이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그 사람이 나의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타일러 보라고 하십니다. 그래도 그 사람이 말을 듣지 않으면 마지막으로 교회에 알려보고 교회의 말조차도 듣지 않는다면 그때엔 그 사람을 다른 민족으로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나에게 죄를 짓는 사람에게도 몇 차례에 걸쳐 기회를 주기를 주님께선 말씀하십니다. 나는 나에게 죄를 지은 사람, 또는 나와는 맞지 않는다하여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몇 차례씩이나 기회를 준 이후 배척을 하고 있나 생각해봅니다. 때에 따라서 한두 차례 또 어쩔 땐 단 한 차례도 기회를 주지도 않고, 배척했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또한 수감자가 되어 있는 지금은 담장 밖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많은 죄짓게 하는 경우 나에게 죄를 짓는 경우 내가 죄짓게 만드는 경우가 많이 발생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사람들을 배척하기 보다는, 자기 잘못을 충분히 깨우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도록 하겠습니다. 남의 허물을 보기 보다는 내 허물을 먼저 보길 원하고, 남을 탓하기 보다는 내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우리는 살아오면서 수많은 표징을 보고 겪으며 또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어떨 때는 바로 우리 눈앞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우리가 아무런 느낌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나타나셨다 가시기도 합니다. 하늘에서 오는 표징이 과연 무엇일까요? 눈을 크게 뜨고 보면 보이는 모든 것이 표징들은 아닐까요. 요즈음 찌는 듯 한 무더위로 모두들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강한 빛으로 세상을 용광로처럼 만드는 것 또한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아닐까요. 당신께 순종하라는 징표를 보여 주시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때로는 알 수 있도록 때로는 알지 못하도록 하늘의 표징을 보여 주시는 주님께 또 새로운 표징을 보여 달라고 보채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끊임없이 보여 주시고 계신대도 말입니다. 한 알의 쌀알이 생겨나는 과정도 징표인 것이고,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는 것도 징표인 것인데……. 우리는 자신이 깨닫지 못한다하여 계속 보채기만 합니다. 징표를 보여 달라고……. 징표를 보여 달라고 보채고 떼쓰기 이전에 먼저 징표를 알아 볼 수 있는 눈을 뜨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준비도 갖추지 않고 달라고 하기 보다는 어떤 모습. 어떤 형상으로 우리에게 오신다 해도 알아 볼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어 두어야 되겠습니다. 보여 달라기보다는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 주십사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수용자의 신분이 되어 저는 매일 기도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에 있을 때 간혹 공경에 처하거나 어려움이 따르게 되면 하느님을 또는 예수님을 찾으며 기도 드렸던 기억이 나기는 하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열성적이진 못했습니다. 부산에 머물 때에 해운대 성당에서 처음 영성체를 모실 때 그때의 감동은 잊을 수가 없으며, 지금도 생생한 느낌이 기억 한 켠 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유아세례를 받았으나 사정상 영성체를 모시지 못하고 있다 부산에서 교리를 배워 첫 영성체식을 하게 되었고, 당시 같이 교리를 배웠던 형제님들과 수녀님의 축하인사를 받을 때 저는 뭉클해지는 감동으로 주체 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처음으로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셨으니……. 그동안 미사참례를 하며 얼마나 영성체를 모시는 상상을 해왔는지 누구에게도 이야기 해본 적 없으니 알 수 없었을 것인데 주님은 이 모든 것을 아시고 계셨기에 저에게 그런 감동과 희열을 주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부산을 떠나 서울로 돌아올 때 수녀님과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저는 서울에 와서는 그 약속을 잊어버리고 살다 결국 이런 신세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처음 영성체를 모실 때 진심으로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 이었기에 저에게 감동과 희열을 느끼게 해 주신 것인데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당시 생각이 나는 이유는 지금 현재 나는 입으로만 주님을 공경하는 것은 아닌가. 헛되이 주님을 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경계심을 일깨워 주시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 영성체를 모실 당시에 마음을 가지며, 살아 갈 수 있도록 믿음을 가지며 노력할 것입니다. 주님 저에게 그때 그 감동과 희열을 다시 한 번 주시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멘.
