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곡 오만을 상징하는 조각, 천사가 첫 번째 P자를 지움
오만의 죄를 지은 오데리시 영혼과 나는 선생님이 허락하실 때까지 함께 걸었습니다. 선생님이 이제 그를 떠나 각자가 있는 힘을 다해 밀고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나는 몸을 움직여 넉넉한 마음으로
선생님의 발자국을 따라갔다.
우리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선생님이 네 발이 딛고 있는 돌바닥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갈 길이 쉬워질 테니 아래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매장된 이들 위를 평평하게 다진 무덤들이
죽은 사람들의 일생을 기록한 묘비로
그들의 기억을 담고 있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만이 죽은 자에 대한 추억에 눈물을 흘릴 때가 많으니 산이 깎여 길이 된 이곳에 실물처럼 조각을 한 솜씨가 내 눈에 더욱 절묘해 보였습니다.
모두 오만으로 죽은 이들의 조각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은 이들은 금방 오만으로 얻은 무서운 결과이구나 하고 눈치를 챕니다.
단테는 그 매장된 길에서 루키페르가 하느님을 거역하여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에 대항하기 위해 높게 산을 쌓았다 제우스가 던진 번개에 맞아 죽은 거인 브리아레오스가 누워있고
아폴론, 미네르바와 마르스가 제우스 가까이에서 거인들의 잘려나간 사지를 내려다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바벨탑을 쌓다 자기와 함께 오만 했던 사람들을 보고 있는 니므롯을 보았습니다.
-죽은 일곱 아들과 일곱 딸 사이의 니오베의 모습이 있고(변신 이야기. 제6부, 2 니오베의 아들딸들),
일곱 아들과 일곱 딸을 두었다고 레토 여신을 업신여긴 니오베를 벌하기 위해 레또의 자식인 아폴론(아폴로)과 아르테미스(다이아나)가 니오베의 자식들을 활로 쏘아 죽이는 그림이 루앙미술관에 있습니다.
니오베는 돌이 되었지만 눈물은 차가운 얼굴에서 계속 떨어졌다고 합니다.
니오베의 자식들을 공격하는 아폴론과 다이아나, 프랑스 루앙 미술관
- 2008년 루앙 여행에서
여신 아테나(미네르바)와 길쌈 경쟁을 하던 아라크네가 자신의 예술품 위에 반쯤 거미가 된 모습이 슬프고(변신 이야기. 제6부, 1 미네르바 여신과 아라크네의 솜씨 겨루기)
사울왕(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하느님의 버림을 받았습니다.)의 자결한 모습,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아무도 뒤를 좆지 않는데 두려움으로 전차를 몰고 있고,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의 하나인 알크마이온이 금목걸이 때문에 어머니에게 어떤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시리아의 왕 산헤림이 하느님을 업신여긴 죄로 사원에서 기도하다 두 아들에게 죽음을 당했는지 보여주고 있고,
페스시아의 황제 카로스의 패전으로 카로스에게 행한 토미리스의 피의 복수와
홀로페르네스의 유딧(유디트)에 의한 죽음이 아시리아 군이 어떻게 도망쳤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디트는 이스라엘의 베툴리아에 살고 있는 정숙한 과부였습니다. 아시리아 군의 총사령관인 홀로페르네스는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어 서방 세계를 정복하였습니다. 오직 이스라엘만 저항하고 있었는데 홀로페르네스는 베툴리아를 포위하여 몇 십일이 흘러 사람들은 굶주림 때문에 항복하기 바로 직전이었습니다.
유디트는 치장을 요란하게 하고 하녀와 함께 거짓 투항을 하였습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유디트의 미모에 현혹되어 유디트를 연회에 초대하여 만취된 롤로페르네스와 단 둘이 남게 되었습니다. 유디트는 만취한 홀로페르네스의 머리카락을 잡고 그의 머리를 잘랐습니다. 이에 놀란 아시리아 군은 혼란에 빠져 달아나고 이스라엘 민족이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물론 성경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나 성경 이야기를 모르면 그림을 감상하기 어렵습니다.
홀로페르네스의 유딧(유티트)에 의한 죽음의 그림이 여성 화가에 의해 그려진 그림이 있습니다.
아르테미지아 젠틸레스키는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의 화가입니다. 피렌체 피세뇨 아카데미의 최초 여성회원으로 여성을 모델로한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아르테미지아 젠틸레스키-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아르테미지아 젠틸레스키- 유디트 피렌체 피티 궁전의 팔라티나 미술관
- 2012년 피렌체 여행에서
적장의 목을 벤 유디트가 하녀와 함께 돌아오는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은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와 함께 젠틸레스키의 대표작으로 인정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카라바조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입니다.
젠틸레스키의 유디트와는 다르게, 유디트가 연약하고 망설이는 표정이 이 그림을 볼 적마다 유디트의 얼굴로 가서 한참을 보게 합니다. 하녀나 홀로패르네스의 표정이나 유디트의 팔에도 힘이 있는데 유디트의 얼굴은 순진하고 이 일이 싫은 표정입니다.--
카라바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로마 바르메리니 궁전 국립고전회화관
- 2012년 로마 여행에서
거기에 일리온 성이 불타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 트로이 전쟁으로 재로 변한 트로이 모습이 얼마나 비참하게 보였는지!
그 어떤 대가의 재주와 붓이 이런 형상과 명암을 표시할 수 있겠습니까
극히 섬세한 마음도 압도하는 예술이었습니다.
죽은 자는 죽은 듯, 산자는 산 듯 보였다.
그려진 사실을 직접 보았던 자라도, 이렇게 몸을 숙여
밟으며 지나간 나보다 더 잘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브의 자손들은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오만하게 가거라! 고개를 숙이지 마라!
그러면 너희의 사악한 길이 보일 터이니!
그때 선생님이 저기 우리에게 오려고 준비하는 천사를 보라고 합니다.
흰옷을 입은 천사가 가까이 다가와 "이리 오너라! 계단이 가까웠다. 이제 더 쉽게 오르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천사가 바위가 부서진 곳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거기서 날개로 내 이마를 쳤고,
이어 갈 길이 안전함을 약속했다.
천사는 날개로 내 이마를 쳐 P자 하나를 없애 주었습니다.
천사가 우리를 이끌었고 심하게 경사진 절벽이 완만해지고 높다란 바위들이 몸을 스쳤습니다. 우리가 계단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되도다!”라는 노래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감미롭게 들려왔습니다.
저 아래에서는 끔찍한 통곡소리와 함께 들어갔지만 이곳에서는 노래와 함께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어느 덧 두 번째 둘레의 계단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평지에 있을 때 보다 몸이 한층 가벼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 몸이 계속 올라가도 힘겹지 않다고 하자 선생님이
네 이마 위에 아직 희미하게 남아 있는
P자들이 방금 하나 지워졌듯이
앞으로 완전히 지워질 때
너의 발길은 선한 희망과 함께
더 가벼워질 것이다. 오르는 길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즐거워질 것이다.
나의 오른 손의 손가락을 뻗어 천사가 내 이마에 새겨진 여섯 개의 글자를 찾아냈습니다. 이를 보던 선생님이 미소를 지으셨습니다.