안남호(율리오) -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통하여 세상에 구원의 표징을 남기십니다.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도 남은 열두 광주리……. 이런 일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요? 인간의 능력으로는 실현 시킬 수 없는 너무나 엄청난 일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기적이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능력이라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여러 복음에서 우리에게 믿음을 강조하십니다. 흔들리지 않고 변함없는 믿음만 있다면 우리에게도 상상 이상의 많은 일들을 실현시킬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주님이기에 모든 것을 이루고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꿈과 희망을 이루어 주실 유일한 분이니까요. 이제는 기적을 원하기 전에 우리 믿음의 작은 조각들을 주님께서 오시는 길목에 깔아 드려야 하겠습니다. 아멘.
-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 복음 말씀에 예수님께서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양식을 얻는데 힘쓰라고 하시며 영원한 생명은 주님께로부터 시작됨을 강조하십니다. 그 말씀이 커다란 회초리가 되어 저를 꾸짖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신앙을 빌미로 남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과 그런 전시효과를 노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또는 담 안 생활의 한 방편으로 안일하게 생각하며 지내온 것은 아닌지……. ‘감탄고토(甘呑苦吐)’라는 말과 같이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내는 보이지 않는 저의 추악함을 알면서도 지금까지 습관처럼 방치해온 제 삶의 한 귀퉁이를 오늘 주님의 말씀으로 채워볼까 합니다. 아멘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빵으로 표현하십니다. 생명의 빵인 예수님의 몸을 먹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며 당신의 몸 안에는 사람을 살리는 무한한 사랑이 담겨 있음을 되새기십니다. ‘나는 빵이다’ 이 말씀은 곧 당신 자신이 몸소 희생 제물이 되시겠다는 말씀이 아닐까요?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의 길을 겸허히 받아들이신 예수님……. 당신의 사랑이 이 세상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주십니다. 하지만 자신이 없습니다. 머리와 마음으로는 주님의 모든 말씀을 받아들이지만 몸으로는 아직 실천하지 못하고 말뿐인 저의 또 다른 모습에 화가 나고 한 없이 부끄럽게만 느껴집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기에도 힘들고 벅찬 냉정한 이 사회에서 전과자로 살아야 한다는 안타까운 현실이 더 더욱 저의 발목을 잡는 것 같습니다. 매주 성체를 모시면서 다짐했던 그 모든 것들이 점점 멀어져만 가는 것 같습니다. 주님! 저의 꺼져가는 믿음이 당신의 사랑으로 다시 활활 타오르게 하소서. 아멘.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잉태하신 마리아께 엘리사벳이 ‘여인들 가운데 가장 복 되신 분’ 이라고 외치고 마리아께서는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노래를 바치십니다. 우리가 매일 기도 중에 드리는 ‘까떼나’의 내용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인간의 몸으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은총을 누리셨지만 그 뒤에는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과 같이 십자가 아래서 말없이 아들의 고통을 지켜봐야만 했던 처절함과 남몰래 흘려야 했던 눈물이 아픔의 상처로 얼룩져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하늘에 오르셨고, 성모님께서는 하늘로부터 올림을 받으셨으며, 또 주님께서는 언제나 낮은 자들을 잊지 않으시고 높이 들어 올리십니다. 오직 주님의 종으로 겸손하게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신 성모님의 생애는 하느님의 은총 그 자체이며 진정한 신앙의 신비가 아닐까요? 오늘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질 구원의 영광이며 그 영광은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됨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아멘.
왕건철(루카) - 예수님께서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의 무리에게 먹이셨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기적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연히 이루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못하실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기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기적들이 세상에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보이셨던 삶을 본받으려는 많은 사람들이 헐벗은 사람들을 위해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아 그들을 구제하는 것, 자신의 가진 재능을 아낌없이 나누는 일 이것은 분명 기적입니다. 불가사의 한 일들만 기적이라고 여기는 지금 시대에 이런 일들은 기적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죄인이 죄인의 길에서 벗어나 의인의 길을 가는 것도 기적이리다. 우리가 죄인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도 기적입니다. 저도 이런 기적의 길에서 하느님을 뵙고 하느님 나라를 간절히 바라보는 하느님의 참 자녀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주 하느님! 당신의 기적을 저에게 보여 주소서. 아멘.
- 성모님께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 뜻에 맡기십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 앞에 내려놓고 하느님 말씀대로 예수님을 낳으시고 부양하십니다. 자신보다 더 귀한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순간조차도 하느님 뜻이기에 순조하셨습니다. 자식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어머님의 심정은 어떠하셨을까요? 이렇듯 모든 것을 하느님 뜻에 따라 일생을 사셨던 어머니 성모마리아께서 하느님 나라에 불리어 올라가십니다. 그리고 월계관을 머리에 쓰시고 모든 인류의 어머니로 불리게 되셨습니다. 어머니! 이 말보다 따뜻하고 가슴 뭉클한 말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모든 인류의 어머니! 아니 이제는 저의 어머니! 성모마리아! 언제나 당신을 사랑합니다!
조성락(경환 프란치스코) - 제가 받아본 아름다운 풍경 사진은 ‘덕유산 설경’모습입니다. 덕유산 위에서 추운 계절에도 불구하고 멋진 설경을 촬영하여 주신 자매님께 우선 감사를 드립니다. 무더운 계절인지라 설경 속 사진 풍경은 잠시나마 제 마음에 시원함을 찾게 해 주네요. 언뜻 보면 산위에서 보는 풍경이 눈꽃을 입은 나뭇가지 너머 하얀 구름이 꾸불꾸불 갈라진 것이 저 구름들 너머에는 천국으로 향하는 길은 아닐는지, 천사들이 다니는 그 길은 아닐는지 조심스레 공상도 가져 봅니다. 매번 뜻 깊은 때에 따라 저희 형제들을 위해 이렇듯 아름다운 풍경과 신비로운 풍경들을 사진 속에 담아 그 마음을 나누려는 자매님 이하 신부님, 수녀님 및 여러 수고를 도와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함을 드립니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마태오 복음 7장12절 말씀처럼 제게 사랑을 주시는 고마우신 분들을 위해서라도 지금의 시련을 이겨, 주님의 도구로 쓰여 질 수 있게 살고픈 마음입니다. 비록 이곳에서 하느님 사랑을 만나 넘어진 모습으로 저 자신을 깨닫고 다시금 일어서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있어야만 자리에서 일어나고, 걸을 수 있으며, 삶에 있어 좀 더 발전을 찾아 나 갈 수 있을 것이기에 희망이란 말을 주님께 간구하며 열심히 지내는 중입니다. 부족함 많은 저에게 늘 마음으로 인도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무더운 이 계절도 사진 한 장에 위로를 찾아 힘을 냅니다. 고맙고 감사하다는 짧은 말 한마디로 이 마음을 대신해 보네요. 사랑하고 행복합니다.
송기성(스테파노) - 여름이면 목청껏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무더운 날씨에는 귀에 거슬릴 때도 있지만 한철을 노래하기위해 어두운 땅속에서 몇 년씩 자신을 이겨낸 매미들이 아닌가. 내가 이곳에서 지낸지가 어느덧 십 수 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있고 마태오성당에서 신자로써 지내면서 많은 분들에게 진심어린 사랑과 관심으로 아무 문제없이 신자의 의무를 다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매년 축일 때나 또 다른 행사 때가되면 우리 형제들에게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멋진 배경 사진을 찍어서 보내 주신 자매님의 정성 때문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 앞서지만 늘 마음으로만 대신 했던 것이 사실이다. 밖에 있었다면 바다나 산으로 피서를 떠난다고 야단법석이었겠지만 이곳에서 지내면서 그런 생각은 꿈을 꾸지 못했다. 이번 여름 방학을 시작하기 전에 멋진 사진을 주시어 벽에다 붙여 놓고 피서를 떠나는 상상을 해보곤 합니다. 행복과 불행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현신을 비관하기 보다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한다면, 기쁨이 아닐까요. 지금 마태오 성당에 방문해주고 찾아주신 많은 은인 분들이 계시지만 그분들의 삶이 넉넉해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말씀과 기적을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을 위해서 부족한 기도지만 가정을 위해서 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 하겠습니다.
이우근(스테파노) - 사랑이신 주님! 항상 주님과 함께 하기를 바라면서도 인간적인 시선과 지각으로만 판단하고 의지하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시고, 이제는 제가 온전하게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께서 저게 부르시는 부르심을 깨달아 항상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죄인으로 살아가는 시간들이 대부분 고통스러운 것은 분명하지만, 이 곳 감옥의 삶에서도 주님을 모시며 살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주님께서 제게 주신 사랑에 비해서 너무나도 부족한 저의 믿음이기에 때때로 작은 걸림에도 여전히 자신을 잃고 흔들리곤 합니다. 그래도 이제는 주님께서 저를 잡아주심을 알기에 더 이상 두려움은 없습니다. 이제 제가 헤아릴 수 있는 죄보다 저의 마음에 감춰져 있는 죄가 무엇인지 더욱 잘 볼 수 있도록 하시어 더 이상 제가 죄를 지어 주님을 슬프게 하지 않도록 살펴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진병일(경환 프란치스코) - 성모 승천대축일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묵상을 하여봅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어머니로써 우리의 어머니이시기도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들을 세상의 죄 즉,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인류의 미래는 인간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에 의해서 구원되고 또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자신의 아들도 아낌없이 세상에 내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자애와 저희들을 사랑으로 보살핌 속에서 지금까지 앞으로도 그분의 인자하심 보살핌 속에서 살아야만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성모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사람의 잣대로 세상 속에서 살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과 하느님의 잣대로 산다면 더 이상 죄악 속에서 살지 않고 영원한 세상하느님의 나라에서 성모님의 따뜻한 사랑 안에서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세상의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고, 나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오직 그분의 행하심을 배우고 실천하면서 살고 있는 그대로의 나의 참모습을 성모님께 드리고자 합니다.
장이규(비탈) - 광복절을 맞아, 우리나라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이신 주님, 광복절을 맞이하였지만 현실 속 제게는 어렵고 큰 날로 잊혀져왔습니다. 기도문을 적으려고 꽤 오랜 시간을 묵상도 하고 하였는데 나오지 않았습니다. 손쉽게 국어사전만 보면 되는데 기도를 적으려고만 했지, 찾아보고 공부하려 생각만 하고, 마냥 보냈습니다. 이런 저의 게으름을 깨워주십시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호칭을 달고, 부끄러운 모습을 가진 저를 혼내주시고,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야 하는 신앙인의 저를 주님 안에서 부끄러운 신자가 되지 않도록 저의 머리와 팔 다리를 움직여 주시고, 가슴을 열고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신자가 되도록 이끌어 주시어, 웃으며 살 수 있는 우리나라의 일원이 되게 하소서. 광복절을 생각하는데 떠오른 아버지. 어렵고 어렵던 내 아버지. 혼내고 혼내며 잊으시던 내 아버지. 울어도 울어도 가만히 있어도 두려웠던 아버지. 엄했고 엄하셨던 너무 엄한 내 아버지. 그 분이 집에만 있어도 숨죽여.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두 근 세근 뛰는 심장. 이름이 불리면 무조건 네! 무릎부터 꿇는다.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숨죽여 두 근 세근 뛴다. 어느 때나 느껴지는 기분이 올 때면 숨는다. 두 근 세근 멈추지 않는 소리도 잊은 채 숨는다. 나이가 스무 살이 넘어도 숨고 싶어진다. 그리고 큰 소리만 나도 숨는다. 습관이 되어버린 모습, 아픔 나는 지금 광복절을 생각하려 한 것인데, 왜!!! 우습다. 일제식민지가 왜 아버지와 엮이는지 모르겠다. 지금 나는 해방되어서 떠오른 것일까? 아픔을 느껴서 나의 아픔과 비교한 걸까? 지금 서른넷이라는 나이인데 2년 전 아버지와 대화 할 때 나는 입이 잘 안 떨어지고, 두 근 세근했다. 젠장. 그런 아버지가 있어서 그런지 아프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아프다. 나는 절대 그런 아버지는 안 되겠지? 내가 아파서 아픈 걸까?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아버지가 아파서 아픈 걸까? 젠장! 주님 저는 이상해요. 치료해주세요.
윤용석(유스티노) - 주님의 은총으로 저에게 크나큰 영광으로 나날이 보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신부님, 수녀님 그리고 사목후원회 은인 분들 감사드립니다. 2006년 12월부터 2012년 7월까지 저희 담 안형제들에게 해마다 멋진 꽃과 예쁜 꽃으로 저희들에게 사랑으로 채워주시는 자매님 감사합니다. 저에게 처음으로 주신 글과 그림을 고이 간직하면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항상 기쁨과 감사함 속에서 늘 기도하며 사랑의 열매 맺는 아름다운 삶이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1데살 5.16)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1데살 5.17)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데살 5.18)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나면서 성경 속에서 너무 제 가슴에 와 닿았으며 또 그렇게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옴으로 인하여 저의 성경구절로 정하였습니다. 또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이기에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주어라.”(마태 7.12) 2012년 7월24일 주신 성경구절입니다. 독일 어느 호수의 배경으로 찍은 사진인데 너무나 맑고 깨끗한 물이 거울처럼 비춰져서 착각할 정도로 느껴집니다. 너무 청명하며 깊이를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저희 담 안형제들에게 베풀어주신 후원회 은인 분들의 깨끗한 마음을 비추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사진 속에 높은 산위에 내린 하얀 눈꽃과 맑은 호수의 물을 보면 이 무더위를 말끔히 식혀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저희들에게 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사진으로 여행을 갈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남에게 베풀다 보면 그 언젠가는 반드시 저희들에게도 베푼 만큼 은총으로 돌아온다는 것……. 호숫가의 경치가 반쪽 이었으나 수면에 비친 그림은 하나의 그림으로 나타나 얼굴형상을 보여줌에 감사드립니다. 이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저희 담 안형제들을 위해서 불철주야 사랑으로 채워주시는 신부님 수녀님 교정사목후원회 은인 분 모두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리며 항상 기도 속에 함께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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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람의 일이라,
그들을 알지 못했을때는 가리지 않았는데
그들을 알아 버린 지금에는 아무래도 아는 분들의 글을 집중해서 읽게 됩니다.
너~~~~~~~무~나 건성이 되어 버린 나를 돌아보며 ^^;;
이러면 않 되겠지요.
사람이나 글을 가리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우리의 한계이옵니다.
고맙습니다.
보편적인 사랑,
보편 교회
"예수님의 사랑
신기하고 놀라와"
도비야 형제님도 미카엘형제님도 안에서는 다시 만나지 맙시다.
인자하시고 자비하신 우리 주님께서 이분들 앞날을 축복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분들 계획에 주님 축복하시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살아가는 착한 아들들 되리이다.
형제님들 잘 사시기를 빕니다.
힘 드시더라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